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사 님들, 중요한 글이니 끝까지 보시오
먼저 기사를 보고 뒤에 코멘트한다. 포스텍교수 서의호 씨의 기고문이다.
“미국 수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경쟁하기가 힘들어. 우리 교육방식의 문제야.”
어제 오늘 하루 종일 이 한마디가 필자의 가슴을 내내 아프게 하고 있다.
임지순 교수! 그는 후배들에겐 `공부의 신`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천재 과학자이다. 70년 경기고
수석졸업, 대입예비고사 전국수석, 그리고 서울대 수석입학. 소위 그 시절 3관왕의 영예를 누렸던
선배이다. 미국 버클리 유학 시에도 시험은 수석이었다고 한다.
서울대 교수 30년 생활을 정리하고 올해 포스텍으로 부임한 임 교수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가 던진 독백과 같은 이 한마디가 내내 뇌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간 20조 가까운 연구개발 투자비와, 교수들에게 4조가 넘는 연구비를 주고 있지만
한국이 노벨상을 타는 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그가 건네준 전 카이스트 총장 러플린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버클리에서 학사, MIT에서 박사를 받은 러플린은 그후 벨 연구소에서 일하는데 괴짜이고
주변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버클리로 돌아왔다가 스탠포드 교수가
되었는데 벨 연구소에서 연구한 연구업적을 근거로 48세인 1998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후 벨 연구소의 해당 연구실은 러플린을 몰아낸 걸 크게 후회하였고, 노벨상
수상자를 몰아낸 연구실로 낙인찍혔다는 이야기다. 러플린과 알고 지내던 임 교수는 그가 괴짜
연구자라고 단언하면서 한국에서 성장했으면 학교를 다니다가 쫓겨났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국 교육환경이나 연구환경은 러플린 같은 학자는 수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단언코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도 쫓겨난 괴짜를 한국 교육계와 연구계가 수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을 비롯, 획기적인 발견과 창의성은 의외로 이런 괴짜에게서 발견된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는 날이 올까?
300개가 넘는 노벨상 수상을 한 미국을 선두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일본,
중국, 심지어 인도, 파키스탄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수상했다. 실제로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는
40개국을 넘고 있다. 한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에 가까이 가고 있고 올림픽에선 항상 10위안에
드는 G20인 국가이다. 그러나 노벨상은 전무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임지순 교수의 독백은 하나의 정답을 보여
주고 있다. “불가능에 가깝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미국의 수재들과 한국의 수재들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답을 구하는데 급급한 한국의 수재들은 해법이 없는 문제를 접했을 때 며칠간 끙끙대다가
끝내 답을 구하지 못했다. 미국의 수재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면 된다”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던 한국학생들은 이 한마디에 “졌다”라고 복창했다.
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가 혹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지만 창의력의 90% 정도는 훈련과 환경에 의해 얻어진다고 보여진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졸업생의 동상을 앉히겠다고 포스텍에는 빈 좌대가 있다. 포스텍을 설립한 지
금년이면 30년이다. 원래 계획은 설립 30년쯤 좌대가 채워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좌대는 비어 있다.
과연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의적으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대학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면 노벨상을 받게 할 수 있을까? 대학의 창의력 교육이나 연구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
독백처럼 내뱉은 임지순 교수의 한마디가 오늘 한국교육과 연구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같은 수재가 힘들다고 한다면 정말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창의적 교육과 연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 답을 내놓기 전에는 한국의 노벨상 수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 이재운 코멘트
한국인 노벨상이 0인 이유가 '우리 교육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필자가 예로 든 임지순 교수나 필자인 서의호 씨나 과학자라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잘
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단 임지순을 '천재'라고 규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나는 본다.
- 임지순 교수! 그는 후배들에겐 `공부의 신`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천재 과학자이다. 70년 경기고
수석졸업, 대입예비고사 전국수석, 그리고 서울대 수석입학. 소위 그 시절 3관왕의 영예를 누렸던
선배이다. 미국 버클리 유학 시에도 시험은 수석이었다고 한다.
난 이런 식으로 천재, 수재 등을 규정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바로 노벨상 0에 머무는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수석이라는 건 해마다 나온다. 시험만 치면 1등은 나온다. 개나 돼지 중에서도 시험을 치면
1등은 나온다.
이런 식으로 보면 해마다 천재가 나오는 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천재다운 천재>가
없다. 그냥 잘 외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거의 모든 '천재'는 잘 외우는
<복사기 두뇌>일 뿐이다. 즉 교과서와 참고서는 또렷하게 외우는데 교과서 밖의 일은 거의
깜깜한 것이 이들의 실체다.
지금 정치계에도 서울대 수석, 고시 수석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들의 무능한 처신을 보면
교과서 밖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걸 증명한다. '복사기 두뇌'는
그 경력으로 국회의원도 되고 교수도 되지만 정작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외환위기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북한의 핵개발 앞에 속수무책이고, 육이오전쟁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지금도 일본의 외교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런 복사기 두뇌는 이미 '구글'이 나오면서 무용지물이 되었고, 인공지능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인공지능수퍼컴퓨터 왓슨이 출현한 오늘날에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이 기고문이 이런 전제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필자의 결론 도출은 원인, 과정, 결과 모두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 한국연구재단은 연간 20조 가까운 연구개발 투자비와, 교수들에게 4조가 넘는 연구비를 주고
있지만 한국이 노벨상을 타는 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필자의 말대로 우리 대한민국은 과학 분야에 연간 20조 원이나 퍼붓고, 교수 1인에게
4조가 넘는 연구비를 주었다. 뭐가 어쨌다는 건가. 돈을 다른 사람은 주고 '나'는 안줘서
이렇다는 것인가?
필자가 해석하는 노벨상 0의 이유를 보자.
-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미국의 수재들과 한국의 수재들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답을 구하는데 급급한 한국의 수재들은 해법이 없는 문제를 접했을 때 며칠간 끙끙대다가
끝내 답을 구하지 못했다. 미국의 수재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면 된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 피상적이다. <해법 없는 문제>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교과서에 없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조국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아일랜드, 영국,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등 고국을 완전히 떠나 거친 원시의 땅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건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17세기나 18세기의
유럽 지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이 문제를
풀어야만 그 광활한 원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그 미국에 간 우리 학생들은 '잘 외워서' '시험 잘 쳐서' '뽑혀간' 사람들이다.
자기 의지로 뭘 배워야겠다, 알고 싶다, 연구하고 싶다 해서 간 것이 아니라 유학가서
박사 따오면 교수할 수 있고, 정부 부처의 높은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덜렁덜렁
간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뽑혀가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의 자식이어서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해 '스펙'을 쌓으러 갔을 것이다.
어차피 전공은 예비고사나 연합고사, 수능 성적에 따라 '커트라인' 맞춰 간 것일 뿐 학생의
의지와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간절한 마음이 없는 학문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미국에 간들 무슨 흥미가 생기고 호기심이 발동하겠는가.
이런 한국 유학생들은 미국에 가서 '시험 잘 보는 기계'로 존재할 뿐 교과서 밖 세상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 실적 0인 이유 일본 학자들, 113번 원소 발견 성공 노벨상 수상자, 유태인이 일본보다 10배, 한국보다 200배 많이 배출하는 까닭 퍼온글 / 노벨상을 가장많이 받는 유대인은 머리가 가장 좋은 민족인가? |
- 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가 혹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지만 창의력의 90% 정도는 훈련과 환경에 의해 얻어진다고 보여진다.
이 표현도 마음에 안든다. 필자 역시 창의력이 뭔지 잘 모르고 있다. 창의력이 훈련과 환경에
의해 얻어진다면 미국 가서 배운 우리 유학생들은 미국 대학의 훈련과 환경 속에서 왜
창의력을 못갖는가. 이에 대한 해명이 없다.
이 기사에서 가장 부정적인 부분은 아래 글이다.
-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는 40개국을 넘고 있다. 한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에 가까이 가고 있고
올림픽에선 항상 10위안에 드는 G20인 국가이다. 그러나 노벨상은 전무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임지순 교수의 독백은 하나의 정답을 보여
주고 있다. “불가능에 가깝다.”
다 아는 일이지만, 임지순 씨가 '불가능'이라고 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나 역시 이들의 머리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복사기 두뇌>로는 시험이나 잘 칠
뿐 미래를 향해서는 단 1밀리미터도 전진할 수 없는 낡은 두뇌라고 생각한다.
* 임지순 1951.7.4 0330
과학적인 두뇌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보인다. 감성은 풍부하지만 이를 핵심으로 찌를 송곳같은
날카로움이 부족하기 쉽다. 내 스승인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 이 코드다. 일제에, 이승만 정부에,
박정희 정부에, 나중에는 전두환 정부에 이로운 시를 쓰셨다. 뛰어난 시인임에도 현실을 보는 눈은
항상 틀렸다. <임지순의 글,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두루 다 알지만 최종 스위치가 안보인다. 즉
너무 많이 알긴 아는데, 이를 좌뇌 우뇌로 소통시키고 교류시켜 연관짓는, 관계짓는 '창의성'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장기기억'에 있는 정보만 갖고도 얼마든지 '창의'가 나올 수 있을
테지만 0330은 끝없이 궁금해서 정보수집에 더 열을 올릴지 모른다.
(한편 임지순과 거의 같은 천재로 알려진 그의 후배 오세정 교수0510 역시 유학 뒤 서울대교수를
지내다 올해 국민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나와 함께 유세를 다녀 이 분의 훌륭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을 비례로 뽑은 안철수 대표0210에게도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비례 1번
신용현 박사0115도 안철수 대표가 사심없이 뽑은 과학자다. 이 두 분을 뽑은 건 안철수 의원이
가진 뛰어난 안목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분야보다는 새로운 과학세계를 열어가야 할 정책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재인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들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기르는 토양을
만들 것이다.)
바이오코드 관점에서 정리한다.
<복사기 두뇌>는, 임신을 6개월 앞둔 시점부터 관리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브레인워킹을 꾸준히 실시하면 임지순, 오세정 씨가 세운 수석, 수석 등의 기록쯤 거뜬히
올릴 수 있다. 이분들이 학교 다니던 60년대, 70년대는 국민의 99%가 미국의 원조물자에
의존해 살던 때다. 식생활이 엉망이어서 두뇌영양이 매우 나빴다. 머리 나쁜 아이들 속에서
조금 잘 먹은 사람들이 1등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는 임지순보다 훨씬 뛰어난 복사기 두뇌들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복사기 두뇌일 뿐이다. 이런 아이들은 법대를 가고, 고시를 쳐서 판검사
혹은 변호사가 되어 우리나라 기득권에 진입하였다. 복사기 두뇌들의 <성공 이야기>로
자주 거론되는 한국 스타일이다.
복사기 두뇌가 법원이나 검찰에 간들, 정부에 들어간들 창의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법전이나 규정 뒤지며 그걸 따라하면 그만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들의 욕망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재 기득권 구조요, 해방 70년이 되도록 친일파와 일본군
후손들이 기득권 정점에 앉아 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창의력 있는
사람은 다루기 어려워도 단지 기억력 좋은 사람들은 겁이 많아서 다루기가 아주 쉽다.
(독재자들 입장에서) 그러니 1년에 20조를 퍼붓고, 개인에게 4조를 써도 이 돈이 연구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데 쓰일 것이 뻔하다. 미래를 위해 쓰여야 할 돈이 밑빠진 독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3단계로 발전했다.
1차 뇌간에서 2차 변연계로, 마지막으로 3차 대뇌 우뇌와 좌뇌로 완성됐다. 더이상의 두뇌는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인간 두뇌의 진화에서 마지막으로 좌뇌와 우뇌를 발명한 것은 인류진화 역사상 대사건 중의
하나다.
즉 좌뇌로 생각한 것은 우뇌로 검증하고, 우뇌로 생각한 것은 좌뇌로 검증하려고 3차 두뇌가
생겼다. 진화과정에서, 정보를 비교분석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한국식 천재들'은 2차 뇌인 변연계 능력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어려서
두뇌영양이 충분히 공급되면 장기기억을 주관하는 해마 등 2차 두뇌가 무조건 좋아진다.
2차두뇌는 그냥 덮어놓고 외우는 것이다. 이 머리만 갖고도 대한민국에서는 천재 소리
들어가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법원, 검찰, 정부에 수두룩하다. 일제 때
친일파와 일본군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살아 이들의 후손들이 머리가 좋아 좋은 대학 가고,
고시에 많이 되었다. 독립운동하고 가난한 농부 자녀들은 먹은 게 없어 기억력이 나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도 SNS에서 친일파를 욕하는 글이 많지만 그건 머리가 나쁜 사람들의
단순 공격법이라서 그들의 이익은 손톱만큼도 줄어들지 못한다. 그런 머리로는 '머리 좋은
친일파 후손들'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창의력은 다른 부분이다. 이 장기기억에 들어 있는 정보를 갖고 좌뇌에 비쳐보고
우뇌에 비쳐볼 때 창의력이 생긴다.
예를 들어, 토머스 에디슨의 해마에는 '산소가 있어야 불이 생긴다. 불이란 산화될 때
나타나는 에너지'라는 기본 지식이 들어 있었다. 이때 '전기의 음극선과 양극선을 필라메트로
이어주면 불꽃이 일어나면서 금세 타버리는데 어떻게 하면 안타게 할 수 있을까?'란 다른
문제가 들어 있었다. 보통 한국의 수재, 천재라는 사람들은 불이 산화현상이라는 건 잘 안다.
이런 문제는 척척 맞춘다. 하지만 필라멘트를 안타거나 오래 견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미국인인 토머스 에디슨은, 그러면서 0710으로서 '타고난 창의력 코드(원진과 충)'
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 정보를 연결시켜 좌뇌와 우뇌에 물을 수 있었다. 즉 필라멘트가
타는 것은 산소 때문이니 이 산소를 차단하면 안탈 것이다 생각하고, 유리관을 씌운 다음
그 안의 공기를 빼냈더니 정말로 필라멘트가 오래 간 것이다. 이런 것이 창의력이다.
레비 스트라우스가 천막장사로 수십 년 살 때는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금광, 은광에서도
찾아와 천막을 사갔다. 그들이 입고 있는 면바지를 보고도 레비 스트라우스는 천막과
광부들의 바지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즉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유태인으로서 사업가적 기질은 있었지만 단지 부지런하고 이재에 밝은
0110코드였다. 그는 천막 10만 장 납품이 불발되면서 벼랑으로 내몰려, 이때 고도의
집중력으로 광부들의 바지를 바라보고, 여기서 청바지를 고안해낼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뻣뻣하고 무거운 천막 천을 버리고 이탈리아 진 지방에서 생산되는 가벼운 면으로 대체하고,
남군이 입었던 인디고 블루 색깔을 보고 파란 물감을 들였다. 그러고도 재봉선이 잘 뜯어지는
걸 막기 위해 구리 리벳을 달아 마침내 청바지를 완성시켰다.
토머스 에디슨과 같은 0710인 스티브 잡스가 조립식 컴퓨터를 보고 일체형 컴퓨터를 만들어
이를 애플로 이름지어 판 것, 이런 것이 창의성이다. 노키아가 버린, 삼성이 만들어 대충 쓰던
PDA를 아이폰으로 혁신시킨 것도 오직 그의 창의력 때문이다.
침팬지를 보라. 좌뇌 우뇌가 생긴 신피질의 대뇌를 갖고도 아늑한 정글에 머문 침팬지들은
창의력을 개발하지 않았다. 그저 그때까지 수천년 살아온 구피질의 장기기억으로 존재하려
했다. 적응과 변화이에서 침팬지는 적응을 선택했다. 하지만 누군가 초원으로 나가면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여 밀림을 나갔다. 이들은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날카로운 이빨, 두꺼운 가죽, 빠른 발을 가진 맹수들과 맞서 두뇌를 무기로
가다듬어 마침내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성공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다.
우리는 브레인워킹으로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두뇌 훈련을 할 수 있다. <인연의 힘>에는
그러한 창의력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많은 사례가 들어 있다. 바이오코드를 공부하는
분들은 꼭 <인연의 힘>을 공부하여 교과서 밖의 문제를 풀고,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고,
어제가 아닌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제3의 눈을 갖기 바란다. 길은 있다. 언젠가
브레인워킹을 한 우리 한국인이 노벨상을 많이 가져오게 될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두뇌개발에 애써야 한다.
- 알프레드 노벨. 0750. 우연한 사고로 다이너마이트를 개발, 대성공했다.
0750인 빌 게이츠, 그는 폴 알렌0405를 만나 그의 코칭 덕분에 대폭발할 수 있었다.
창의력이 부족하면, 좌뇌 우뇌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만큼의 괴력을 발휘하는 <사람> 관계라도
좋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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