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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김이수 헌재소장 지명자의 변명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가,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을 태우고 반란군의 명령을 받은 경찰 저지선을 뜷던 중 경찰관 여러 명을 치어 죽게 한 버스기사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직책은 군 법무관으로서 계급은 중위였다.
당시 계급으로 사형판결을 거부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위치에 있든 판결은 그의 명의로 나갔으니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1. 일제 때 한국인 최초의 판사였던 이찬형은 자신이 사형 판결해 집행된 뒤, 진범이 잡혀오자 즉시 법복을 벗고 3년간 엿장수를 하며 떠돌았다. 그뒤 그는 효봉이라는 대선사가 되었다.

2. 육이오전쟁 때 부장판사 김홍섭은 속임수로 쌀배급을 더 타갔다가 잡혀온 여성 3명에게 법대로 사형을 판결하였는데, 그때 "나도 배가 고파 배급을 더 타먹은 적이 있는데, 여러분에게 사형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 여러분을 죄인이라고 하는 것일뿐 나와 여러분 중 누가 진짜 죄인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단다. 그러고는 월급을 쪼개 사형수 가족을 돌봤다고 한다.

김이수 씨가 그간 어떤 식으로 당시 사형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었는지 모른다. 그는 어쨌든 법관으로 승승장구해왔다. 한때 반란군 전두환 편에 서서 헌법을 수호하려던 시민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그가 과연 진심으로 후회한 적이 있었던가. 헌재소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가 눈에 어른거리니 급한 마음에 마구 엎드려 사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 나치 치하 독일인들도 어쩔 수 없이 상부 명령에 의해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보내 처형했다. 이승만 이기붕의 개가 되고, 박정희 차지철의 개가 되었던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들의 업보이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죄가 무거우니 도리어 직무를 더 조심스럽게 수행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역설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죄는 한 번으로 족하다. 변명은 교도소 담벼락에나 쓰는 것이다.
(김이수보다 한 살 어린 천정배는 10월 유신이 일어나던 해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2차에 응시하지 않고, 나중에 18회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는 법관으로 임용받기 싫다며 변호사가 되었다. 알아나 둬라. 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이수는 물론 번란군 정부의 법관이 되었다. 변명은 아무리 길어도 변명이다.)

* 시민을 무참히 때려죽이는 저 군인들은 주인인 국민의 명령을 저버리고 도리어 반란군 괴수 전두환의 명령을 받든 죄인들이다. 그들은 단지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1980년 5월, 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