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에 출국하여 11월 1일에 미얀마의 마하미얀 대정글로 들어가 삭발하였습니다.
저는 태이자(Tay Za ; 신통력이 있는 비구라는 뜻의 팔리어. 팔리어는 붓다가 쓰던 고대 인도 언어)라는 새 이름을 받고, 함께 삭발한 한 분은 아사라, 또 한 분은 쿠타라가 되었습니다.
저와 함께 용인의 <아나파나 선원>에서 아나파나를 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사미 자격으로 가사를 받아 입고, 바루를 받아 지녔습니다.
2일에는 삐냐저따 큰스님이 마하미얀 사원 내 비구들을 모아 우리 세 명에게 비구의 계를 내려줄 것인가를 토론하여 마침내 우리는 비구계를 받아 공식적인 비구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날 새벽 4시부터 황금탑 내 대법당에서 2시간에 걸친 아나파나를 했습니다. 큰스님은 5시부터 30분간 설법을 하셨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친 뒤 6시 30분 경에는 바루를 들고 제1산문까지 약 2킬로미터를 걸어가고, 또 거기서 다시 제2산문까지 또 2킬로를 맨발로 줄지어 걸어갑니다. 늘 삐냐저따 스님이 맨앞에 서셨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탁발할 때면 붓다가 맨앞에 서고 수석 제자인 사리풋타가 맨뒤에 서듯 우리 탁발단의 선두는 언제나 맨발의 삐냐저따 스님이고, 맨뒤는 그의 수석 제자가 되었습니다.
산문 밖에 나가니 신도들이 밥을 지어 와 주걱으로 조금씩 바루에 담아주었습니다. 금세 바루가 따뜻해졌습니다. 미얀마인들은 탁발하는 비구가 줄지어 지나가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아 삼배를 올립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들도 시동을 끄고 역시 무릎을 꿇습니다. 아이들까지 그러합니다.
탁발을 마친 다음에는 9시부터 11시까지 또 아나파나를 합니다.
점심공양은 아침에 탁발한 밥으로 하는데, 오후 1시 30분경부터 또 아나파나를 하고, 저녁은 계율에 따라 일절 먹지 않고 6시부터 8시까지 또 아나파나를 합니다.(아나파나를 10분 정도 하면 저절로 비파사나로 들어간다. 초보자라도 30분 정도 하면 비파사나로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아나파나 없이 비파사나로 들어가기는 대단히 어렵다.) 숲에서 하고, 큰나무 그늘에서 하고, 숙소 마루에서 하고, 길가에 앉아서 하고, 법당에서 하고, 어디든 자리를 깔고 앉아 아나파나를 했습니다.
11월 3일 오후 8시, 용인 보문정사 덕산 스님과 우리 세 비구는 낮에 삐냐저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복기했습니다. "특히 성관계를 하고, 육식을 하면 아나파나를 해도 머리가 어두워 반야를 깨닫지 못하니 절대로 계를 어기지 말라."는 말씀에 이르러 덕산 스님이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4발 달린 짐승의 고기는 공양받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4발 달린 짐승이란 포유류를 말합니다.
용인에 황금대탑 불사를 하고 있는 덕산 스님은, 미얀마 불교 전통에 따라 공양으로 들어온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붓다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이 다 먹는 공양을 왜 먹지 않으려 하십니까?
아사라가 물었을 때 덕산 스님은 "전에 오직 채식만 하면서 용맹정진할 때 내 눈은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밝아서 어떤 난제든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저절로 샘솟았는데, 포클레인 작업을 하고 삽질을 하는 불사를 하면서 힘들다는 핑계로 미얀마식 고기 공양을 물리지 않았더니 신통이 줄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오늘 나는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 원인을 이제야 알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육식 공양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으면서 내 눈에 안개가 낀 듯했던 것같다."고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순간 나는 그때 덕산 스님의 맹세와 설명을 들으면서 브레인워킹과 브레인리퍼블릭의 지식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우르르르르 무너져나가는 듯한 희열과 그에 따른 깨달음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지체없이 "앞으로는 4발 달린 짐승을 절대로 먹지 않겠다. 그간의 육식을 참회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덕산 스님과 손가락을 걸어 한번 더 맹세했습니다.
이 날은 일단 수첩에 내 생각을 메모했습니다.
그리고 잠자기 전까지 세 시간여 아나파나를 하면서 이 생각을 혼자 정리했습니다.
이튿날인 11월 4일은 삐냐저따 스님의 생신이라 멀고 가까운 곳에서 수많은 비구와 사미와 신도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습니다. 유명한 가수들까지 와서 놀고, 이 날 아침에는 사미들이 집단출가하는 의식이 있어 코끼리 28마리도 동원되었습니다.
이 날, 낮에는 수천 명이 모이는 큰 행사가 마련되어 있어 오전 4시 아나파나는 대법당에서 열리지 않았습니다. 108명의 사미들 삭발식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4시 전에 황금탑 법당에 나가 아나파나를 하려던 쿠타라와 나는 숙소 옆 큰 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앉아 둘이서 아나파나를 했습니다. 붓다가 샛별을 바라보면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아나파나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했습니다. 4시가 넘은 뒤에는 아사라와 덕산 스님까지 나와 넷이서 함께 했습니다. 이 날 오후에도 우리 넷은 그 자리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아나파나를 했습니다.
나는 네 발 달린 짐승을 먹지 않겠다는, 덕산 스님의 맹세와 참회에서 시작된 나의 사유는 <인드라의 함정에 빠져 마라에 굴복하지 않는 법>을 알아내는 것에 이르렀습니다. 브레인리퍼블릭으로, 공(空)을 뚫고 지나가 색(色)도 없고 공도 없는 니르바나의 세계까지는 들여다 보았지만, 붓다도 한 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화두를 등불 삼아 '절대로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는' 반야를 이 날 구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리합니다. 내게 "네 발 달린 짐승은 먹지 않겠다."는 화두를 던져 준 덕산 스님은 오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더 미얀마에 머물며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한 맹세와 참회를 일으켜준 우리들의 큰스승 아라한 삐냐저따 스님은 덕산 스님과 함께 계십니다.
- 아침에 우리 숙소로 찾아와 아나파나는 잘 되어 가느냐고 묻는 아라한 삐냐저따 큰스님.
큰스님은 내게 "태이자는 아나파나 석 달만 하면 비행기 타지 않고도 한국에 갈 수 있으니 더 머물라."고 말씀하셨지만 9일 오후 비구계롤 반납하여 사미가 되고, 10일 오전 사미계까지 반납하면서 가사도 벗었다. 아직 인연이 익지 못했다.
- 황금탑과 보름달
- 마하미얀 사원에는 대형건물이 여러 채 있으며, 황금탑 안에는 호화로운 시설이 가득 차 있다. 신도 수천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행사를 치르는 각종 전각도 열 군데 정도에 이른다.
그런 대정글 사원의 주인이신 아라한 삐냐저따 큰스님은 어디서 살까 궁금하여 정글을 탐험하던 중 조그마한 나무집 한 채를 발견했는데, 때마침 거기서 스님께서 막 나오셨다. 약 2평 정도 된다고 쿠타라 비구가 눈짐작했다. 안에는 오로지 1인용 침대 하나와 담요 등이 있을 뿐 화장실은 저 멀리 밖에 따로 지은 재래식이다.
- 티크나무를 자른 등컬에 올라 앉아 아나파나를 했다. 이때 내 앞으로 지나가던 말레이시아 신도들이 엎드려 절을 올렸다고 한다. 쿠타라가 사진을 찍었다는데, 나중에 올리겠다. 가사를 입고 있는 내내 '가사 입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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