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재운 작품/이재운 프로필

내게 묻는다 "게으르지 않았는가?"

나태지옥 앞에서 내게 묻는다 

"게으르지 않았는가?"


* 프라이버시 관련 항목은 따로 친구보기 버전으로만 둔다.


<신과 함께>를 보았다.

다른 건 그만두고 나태지옥 앞에서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죄를 두고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소름이 끼칠만큼 두려웠다.

스토리텔링(이야기를 엮어나가는)이 아주 좋아서, 나는 이제 소설은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첫 장편소설은 스물두 살 때 나왔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신과 함께>를 쓴 젊은 작가도 있는 것이니, 내 나이 이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의 인생을 지탱해온 소설가란 무거운 짐을 이쯤에서 내려놓자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혹시 게을렀는지 가만가만 내 해마 속 연대기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 내가 태어나던 날 네째숙부가 쌀을 구하기 위해 남의 집에 일하러 갔다. 닷샌가 일해서 쌀 반 말 얻어다가 어머니 산후조리용으로 드시게 했다고 한다. 그만큼 나는 태아로 있는 동안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후 수유기간에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바이오코드를 발명하여 나 스스로 브레인워킹을 하기 전까지는 기억력 장애와 싸워야만 했다. 그 좋아하는 수학, 물리학, 화학을 암기력 부족으로 공부하지 못해 평생 한이 되었다.


- 세 살 때, 네째숙부가 방에서 나를 등에 태우고 기어다니다가 하필 화로에 떨어뜨렸다. 이때 단전에 알불이 붙었는데 어른들은 그걸 모르고 "울지 말, 울지 마." 어르는데,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내 단전이 불 붙은 숯에 타고 있었다 한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경기가 들려 손을 벌벌 떠는 수전증을 얻었다. 지금도 마그네슘을 먹는다. 안먹으면 안면근육이 떨리고 수전증이 눈에 띈다. 단전에 쑥뜸을 뜨는 것도 어려운데 주먹만한 뜸을 뜨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으리라.


- 세 살 때, 세째숙부가 장가들어 숙모가 새색시로 들어왔는데, 나는 집안에 어른이 없을 때 이 어린 숙모에게 다가가 밥 달라고 하여 먹고, 또 밥 달라고 하여 먹어 배가 늘 불렀다고 한다. 쌀이 부족한 시절이라 점심 저녁을 잘 먹지 못했다는데, 갓 시집온 숙모(스무살쯤이었을 테니)는 어린 조카가 밥 달라고 떼를 써서 어쩔 수없이 어른들 드릴 밥을 자꾸만 떠먹인 듯하다. 이때 섭취한 탄수화물로 나는 아마 공부를 웬만큼 할 수 있는 기초 지능을 유지한 듯하다. 


- 다섯 살 무렵인 여름 초저녁 무렵, 방에서 창호에 박은 유리조각을 통해 밖을 내다보다가 어머니가 호박 한 개를 따서 마당에 들어서는 걸 보고 "호박푸리미는 밥이 아니야!"하고 소리쳐 그 말이 어머니 가슴에 평생 대못으로 박혔다고 한다. 당시에는 저녁거리가 없어 온가족이 굶었는데, 그나마 아이들은 뭐라도 먹여서 재워야 한다고, 안먹이면 잠은 안자고 먹을거리 내놓으라고 보채니까, 호박 한 개를 따서(그것도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크기 전에 애호박을 따야만 했단다) 호박죽을 묽게 쒀 큰형, 둘째형, 나, 동생(막내는 63년생이라 아직 안태어나고), 숙부들까지 먹여야 했단다. 어린것이 맨날 호박죽만 먹는 것이 싫어 밥을 달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두고두고 미안하다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난 기억이 안난다. 


- 여섯 살 무렵 적혈구를 보았다. <궁금하면 여기>


- 밤이 되면 늘 우주전쟁을 하느라고 바빴다. 매일매일 전투기를 몰고 나가 누군지도 모르는 적과 싸우다 죽고 이기고 또 죽고 이겼다. 그밖에도 신기술, 신문명을 자주 보았다.


- 여섯 살 무렵, 내가 세상에 온 이유가 기억날듯말듯 기억나지 않아 답답했다.(1990년이 돼서야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 내가 표시해둔 마킹을 인도에서 찾았다. 그것이 바이오코드다)


- 일곱살에서 열살 사이, 나는 구전(球電)을 보았다. <뭘 봤는지 궁금하면 여기>

 

- 중학교 신입생인 열네 살 때 귀신을 자주 보았다. 이때 소리와 색깔을 동시에 보는 공감각을 느꼈다. 즉 소리에서 색을 보고, 색에서 소리를 보았다. <궁금하면 여기> <여기에는 더 자세한 귀신 목격담이 적혀 있다>


- 고등학교 때 장편소설 1편과 단편소설 1편을 썼다. 스토리는 기억나는데 원고는 대학 가면서 버렸다.

1975년부터 약 3년간 당대 기승이라던 명초 스님을 거의 매일 만나 한국철학, 불교철학에 대해 혼자 배웠다. 당시 명초는 갑사에서 쫓겨나 이모집 뒤 공산성 작은 암자에 밀려와 있어서 나는 저녁마다 마실을 다닐 수 있었다. 스님의 울분 섞인 지식의 포효를 어린 내가 다 들었다. 알아듣기도 하고, 흘려듣기도 했지만, 워낙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다 남아 있다. 그때 강증산, 진묵 대사에 대해 배우고, 선의 깊은 세계를 '말'로 경험했다.

덕분에 나는 이때 주역을 위편삼절했다. 주역이 닳고 달아 몇 번이나 풀로 붙이고, 테이프로 감싸면서 반복해서 읽었다. 이때 공부로 오늘날까지 나는, 주역의 깊은 의미는 아마 나만 알 것이란 착각을 하고 산다. 바이오코드에 주역이 많이 녹아들었다.

명초 스님은 내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 스물두 살 때 첫 장편소설 <아드반-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별을 사랑해야 한다>를 쓰고, 광주항쟁으로 시간이 많아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라는 선사들의 오도송과 임종게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내 나름의 철학서를 썼다.


- 스물여덟 살 때 고향집에 갔다가 대문 밖에서 갑자기 공황증세가 나타나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산천이 낯설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낯설었다.


- 서른 살 무렵, 김형윤편집회사에서 남의 글(조중훈 고희 자서전 같은)을 대신 써주는 일을 할 때 교통신호등 중 한 가지를 흔히 '파란불'이라고 할 때 내가 굉장히 많이 팔리는 어린이도서에 처음으로 '초록불'이라고 고쳐썼다. 이후 초록불이 아이들 교과서에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인 중에는 아직도 푸른색과 파란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서른살 무렵, 김형윤편집회사에 근무할 때 매달 10만여 부가 나가는 어린이 책 편집책임을 맡았는데, 한 번은 우리나라 잉어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을 올려놓고 '잉어'란 설명을 달았는데, 나중에 이 사진 속 잉어가 일본 잉어라는 사실이 밝혀져(당시 나는 토종잉어를 구분할 능력이 없어 사진업체에서 주는대로 갖다 실었는데, 초등학교 교사가 이를 지적해주었다. 지금도 그 때 일 기억하면 '의심하지 않은 내 무지'가 부끄럽다) 전직원을 동원하여 사진 설명 부분을 밤새 지운 적이 있다. 인쇄하자마자 지우개로 지우면 먹글씨는 잘 지워진다. 이때부터 사실인가 아닌가 의심하고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 공황 증세가 도져 서른 살이 되던 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 나이가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죄책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가족들 모르게, 특히 생계를 꾸려가는 애엄마에게 미안하고, 그런데도 내 목숨이 붙어 있는 이유가 뭔지 몰라 울었다.

대학교만 졸업하면 그때부터 소설가로서 열심히 작품을 쓰고 출판도 많이 하리라 기대했는데 그때까지 나는 기껏 소설 한 권, 단행본 한 권 밖에 내지 못했다. 이런 몸으로 글쓰는 회사에 들어가 3년째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일을 하고 있던 1990년, 그러니까 서른두 살이 되어 애엄마에게 공황증세가 심각하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내가 다니던 김형윤편집회사 김형윤 사장에게도 설명한 다음 죽든지 살든지 인도에 가서 생각 좀 해보고 오겠다고 선언하여 1900년 1월에 인도로 달아났다. 이때 여행 중이던 인도의 한 도시 서점에서 <The Grand Biological Clock>을 발견, 우리나라 최초로 <생체시계>란 어휘를 만들어 번역출판했다.(생체시계라고 할까, 생명시계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생명'은 너무 포괄적인 어휘라 '생체'로 선택했다.)

이후 나는 오늘까지 27년간 바이오코드를 연구해왔다. 또한 벌어들이는 돈을 거의 다 바이오코드 연구에 썼다. 사람들은 내가 350만부가 나간 <소설 토정비결>을 비롯하여 다른 베스트셀러를 10종 이상 냈다고 하여 엄청난 부자인 줄 알지만 난 돈부자는 전혀 아니고, 150여 권의 소설과 우리말 사전과 단행본, 그리고 수십억을 들여 만들었지만 아무에게도 팔 수가 없는 나만의 보석 <바이오코드>를 갖고 있을 뿐이다. 겨우 저작권료로 먹고 살 뿐 하고싶은 보시조차 제대로 못한다. <더 궁금하면 여기>


- 1991년 11월에 <소설 토정비결> 상권이 나왔는데 12월이든가 밤에 잠을 자는데 텔레비전이 저절로 켜졌다. 그런데 막 켜진 텔레비전에서 느닷없이 <소설 토정비결> CF가 나왔다. 애엄마하고 놀라 이게 무슨 영문이냐고 두리번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설 토정비결>이 밀리언셀러가 된 것은 바이오코드 연구자금으로 쓰라는 하늘의 배려 혹은 내가 숨겨둔 마킹이었던 듯하다. 게다가 서른두 살 어린 작가에게 그 무거운 주제의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이 온 것도, 400년 전 우리 할아버지 관과 토정 이지함의 우정이 만들어낸 오래된 인연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소설 토정비결을 쓰게 된 인연담이 궁금하면 여기>   <내가 어떤 핏줄을 타고났는지 궁금하면 여기> 


- 우리 할아버지 관의 친구이던 토정 이지함 선생은 내게 두 가지를 선물하셨다. <소설 토정비결>을 350만 부 팔리게 하여 벌어들인 인세로 바이오코드를 27년간 연구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또 바이오코드에 쓰인 144타입의 부호를 당신께서 저작하신 <토정비결> 144개 괘로 적어, 400년 뒤의 내게 비밀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토정비결에 나오는 쌍으로 된 주역6효는 사람들이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데 그것을 400년만에 내가 알아내 바이오코드에 정확하게 사용했다.


- 안면인식장애가 있어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갈 때는 애엄마와 함께 갔다.애엄마가 누구라고 알려주면 패스워드가 풀리면서 모든 정보가 다 기억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가 누군지(어디서 본 것은 같은데 실제는 전혀 모르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브레인워킹으로 극복했다. 그런 뒤 두정엽이 약간 솟았다. <궁금하면 여기> 


- 나는 시간과 돈(6000만원의 자료비, 번역비, 연구비 등)을 많이 들인 역작 <천년영웅 칭기즈칸(전8권)>을 발표한 뒤로 자만에 빠졌다. 바이오코드 연구도 이만하면 됐다고 여기고(지금 수준으로 보면 겨우 3급에 불과했건만), 우리말 사전 작업도 3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 만족했다. 연배 비슷한 다른 작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신문연재소설도 이곳저곳에서 쓰고, 베스트셀러도 많이 냈기 때문에 아마도 '이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자만에 빠졌던 듯하다. 아마도 나는 그때 이미 나태지옥문 앞에 섰던 듯하다. 


- 2012년,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71년 4월 하순에 만난 귀신 중 한 명인(그 귀신은, 30대 말 여성으로 긴 생머리를 하고,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갸름한 계란형이었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모르고 나만 안다. 그는,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전생의 업장이 두터워 나름대로 시련을 적당히 안고 있으면서 지구학교 수업 중이다. 도우려 노력하지만, 업장소멸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누가 돕는다고 도울 수 없기 때문에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세상 사람은 다 슬프다는 현실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가 아픈 몸으로 왜 나를 찾아왔는지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전생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을 뿐이다.


- 2017년은 내게 여러 가지로 귀한 시간이었다. 5월 23일, 나는 마침내 바이오코드 1급 브레인 네트워킹에 대해 마침표를 찍었다. 그간 억지로 갖고 있던 1급 <바이오코드 완성> 등은 2급으로 내려보냈다.

5월 23일, 그날은 매우 비참한 날이었다. 0705 딸이 또 내게 도발했다. 아빠의 인생은 대체 뭐냐, 유명 소설가라면서 왜 돈이 없느냐, 아빠가 소설을 그렇게 많이 썼으면 뭘 하느냐, 그 돈 다 어디 갔길래 딸더러 돈 빌려오라고 은행으로 떠미냐, 바이오코드한다고 돈 다 써놓고 이제 와서 뭘 어쩌자는 거냐, 엄마도 없고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아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 대체 아빤 인생을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냐, 아빠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 식구 다 잘 사는데 아빠가 맨날 딴 데 돈 쓰니까 힘들지, 아빠 때문에 나 도로 아파지려고 해, 이렇게 나를 몰아댔다. 딸에게 무릎 꿇고 야단맞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내 머리에서 에포페니아가 일어났다. 번개가 번쩍거리고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제야 내가 보리수나무 아래 길상초(吉祥草 Halfa grass 이 풀의 끝이 卍처럼 돼 있어서 불교상징이 되었다) 바스티카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이랴. 나는 아카샤에 접속, 몇 가지 비밀을 열람했다. <궁금하면 여기> <또 여기> <브레인 네트워킹의 비밀>(자격제한글)


- 이후 미얀마 아라한 삐냐저따 스님께서 용인 보문정사에 오시자, 나는 덕산 스님을 졸라 3번에 걸친 면담을 요청, 마침내 내 경험을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는 문답에 나섰다. <문답기는 여기>


- 보문정사 주지 덕산 스님이 2017년 11월에 나를 삐냐저따 스님의 수행처인 미얀마 마하미얀으로 데려가셨다. 가서 끝장을 보라는 덕산 스님의 배려였다. 

여기서 나는 내 심장에서 두뇌로 흐르는 경동맥의 혈류 소리를 들었다. 큰물이 났을 때 들을 수 있는 그 호호탕탕한 물소리가 내 핏줄에서 들려오다니, 나는 천년 이상 그들 스스로 자라온 밀림에 들어가 아나파나를 하면서 지난 5월 23일의 경험을 벼리고 다듬었다. SCN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 셈이다. 이제 다 보인다. 다만 나는 아직 볼 뿐이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신통력을 갖지는 못하고 이름으로만 태이자가 되었을 뿐이다.<단기출가체험기> 


- 내 작품은 약 150권쯤으로 추정되는데(실제로 몇 권인지 헤아려 보지 않아 모른다) 그중 내가 아끼거나 나 자신이 그만하면 잘 썼다고 인정하는 건 다음과 같다.


- 2019년 3월 5일, 기억력 장애, 알츠하이머, 경도인지장애를 개선할 수 있는 림프 톡신 마시지법을 알아냈다. 아밀로이드 단백질 청소, 콜라겐 유지, 피부 건강, 부종과 염증 해결, 암세포 증식 억제, 손발 냉증, 만성 피로, 눈쳐짐(안검수하), 얼굴의 깊은 주름 등을 해소할 수 있다. 수면장애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아드반-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별을 사랑해야 한다>

 <밀레라빠의 탑>

 <소설 토정비결> 전3권

 <당취 - 소설 토정비결 2부> 전3권 * 경향신문 연재물

 <나는 고백한다-정도전살해사건> * 이 책은 <정도전, 그가 꿈꾸던 나라>란 제목으로도 출간했다.

 <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

 <갑부> 전2권

 <부자(富子)> 전3권

 <청사홍사> * 조선일보 연재물

 <하늘북소리 - 정역> 전3권

 <황금부적>

 <소설 바우덕이> * 청소년판과 만화본이 각각 따로 있다.

 <천년영웅 칭기즈칸> 전8권. * 청소년판 <칭기즈칸> 3권, 어린이판 <칭기즈칸> 1권이 따로 있다.

 <가짜화가 이중섭>

 <소설 금강경> 전2권 * 블로그에 <다이제스트 금강경>이란 초록이 있다.

 <태사룡 삼국지> 전10권

 <상왕 여불위> 전6권 * 스포츠서울 연재소설

 <소설 이순신>

 < 춘추제후전> 전5권 * 양이 많아 미발표

 <전국제왕전> 전5권 * 양이 많아 미발표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 * 이 책은 증보판을 만들어 경기신문에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로 연재했다.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 한겨레신문 연재물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숙어 1000가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 이밖에도 미출간 사전 5권이 더 있다.


 <바이오코드 개론 3급>

 <바이오코드 응용 2급>

 <바이오코드 완성 1급>

 <인연의 법칙>

 <바이오코드 분자식>

 <바이오코드 역사의 법칙>

 <바이오코드 말과 행동의 법칙>

 <바이오코드 관계의 법칙>

 <브레인 리퍼블릭>

 <생체시계>

 <The Secret of Secret>

 <브레인워킹>

 <두뇌사용설명서>

 <브레인리퍼블릭> 전9권

* 나머지는 생략한다. 여기 없는 건 머지 않아 저작권 공개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