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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이런 세상이 있다 -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

내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시절, 새 학기가 되면 학과 사무실에 가서 100장 짜리 원고지 묶음 10여권씩을 기본으로 받았다. 한 학기 동안 그만큼 쓰라는 것이다.
난 지금까지 약 150여 권의 책을 썼다. 소설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우리말 사전, 바이오코드 관련 교재 등이다.

당시에는 신문기자든 작가든 시인이든 엄정한 질서가 있었다. 글 잘 쓰는 순서가 또렷했다. 그래서 후배는 선배를 따르고, 선배는 후배를 이끌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선후배 사이에 그런 질서가 있었다.
우리 작가들도 글 잘 쓰거나 재미있게 쓰는 작가들이 신문연재 소설을 맡고, 서로 그 실력 차이를 알거나 인정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했다. 유명출판사마다 저절로 작가 그룹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1990년 무렵부터 PC통신이 나오면서 문법과 문장과 우리말 어휘 능력 따위가 완전히 무시되는 뒤죽박죽 시대가 닥쳤다. 신문사 데스크조차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새내기 기자들이 문법 어법을 파괴하며 감각적으로 글을 써대기 시작하고, 원로 소설가와 시인들이 아마추어 소설가와 아마추어 시인들의 물량공세에 놀라 뒷전으로 물러났다.
컴퓨터의 등장과 이 컴퓨터로 쉽게 작성한 글을 가볍고 빠르고 쉽게 공개할 수 있는 인터넷 가상 공간이 생기면서 너도나도 <글>을 올려대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2018년, 
평생 붓 한 자루 써보지 못한 사람이 화가 행세를 하고, 원고지 한 묶음 다 써보지 않은 사람이 작가 시인 행세를 한다. 자칭 시인, 자칭 작가, 자칭 기자가 넘쳐난다. SNS 시대가 불러온 진풍경이다.
이들은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중 앞에 나타나 자신을 감추고 상대를 속인다. 이런 사기가 언제까지 먹힐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원고지에 글을 쓰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타자기로 글을 쓰고, 군에 다녀온 뒤로는 컴퓨터로 글을 써오고 있다. 
오늘날에는 초고성능 컴퓨터를 조립하여 10만 여권에 이르는 전자도서관을 항시 검색 대기 상태로 두고, 한자와 우리말 등 고급 전자사전이 항시 창에 떠 있고, 여러 대의 모니터로 전문지식사이트를 비교 검색하면서 글을 쓴다.

나는 검색에 관하여 일찍 눈을 떠 1995년에 구글과 비슷한 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다. 돈이 너무 들어 중간에 매각했지만, 그 덕분에 구글 검색 시스템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용자가 되었다.

* 내 불모 친구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붓 들고 물감 챙겨 부처님 그려 보시하는 봉사를 떠난단다. 이 친구는 눈 감고도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 주요 불보살도를 5분 내에 그린다. 40년간 쓴 붓이 산을 이루고, 그가 쓴 안료가 탱크에 넘칠 것이다.
* 열 권짜리 대하소설이라도 그 작품을 쓴 작가는 내용을 다 외운다. 편집자가 토씨 하나만 건드려도 금세 알아본다.
* 이런 세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