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엊그제 응급상황이 와서 큰 병원 중환자실에서 이틀간 집중치료를 받으시다가 방금 일반병실로 나오셨다. 다시 요양원병원으로 가셔야 한다. 간호사들이, 보호사들이, 간병인들이 이 글 좀 보시고 우리 어머니의 낡은 육신에도 고결한 영혼이 계시다는 걸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청한다.
- 2015년 12월 27일 아침, 외박나온 어머니가 계룡산 동학사 인근 펜션에서 86세 생신을 맞으셨다.
무엇을 보는가.
간호사들이여,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를 바라볼 때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멍한 눈에,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무슨 성격인지도 모르겠는, 까다로운 늙은이라고 생각하려나?
밥은 흘리면서 먹고,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는
"좀 더 드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도
당신들이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언제나 양말 한 짝,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는 늙은이?
목욕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면 늘 어리석게 버티기만 하는
당신의 힘든 하루 일과 중 하나?
그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인가? 당신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간호사들이여, 이제는 눈을 뜨시게나.
당신들은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겠네.
지금은 여기 이렇게 조용히 앉아있어도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먹고 있지만,
나는 열 남매 중의 작은 아이였네.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와 자매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
16세의 소년이었을 때는 날개가 달린 듯한 두 발로 움직이면서
곧 만나게 될 연인을 꿈꾸기도 했다네.
20세의 신랑이었을 때는 내가 지키기로 약속한
그 날의 맹세를 떠올리면서 가슴이 두근 거렸지.
25세가 되었을 때는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네.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된 거지.
30세가 되었을 때 이미 훌쩍 커버린 내 아이와 나는
언제까지나 영원할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었어.
40세가 되었을 때 내 아들은 다 자라서 내 품을 떠났지만
내 곁에 있어준 아내 덕분에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어.
50세가 되자 내 무릎 위에서는 아기가 다시 놀기 시작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린 아이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지.
그리고 슬픈 날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네.
내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앞날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
이제 내 아이들은 모두 그들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좋았던 시간들을 떠올릴 뿐이라네.
이제 나는 늙은이가 되었지. 자연의 섭리는 어찌나 잔인한지,
나이가 많아질 수록 바보처럼 보일 뿐이야.
이미 무너져내린 몸에서 우아함과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
심장이 있었던 자리에는 이제 돌 하나가 들어서 있다네.
하지만 이 늙은 시체 안에는 여전히 젊은이가 살고 있어,
때때로 내 두근거리는 마음이 벅차오를 때가 있어.
내가 겪었던 기쁨과 지나왔던 고통을 기억할 때면
나는 다시 내 안에서 사랑으로 가득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느끼네.
너무도 짧았던,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생각할 때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뿐이지.
그러니 이제는 눈을 뜨길 바라네, 사람들이여 눈을 뜨고 바라봐주시게.
까다로운 늙은이가 아닌,
'나'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 봐주게.
Addie VanDreumel
* 이 글은 <여기서> 가져왔다. 더이상의 팩트는 알 수가 없으나 편지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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