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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기도해달라고 청하지 말라

알고 지내던 분이 요즘 많이 힘들다면서 나도 아는 다른 지인에게 "저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절히 청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분은 여러 차례 사기를 당해 오래도록 고생해왔는데 최근에 또 사기를 당한 모양이다. 자기들끼리야 기독교인이니 매사 기도해달라는 게 가벼운 인사 정도로 인식이 되는 모양이지만, 나처럼 오직 지혜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관습이다.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사기를 걸려는 사람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 의도에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이성으로 방어해야 하는데 그이는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사기꾼이 드리운 낚시바늘을 덥썩 물고 아픈 세상으로 끌려다녔다.


그런데 그를 위해 하나님에게 아무리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사기꾼의 낚시를 물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바쁘신 하나님이 오셔서 그 낚시를 다 거둬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비유마저도 그저 비유일 뿐이지 하나님을 실체로 오해하면 안된다.


십수 년 전, 이웃 아주머니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찬송가를 연주할 피아니스트가 없다면서 아침기도 시간마다 내 딸이 찬송가를 쳐주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하고 있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둘러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럼 계속 기도해보세요." 하고 농담반 덕담반으로 대답한 적이 있다. 아주머니는 단 한 번도 내 딸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채 열심히 기도만 했고, 당연히 내 딸은 그 교회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끝내 피아노를 칠 기회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하나님은 내 딸에게 아무 말도 전해주지 않았다.


몇 년 전, 내 주변에서 대단히 유명한 사기꾼이 한 노년 부부를 보기 좋게 사기쳐먹었다. 큰돈을 빼앗긴 이 부부 중 할머니는 "사기꾼을 죽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그 결과 그 할머니는 불과 몇 년 뒤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그분이 죽으라고 기도한 사기꾼은 지금도 멀쩡히 양복 빼입고 다니며 새로운 먹잇감을 물색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할머니의 악의적인 기도, 피를 토하는 아픈 기도는 단 한 마디도 사기꾼에게 전해지지 않고, 오직 그 할머니만 들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아무리 분노한들 그 분노를 체험한 이는 오직 할머니 뿐이다. 기도할 때마다 할머니 몸에서 독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왔을 것이고, 결국 면역력이 떨어져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그 할머니가 독한 기도를 하던 중에도 그 사기꾼은 아내에게 아우디 승용차를 사주어 큰 절 총무로 우쭐거리게 해주고, 사기친 돈으로 아들 미국 유학비를 보내주고, 자신은 아가씨들 어깨에 사기치느라 고생한 무거운 손을 얹은 채 비싼 술과 고급 음식을 먹으며 인생을 예찬하고 예술을 논했을 것이다.


같은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한 청년이 늘 그를 욕한다. 누구를 만나든 이 사기꾼에 대해 장황하게 떠든다. 내가 보다 못해 "말로 떠들지 말고, 고소를 하든지, 감당할 수 있다면 칼로 찍어 죽이든지 하라. 네가 사기꾼을 저주할 때마다 네 안에 암세포가 늘고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넌 지금도 사기당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물론 그는 지금도 여전히 사기꾼을 욕하고 다닌다. 고소하려니 법률 요건 구성이 안되고, 칼로 찍어죽이자니 법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왜 자기가 사기를 당했는지 반성하거나 복기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기당한 이유를 물으면 오로지 그가 사기꾼이었기 때문이라고만 믿는다. 다른 사람이 얼굴만 바꾸어 다시 그를 꾀면 그는 또 사기당할 것이다. 이 세상에 사기꾼 면허증 갖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내 친구 중에는 기독교인이 대단히 많다. 다 존중하지만, 무지도 삶의 일부분이므로, 무엇을 믿든 실천하든 그 결과를 감당할 자세가 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려움, 시련, 곤란, 고소고발, 선거, 입시 등 벼라별 문제에서 그들은 "기도해주세요." 하고 청하는 게 일상이 돼버린 듯하다. 기도의 효과를 누구보다 신뢰하는 나지만 그런 기도는 인간의 이성을 갉아먹는 독이다.


하나님이 실존한다 치고, 인류가 십수만 년 진화를 해온 까닭은 오로지 그 하나님의 지혜를 닮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비유임) 만일 무작정 복종하기로 말하면 개나 돼지, 소, 말 같은 가축 수준에서 더 진화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 하나님이 두뇌를 주신 것은(물론 가정이다) 의심하고 분별하라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망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개는 내가 그들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꾸짖기 때문이다. 오냐오냐, 그럼그럼, 잘했다잘했다, 이럴 수 있지만 그건 그 사람에게 독을 주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내 느낌이나 판단을 말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


최근에도 나는 사람을 잃었다. 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 따라갔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교회에 가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나의 법률적 공격을 막아달라고 기도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그럴 마음이 없으니 그의 기도는 아마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나는 붓다의 제자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불자다. 하지만 절에는 나가지 않는다. 스님이라고 무조건 나의 동지인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절 대부분에서, 붓다가 말씀하신 지혜 대신 욕망을 무기로 팔아먹는 무슨무슨 기도, 천도제 따위, 붓다 생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이한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박 입힌 불상을 등에 지고 사기치는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류는 <지혜의 동물>이라서 학명이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다. 사랑의 종교라면서 이교도를 배척하고, 심지어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가 되는 이들이나, 지혜가 아니면 받을 복도 없다는 달마의 생전 유훈과는 달리 괴상하게 그려놓은 달마도를 집에 모셔두면 악운이 사라지고 복이 생긴다는 이들은 <지혜의 동물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를 '짐승인류' 시대로 환원시키려는 어리석은 부류다.


기도는 인간을 각성시키는 중요한 명상법이다. 다만 욕망을 실현시켜주지는 않는다. 옳은 일, 바른 일이 아니면 기도는 효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