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요즘 기업들이 명상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를 내면서 명상을 쉼이라고 표현했다.
다도 명상, 마사지 업체의 브레인 명상, 명상 앱 등 몇 가지 현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늘 말했듯이 아마추어의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나는 강조한다, 평론가는 죽을 때까지 평론해봐야 자기 작품 하나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평론가의 안목을 갖는 건 대단히 중요하지만 평론가에 머무는 순간 그 평론은 죽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 작가들은 교수가 되는 걸 꺼린다. 교수가 되면 창작의 세계를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명상을 소재로 기사를 쓰려면 그 자신이 체험을 해봐야 하는데, 이 글 어디를 봐도 기자가 명상을 체험했다는 흔적이 없다. 현상만 모아 가십처리했을 뿐이다. 이런 기사는 저급하다.
특히 이 기사의 결정적인 실수는, 기자가 그랬는지 데스크가 그랬는지 몰라도 명상을 '쉼'이라고 표현하고 명상 효과를 '힘'으로 본 제목에 있다.
명상은 쉼도 아니요, 그 목표와 효과가 단지 힘만은 아니다.
나는 아나파나 명상을 보급하는 중이다 내가 체험한 단계를 어디까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듣는 이들이 알지 못하니 설명은 못하겠다. 다만 텔레비전에 나와 아나파나니 비파사나니 열변을 통하는 사람들을 보면, 입만 수행하고 진짜 두뇌는 번뇌와 잡념, 그리고 여전히 탐진치에 묶여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명상은 진검의 세계다. 죽고 사는 위태로운 지경에서 줄을 타는 것과 같다.
백년 명상을 해도 효과 없는 사람은 효과가 없는 것이고, 하루 명상해도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명상은 계량할 수 없고, 예단할 수 없고, 길이 없고, 법칙이 없다.
만일 명상이 효과가 있다면 왜 승려들이 처자식을 숨겨 기르고, 도박판을 기웃거리며, 룸살롱에서 아가씨들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겠는가. 그들은 하안거 동안거 수십 번의 간화선을 했다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은 선찰의 방장이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이 간화선의 현실이다.
간화선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종정이 수좌들의 평범한 질문을 받지 못하여 피하는 게 현실이다
기사 중에 2013년 정신질환 진료 받은 직장인이 37만 명인었는데 2017년에 55만 명으로 늘었다는 통계가 나온다. 그래서 명상을 해야 한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명상은 한번 바람처럼 지나가는 한때의 현상일 뿐이다. 명상은 80년대에도 붐을 이뤘지만 사그라들었다. 90년대에도 잠시 바람이 불다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 감고 있으면 졸리기만 할 뿐 변화가 쉬 오지 않는다.
기자는 자신이 명상을 해보지도 않고 명상 글을 쓰고 있다.
이래서 안되는 것이다.
아나파나 명상은 쉼이 아니다.
늘 얘기하지만 노동 중에서도 대단히 에너지 소모가 많다.
수많은 번뇌와 잡념을 정지시키고 모든 두뇌를 Attention시키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저절로 번뇌와 잡념으로 시끄럽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수십 개의 두뇌가 모여 있으니 늘 재잘거리고 시끄럽다.
또한 잠시 잠깐 소리 질러 조용히 하라고 하면, 그야말로 잠시잠깐은 조용해질 수 있다. 하지만 밀물이 들어오듯 또 수군수군 번뇌와 잡념이 사람들을 일깨운다.
뭐든 원리를 알아야 제대로 간다.
줄 바꾸기만 하면 시가 되는 줄 아는 아마추어 시인은 평생 줄 바꾸기하다 죽는다.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채 시인입네 몰려다니다가 사라진다.
시의 본질인 정서, 감정이 뭔지 그 실체조차 모른 채 죽는다.
명상도 그렇다.
80년 간화선한 사람이 허망하게 죽어간다.
아나파나 명상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전쟁과 같다.
영하 40도의 눈밭에서 작은 텐트 하나 치고 용맹하게 아나파나 사티를 하는 승려들을 보지 못했는가.
이게 쉼인가?
쉬지 못해서 정신질환이 생기나?
아나파나는 과학이다.
원리가 있고, 순서가 있고, 조건이 있다.
뭐든 기본으로 들어가자.
명상이 오늘의 누구를 이끌었는가?
다리 꼬는 인도인 요기?
그래서 그 많던 인도 명상가들은 지금 무얼 하나?
그들이 남긴 철학은 대체 뭔가?
인도 명상으로 13억 인도인이 바뀌었는가?
인도인들은 붓다의 아나파나 사티를 몰아내고 힌두 미신으로 돌아간 사람들이다.
붓다의 아나파나 사티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미얀마와 티벳의 승려들이다.
한국은 이미 중국화된 가짜불교, 위선불교에 도교불교에 빠져 탐진치의 흙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물론 그 탐진치의 바다는 돈으로 질척거린다.
나는 본질을 말한다.
아나파나 사티는 오직 진실을 추구한다.
무슨 도움이 되느냐?
목에 밧줄 걸린 채 살아가는 생명이 얼마나 대단한 도움을 바라나?
금을 바라는가, 은을 바라는가?
밧줄이 목에 걸려 있는데 달리 무엇을 원하는가?
명상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자, 정신질환을 치료하자, 이런 목표를 갖는 순간 어떤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명상을 권장한다고 해서 당장 무슨 효과가 나는 건 아니다. 명상 보내면 서류더미 안봐 좋고, 일 안해 좋고, 미운털 박힌 상사나 부하와 얼굴 안부딪혀서 좋을 뿐이다.
명상은 내면으로부터 요구가 생겨야 효과가 있다.
맹가의 법칙이 있고, 자비심이 가득 차야 하고, 사생관이 또렷해야 한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스트레스 해소 위해, 진급하기 위해 쪼그려 앉아봤자 돌덩이가 되고 말 뿐이다.
어설픈 명상이란, 평생 경제학자로 대학교수로 경제민주화니 뭐니 대기업 향해 막말 퍼부으며 거들먹거리던 사람이 막상 장관되고 대통령 비서되니 실물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과 같다.
입으로 시를 쓰고, 입으로 철학하고, 입으로 명상하는 건 하찮은 사람들이 일이다.
정말 명상을 하고 싶다면, 명상의 깊은 세계를 체험하고 싶다면 본질에 충실하라.
세상 모든 것에는 다 매뉴얼이 있다.
먼저 이룬 사람들의 발자취를 매뉴얼이라고 한다.
이 카테고리에 그런 매뉴얼이 더러 있다.
참고하라.
다만 목표는 갖지 마라. 언제까지라고 기한을 두지도 말라.
죽을 날을 정해 놓고 살지 않는 것처럼 하는 데까지 할 각오를 하라.
정신 차리고 나면 막상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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