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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2016년 수능 국어 영역 시험 문제를 보고

수능 시험 문제는 해당 교과에 대한 학습 방향을 제시하는 중대한 지표가 된다. 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국어의 방향까지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년간 국어시험 문제를 지켜보니 대체 왜 이런 문제를 내는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변별을 위한 수단이라고 강변하겠지만, 이런 문제 잘 푼다고 국어 능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난 우리나라 국어교육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교사든 교수든 다람쥐 쳇바튀 돌듯 일제 때부터 내려온 식민사관식 국어교육 방식을 따를 뿐만 아니라, 일본어 투성이의 국어 어휘를 가르치면서 말장난으로 일관하는 이런 수능 시험 문제에 실망이 크다.

시간이 없어 두 문제만 지적한다.


가) 1-2번 문제로 나온 남한산성 관련 지문은 틀렸다. '남한산성은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다' '뛰어난 축성술 때문이다'고 하는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여진족+몽골군 연합군에게 포위되었다가 겨우 47일만에 더 버틸 여력이 없어 국왕 인조 이종이 성문을 열고 삼전도까지 끌려나가 삼고구배라는 치욕적인 항복을 한 오욕의 현장이다. 항복을 안했으면 당연히 함락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속이면 안된다.

그러면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함락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본군이 들어오기 전에 선조 이균은 경복궁을 버리고 탈출했으니 말이다. 이런 걸 궤변이라고 한다.


더구나 남한산성은 임란 때 일본군과 싸운 승군들이 전후에 모여 이곳에 본영을 설치하면서 성벽을 견고하게 축성하고, 이 승군들이 성내에 거주하며 국방을 담당한 데서 시작된 방어용 산성이란 사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임란 때의 승군 본영 사찰인 개원사를 비롯하여 병자호란 무렵 인조 이종의 명으로 팔도에서 재차 소집된 승군 270명이 주둔했던 장경사, 망월사, 국청사, 남단사 등 10개에 이르는 성내 사찰은 바로 의승군 주둔 사찰이었다. 개원사에 불이 난 적이 있는데, 사찰 내에 있던 화약고가 터져 일어난 것이란 기록이 있다. 사찰 안에 무기, 화약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1894년 갑오경장 때 의승방번이 폐지되면서 승군의 역할이 끝났다. 즉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처음 소집된 승군은 1894년까지 298년간 유지되던 군부대의 하나였다.


우리 역사는 행주산성 전투에 참여한 처영 등 승군(전체 5000명 중 절반 가량)의 역할을 숨긴다.

평양성 수복 전투에 처음 참여한 서산 휴정 스님과 사명당 유정 스님 휘하의 수천 승군 역할은 역사책에 소극적으로 기술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순신 제독이 이끌던 여주 흥국사 승군(1500여 명)은 자취도 없다.

금산에서 조헌과 함께 최후까지 싸우 영규 스님 휘하의 800명 승군(초기에는 2300명 규모였으나 청주성 후복전 등에서 병력이 줄어 금산전투에서는 약 800명 참전)에 대해서도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조헌의 의병 700명만 추앙한다.

유자들이 뒤로 빼어 아무도 가지 않을 때 유정 스님이 사신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여 포로 3500명을 되찾아온 사실도 일부러 누락시킨다.

아마도 병자호란은 알아도 남한산성은 1592년부터 1894년까지 승군 본영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역사는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 


나) 305번 문제 희토류 설명에 정작 희토류가 어떤 어휘인지 설명이 없다.

지문에는 주기율표 원자번호 57부터 71까지 원소와 그외 원소 2개를 합친 17개 라고 나온다. 그런에 이를 왜 희토류라고 하는지는 설명이 없다. 稀土類元素와 稀土類가 뭔지 설명 자체가 없다. 광물 형태로 추출이 가능한데, 이러한 형태는 매우 소량만 채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드물다는 稀가 붙은 것이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의 97%를 차지하는데, 이것도 대부분 내몽골 지역이다.


시간이 없어 다른 문제끼지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국어영역이라는 명칭으로 보는 시험인데, 대체 국어의 무엇을 평가하자는 것인지 모호하다.

국어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시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출제자들이 조금 더 우리 국어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을 갖기를 바란다. 이렇게 배배 꼬는 시험문제 갖고는 백년이 가도 한국어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1919년 기미 독립선언서. 우리 국민 중 이 선언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97년 글인데도 읽어내지를 못하는 게 우리 국어 현실이다.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에 발표된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지금 읽어도 그 뜻을 다 알 수 있다.


- 일본 유학생들이 발표한 2.8 독립선언문 원문이다. 우리 국어 수준이 여기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비록 독립을 외치기는 하고, 나중에 귀국하여 우리나라 중추가 되지만, 결국 일본어와 한자어 투성이로 우리 교육을 이끌었다. 우리 국어학계의 주류가 바로 이들의 후예들이다.


- 240년 전에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문 인쇄본(원본은 필사본). 지금 읽어도 그 간결하고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 왼쪽, 박정희 소장이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에게 보낸 편지. 오른쪽, 1978년의 박정희의 편지. 

한국인 중 이 편지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10%가 안될 것이다. 한자 교육이 사라지고, 그나마 박정희가 구사하는 한자어의 90%는 일본어다.


페이스북 글> 나는 수능 국어 시험에 불만이 많다. 과학논문에 쓰이지도 못하고, 문학언어로서도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법률어로서도 깜이 안돼 우리 법률어휘의 70% 이상이 일본어 번역어인 실정에서 우리 국어를 더욱 발전시키고 열심히 가다듬어야 하는데, 수학능력시험이 이런 일에 한몫을 해야 하는데, 말을 배배 꼬고 비트는 장난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기만 하며 적당히 머리 굴린다. 이런 큰 시험이 국어발전에 기여해야 하건만 수능 국어는 도리어 해가 되는 듯하다. 국어로 밥 먹고 살면서도 늘 부끄러운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국어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더 통탄스럽다. 우리말이 일본어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2014 수능 생명과학 8번 문제 / 교수가 고등학생들을 지식폭행했다>


<2013년도 수능 <세계 지리 문제 8번>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