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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운(運)이란 무엇인가? 3

- 지혜가 목표다, 지혜가 제일이다

 

붓다는 '세상이 맞물려 돌아가는 열두 고리' 즉 <12연기론>과 '지혜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로 인류를 구원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붓다의 깨달음은 너무 심오하여 당시 사람들은 연기론과 팔정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12연기가 우주의 법칙이라면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팔정도이지만 당시 인류는 이런 고상한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인물이 나가르주나 즉 용수다. 그는 오늘날 붓다의 깨달음으로 다 함께 구원받을 수 있다는 대승불교를 일으킨 공로를 인정받아 보살로 추앙된다. 즉 그때까지 붓다의 깨달음을 이해하려면 불철주야 열심히 혼자 탐구해야 했지만 용수 이후의 사람들은 다함께 모여 구원받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용수보살이 대승불교를 일으킨 도구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금강경>이다. 금강경의 뜻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다이아몬드처럼 부서지지 않고 녹슬지 않는 지혜>라는 뜻이다. 즉 지혜를 알려주는 경이다. 이 지혜는 붓다가 깨달은 지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주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지혜다. 그래서 붓다는 열반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이나 형상을 따르지 말고 오로지 지혜, 진실, 사실에 의지하라고 유언하셨다.

 

금강경은 붓다가 아닌 용수보살이 지었지만 붓다의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경전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경전이라는 틀을 통해 들여다보면 복잡해지지만 금강경의 핵심을 꿰뚫고 보면 붓다의 일상이 바로 금강경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용수보살은 붓다가 말한 연기론과 팔정도, 공(空) 사상을 아주 간결하게, 당시 인류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붓다와 수보리의 대화 형식>을 빌어 잘 풀어낸 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깨달음의 길이라는 <여덟 가지 바른 길, 팔정도>를 더 분명하고 깊이 있게 해석한 <중론>을 저술했다. 이 중론의 내용은 너무 심오하여 당시 학자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용수보살이 지은 금강경처럼 오늘날의 현대인류에 알맞은 새로운 <지혜를 구하는 방편>으로서 바이오코드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바이오코드는 붓다가 깨달은 진리, 용수가 깨달은 진리, 우주 삼라만상에 두루 통하는 진리와 하나도 차이가 없으며, 없어야 한다.

 

따라서 바이오코드의 1900여년 전 버전이 바로 금강경이다. 이 금강경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보자.

 

금강경은 용수보살에 의해 저작된 이후 수많은 사람에 의해 해설되었다. 그중에서도 야보도천(冶父道川)이 편집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는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야보도천은 이 책에서 게송 하나를 보이는데, 이것이 어쩌면 공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죽영소개진부동 (竹影掃階塵不動)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

 

이 게송은 금강경 아랫 부분에 대한 해설 중에 나온 것이다.

 

제14품 斷無人度生嚴土疑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偈에 云不達眞法界하야 起度衆生意와 及淸淨國土하나니 生心이 卽是倒라하다

二는 明無人이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無法名菩薩이어니 豈有我度衆生이리오

三은 引前說이라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說誼 ; 始因空生問住降하사 敎以滅度而無滅하야 以明無住無我之意하사 令如是降心하며 如是安住也케하시고 次言實無有法如來得阿耨等이라하시고 又言一切法으로 以至云大身이 卽非大身하사 以明佛法道三이 皆空而無住하시고 此言菩薩도 亦如是로 至實無有法名爲菩薩하사 重明無住無我之意하사 乃云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시니 伊麽則現前天地日月과 萬像森羅로 以至二乘諦緣과 菩薩六度와 諸佛無上正等菩提히 一一無住하며 一一無相하며 一一淸淨하며 一一寂滅하며 一一如銀山鐵壁相似하야 無有一法도 容思議於其間矣니라)

【六祖】 菩薩이 若言因我說法하야 除得彼人煩惱라하면 卽是法我요 若言我能度得衆生이라하면 卽有我所니 雖度脫衆生이나 心有能所하야 我人不除하면 不得名爲菩薩이요 熾然說種種方便하야 化度衆生호대 心無能所하면 卽是菩薩也니라

冶父】 喚牛卽牛요 呼馬卽馬로다
(說誼 ; 旣一一如銀山鐵壁相似인댄 作麽生出氣去오 喚牛卽牛요 呼馬卽馬니 法本是無라 道無라도 亦不乖法體며 法本是有라 道有라도 亦不乖法體니라)

借婆衫子拜婆門하니 禮數周旋已十分이라 竹影이 掃階塵不動이요 月穿潭底水無痕이로다
(說誼 ; 看取門前禮數儀하라 借來堂上婆子衫이라 有影掃階塵不動하니 當軒翠竹이 舞婆娑로다 有華透水水無痕하니 在天明月이 光烔曜로다 空耶아 有耶아 吾不稱斷이로다)

【圭峰】 二는 遮嚴土念이라 於中에 文二니 一은 明失念이라.

 

무슨 뜻인가.

죽영소개진부동 (竹影掃階塵不動)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


대나무 그림자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돌계단을 쓸 듯이 왔다갔다 하지만 계단 위 먼지는 움직임이 없다.

달빛은 연못 속까지 비쳐들지만 물에는 아무 흔적이 없다.

 

이것이 공(空) 사상이다. 공(空)이란 진리를 볼 수 있는 지혜가 깃드는 자리다. 거기는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거나 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깨달은 이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고, 중생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인연 따라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다. 저 게송에서 보이는 공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를 가야 하는데, 한 마디로 중도(中道)다. 이 중도를 파고든 것이 용수보살의 중론이다.

 

바이오코드는 지혜가 자리잡은 그 자리를 공으로 보며, 이 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중도로 다가가야만 한다. 치우친 시각, 치우친 생각 등으로는 공을 볼 수 없고, 따라서 진실을 볼 수가 없다. 즉 중도로 다가가 진실을 보는 것이 바로 지혜다.

 

용수보살은 평생을 중도 연구에 바친 분이다. 그래야 공이 보이고, 우주가 감춘 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용수보살의 중론 중 일부다.

 

 

각각의 법이 고정된 성품(定性)을 지니고 있다면 곧 원인과 결과 등의 모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설명한다.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법(法: 존재)이다.
나는 이것을 공하다(無)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가명(假名)이라고도 말하며,
중도(中道)의 이치라고도 말한다.
단 하나의 법(法: 존재)도 인과 연을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이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 법(法: 존재)을 공하다(空)고 나는 말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여러 인과 연이 다 갖추어져서 화합하면 비로소 사물이 생겨난다. 따라서 사물은 인과 연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사물 자체에는 고정된 성품(自性 ·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정된 성품(自性 · 자성)이 없으므로 공(空)하다. 그런데 이 공함도 또한 다시 공한데, (이렇게 공함도 다시 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물이 공하다고 말한 것은) 단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서 가명(假名)으로 (공하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과 공함도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에 의해) "있음(有)"과 "없음(無)"의 양 극단(二邊)을 벗어나기에 중도(中道)라 이름한다.

법(法: 존재)은 고정된 성품(性 · 自性 ·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法: 존재)을 "있음(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법(法: 존재)은 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法: 존재)을 "없음(無)"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떤 법(法: 존재)이 고정된 성품(性相 · 성상 · 自性 · 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법은 여러 인과 연에 의존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연기의 법칙에 어긋난다). 여러 인과 연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연기의 법칙에 어긋나므로 생겨날 수 없고, 따라서) 그 법(法: 존재)은 없는 것(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에 의해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다음을 대전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하지 않은 법(즉, 연기하지 않는 존재 또는 고정된 성품을 가진 존재)이란 존재할 수 없다.
— 《중론(中論)》 4권 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


<운(運)이란 무엇인가? 1>

<운(運)이란 무엇인가? 2>


- 금강도. 다이아몬드 칼이란 뜻이다. 곧 지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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