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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Hugh Clowers Thompson Jr / 당신이 호모 사피엔스의 주인공이다

요즘 어른들은 청년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어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모진 가난을 이겨낸 불굴의 투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 나와 악을 쓰던 어른들이 어느 날 파혐치한 죄를 낱낱이 토한 채 죽기 때문이다.


정직이 좌우명이라는 이명박 전대통령이 비리로 수사를 받고, 민주와 정의를 외치던 전두환이 동료 군인과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일본군이자 공산주의자이던 박정희가 반공을 무기로 독재자가 되었다. 지식인들이 친일 관료와 일본군 출신을 끌어다 쓴 독재자 이승만에게 굴종하고, 일본군 출신 박정희에게 아양 떨고, 전두환에게 엎드린 사실을 국민들은 낱낱이 보았다.


민주화 운동 이력을 자랑하던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들이 박근혜를 호위하고, 독재 시절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시인 들이 변절하여 '보수  꼴통'이 되거나 색마(色魔)로 추락하고, 독자를 쥐락펴락하던 작가가 이성을 잃고, 날카로운 펜을 휘두르던 기자가 박근혜를 지키려 게거품을 물고, 지성으로 수십 년 빛나던 사람이 갑자기 몰락해버리는 걸 중계방송하듯이 보고 있다.


우리 어른들은 너무나 오랜 동안 종질에 익숙했다. 조선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일제에는 일제, 이승만 때에는 이승만에, 박정희 때는 박정희에, 전두환 때는 전두환에 엎드려 긴 어른들이 오늘날 잘 먹고 잘 산다는 데에 젊은이들이 큰 분노를 안고 있는 것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권을 호소하고,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목숨으로 빛낸 사람들이 있다.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가 없다.


우리의 영웅들 대신 미국인 한 명을 소개한다.


Hugh Clowers Thompson Jr 1943.4.15~2006.1.6


1968년 3월 16일.

여기는 베트남 밀라이 촌, 미군정보대가 베트콩 은신처로 지목한 마을로 섬멸작전이 진쟁 중이다.

하지만 공중지원을 맡은 육군헬기조종사 휴 톰슨은 일대를 비행해도 전혀 공격받지 않는 걸 보고, 미군이 살륙 중인 사람들이 베트콩이 아니라 민간인이란 사실을 확인한다.

"어떻게 된거야? 대체 무슨 일이야?"

작전지역을 돌면서 다시 확인해도 베트콩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헬기를 몰아 베트남 민간인과 미군 중간지대에 착륙시키고, 기수는 부조종사 Andretta에게 맡기고, 기관총 사수 Colburn에게 엄호를 부탁한 다음 미군 지휘관 Calley에게 달려가 학살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Calley는 거부했다. 거듭 비무장민간인을 살해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Calley는 듣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미군들은 베트남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헬기로 돌아와 지휘부에 학살을 중지해달라고 무선통선으로 요구했지만 역시 거부되었다. 

"민간인 학살을 멈추지 않겠다면 나는 미군을 공격하겠다!"

물론 미군을 향해 사격하지는 못했다. 대신 베트남 민간인 부상자들을 헬기로 구조했다.


그의 헬기에 연로가 떨어지면서 그는 기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관개수로, 언덕 아래, 공터마다 베트남 민간인들의 시신이 널브러지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기어서 달아나는 게 보였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날 미군은 베트남 민간인 504명(미군 주장 347명)을 학살했다. 톰슨의 저항 때문에 그나마 희생자가 줄었다.

그는 이 학살 작전을 보고서에 담아 육군에 신고했다. 군사재판이 벌어지고, 그는 미군의 조직적인 협박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네 애완고양이가 죽어 있어도 놀라지 마라"는 등 갖은 협박이 이어졌다.  

밀라이학살 사건의 진상은 이렇게 덮이다가 30년만인 1998년에 인정되어 그에게 군인 메달이 수여되었다.

그 사이 베트남 밀라이마을에는 톰슨기념관이 섰다. 기록에 따르면 희생자 중 3세 이하 아기가 약 50명이고, 4-7세는 69명, 8-12세는 91명이다. 베트남인들은 '미군이 죽이고 미군이 막았다'고 적었다.


<LA Times/잊혀진 영웅이 50년 전 오늘 밀라이 대학살을 막았습니다>


- 톰슨 주니어가 조종하던 헬기와 같은 기종. 톰슨은 이후 베트남군과 교전 중 추락, 부상을 입고 장기간 치료했다.


- 밀라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톰슨 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