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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화투 그림 논란, 우리가 이런 수준이니 큰 작가가 못나오지

조영남 화투 그림 논란, 우리가 이런 수준이니 큰 작가가 못나오지

- 조영남 씨는 용기 잃지 말고 더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기 바란다.


프롤로그

내 친구 중에 매우매우 훌륭한 화가가 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유방 그릴 때 처녀와 아줌마를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라며 "모나미 볼펜을 유방 아래에 대서 떨어지면 아줌마고, 안떨어지면 처녀"라는 표현을 썼단다. 당연하지만 그는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성희롱 교수로 낙인 찍혔다. 그는 대한민국 대학 강단에 서지 말았어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가난한 부모가 학비를 대는 게 고통스럽다며 1학년 마친 뒤 자퇴했다. 하지만 리드대학교는 잡스의 자퇴 이유를 듣고 기숙사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마음껏 청강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는 이런 미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I.T.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조영남 씨의 화투 그림에 대한 논란을 며칠간 지켜보았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우리 국민의 <창의 인식>이 형편없다는 생각이다. 딱 그분의 <창조경제> 수준이다. 이러니 남의 책 텍스트나 영화를 마구잡이로 다운로드 받아보면서 죄의식 못느끼고, 저작권이 뭔지 그런 건 관심도 안갖는다.


난 오늘에서야 구글을 통해 조영남 씨의 화투 그림을 구경했다.

기발하다. 이 정도 상상력이 조영남 씨에게 있었구나, 그런데 왜 그리 말을 건성건성, 행동을 건들건들 했을까 싶다. 풍자로도 매우 가치가 있고, 사회현실을 고발하는 정신도 느껴지고, 또한 매우 창의적인 그림이 자주 보인다. 놀랍다.


난 그림을 그려준 작가가 "90%는 내가 그리고, 조영남 씨가 덧칠을 하고 서명해서 팔았다."는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 90%는 사실 대한민국 화실에서 공부하는 습작 작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작가에게는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은 백만 장, 천만 장을 그려도 물감이 아깝고 종이가 아까울 뿐이다.


중요한 것은, 대신 그려줬다는 작가가 주장하는 90%가 아니다. 그가 말하지 않은 10%가 중요하다. 바둑도 그 많은 수가 다 중요한 게 아니라 딱 '신의 한 수'가 결정적이듯이 예술의 세계에서는 그 창의라는 3%의 영감이 매우 중요하다. 


- 대부분의 신문기사 제목이 "사기인가 관행인가"이고 조 씨를 비난하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 법률적 판단 사안을 놓고 여론조사 벌이는 업체나 언론이나, 그렇다고 73.8%가 사기라고 주장하는 국민이 사는 이 나라나 다 한심하기는 일반이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이런 국민들과 더불어 산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미 영화, 드라마, 만화, 대중음악, 대중소설 분야 등에서는 공동 작업이 일반화되어 있다.

아는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 쓸 때 여러 명의 작가와 논의하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나도 끼어 거들었다. 그러다보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지적, 기술적 보완이 이뤄진다. 문제는 맨 처음에 누가 플롯을 세우고, 아이디어를 냈느냐 하는 것이다. 설계도가 나온 다음에는 여럿이 붙어 집을 지어도 문제 없다. 


이 논란이 논란으로 인식되는 사람은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며, 저작권이 뭔지 법리적으로 잘 모른다는 는 뜻이다.

소설가인 나도 대하소설을 쓸 때는 후배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다만 주제와 플롯은 내가 결정한다.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그렇더라도 초고를 읽어본 후배들이 의견을 내면 합당하다 싶을 때는 서슴없이 고친다.) 내 글은 본디 물기가 부족하고 색채가 어두워서 일종의 '피처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생기발랄한 표현을 잘 하는 후배에게 이 '피처링'을 맡기기도 한다.


화부터 내는 분들에게 다시 설명한다. 조영남이 너무 잘 나가 시기질투심 갖는 이들에게 설명한다.

아이폰을 만든 사람은 누군가? 

팍스콘 노동자가 "우리가 다 조립했다. 애플은 단지 설계도만 보냈다" 거나, 조나단 아이브가 "내가 다 디자인하고 잡스는 시키기만 했다."거나, 삼성과 LG가 "아이폰에 들어가는 부속품의 80%가 우리 제품이다." 하고 주장한다면 그들이 주인인가? 아니다. 영광은 스티브 잡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맨처음 <생각>하고 이 생각을 <창의적으로 정리>하여 업무지시를 한 잡스가 주인인 것이다.


저작권 관점에서 보면 화투 그림의 저작권은 조영남에게 있다. 왜냐하면 A 작가는 자신의 서명을 해서 보내지 않았으므로 그는 노동의 댓가만 받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이게 불만이었으면 자신의 서명을 하겠다고 약정했어야 한다. 이 거래에 강제성이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이런 것들이 법정에서 당연히 다뤄지는 부분이다. 

또한 A 작가는 점당 10만원이라는 대가를 수령했다. 한 차례 거래도 아니고 몇 년간 지속돼온 장기 거래다. 그렇다면 거래는 끝났다. 저작권 뿐만 아니라 저작재산권도 조영남 씨에게 있는 것이다. 평당 10만원 짜리 땅을 100만원에 판다고 사기가 되지 않는다. 그런 산수의 세계에 살다보니 억울한 감정이 생겼을 것이다. 배 아파도 할 수 없다.(전에 내 후배가 돈을 받고 작업한 사전을 놓고 5년쯤 지난 뒤에 이 후배가 자신의 저작권이라고 소송을 걸어온 적이 있다. 내가 이겼다. 판결근거는 내가 기획하고, 내가 시키고, 내가 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따위 저급한 논란에 휩쓸리지 말고 조영남의 화투 그림이 얼마나 예술적인가, 창의적인가를 놓고 다투어라. 그래야 우리 국민의 문화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A 작가라는 분은 어디 가서 화를 삭이고, 자기에게 부족한 그 10%가 뭔지 처절하게 찾아보시기 바란다. 솔직히 말해서 <300점 X 10만원=3000만원>이면 "내가 그려주겠다. 내게 일감 달라."고 할 무명화가들이 아주 많다. 나는 왜 10만원이고, 조영남은 수백만원이냐고 묻는 것 자체가 '생각의 오류'다. 알바 시급 6천원을 갖다가 감히 빌 게이츠 시급 수억원에 대보자는 것 아닌가.


창의 시대다. 창의의 값은 산수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창의가 뭔지 모르니 이리들 호들갑이다.

현대는 덩치와 힘으로 겨루는 수렵채집시대가 아니다. 더구나 누가 노예를 많이 거느리고 있느냐, 누가 토지가 많으냐로 겨루는 농경시대도 아니다. 오로지 머리로 싸우는 기술과 창의 시대다. 특별해야 한다. <화투>를 소재로 한 그 특별함이 90% 소유권 주장하는 그 A 작가에게는 없었다. 일감을 맡기 전에 혹시 A 작가가 그런 기획을 <자기 머리>로 먼저 하고 단지 물감과 종잇값이 없어 조영남 씨가 돈을 대주면 대신 그려주겠다고 제안했다면 <아주 약간> 다툴 여지가 있지만, 기사를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같다.

(화투 그림 논쟁은 논문 베끼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자 논문 베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예술과 저작권에 대해 더 공부하고 글 쓰기 바란다. 논문 베끼는 것은 사기도 아니고 절도다.)


이제 그의 그림이 예술적인가, 창의적인가 검증할 차례다.

(그리고 좀 배우라고 적는데, 아래 사진 올리는 저작권은 자유다. 섬네일 사진 올리는 건 사진 저작권 범위 밖에 있다.)



<조영남이 사기쳤다고 믿는 우리 국민 73.8%에게 묻는다>


<조영남 원작보다 대작 작가 그림이 더 좋으니 사기라는 사람들>


<어떻게 무지와 싸울 것인가?>


<최전선에 선 사람들>


<귀신도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더라>


*** 2017년 10월 18일, 조영남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다. 

의견 적는다. 1심 판결에 허점이 많다.

예술작품의 가격은  예술성보다 그 사람의 명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크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생전에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쌌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뒤 한 점에 수백억원이 나간다. 

조영남의 경우 그가 화가로서 명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예능인으로서 명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림값이 더 올라갔다 해도 그것 역시 시장 질서 내에 있는 것이지 그걸 사기라고 규정하기에는 마땅치 않다. 아무리 뛰어난 서예가라도 유명인의 글씨보다 더 비싼 값에 작품을 팔지 못한다. 

조영남의 잘못은 송모씨라는 무명작가를 홀대한 점인데 이는 법률 밖의 인간성 문제다. 돈을 더 주기로 하고 덜 줬다면 범죄지만 둘이 합의해서 주었다면 그건 범죄가 아니다. 송모씨가 너무 잘 그려서 유죄다, 이런 취지의 판결이 보이는데 이건 판사의 오류다. 같은 작품을 송씨 명의로 전시하면 사갈 사람이 드물고, 작품 가격도 형편없이 낮아진다.

우리나라에는 뮤형문화재 전수자보다 더 작품을 잘 만드는 숱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런 요소가 작동되지 않는다.

2심에서 더 자세하게 가려질 사안이 많다.

1심에서는 가난한 무명작가를 홀대한 조영남의 인간성이 많이 작용한 듯하다. 또 황우석 사건 때 감히 수의사가 인간의사를 제치고 주인공 노릇을 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처럼, 대중가수 따위가 감히 미술을 넘봤다는 미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유죄판결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