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이우현 의원이 구속되었다는 자막이 뜬다.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그의 인생이 이렇게 결론나는 데에는 내게도 한 가닥 책임이 있다.
(재작년 김모 전시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었을 때는, 그를 시장으로 당선시키는데 한 점 노력을 보탠 사람으로서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하며 털끝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충분히 경고했지만 그가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죽는 길로 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1989년 용인에 이사와 살던 동네가 속한 원삼면 사람이다. 나는 두창리, 그는 학일리에 살았다. 마침 나보다 두 살밖에 많지 않아 이런저런 자리에서 자주 만나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무식했다.' 내 딸에게 말할 때처럼 쉬운 말로 번역해 설명해주지 않으면 안될만큼 그는 공부가 짧았다. 그런데도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묻고 배우고 토론하기를 즐겼다. 학령기에 축구선수랍시고 공만 차다가, 키가 안커 선수생활을 그만 둔 뒤로 그는 공부도 놓치고 운동도 놓쳤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중학교 중퇴 실력을 갖고 이 모질고 사나운 세상에서 살아남느라 배울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그였지만, 그는 내게 자주 묻고 나는 성의껏 답을 해주곤 했다. 그는 두 살 어린 나를 항상 '이 선생님'으로 호칭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3선 시의원을 지내고, 두 번에 걸쳐 의장을 했다. 그뒤 용인시장에 출마해 낙선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낙선했다. 그때 당적을 옮겼다.
그러던 중 마침 우OO라는 민주당 의원과 내가 정의를 놓고 지역에서 한 판 붙었다. 나는 우OO를 낙선시키는 카드로 이우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하여 이우현은 국회의원이 되고 우OO는 감옥으로 갔다.
이우현이 당선된 다음 날, 당선사례 다니는 이우현을 만나 비록 한나라당 소속이라도 용인 시민 위해 일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만은 그가 구속된 오늘까지 지켜졌다. 용인시 민원에 관한 한, 용인시 예산에 관한 한 그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한 푼이라도 더 가져오려 애썼다.
이처럼 이우현은 용인을 위해 굉장히 열심히 활동했다. 지금도 이우현 하면 부지런한 사람으로, 민원 잘 해결하는 사람으로 지역에 알려져 있다. 그 이면의 어두운 얘기는, 오늘은 하지 않겠다.
올해 1월 1일, 동국대 이사장이신 자광 스님께 세배 가서 "이우현 의원이 며칠 안으로 구속될 것같습니다. 제가 만나봐야 서로 한숨 쉴 일밖에 없으니 덕 높으신 스님께서 위로 말씀 한번 해주십시오." 여쭈니 즉석에서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거셨다. 그때는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평소 스님을 잘 따랐으니 아마도 응답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스님 모시고 면회는 다녀올 것이다.
쓰다 보니 이우현을 위한 변명 글이 되는데. 기왕 그렇다면 좀 더 적자.
이우현 의원은 자수성가형 입지전적 인물이다. 공식 학력은 중학교 중퇴라고 소문이 났지만, 만학으로 대학원까지 마쳤다. 내 바이오코드 강의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당초 축구선수였다. 그 시절, 축구선수는 공부에 관계없이 이 학교 저 학교 떠돌았다. 고등학교 때 적도 없이 선수생활하다 키가 안자라 선수를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해버렸다. 그러니 공식 학력이 없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야 방송통신과정 등을 통해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용인대 학사 석사를 마쳤다. 내가 졸업장 다 확인한 사실이다.
이우현은 정치하면서 돈을 쓴 사람이지 번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용인의 아무개, 아무개는 정치해서 돈 벌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우현 의원은 내가 알기로 약 40억원의 재산을 정치하는 동안 탕진하고 큰 빚까지 안았다. 어디에 어떻게 쓴 건지, 불법으로 쓰였는지 합법으로 쓰였는지, 사업하다 실패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가 동료의원이나 고향 친구들에게 넉넉하게 대한 것만은 사실이다. 나도 이우현 의원과 같은 원삼면으로 이사와 용인생활을 시작한 덕분에 그 집 과수원에서 딴 배를 오래도록 얻어먹었다. 아무리 이웃에 살아도 해마다 배를 얻어먹기는 어려운 법인데 이우현은 가을철만 되면 잊지 않고 꼭 자기 집 배를 맛보라고 보냈다.
이우현은 사실 자력으로 국회의원 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공천 때문에 서OO 의원을 따라다니지 않을 수 없었고, 당선된 다음에도 서 의원 아들을 보좌관으로 쓰는 등 철저히 그쪽 인맥을 붙잡고 국회를 드나들었다.
그러다보니 그가 시키는 심부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이번에 드러난 여러 범죄 혐의의 대부분이 아마도 그분의 심부름을 대신하다 들킨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그는 아직도 빚이 많고, 정치하면서 돈을 벌지 못했다.
2016년 12월, 장례식장에서 이 의원을 만났을 때 "이젠 서 의원 따라다니지 말고 친박 행세 그만두라. 문재인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정권교체는 뻔한데, 그러면 큰일난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할 수 없다. 내가 국회의원 된 게 다 그분 덕인데 어떻게 의리를 저버리겠는가. 도의상 그럴 수 없다. 난 그렇게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며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체념 섞인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보았고, 오늘의 이 사태도 그의 성격상 불가항력이라고 본다.
아마도 이우현의 정치 인생은 오늘로써 끝이 날 것이다. 그가 돌아오면 이웃 형으로서 다시 맞아주겠다. 그러면서 함께 공부하자, 못한 공부 지금부터라도 나랑 하자, 그렇게 권하겠다.
용인 시민께 미안하고, 국민께 미안하다. 이우현이 시민께 진 빚, 어떡하든 갚겠다.
- 이우현의 죄는 미워도 그의 삶을 미워하지는 못하겠다.
'파란태양 > *파란태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합국민의당이 나아가야 할 길 (0) | 2018.01.06 |
---|---|
미얀마 종정 쿠마라 큰스님께서 내 딸을 위해 기도해주시다 (0) | 2018.01.04 |
[스크랩] 암, 아나파나로 치료한다 (0) | 2018.01.03 |
[스크랩] 올해에도 견디세요 믿으세요 이기세요 ! (0) | 2018.01.02 |
조선일보, 그래서 너희들이 안되는 거야 (0) | 2018.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