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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황금탑

마하파탄경 1 -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 상권

<여기서 퍼옴>

시간을 두고 원문 봐가며 조금씩 고치겠습니다.

마하파탄경은 팔리어경전의 이름인데 번역된 걸 구할 수 없어 일단 한문본으로 정리합니다.

이재운Tay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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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파탄경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 <제1회 어머니를 위한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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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신 날, 마하파탄경을 들려 드린다

마하파탄경 1권(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 상권)

마하파탄경 2권(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 중권)

마하파탄경 3권(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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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세기말 월지국(나중의 호라즘왕국이 있던 중앙아시아 국가. 인도 북부, 중국 북서부, 몽골의 서쪽에 있었다) 출신 학승 축법호(竺法護 : Dharmarakṣa) 가 번역하였다. 쿠차왕국의 쿠마라치바(구마라즙)이 나오기 전에는 이 분이 최대의 역경승이었다.

총3권으로 된 이 경은 부처님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낳은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나 도리천 하늘에 태어나자,부처가 된 석가모니께서 어머니를 제도하기 위해 설법한 불도의 내용과 월씨(月氏)라는 천귀(天鬼)가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공(空)의 이치를 깨닫고 부처가 된다는 예언을 받은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원문의 내용은 동국대역경원의 번역을 옮겼으며, 다만 문맥의 해석상 필요한 경우 원문과 다르게 표기하고 원문과 대조하였다) 

佛昇忉利天為母說法經卷上/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권상

 

聞如是。一時。佛遊於忉利天上晝度樹下無垢白石,愍哀其母度脫之故。正夏三月,與大比丘眾俱。比丘八千皆阿羅漢,諸漏已盡,得大神足,威曜無極生死悉斷,無復塵垢棄捐重擔,所作已辦,逮得己利。心即從計致平等忍,心已得解度於智慧,普則正士,於世福地多所祐安,唯除一人賢者阿難,菩薩七萬二千人一切大聖神通已達,逮得總持辯才無礙。各從他方異佛世界皆來集會。爾時世尊,與無央數百千之眾眷屬圍遶而為說經。時於眾會有二天子,名曰月氏月上。月氏天子即從坐起,更整衣服偏袒右肩,叉手長跪而白佛言:"吾欲諮問如來至真等正覺,假使聽者乃敢自陳"。佛告天子: "欲問如來何所義乎"。

月氏天子以偈頌曰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의 주도수(晝度樹/도리천에 있다는 매우 큰 나무아래 때가 없는 하얀 돌에서 노니시며그 어머니를 가엾이 여겨 제도 해탈시키시려고 여름 석 달 동안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8천의 비구는 모두 아라한으로서 모든 번뇌가 다하고 큰 신족을 얻었으며위엄과 광명이 끝이 없고 생사를 모두 끊어 다시는 티끌과 더러움이 없으며무거운 짐을 덜어 버리고 할 일을 다 하였으며자기의 이익을 얻은 자들이었다마음이 곧 헤아림[]에서 평등한 인()에 도달하고마음이 이미 해탈하여 지혜를 건너고두루 보살[正士]을 본받아 세상의 복된 땅[福地]이 되어 돕고 편안하게 한 바가 많았으나오직 현자 아난 한 분만은 제외되었다.


일체 큰 성인들의 신통을 이미 통달하고 총지를 얻어 변재가 걸림이 없는 7만 2천 명의 보살이 각기 타방의 다른 부처님 세계로부터 모두 찾아와 모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수없이 많은 백천 대중의 권속에 둘러싸여 그들을 위하여 경을 말씀하고 계셨다이때 대중의 모임에 두 천자가 있었으니이름은 월씨(月氏)와 월상(月上)이었다.

월씨 천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서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여래(如來), 지진(至真), 등정각(等正覺)께 여쭈고자 합니다만일 허락하신다면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치를 묻고자 하는가?”

월씨 천자는 게송으로 여쭈었다.

 其於眾生類  興發愍哀心,
 逮求于佛道  志無垢甘露。
 自傷己身行  及慈哀群黎,
 余以斯等故  諮問釋師子。

그들은 중생의 부류들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 일으켜

부처님의 도를 구하고, 티 없는 감로에 뜻을 둡니다 

자신의 행을 염려하고, 또 여러 중생을 근심하고 사랑하나니

저는 이와 같은 이유로 석사자(釋師子)께 여쭙고자 합니다.


 於億劫積行  悉能忍勤苦,
 一切而布施  志寂然無念。 

  等心於群生  療化已平均,
 我問此勝義  導利黎庶者。
 假使見正道  妙相自莊嚴,
 無垢三十二  英特之福田。
 逮斯功德者  奉敬乎巨海,
 今予問大聖  欲了斯義歸。 

억겁에 걸쳐 온갖 행을 쌓으며, 모든 것을 능히 참고 힘써 고행하며

온갖 것을 보시하고, 뜻은 고요하여 생각이 없으며,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치료하고 교화하여 이미 고르게 하셨나니

저는 이 훌륭한 이치[勝義]를 여쭈옵니다.

중생을 인도하는 분이시여.

 

가령 바른 도를 보게 된다면, 묘한 상호 저절로 장엄되리니

때 없는 서른두 가지 모습, 뛰어나고 특별한 복의 밭이며, 

이와 같은 공덕 이룬 자,큰 바다처럼 받들고 공경할 것이니

이제 저는 큰 성인께 여쭈어,이 이치의 귀취(歸趣)를 알고자 합니다.

 假使無異心  則無有別念
 常志求妙慧  人中巍巍尊
 而無聲聞意  不慕緣覺事
 今余問此義  堅固無過者
 有利若無利  等心於毀譽
 有名若無名  苦樂不以移
 雖處於俗法  則不以動轉
 今我問此義  遠離恐懼者。

가령 다른 마음이 없게 된다면, 별다른 생각도 없게 되리니

오묘한 지혜 구함에 항상 뜻을 두고, 사람들 가운데 높고 높은 이 되며, 

성문이 되겠다는 뜻이 없고, 연각의 일도 사모하지 않을 것이니

이제 저는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견고하기 짝 없는 분께.

 

이익이 있거나 없거나, 비방하건 칭찬하건 마음이 평등하고

이름이 있거나 없거나, 괴롭건 즐겁건 변하지 않으며, 

세속의 법에 처하더라도, 동요하거나 변하지 아니하나니

이제 저는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공포와 두려움 멀리 벗어난 분께.


 以愛己身事  等念於黎庶
 未曾有若干  咸化于三處
 而以修慈心  有諂無厭穢
 今余問此義  賢將持土地
 心恒行精勤  布施戒離邪
 其身逮寂然  戒品不永滅
 身口意常正  將御順擁護
 今問最勝義  處垢而無塵。

자기 몸을 사랑하듯, 중생들은 평등하게 생각하고

여러 가지 미증유한 일로써, 세 곳의 중생들을 교화하며, 

자비로운 마음을 닦아, 아첨하는 이 있어도 싫어하지 않나니

저는 이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이 땅을 지키는 현명한 장수께.

 

마음으로 항상 정근(精勤)하고, 보시와 지계로 삿됨을 여의며

그 몸은 고요한 데 이르고, 계품(戒品)을 영원히 없애지 않으며, 

몸과 입과 뜻을 항상 바르게 하여, 잘 다스리고 옹호하나니

이제 가장 훌륭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더러운 곳에 처해도 티가 없는 분께.

 其忍辱調柔  達已加遵修
 能修任苦患  憒擾放逸眾
 遊救於一切  而不生瞋恚
 因此故問義  欲決諸狐疑
 各常力精進  恭順不違義
 悉愍傷世間  不為己身施
 行道無厭足  如海受眾流
 是故問最勝  其德如大海
 雖存於三處  不退從諸想
 以賢聖之慧  伏除諸垢塵
 承禪定妙通  神足自娛樂
 今故問此義  普往開化眾

그들은 인욕으로 부드럽게 길들이고, 통달하고도 따르고 닦으며

괴로움과 환난을 견디며 수행하고, 심란하고 방일한 무리들 

노닐며 그들 일체를 구제하며, 그러면서도 성내지 않나니

이 때문에 이 이치를 여쭈어, 여러 가지 의심 풀고자 합니다.

 

저마다 언제나 힘써 정진하며, 공손히 따르고 이치를 어기지 않으며

모든 것 세간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이요

자신을 위해 보시하는 것 아니며 

도를 행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바다가 온갖 물을 받아들이듯 하나니

그러므로 훌륭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그 덕이 큰 바다 같은 분께.

 

세 곳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물러나 여러 가지 생각을 좇지 않고

현인과 성인의 슬기로, 모든 번뇌를 없애버리며, 

선정과 묘한 신통을 계승하여, 신족으로 스스로 즐기나니

지금 그래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두루 다니며 중생을 일깨우시는 분께.

 智慧度彼岸  聖達無有際
 棄捐眾思想  出家除根株
 憺怕得自在  曉了斯法慧
 是故今啟問  無極大聖人
 所分別神足  解了隨順行
 遊億垓佛土  無有國土想
 供養億垓佛  無有諸佛想
 是故問此義  睹者普受欣
 其離欲塵魔  忽化陰身魔
 棄捨於死魔  降伏諸天魔
 蠲除一切魔  則逮成佛道

​  是故問斯義  永棄於眾冥

지혜로 저 언덕으로 건너, 거룩한 신통 끝이 없으며

온갖 사상들을 버리고, 출가하여 뿌리를 뽑아버리며, 

담박한 마음으로 자재를 얻어, 이 법과 지혜를 환히 깨닫나니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쭈옵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큰 성인께.

 

분별한 신족으로,수순하여 해야 할 분명히 알고

억해의 불국토에 노닐면서도, 국토라는 생각이 전혀 없으며 

억해의 부처님께 공양하면서도, 부처님들이란 생각 전혀 없나니

그러므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보는 자는 누구나 기쁘게 하는 분께.

 

그들은 욕심과 번뇌의 악마를 여의고,

음신(陰身)의 악마도 홀연히 교화하며,

죽음의 악마를 버리고, 여러 하늘 악마도 항복받으며 

일체 악마를 없애버리고서,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나니

그러므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온갖 어둠 영원히 버린 분께.


 乃震動天地  樹木及山巖
 覺了成佛道  無量最勝慧
 假使已一心  習於寂定明
 是故問此義  諮啟如斯像
 曉了一切慧  威燿甚巍巍
 假住於佛教  善建立法行
 導利于眾聖  靡所不開化
 今故問斯義  濟遊三處者 

이에 온 천지를 진동시키고, 나무와 산과 바위 진동시키며

분명히 깨달아 불도를 이루고, 한량없는 최고의 지혜 이루며 

가령 이미 일심(一心)이 되었다면, 적정(寂定)의 밝음을 익히나니

그러므로 이 이치를 여쭈옵고, 이와 같은 모습들도 여쭈옵니다. 

일체의 지혜를 환히 깨달아, 위엄이 빛나 매우 높고 높으며

임시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머물러, 법다운 행을 잘 세우며 

온갖 성인들을 인도하고 도와, 두루 교화하지 않는 곳 없나니

그러므로 이제 이 이치를 여쭈옵니다.

세 곳에서 노닐며 구제하시는 분께.


月氏天子,又問世尊:"唯然大聖,何謂菩薩得大聖通殊特之行,度於彼岸。何謂菩薩至不可思議善權方便,備勸助慧.何謂菩薩一切諸法以為一議,入於一味所趣同均,入於一慧平等之說。何謂菩薩奉深禁戒行無放逸,逮成無上正真之道,為最正覺.

 

월씨 천자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큰 성인이시여보살이 크게 성스러운 신통과 특수한 행을 얻어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이 불가사의한 선권방편(善權方便)에 이르러 권하고 돕는 지혜를 갖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이 일체의 법을 하나의 이치로 삼아서 나아가는 바가 같은 하나의 의미에 들어가고평등한 설명인 하나의 지혜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살이 깊이 계율을 받들고 행실은 방일함이 없으며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최정각(最正覺)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佛言:"善哉,善哉! 月氏天子,多所哀念多所安隱,愍傷諸天及十方人,乃能發意啟問如來如此之義。諸菩薩行佛道正真慧,被大鎧者建立大乘,度大欲御大船,轉大法輪,施無極法恢弘慧典,欲放大雨欲演普光,慕擊大鼓志大雷震,樂立巨幢願吹大珂,執大法英攬大法典,演無極明欲照世間,務令大乘永存不斷,願大祀祠究竟足滿,以此比類無極之德愍傷群庶,故問如來,諦聽諦聽,善思念之。吾當為汝分別說之,如諸菩薩大士之行,致大聖通具足深戒,至於無上正真之道為最正覺"。"唯然世尊,願樂欲聞"。月氏天子與諸大眾,受教而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훌륭하구나월씨 천자여

가엾이 생각하는 바가 많고 편안하게 하려는 바가 많구나

여러 하늘과 시방의 인간을 불쌍히 여기기에 뜻을 내어 여래에게 이와 같은 이치를 묻는구나모든 보살은 부처님 도의 바르고 참된 지혜를 행하여 큰 갑옷을 입는 자이니대승을 세워 큰 욕심을 제도하고 큰 배[]를 부리고 큰 법륜을 굴리며끝없는 법을 베풀고 지혜의 법전을 널리 전파해 큰 비를 뿌리려 하고 크나큰 광명을 놓으려 하며큰 북을 사모하고 받들며 큰 우레로 진동시키려는 뜻을 세우며높은 당기를 즐거이 세우고 큰 하()를 불기 원하며큰 법의 꽃을 잡고 큰 법의 전적을 쥐고서 끝없는 광명을 펼쳐 세간을 비추려 하며대승을 길이 존속시켜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힘쓰며큰 제사를 마지막까지 만족하게 치루기를 원하는 자들이다이와 같은 종류의 끝없는 덕으로써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근심하는 까닭에 여래에게 묻는구나.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명심하라내 그대를 위해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모든 보살대사(菩薩大士:보살마하살)의 행으로 크게 성스러운 신통을 이루고 깊은 계율을 완전히 갖추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러 최정각(最正覺)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세존이시여듣고자 합니다.”

월씨 천자와 여러 대중들은 분부대로 듣고 있었다.

佛告天子:"菩薩有四法行,得大聖通殊特之行,度於彼岸。何謂為四! 菩薩大士曉了諸法而應真諦,於一切法無所倚著;等念諸法而無有盡:逮于聖慧而造明證:遊一切法親近眾典,雖在諸法無有脫者不見異法。何謂諸法而應真諦! 如過去空,當來現在亦自然空。天子,欲以曉了是空平等三世空無所想,彼諸有慧分別處所,建立開化解暢道品,便通正業達其義理,是謂曉了而應真諦。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였다.

보살에겐 네 가지 법행(法行)이 있으므로 크게 성스러운 신통과 특수한 행을 얻어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보살대사는 모든 법을 환히 깨달아 진제(眞諦)에 응하여, 일체의 법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바가 없다. 

모든 법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다함이 없다. 성스러운 지혜에 이르러 밝게 증명한다

일체의 법에 노닐면서 여러 전적을 가까이하며비록 모든 법에 있더라도 벗어나는것(脫)이 없고 별다른 법도 보지 않는다.

<동국역경원은 탈(脫)을 해탈(解脫)로 번역하였으나 여기에서는 그냥 벗어남으로 번역하였음,<>안의 1,2,3,4는 편의상 표시하였음>


모든 법에서 진제에 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과거가 공()하다면 미래와 현재도 자연히 공할 것이다

천자여이 공()을 환히 깨달으려고 하면 3()에 평등하고 공하여 생각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그는 모든 지혜로 처소를 분별하여 교화를 건립하고 도품(道品)을 밝게 이해하고는 곧 바른 업을 통하고그 옳은 도리를 통달한다이것이 환히 깨달아 진제에 응한다는 것이다.

何謂於一切法無所倚著!。一切諸法住於我所,現有所住於我非我,則謂菩薩曉了諸法而無吾我不依倚身,是則名曰無所倚著:假使菩薩於斯諸法,身無所著無所著已,不住異法,其於諸法不生不住,爾能於彼無所倚著已無所倚,供養諸法則於諸法而無所倚。

일체의 법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것[我所]에 머물고 있는 일체의 법과 현재 나[]에게 머물고 있는 것들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곧 보살이 모든 법을 환히 깨달아 나라는 것이 없고 몸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곧 의지하거나 집착한 바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가령 보살이 이 모든 법과 몸에 집착하는 바가 없고집착하는 바가 없어진 뒤에 다른 법에 머물지 않아 그가 모든 법에서 생기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면그는 거기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의지하는 것이 없게 되고 나면 모든 법을 공양하여도 곧 모든 법에 의지하는 것이 없.

二何謂菩薩曉了一切猶如虛空!其三界者心之所為,不計斯心無有色像,亦不可睹無有處所。無有教令猶如幻化。因其心本而求諸法則不可得。若以於心不求于心則無所獲心不可逮。以不得心一切諸法亦不可得。諸法則無有法。無形類想。亦無有影而無所有。及與實諦亦無所睹。無所睹者於一切法心無所入。知一切法無所成就亦無所生。

(두번째로) 무엇을 일러서 보살이 일체가 허공과 같은 것임을 환히 깨닫는다는 것인가? 

그 삼계(三界)란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므로 이 마음이 헤아리지 않으면 어떤 물질과 형상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다스리는 자도 없는 것이 마치 허깨비와 같다그 마음의 근본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구하여도 곧 얻을 수가 없다만일 마음에서 마음을 구하지 않으면 곧 얻을 것도 없고 마음이 미칠 수도 없다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일체의 법 역시 얻을 수 없으며모든 법은 곧 법이 없는 것이고 형상이나 종류라는 생각도 없으며또한 그림자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나아가 실제의 이치[實諦]도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며볼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일체의 법에 마음이 들어갈 곳이 없다. 아는 것은 일체의 법이 성취되는 것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는 것이 이를테면 허공과 같다는 것이다.

譬如虛空。猶如天子。欲察虛空永無有生無所成就。了一切法亦復如是。

猶如虛空名曰虛無。彼則憺怕。一切諸法亦復如是。但假字耳彼則寂寞。三何謂菩薩於一切法而親近典也菩薩大士。觀察思惟一切諸法。於斯無知亦無所見。眼不知耳亦無所見。耳不知眼亦無所見。鼻不知舌亦無所見。舌不知鼻亦無所見。身不知意亦無所見。意不知身亦無所見。一切諸法雖有癡騃快眇凶暴。見於法界慧常平等所行具足。

 

천자여마치 허공을 살피려고 하여도 영원히 생기는 것이 없고 성취되는 것도 없는 것처럼일체의 법을 환히 아는 것도 그와 같다마치 허공을 허무(虛無)라고 하며 그것이 담박한 것처럼일체의 법도 그와 같아서 다만 이름만 빌었을 뿐이며 그것은 적막한 것이다.

(세번째로) 보살이 일체의 법에서 전적[]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대사는 일체의 모든 법을 자세히 살펴보고 사유하지만 여기에 있어서 아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다눈은 귀를 모르고 보지도 못하며귀는 눈을 모르고 보지도 못하며코는 혀를 모르고 보지도 못하며혀는 코를 모르고 보지도 못하며몸은 뜻을 모르고 보지도 못하며뜻은 몸을 모르고 보지도 못한다일체의 법에 비록 어리석고 철모르고 흉악하고 사나움이 있다 하더라도 법계를 보면 지혜는 항상 평등하고 행하는 일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其六情界有所照來則有所在。計於本者無有內法。教於外者如無外法。教內法者所見如是。睹若斯者則無有法無有起者。亦無有法有所作為。若有住者睹無所見。佛語天子。是為法界法無所起亦無所滅。而亦不住則無所有。假使有念諸法。不住不生不起無有處所。如是觀者真諦慧備。無有諸法及與法界。不見解脫。斯一切法親近諸典。是為四法。菩薩大士。得大聖通殊特之行度於彼岸。四何謂聖通。所云通者於一切法不信他慧而有諮受。所以言慧於一切法不造二事。所謂無二彼則無名法不可知。

그 6()의 경계는 비춰서 오는 것이 있으면 곧 존재하는 것이다근본에서 헤아리지만 내법(內法)은 없는 것이며밖으로 가르치지만 마찬가지로 외법()도 없는 것이다내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 소견은 이와 마찬가지이다보기를 이와 같이 하면 법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으며 또한 만들어지는 법도 없는 것이다머무름이 있다고 하지만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법계이니법은 일어난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또한 머무르지도 않으므로 곧 존재하는 것이 없다

가령 모든 법을 생각할지라도 머무르지 않고 생기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처소가 없다이와 같이 보는 자는 진제의 지혜가 갖추어져 모든 법과 법계가 없고 해탈도 보지 않으니이것이 일체의 법에서 모든 전적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니보살대사는 크게 성스러운 신통과 특수한 행을 얻어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네번째로)무엇이 성스러운 신통인가

신통이란 일체의 법에서 다른 지혜를 믿지 않고도 묻고 받음이 있는 것이다지혜라고 말한 까닭은 일체의 법에 두 가지 일을 짓지 않다는 것이다이른바 두 가지가 없다는 그것은 곧 이름과 법이 없고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設使天子。具足斯慧。其菩薩者速逮聖通。以成就願具足所曉。菩薩曉了如是慧者則淨道眼。超天世人。便睹十方無量無限億百千垓諸佛國土。佛天中天所有聖眾。悉聞諸佛所說經法。彼佛國土群萌之類。其心所念善惡好醜悉識知之。人民伴黨行來如是。逮及若斯。自知往古所周旋處。以慧明證解己本際。他人眾生始無所由。所居止處悉證明之從緣說是。佛告天子。菩薩大士。雖未得至一切通慧。聖明之智巍巍如是。為諸眾生興立佛事。速疾具足一切佛法。逮得無上正真之道為最正覺。於是世尊即說頌曰

 

천자여만일 이 지혜를 구족한다면 그 보살은 빨리 성스러운 신통을 이룰 것이며 소원을 성취함으로써 깨달아야 할 바를 구족할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환히 알면 천상과 세간 사람을 뛰어넘는 깨끗한 도안(道眼)으로 곧 시방의 한량없고 한정이 없는 억백천해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계신 불()천중천(天中天)과 그곳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뵙게 되며모든 부처님께서 설하는 경법을 모두 듣게 되며그 부처님 국토의 여러 중생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나쁘고 곱고 밉고 하는 것을 모조리 알게 되며인민과 무리들이 이렇게 행할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스스로 옛적에 돌아다닌 곳을 알고 증득한 밝은 지혜로써 자기의 본제(本際)도 알게 되며다른 중생들이 한없이 먼 과거부터 살았던 곳을 모두 밝게 알아 인연을 따라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비록 일체에 통달한 지혜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성스럽고 밝은 지혜가 이렇게 높고 뛰어나므로 모든 중생을 위해 불사를 일으켜 세우며일체의 부처님 법을 빨리 구족하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최정각이 될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以善權慧方便道明  則具足成於大聖通
 而常遵修深妙禁戒  尋用一義解一切法
 分別真諦一切經典  其明目者無所倚著
 常觀諸法猶若虛無  以有所察宣揚悉空
 習近諸法彼假號法  不見諸法有解脫者
 其不見者靡所不觀  已得聖通所見若斯
 假使過去法已空者  當來諸法亦如是空
 分別現在則亦若茲  是乃謂為真諦之見

훌륭하고 지혜로운 방편으로 도가 밝으면,크게 성스러운 신통을 빠짐없이 이루어,깊고 묘한 계율을 늘 따르고 닦으며,하나의 이치 탐구해 일체법을 알리라. 

진제와 일체의 경전 분별하면서,밝은 눈 가진 자는 집착이 없고,모든 법은 허무(虛無)하다 항상 보아서,살피는 바 있으면 모두 공이라 말한다. 

익숙했던 모든법 그건 거짓으로 이름붙여진 법,모든 법도 해탈하는 자도 보지 않으며,보지 않는 그 자 관찰하지 못하는 것 없나니

성스러운 신통 얻고 나면 보는 것이 이와 같네. 

가령 과거 모든 법이 이미 공하다면, 미래의 모든 법도 또한 공하리라.

현재를 분별해도 이와 같으리니, 이것을 바로 진제의 견해라 한다.

 一切諸法三界常空  斯明知者無念不念
 已無有應應不應者  其無所畏為睹真諦
 若慧如是無著方便  講說經法無有法想
 意無所念則無所著  無所著者則不動搖
 一切諸法自然而興  其自然者本淨無我
 曉了諸法而無吾我  爾乃不起無他異法
 其不生者不有不來  察計於彼則無所倚
 而反講說諸法處所  雖演佛道不念有我
 

일체 모든 법과 삼계는 항상 공하나니,이를 분명히 아는 자 생각함도 생각하지 않음도 없다.이미 응함도 응하지 않음도 없는 자,그는 두려워하는 것 없고 진제를 보리라.만일 지혜가 이와 같아 방편에 집착 없으면

경법을 강설하여도 법이란 생각 없고,마음에 생각하는 것 없으면 집착하는 것 없나니,집착하는 것 없는 자 흔들리지 않는다. 

온갖 법은 자연히 일어나니, 그 자연이란 것 본래 깨끗하고 나[]가 없네.

든 법이 나가 없다는 것 분명히 알면, 그때는 일어나지도 않고 다른 법도 없으리라.

그 생기지 않는 것 있지도 않고 오지도 않나니, 그것을 살펴보면 의지한 곳 없어라.

그러고 나서 다시 모든 법과 처소 강설하나니

부처님 도를 연설하지만 내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一切三界心之所由  彼心則亦不可常睹
 無色無人猶如幻化  當以斯法務求於心
 彼以此法求於心已  則知無心亦無心法
 假使已心求心處所  則便不睹心之本淨
 已於諸法無所著者  雖在黎庶不隨眾想
 一切諸法無意無成  常分別知猶如虛空
 如觀虛空不生不有  分別諸法亦復如是
 假號虛空諦無有實  說有言辭彼法虛空
 

일체 삼계는 마음에서 유래한 것이니, 그 마음도 역시 항상 볼 수는 없어라.

물질도 없고 사람도 없어 허깨비 같나니, 마땅히 이 법으로 마음을 힘써 구하라.

그들은 이 법으로 마음을 구한 뒤에, 마음이 없고 마음의 법도 없음을 곧 아나니,

만일 마음으로 마음의 처소 구한다면, 곧 마음의 본래 청정함을 볼 수 없으리라.

모든 법에 이미 집착이 없는 자, 대중 가운데 있더라도 대중이란 생각 없으며,

일체의 모든 법 뜻함도 없고 성취함도 없이

허공과 같다는 것 항상 분별해 안다.

허공을 관찰하면 생기지 않고 있지 않듯,

모든 법도 분별하면 또한 이와 같다.

거짓 이름으로 허공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실체가 없으며 설하는 말들이 있지만 그 법은 허공과 같으니라.

  其眼未曾觀見於耳  其耳亦不觀見於眼
 舌不屬鼻鼻不屬舌  斯等展轉而不相見
 其身未曾察見於意  意亦不察身之形類
 各各如是不能相知  以是之故斯常憺怕
 計著眾惡諛諂癡騃  諸法之界常等均平
 其內事者不知於外  若外事者亦不知內
 以是之故曉法所趣  成就智慧常不可限
 觀見十方億垓諸佛  及諸聲聞無有罪釁
 又彼諸佛所說經典  無量聖達清淨之義
 悉得逮聞所演美辭  則能受持普修平等
 便能了知眾生心念  具足飛到億萬佛土
 識念往古無數世事  億百千劫如恒河沙
 逮成於此妙五聖通  則得親近安住之慧
 彼以佛故有所顯發  無放逸道興造利義
 假使聞斯如是空法  生欣踊心樂微妙樂
 魔不能得彼之瑕短  則能疾成覺了上道 


그 눈은 한 번도 귀를 보지 못하였으며,

그 귀는 한 번도 눈을 보지 못하였으며,

혀는 코와 접촉하지 못하고 코는 혀와 접촉하지 못하니 이들은 엎치락뒤치락 서로 보지 못한다. 

그 몸은 한 번도 뜻을 살펴보지 못하였으며,

뜻 역시 몸이 어떤 유형인지 살펴보지 못하였으며 저마다 이와 같이 서로 알 수 없나니

이런 까닭에 그것들은 언제나 편안하다. 


온갖 흉악함과 아첨과 어리석음에 집착했어도,

모든 법의 세계는 언제나 평등하나니,그 안에 것은 바깥을 알지 못하고,

밖에 것은 안의 것을 또한 모른다. 

이런 까닭에 모든 법의 귀취를 깨달아,

영원하고 한정할 수 없는 지혜를 성취하며,

시방에 계신 억해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문에게 허물과 흠 없음을 보게 되리라.


또한 저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여러 경전과,

한량없이 성스러운 신통과 청정한 이치,

고운 말로 연설하신 것 모두 들어서,

곧 능히 받아 지니고 평등하게 널리 닦으리라

곧 중생들의 생각 분명히 알 수 있고,

억만의 불국토로 빠짐없이 날아가며,

수 없는 전생의 세상 일 모두 기억하리라.

억백천 겁 항하의 모래 같은 세월을. 

여기에서 오묘한 다섯 가지 성스러운 신통 이루면 곧 편안히 머무는 지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나니 그것은 부처님 덕분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요,

방일함이 없는 도와 이익과 이치를 일으킨 덕분이다. 

만일 이와 같은 공의 법을 듣고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오묘한 즐거움 즐긴다면악마가 그의 홈을 찾을 수 없으리니,

곧 위없는 깨달음을 빨리 이루리라.


佛告天子,菩薩大士有四事法。至不可議善權方便。何謂為四。菩薩曉了往返度流之法猶如己身。若干種痛苦毒之患睹所遊起。亦欲蠲除他人之苦修行精進。勸諸眾生趣於聖路。令一切法留存道心。為諸群黎積累德品三世亦然。而已勸助一切諸佛。集三世行勸助德品。所作善本加施眾生。放捨弘施有所開化亦不生心其不勸進一切智者心不離脫亦不見道。心不離道道不離心。如道之相身相若斯。以慧平等於心於道亦無所倚。順權方便長益德本。不見法界有所增益。彼於諸法無所思議積功累德未曾厭倦。不以心業求曉了心。彼若布施則無望想。奉修禁戒亦無所失。遵行忍辱亦無所住。所行精進亦無憺怕。一心禪定無所依倚。奉行智慧亦無所習。勸化眾生亦無所著。以愍哀故嚴淨佛土。求於聖達無所起慕。講說經法亦無所入。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대사에겐 네 가지 법이 있으므로 불가사의한 선권방편(善權方便)에 이른다

네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생사의 흐름을 건너 오가는 법을 자기의 몸처럼 환히 알고여러 종류의 고통과 해독의 환난이 어디에서 발원하는지를 본다

또한 다른 이의 고통을 없애주려고 수행하고 정진하며 성인의 길로 나아가도록 모든 중생에게 권하여 일체의 법을 도의 마음에 머물러 있게 하며모든 중생들을 위해 공덕의 법을 쌓기를 3세에 늘 그렇게 한다

이미 모든 부처님을 권유하고 보좌하여 3세의 행을 모아 공덕의 법을 권유하고 도우며

지은 선의 근본을 중생에게 베풀어 준다아낌없이 버리고 널리 베풀어 일깨우고 교화한 바가 있어도 또한 마음을 내지 않으므로 그는 일체지자(一切智者)에게 나아가도록 권하지 않은 것이며그 마음은 벗어나지도 않고 또한 도를 보지도 않는다

마음은 도를 벗어나지 않고 도는 마음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도의 모양과 같이 몸의 모양도 그와 같다평등한 지혜로써 마음이나 도에 또한 의지한 바가 없으며권방편(權方便)에 수순하여 덕의 근본을 더욱 자라게 하면서도 법계에 늘거나 더해지는 것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그는 모든 법에 대해 생각하거나 의논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공덕을 쌓으면서 싫어하거나 게으름을 부린 적이 없으며마음의 업으로 마음을 환히 깨닫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보시를 하더라도 보답을 바라는 생각이 없고계율을 받들어 닦되 빠뜨리는 것이 없으며인욕을 쫓아 행하되 또한 머무르는 곳이 없고정진을 행하되 담박함도 없으며일심으로 선정을 닦되 의지하는 것이 없고지혜를 받들어 행하되 익히는 것도 없으며중생을 권하여 교화하되 집착하는 것도 없고중생을 가엾이 여겨 불국토를 깨끗이 장엄하고성스러운 신통을 구하지만 그리워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경법을 강설하되 또한 들어가는 곳이 없다.

如是天子。菩薩所行所造德本雖為薄少。善權方便不可限量乃至大道。何謂菩薩所造德本雖為薄少。善權方便得至無量乃致大道。菩薩大士。於一切法念發無量。觀察諸法無有計限得邊際者。所以者何。天子。欲知一切諸法。則空無想亦無有願。其以空者則亦無量。假使暢達無量心者。講法雖少善權方便廣大無際。所以者何佛道無量勸心無限。至無際法則為諸佛世尊之道。復次天子。菩薩大士善權方便。勸勉眾生令入正行。憂群萌類所樂法者而勸立之。若施有所救濟為說經法。復次天子。菩薩大士。不以布施而為審諦言是我所。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亦復如是。不名我所又有所施。若持戒者亦無所念常順禁戒。具足忍辱見人所作。是非悉忍。奉行精進修清白行一心禪思。曉了方便觀察智慧。復次天子。菩薩大士分別曉了。善權方便與聲聞俱。而開化之不樂所行。所修堅固與緣覺俱。不樂所行堅固其志。是為四法。菩薩大士。致不可議善權方便。於是世尊即說頌曰

천자여이와 같이 보살이 행하고 짓는 덕의 근본은 비록 얇고 적더라도 그 선권방편은 한량할 수 없고 나아가 큰 도에 이르게 된다보살이 짓는 덕의 근본은 비록 얇고 적더라도 선권방편은 한량없는 데에 이르고 나아가 큰 도에 다다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대사는 일체 법에 한량없는 생각을 내어 한계를 측량할 수 없는 모든 법을 관찰하여 그 끝을 밝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천자여 일체의 법을 알려고 하면 곧 공()이며무상(無相)이며무원(無願)이며그 공이란 곧 또한 한량이 없기 때문이다가령 한량없는 마음을 통달한다면 강설하는 경법은 비록 적더라도 선권방편은 넓고 크며 끝이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도는 한량이 없고 권유하는 마음은 한정이 없어서 끝이 없는 법에 이르면 곧 모든 부처님세존의 도가 되기 때문이다.

또 천자여보살대사는 선권방편으로 중생에게 힘써 권유하여 바른 행실에 들게 하며어리석은 무리들을 근심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법으로 권유하고 수립하며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베풀어 구제하고 경법을 설해 준다.

또 천자여보살대사는 보시하되 자세히 살피면서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라고 말하지 않으며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도 그와 같이 내 것이라고 하거나 보시한 것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계율을 지니더라도 생각하는 것이 없이 항상 계율을 수순하고인욕을 두루 갖추어 사람들이 어떤 짓을 해도 시비를 모두 참고정진을 받들어 행하여 맑고 깨끗한 행을 닦고일심으로 선정을 닦고방편을 분명히 깨달아 지혜를 자세히 살핀다.

또 천자여보살대사는 분별하고 밝게 알아 선권방편으로 성문과 함께 하며 그들을 일깨워 교화하되 행한 일과 견고한 수행 즐거워하지 않으며연각과 함께 하되 행한 일과 견고한 그 뜻을 좋아하지 않는다이 네 가지 법으로 보살대사는 불가사의한 선권방편에 이른다.”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曉了於二事  己身及他人
 當除吾苦患  療盡眾惱熱
 愍念於眾生  勸使在道心
 思惟一切法  演令入一義
 一切群生慶  合集於三世
 普於諸佛德  悉當勸化之
 而悉曉了斯  皆以施眾生
 真心而惠施  猶以佛慧故
 一切所發心  悉勸助佛道
 不失於道心  見諸法悉脫
 察心及於道  不見有二事
 其相有所存  了心相同等
 法等故平等  不二無所有
 明知權方便  長益清白法
 其種無為益  法界不可議
 志求於佛道  常以不厭倦
 不以心念心  吾長清白議
 不忘失道心  所作而勸助
 布施不望報  護戒無所念
 常修行忍辱  不立計有人
 恒奉行精進  身口心寂然
 禪定無所倚  智慧度無極

두 가지 일 환히 깨달아야 하니,자기 몸과 다른 이의 몸이라.

자신의 고통과 근심을 없애고,

중생들의 고뇌와 번열(惱熱)을 모두 치료하라.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도심(道心)에 머물도록 권하고, 온갖 법을 깊이 사유해, 하나의 이치에 들어가도록 연설하라. 

일체 중생을 기뻐하며, 모두 모이는 일 3세에 있거든, 모든 부처님 덕을 두루 펴서, 언제나 권하고 교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 환히 깨달아, 모든 것을 중생에게 베푸나니

진심으로 은혜롭게 보시하는 것은, 부처님 지혜와 같기 때문이다. 

온갖 곳에서 마음을 일으켜,언제나 불도를 권유하고 돕나니

도의 마음을 잃지 않아서, 모든 법을 보고 늘 해탈하네. 

마음을 살펴서 도에 미치고,두 일이 있는 것 보지 않으며, 그 형상은 존재해 있되,마음 모양은 평등한 줄 안다., 

법이 평등하므로 평등한 것이니, 둘이 아니며있는 것 없어라.

선권방편 분명히 알아, 깨끗하고 맑은 법 더욱 자라게 한다. 

그는 무위의 이익을 심으니, 법의 세계 불가사의하여라.

부처님 도에 뜻을 세워 구하며, 늘 싫증내거나 게으르지 않네. 

마음으로 마음을 생각지 않으며, 깨끗하고 맑은 이치 나는 늘리고

도의 마음 잃거나 잊지 않아서, 하는 일은 권유하며 도움이로세. 

보시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계율 지키되 생각함이 없으며

항상 인욕을 닦고 행하며, 남이 있다는 생각 세우지 않네. 

항상 정진을 받들고 행하되, 마음은 고요하기만 하며

선정으로 의지함 없고, 지혜로 무극(無極)에 건너서 가네.


 開化解眾生  不處於顛倒
 嚴淨諸佛土  志性無剛強
 常志于佛道  於法無所捨
 諮受一切典  故慧不可議
 為眾生說法  不著於文字
 造行如是者  速成佛無難
 心不想於空  不慢無所念
 無想無所願  不可稱限量
 知群黎所行  隨之因開化
 自在而布施  說法給所乏

 

중생을 일깨워 해탈시키면서, 전도된 마음에 머물지 않으며

모든 불국토 깨끗이 장엄하며, 뜻과 성품이 강직하고 굳세네. 

부처님 도에 항상 뜻을 두어, 불법을 버리는 일 없고

일체의 법전 묻고 받기에, 그 지혜 불가사의일세. 

중생 위해 법을 설하되, 문자에 집착 않나니,이렇게 행을 지어 나가는 자

어려움 없이 속히 성불하리라. 

마음에 공()을 생각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생각하는 바 없으며

고집도 없고[無相소원도 없으니[無願], 그 한량 헤아릴 수 없어라.

중생들이 하는 일을 알아, 그들을 따라 일깨워 교화하며

자유자재하게 보시를 하고, 설법을 하며 부족한 것 보태주네.


 有施眾生  不言我獲  不高於戒
 不忽忍辱  不慢精進  不著禪定
 而於智慧  無所吝惜  常喜布施
 講論眾戒  遵修謙下  恒行勇猛
 雖奉禪思  永無所著  興發智慧
 而以布施  在於緣覺  聲聞之中
 菩薩大士  遊於此黨  假使處中
 有所造業  明眼達士  不樂彼行
 以能建立  如斯法者  是則名曰
 菩薩之行  曉了善權  不可思議
 所為惠施  至無限量 

중생에게 보시하고서, 내가 보호하노라 말하지 않고

계율 지난다고 높은 체 않으며, 인욕을 소홀히 여기지도 않네. 

정진한다며 교만하지 않고, 선정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리고 지혜에 있어서도,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네. 

언제나 보시하기를 즐기고, 여러 가지 계율 강설하며, 겸손하고 낮추는 마음 닦고, 항상 용맹스럽게 행하네. 

선정을 받들더라도, 영원히 집착 없으며, 지혜를 크게 일으키고

그리고 그것을 보시한다네. 

연각의 무리에 머물고, 성문들 가운데 머무나니, 보살대사이런 이들 안에서 노니네. 

가령 그 안에 살면서, 짓는 업이 있더라도,눈 밝은 통달한 선비

그가 한 일 좋아하지 않네. 

이와 같은 법을,이룩할 수 있다면, 그것의 이름이 곧 보살의 행이라네. 

불가사의한, 선권방편 환히 깨달아, 은혜롭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데에 이르리라.


佛告天子。菩薩有四事法。一切諸法以為一議入於一味所趣同等。入於一慧平等之說。何謂為四。菩薩大士。曉了法界無所破壞。解諸法空而普遊至。於諸法議無所同像。平等吾我及於他人。曉了諸法悉為憺怕。是為四。曉了是慧所睹若此。於世俗法及度世法。靡不通達不造二觀。若罪若福有礙無礙。若聞不聞有為無為。於此諸法不造不觀。不見諸法有所受者。

부처님께서 이어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겐 네 가지 법이 있으므로 모든 법을 하나의 이치로 삼아서 나아가는 곳이 동등한 하나의 맛에 들어가고평등하게 설명하는 하나의 지혜에 들어간다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보살대사는 파괴할 것이 없는 법계를 환히 알며모든 법이 공임을 해득하여 두루 노닐어 이르며모든 법의 이치에 같은 형상이 없어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평등하며모든 법을 환히 깨달아 모두 담박하게 되나니이것이 네 가지이다.

이런 지혜를 환히 깨달아 보는 바가 이와 같으면세속의 법이건 세속을 초월하는 법이건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두 가지 관()을 짓지 않는다

죄이건 복이건걸림이 있건 걸림이 없건듣건 듣지 않건유위이건 무위이건이런 모든 법을 짓지도 않고 관하지도 않으며모든 법에 받는 이가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無凡夫法無羅漢法無若干觀。其凡夫法不為清淨也。不察羅漢法獨解明。不舉不下分別一議。趣憺怕門演暢講說。散一切法而於諸法不見散壞。修行一忍永無有二。以入一議普入諸法。所謂入者無所從生。是為天子菩薩大士。得近無上正真之道成最正覺。亦不念言我近若遠。所以者何。不處一議見異群黎。亦觀睹人與道別異。又思惟之人不可得爾乃是道。於是世尊即說頌曰

범부의 법도 없고아라한의 법도 없으며약간의 관도 없다그는 범부의 법을 청정하다고 하지도 않고아라한의 법만이 홀로 밝다고 보지도 않으며칭찬하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면서 하나의 이치임을 분별하여 담박한 문에 나아가 널리 펴 강설한다.

일체의 법을 흩어도 모든 법은 흩어지거나 무너진다고 보지 않고 하나의 법인을 수행하여 영원히 둘이 없으며하나의 이치에 들게 됨으로써 두루 모든 법에 들어간다이른바 들어간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나는 바가 없다는 것[無所從生]’이다.

천자여이렇게 하여 보살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가까워져 최정각을 이루게 되지만또한 나는 가깝다거나 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왜냐하면 하나의 이치에 처하지 않을 때 다른 중생을 보게 되고또 보는 사람과 도가 다른 것이라고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또한 그렇게 사유하는 사람조차 얻을 수 없고서야 비로소 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而於法界  無所破壞  又彼法界
 無能散者  計如法界  諸人若斯
 但假有字  無有若干  了諸法空
 則致響忍  其內若外  有為無為
 觀察斯法  悉無所有  分別一議
 皆知為空  諸所現法  無所同像
 不著己身  及與他人  若不計念
 有吾我人  其行未曾  有若干想
 修於寂然  志在憺怕  普觀一切
 諸法所存  於一切法  靖默無念
 遊于憺怕  而無所著  講說現在
 及度世事  彼則不興  造盡滅盡
 若福若罪  若聞不聞  不念於法
 不取音聲  不在有為  亦不無為
 常等一觀  不喜二事  不睹諸法
 有所受者  不得凡夫  及阿羅漢

법계에서는 파괴할 것이 없고 또한 그 법계를

흩어지게 할 자도 없네.

법계를 헤아리듯이, 모든 사람도 그와 같아

다만 거짓으로 글자 있을 뿐,약간의 것도 또한 없다. 

모든 법이 공인 줄 알면, 메아리 같은 법인(法印이루리라.

안이건 밖이건, 유위이건 무위이건 

이러한 법을 관찰해보면,모두 있지 않는 것이니, 하나의 이치임을 분별하면,모두가 공인 줄 알리라나타난 모든 법,같은 형상 없나니

자기 몸이라 집착하지 말고, 남의 몸이라고 하지도 말라.

 

내가 있고 남이 있다는, 그런 생각 하지 않으면,

그 행에는 일찍이 없으리라약간의 생각이라도 있은 적. 

고요함을 닦으며, 담박함에 뜻을 두고,일체를 두루 관찰하라

존재하는 모든 법을. 

일체의 모든 법에서, 조용히 잠자코 생각 없으며

담박한 경계에 노닐며, 집착하는 바가 없느니라.

 

현재 세상의 세속의 법과, 세속을 초월하는 법을 강해도

그는 곧 일으키지 않고, 지은 것도 다하며 없어지나니. 

복이건 허물이건, 듣건 듣지 않건, 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음성도 취하지 않느니라. 

유위에 있지 않고,무위에도 있지 않으니,항상 평등하게 하나로 관하며

두 가지 일을 기뻐하지 말라. 

모든 법을 보지 않고, 받는 자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범부도 있을 수 없고, 또 아라한도 마찬가지라.

 不說凡夫  癡穢不淨  此則名曰
 阿羅漢法  亦無所舉  不有所下
 分別一議  而悉寂然  曉了諸法
 皆無所壞  亦不毀散  一切法界
 不謂忍別  與空異耶  普知諸法
 一切悉空  不著於空  無倚了忍
 以入一議  悉了一切  此無所起
 其本清淨  如是行者  疾成佛道
 速得親近  無量正覺  不計有身
 不念道心  一切諸法  吾我及彼
 悉無所著  得平等覺 

어리석고 더러운 범부라고 말하지 않으면,

이것을 두고 곧 아라한의 법이라 하느니라.

추켜세워 올릴 것도 없고

낮출만 한 것도 있지 않으니,

하나의 이치임을 분별하면

모두 조용하고 고요하니라. 


모든 법을 환히 알면 파괴할 것 전혀 없으며

또한 헐리고 흩어지지 않는 것이, 일체의 법계니라.

법인에 차별 있다 말 못하니, 공과 더불어 다르겠는가.

두루두루 모든 법을 알고 나면, 일체가 모두 공이니라 

공에도 집착하지 않고, 깨달은 법인에도 의지함 없으니

하나의 이치에 들어가기에, 일체를 모조리 환히 안다네. 

이것은 일어나는 것이 없으니, 그 근본은 본래 청정하니라.

이렇게 닦고 행하는 자, 부처님 도를 빨리 성취하리라. 

빨리 가까워지리라.

한량없는 바른 깨달음에, 몸이 있다고 헤아리지도 말고

도의 마음도 생각지 말라. 

일체의 모든 법에서, 나와 남이라는 소견,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평등각을 얻게 되리라.


佛告天子。菩薩有四事法。奉深禁戒行無放逸。何謂為四。菩薩大士而自念言何謂禁戒。則順觀察思惟其議。若身行善。口言至誠。心念柔順。是為禁戒。又復念言。何謂身善。何謂言誠。何謂心柔不犯身事而不殺生盜竊婬劮。是身行善。口不說非妄語兩舌惡口讒言。是口言誠。心不念非念餘瞋恚邪見之事。是心念柔。彼諦觀察而自念言。假使不犯身口心者不可分別其處。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겐 네 가지 법이 있으므로 심오한 계율을 받들며 행동에 방일함이 없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보살대사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이 계율일까곧 수순하여 관찰하고 그 이치를 생각해 보면 몸으로 선을 행하고입으로 지극한 진실을 말하며마음으로 부드러움을 생각하는 이것이 계율이 되리라.’

또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이 몸의 선이며무엇이 말의 진실이며무엇이 마음의 부드러움일까몸의 일을 범하지 않는 것으로서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물건을 훔치지 않고음란한 짓을 하지 않는 이것이 몸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다입으로 그릇된 거짓말양쪽에서 다르게 하는 말나쁜 말모함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입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마음으로 잘못된 생각을 비롯한 성냄과 삿된 소견의 일을 생각지 않는 이것이 마음으로 부드러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이치를 자세히 살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

만일 몸과 입과 마음으로 범하지 않는다면 그 처소를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所在青黃赤白紫紅之色。計於眼者不分別識。耳鼻口心亦復如是不分別識。所以者何。彼亦不生亦無生者。亦無起者亦無不起。設不有生無所生者。亦不有起。無所起者。則不堪任分別識法。又更念言。爾時察之則無所有。亦無有戒則無所行。已無所行則不可知。已不可知不當於彼有所倚著。造此行已則無所見。當爾之時不見有戒。已不見戒勸彼戒者亦無所見。是為天子菩薩大士奉深禁戒。復次天子。若有菩薩曉不貪身。不處見身亦不睹見。修於持戒亦不犯禁亦無所著。

()홍의 빛깔을 눈으로 헤아려도 의식으로 분별하지 않으며마음도 그와 같아서 의식으로 분별하지 못하리라왜냐하면 그것은 또한 생기지도 않고 생기게 하는 것도 없으며또한 일어나는 것도 없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만일 생기지 않고 생기는 것이 없다면 또한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는 것도 없을 것이므로 곧 의식으로 법을 분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

또다시 생각한다.

그때 그것을 살펴보면 존재하는 것이 없고 또한 계율도 없으므로 행하는 일도 없다이미 행하는 일이 없다면 알 수 없을 것이며이미 알 수 없다면 거기에 의지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 행을 짓고 나면 곧 소견이 없을 것이니그때에는 계율이 있음을 보지 못할 것이며이미 계율을 보지 못하면 그 계율을 권유한 이도 볼 수 없을 것이다천자여이것이 보살대사가 심오한 계율을 받드는 것이다.

 

또 천자여만일 어떤 보살이 깨달아서 몸을 탐내지 않고몸을 보는 견해에 처하지 않으며또한 그렇게 보지도 않는다면 지닌 계율을 닦되 계율을 범하지도 않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리라.

復次天子。菩薩大士入深法藏在所護禁。威儀禮節行步進止。安詳順教是曰為戒。不自見己之所興行。不見他人之過咎。是故名曰深妙之戒。復次天子。菩薩不犯於戒亦不毀戒又不弄戒。其反己者則以反戒。若不反己則不反戒。以不反戒則無所犯。已不犯戒則不弄戒便無所度。所以不弄不度戒者。了一切法悉度脫故。以度脫者則無有我亦不無我。既無有人何所度者。是為四。於是世尊即說頌曰

또 천자여보살대사는 심오한 법장에 들어가 지키고 금지하는 곳에 있으면서 위의와 예절기거와 동작이 편안하고 자상하여 가르침을 따르니이것을 계율이라고 한다자기가 행을 일으키는 것도 보지 않고 다른 이의 허물도 보지 않으니그러므로 깊고 오묘한 계율이라고 부른다.

또 천자여보살은 계율을 범하지 않으며계율을 훼손하지도 않으며또 계율을 농락하지도 않는다자기를 배반하면 곧 계율을 배반하는 것이며만일 자기를 배반하지 않으면 계율을 배반한 것이 아니다계율을 배반하지 않음으로써 곧 범하는 것이 없고이미 계율을 범하지 않았으므로 곧 계율을 농락하지 않고 제도할 것도 없다농락하지도 않고 계율로 제도하지도 않는 것은 일체의 법을 알아 모두 해탈하였기 때문이다이미 해탈한 자는 곧 나도 없고 나가 없는 것도 아니다이미 사람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하겠는가이것이 네 가지이다.”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其身清淨  言無誤失  心念鮮明
 行無瑕穢  而常自護  謹慎於行
 彼菩薩者  乃謂奉戒  將順奉行
 於斯十善  聰明菩薩  若能護此
 則身口意  無所犯負  斯能名曰
 奉明達戒  其無所造  不起無生
 彼無形色  無有處所  已無像貌
 則無所住  便不可得  何所歸趣
 戒不有造  常如無為  則不可以
 眼觀察之  耳無所聞  無鼻無舌
 身不可別  及心所念  設不分別
 於六根者  則達諸趣  無所依倚
 

그 몸을 청정하게 하고,말에 잘못과 실수 없으며

마음으론 선명한 생각을 하고,행동엔 흠과 더러움 없게 하라. 

그리하여 스스로 항상 보호하고,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면

그런 보살을,비로소 계율을 받든다 하리라.

 

지니고 따르고 받들고 행하라.

이 열 가지 선을.

훌륭하고 총명한 보살이라야 이것을 보호할 수 있느니라. 

곧 몸과 입과 뜻으로, 범하거나 어김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지혜 받들고 계율에 통달한다고 한다. 

그는 짓는 것이 없고, 일어나지 않고 생김도 없으며

그는 형상과 빛깔도 없고, 또 처소도 없느니라. 

이미 형상과 모습이 없다면, 곧 머무를 곳이 없고

그렇다면 얻을 수도 없거니, 어디를 향해 돌아가리오. 

계율이란 짓는 것 아니라, 언제나 무위와 같으니,그러므로 불가능하여라.

눈으로 그것을 관찰하기는.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으며, 몸으로 분별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네. 

저 6()을,만일 분별하지 않는다면, 곧 모든 세계를 통달하여

의지하고 기댈 곳 없으리라.

  設如是觀  乃清淨戒  未曾逮戒
 有所立處  彼無有戒  無意無正
 護於禁戒  無吾我想  將養於禁
 亦無戒想  修深要戒  志得自在
 以能分別  所見身者  即不墮落
 六十二疑  其無所見  不睹處所
 雖奉禁戒  不自憍恣  則能順入
 深妙法藏  所行禮節  為不妄想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이, 계율을 청정하게 함이니

일찍이 계율에 도달하거나 세워진 곳 있은 적 없었네. 

그에게는 가진 계율이 없고,뜻도 없고 바르다는 것도 없나니

계율을 보호하되, 나라는 생각이 없네.

 

계율을 지니고 기르되, 계율이란 생각 또한 없고, 깊고 요긴한 계율을 닦으며,자재함을 얻는 데 뜻을 둔다네.

 

몸에 대한 견해들을 이렇게 잘 분별하면, 곧 떨어지지 않으리라.

예순 두 가지 의심에.

 

그는 보는 것이 없고,처소도 보지 않으므로, 비록 계율을 받들더라도

교만하거나 방자하지 않네.

 

곧 따라 들어갈 수 있으리라깊고 오묘한 법장으로.

행하는 일과 예의범절은, 망상이 되지 않으리라.


 善修安詳  將順謹慎  其禁戒者
 無有異著  不倚吾我  亦不依戒
 已無吾我  則無禁戒  不念己身
 及與禁戒  如是乃謂  為法器耳
 無吾我者  不依倚戒  不計身者
 不想念法  無身見者  無有戒心
 不犯戒者  無有脫禁  亦不建立
 於禁戒中  不計有身  則無戒想

편안하고 조용함을 잘 닦고, 지키고 순종하며 삼가고 조심하나니

이렇게 계율을 지니는 사람, 다른 집착이란 전혀 없느니라.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계율에 의지하지도 않나니

이미 나[]가 없으면, 곧 계율도 없느니라.

 

자기 몸이라 생각지 않고, 계율이라고도 생각지 않나니

이와 같아야 비로소, 법의 그릇이라 할 수 있으리라.

 

나 자신이 없는 자는, 계율에 의지 않으며

몸이라고 헤아리지 않는 자는, 법도 생각지 않는다.

 

몸에 대한 견해가 없는 자는 계율을 지키는 마음도 없고

계율을 범하지 않는 자는, 계율을 해탈하는 일도 없어라.

 

또한 건립하지도 않네

금지된 계율 안에서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계율이란 생각도 없어지느니라.


 深妙之戒  謂無所犯  假使勇猛
 奉戒如是  彼則未曾  有所毀犯
 如是戒者  聖賢所歎  於一切法
 而無所著  愚騃之夫  住吾我想
 將護禁戒  言我畏慎  則失戒寶
 永無有餘  便不度脫  三界之患
 假使有人  除諸見網  則不見彼
 違失禁戒  其人心計  無有吾我
 順奉禁戒  不墮疑見  便不恐懼
 墮於惡趣  若使分別  禁戒如是
 則不睹見  犯禁戒者  不察吾我
 不見三世  況當觀察  犯戒毀禁 

깊고 오묘한 계율이란, 범하는 것 없음을 말하나니

용맹스런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계율을 받들리라.

 

그는 곧 일찍이 없었네.

훼손하거나 범하는 일

이와 같이 계율을 지키는 자,

성현께서 찬탄하느니라.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할 것 없거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들, 나라는 생각에 머무는구나.

 

계율을 지니고 보호하면서, 나는 두려워하며 삼간다고 말한다면

그는 계율의 보배를 잃으리라.

영원히 남김없이.

 

해탈하지 못하리라.

삼계의 환란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 견해의 그물을 없앤다면

 

곧 그런 것 보지 않으리라.

계율을 어기고 잃는 것그 사람 마음으로 헤아리리라.

나 자신이란 없음을.

계율을 따르고 받들며

의심스런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나쁜 길에 떨어질까를.

 

만일 이와 같이, 계율을 분별한다면,보지 못하리라.

계율을 범하는 이를.

 

나 자신을 살피지 않고, 삼계도 보지 않거늘, 하물며 관찰할까

계율을 범하고 훼손한다고.


月氏天子白佛言。得未曾有。天中天。諸佛世尊道法微妙。無上正真甚深難及。菩薩所作第一巍巍。乃能奉修如此之法。而無所住亦無所修。除去一切諸所妄想離吾我念。行無數劫而不墮落聲聞緣覺。而不中道違失道意。具足佛法入不缺漏。云何菩薩奉行何法修微妙典。於真本際而不取證。世尊告曰。天子聽之。菩薩有四事行深妙法。於真本際而不取證。何謂為四。菩薩大士堅固志願。建立要行具一切智。奉修精進而不怯弱。不住立者不捨眾生。於大哀不斷教。善權方便勸眾德本。是為四行深妙法於真本際而不取證。於是世尊即說頌曰

월씨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미증유를 얻었습니다천중천(天中天)이시여모든 부처님 세존의 도와 법은 미묘하여 위없고 바르고 참되며 매우 깊고 미치기 어려우며보살이 하는 일은 제일 높고 뛰어납니다이에 이와 같은 법을 닦을 수 있으면 머무르는 곳도 없고 닦는 것도 없을 것이며일체의 망상을 없애고 나라는 생각도 떠날 것이며수없이 많은 겁을 수행하며 성문과 연각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중도에 도의 뜻을 어기거나 잃지도 않으며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어 결함과

셈이 없는 곳으로 들어갈 것입니다보살이 심오한 법을 받들어 행하고 미묘한 법전을 닦으며 참된 본제에서 작증(作證)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천자여들으라보살에겐 네 가지 일이 있으므로 깊고 오묘한 법을 행하며 참된 본제에서 작증을 취하지 않는다네 가지란 무엇인가보살대사는 바라는 소원을 견고하게 하며긴요한 행을 건립하여 일체지(一切智)를 갖추며정진을 받들어 닦아서 겁내지 않으며수립한 것에 머물지 않고 중생을 버리지도 않아 큰 자비로 교법을 끊지 않으며 선권방편으로 여러 덕의 근본을 권유한다이것이 깊고 미묘한 법을 행하며 참된 본제에서 작증을 취하지 않는 네 가지이다.”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其明智者  志願堅強  未曾違失
 往古所曉  為一切智  精進慇懃
 終不處於  興廢異乘  奉行精進
 常無放逸  敢所遵修  心不怯弱
 亦不捐捨  一切眾生  而普等心
 群萌之類  常加愍哀  普世群黎
 能忍勤苦  意不轉移  志不欲令
 道教斷絕  猶如有人  積無數寶
 而善覺了  善權方便  勸一切德
 行無厭足  遊趣最要  懷於愍哀
 不於中間  滅盡諸漏  其有稟授
 於此經典  其菩薩者  名曰勇猛
 而常奉修  深妙之法  彼則未曾
 倚著本際

 

그 밝은 지혜 가진 이, 바라는 소원 굳고 강해

어기거나 잃는 일 없어라.

옛적에 환히 깨달은 것들.

 

일체지를 위해, 은근히 정진하며, 끝내 처하는 일 없어라.

잘못된 다른 진리에.

 

정진을 받들어 행하며, 언제나 방일함이 없고, 받들어 닦아야 할 일들에

마음이 겁내지 않는다.

 

또한 버리지 않네.

일체의 모든 중생을, 두루 평등한 마음 가지네.

온갖 무리들에게.

 

항상 가엾은 생각 더하네.

온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인욕으로 부지런히 애쓰며,그 뜻 변함이 없네.

 

없게 하리라 뜻을 세웠네.

도의 가르침 끊어지는 일.

비유하면 그런 사람과 같네.

수없는 보배를 쌓아둔 자.

 

선권방편을 잘 깨달아, 온갖 공덕을 힘써 권하고, 행함에 만족함이 없네.

 

가장 긴요한 곳으로 나아가 노닐며,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품나니

중간에 하지 않네.

모든 번뇌 다 없애는 일.

 

이제 이 경전을 받아들이는 자, 그 보살이야말로, 용맹하다고 하리라.

 

깊고 오묘한 법을, 언제나 받들어 닦는다면, 그는 곧 일찍이 없으리라.

본제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일.


月氏天子復白佛言。何謂菩薩奉行深要。佛告天子。於是菩薩未曾破壞凡夫之法。而普成就於佛道議。亦不謗毀凡夫之法。亦不睹見佛法長益。亦不遠離於凡夫法。亦不求慕。欲得佛道不興斯行。凡夫法異佛道異乎。亦不念言。凡夫之法瑕穢卑賤。佛之道法為微妙乎。不作斯行凡夫之法則為斯漏。佛之道法無穿漏乎。又復念言。凡夫之法及與佛法。二者俱法虛無寂寞但假號耳。思想致穢。凡夫之法亦無成就。諸佛之法亦無具足。凡夫之法而無有實亦無自然。諸佛之法悉無有實亦無自然。若欲理者凡夫之法。而無所知亦不無知不生無生。

월씨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깊은 법요를 받들어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에 보살은 범부의 법을 파괴하고서 두루 부처님 도의 이치를 성취하는 일이 일찍이 없다또한 범부의 법을 훼방하지도 않고부처님 법이 자란다고 보지도 않으며범부의 법을 멀리 여의지도 않고부처님 도를 얻었으면 하고 구하거나 사모하지도 않는다. ‘범부의 법이 다르고 부처님의 도가 다르다는 이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또한 범부의 법은 더럽고 비천하며 부처님의 도와 법은 미묘하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범부의 법은 바로 번뇌요 부처님의 도와 법은 번뇌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범부의 법이나 부처님의 법 두 가지 모두 다 허무하고 적막한데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붙였을 뿐이요생각은 더러움만 이루는 것이다범부의 법도 성취할 것이 없으며모든 부처님의 법도 완전히 갖출 것이 없다범부의 법이라지만 실체가 없고 자연도 없으며모든 부처님의 법도 모두 실체가 없고 자연도 없다만일 다스리려고 하면 범부의 법은 아는 바가 없으며모르는 것도 없으며나지도 않고 나는 것도 없는 것이다.

若觀察者推其本末。若以空慧無相之慧無願之慧。智慧明省是為佛法。不可別知佛法所處。觀此本末彼悉則空。空不見空亦無所知亦無所觀。悉為本淨無明故起。是以天子。法者無法諸法自然住立諸法憺怕。其憺怕法則無有二。其無二者則無凡夫。亦無聲聞亦無緣覺平等佛道。亦無所教深妙之行為菩薩行。菩薩深修分別正教。無有一法非佛法也。所以者何。其言法者習俗為法。無習俗言有所言者則無所得。其無所得則無所興。以無所興則無形教。一切諸法悉無形像。假使諸法無有限數不離佛法。是故天子。當作斯觀。一切諸法悉為佛法無有想行。

만일 자세히 살피려고 하면 처음과 나중을 추구하는 그것이다또 공혜(空慧)무상혜(無相慧)무원혜(無願慧)로써 지혜를 밝혀 살피는 이것이 부처님 법이지만 따로 부처님 법이 있는 곳을 분별하여 알 수는 없으니이 본말을 자세히 살피면 모두 곧 공()이다공은 공을 보지 못하며 아는 바도 없고 보는 바도 없다모조리 본래 청정하지만 무명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여법이란 법이 없고 모든 법은 자연히 머물고 세워진 것이며모든 법은 담박한 것이다그 담박한 법이면 곧 둘이 없으며그 둘이 없으면 범부가 없고 성문도 없으며연각이며 평등한 부처님의 도도 없으며깊고 미묘한 행이 보살의 행이라고 가르칠 것도 없다보살이 깊이 닦고 분별하는 바른 가르침에는 부처님의 법이 아닌 것이 한 법도 없다왜냐하면 그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습속(習俗)의 법이다습속의 말이 없으면 말이 있어도 얻을 것이 없고그 얻을 것이 없으면 일어나는 것이 없고일어나는 것이 없으면 곧 형상이나 가르칠 것이 없으니일체의 법은 모두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가령 모든 법이 그 수가 한이 없더라도 불법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천자여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불법이며생각과 행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其念想行尋即興廢二事之識。是等之類以識為行佛法無漏。亦復於彼而不想求。於彼生起聲聞之行。其解了者法界無塵亦無寂然。假使於法而不受法則無有法。其塵勞法及寂然法。豈可獲到塵勞寂然乎。欲作斯求終不可得。如是天子。假使菩薩曉了如是則為名曰深妙之行。其於諸法及與佛法無所見者。以無所見則為離見。其所見者為無所見。假使菩薩如是觀者。魔及官屬不能得便。莫能勝也

그 행을 생각하면 곧 일어나고 사라지는 두 가지 식()이다이와 같은 부류는 식으로 무루(無漏)인 불법을 행하고또한 거기에서 구하기를 생각하지 않고거기에서 성문의 행을 일으키는 것이다그것을 환히 아는 자에게 법계는 티끌도 없고 고요함도 없다가령 법에서 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이란 없는 것이니그 티끌의 법과 고요한 법인들 어찌 티끌과

고요함을 이룰 수 있겠는가이렇게 구하려 하나 끝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아서 천자여가령 보살이 이와 같은 줄 환히 깨달으면 곧 깊고 미묘한 행이라 한다그는 모든 법과 불법에 보는 것이 없는 자이다소견이 없기 때문에 곧 소견을 떠나게 되고그 소견이란 것도 소견이 없는 것이 된다가령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악마와 그 권속들이 틈을 엿볼 수 없을 것이며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佛昇忉利天為母說法經卷上/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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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붓다에게는 스승이 없습니다.

그가 붓다이고, 그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붓다에 대해 더 자세히 아시고 싶으면 아래 글을 눌러보세요

 

<나는 이렇게 들었다 1 보문경 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 2 보문경 중>

<나는 이렇게 들었다 3 보문경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