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정신 승리에 강하다.
정신 승리란, 실제로는 처참하게 졌지만 저만 혼자 이겼다는 망상을 지어내 저 혼자 낄낄거리는 걸 뜻한다.
정신 승리라고 하면 중국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삼국지가 대표적인 정신승리 교과서다. 지금의 저 궁벽한 중국 남서 지방 사천으로 숨어들어간 유비 일당이 마치 중국을 통일하거나 중원을 다 차지한 것처럼 요란하게 떠든 소설이 삼국지연의다. 조조가 호랑이 잡은 건 한 마디로 적지만, 유비가 빈대 잡은 건 대하처럼 장황하게 적는 수법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는 그 정도 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조선시대 이야기부터 하자면, 사실 대마도는 경상도에 딸린 한 洲였다. 하지만 자급자족이 부족한 섬이라 하여 버렸다. 그러니 왜구들이 창궐할 수밖에 없고, 가끔 토벌하다가 콩이나 쌀을 보내주며 방치했다. 그러다가 오키나와(유구)가 넘어가듯 일본에 넘어가 버렸다. 그게 임란의 전진기지가 될 줄 조선 조정은 까마득히 알지 못했다.
일단 전쟁을 보자.
임진왜란은 조선이 크게 패한 전쟁이다. 일본군이 아무리 많이 죽어도 조선군이나 조선의병, 조선백성만큼 죽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장이 조선이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한 명 죽으면 조선인은 열 명이 죽는다.
명량, 행주산성, 진주성 전투를 곱씹지만 부산진, 동래성, 충주벌, 임진강, 칠천량, 진주성 등 여러 전투에서 우리 조선군은 처참할만큼 깨졌다.
그래놓고 명량해전만 강조한다. 열두 척으로 명량을 막아내긴 했지만 일본 수군 전함이 다 깨진 건 아니다. 회오리치는 물살에 놀라 달아났을 뿐이다. 열두 척 강조하지만 200척이나 되던 전함을 다 깨뜨려 먹은 칠천량 전투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칠천량 해전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는 거북선이 다 깨졌다.
명량해전의 전선 열두 척도 실은 칠천량 전투 중 탈영한 배설 경상수사가 갖고 있던 것들이다. 원균, 이억기, 최호 등이 전사할 때 그마저 전사했으면 열두 척조차 사라질 뻔했다.
그냥 이런 것이다.
병자호란에서도 싸우자고 거품 물던 김상헌은 강화하자는 최명길을 쓰레기 보듯 악을 쓰고 발을 굴렀다. 기어이 능력 부족을 왕이 무릎 꿇고 머리 박고 이마를 찧어가며 절을 올려 항복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김상헌은 이후에도 충신으로 기려진다. 그래서 혓바닥 충신이 자꾸만 늘어난다.
조선 말기 왜세가 마구 들어올 때 일어난 동학난도 그렇다. 부적 붙이고 일본군에 맞서다 몰살당했다.
지금 와서 녹두꽃이니 죽창가니 노래해봐야 일본은 조선을 낼름 삼키고, 이어 이 땅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해서 동아시아를 상대로 세력을 펴나갔다. 동학난이 그 빌미가 된 것이다.
육이오전쟁에서 남침이니 북침이니 떠들고 승전이니 휴전이니 패전이니 싸우지만, 실은 일본이 이 전쟁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면서 패전으로 망한 산업을 죄다 일으켜 선진국으로 일어났다. 동학난으로 일본 살려주듯이, 육이오전쟁으로 일본 또 살려준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국제시장 같은 국뽕(애국심 강조용 영화를 낮게 이르는 말) 영화를 만들더니, 문재인 정권에서는 녹두꽃 드라마와 봉오동 전투 같은 국뽕 영화를 만든다. 박근혜 때 만든 암살은 국뽕이 아니고 그냥 영화지만, 같은 소재라도 문재인 때 만들면 국뽕이 된다. 더구나 <국제시장>에 전두환 등장, 외환위기 같은 스토리가 슬그머니 빠진 것처럼, <녹두꽃>에는 이후 벌어진 갑오개혁이니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아예 말도 안한다. 봉오동 전투도 그것만 보면 통쾌하지만 이어진 청산리 전투 후 일본은 혼춘 사건(월남의 통킹만 사건 같은 조작, 일본군은 마적단을 매수해 일본 관공서를 습격시켰다)을 일으켜 만주에 살던 조선인 3만여 명을 학살해버렸다. 그러니 일본군 몇 놈 죽인 건 아무것도 아니고, 이후 일본은 이를 빌미로 만주를 먹어 치우고, 중국 본토 침략에 본격적으로 나서 독립군이 숨어 있을 땅 한 조각 갖지 못했다.
제발이지 정신승리만 강조하면 안된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왜 성공시키지 못했나 유성룡의 징비록 등을 읽으며 수백 년간 연구하여 마침내 조선을 병탄해버렸다.
그 사이 우리는 왜 졌나, 왜 침략당했나 반성하고 대비하는 놈은 한 놈 없고, 징비록을 금서로 지정해 읽지 못하게 하는 등, 엉뚱하게 노론소론 노닥거리다 허망하게 졌다.
지금도 문재인 정권은 죽창이나 들라고 헛소리하면서 진짜 싸움에서는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다.
역사는 반성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자위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다.
그럴 거면 재미난 거 많다. 굳이 역사 공부할 필요가 없다.
치욕과 오욕의 원인을 알아내고, 그 대비를 하여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보인다.
- 적들 앞에 처참한 시신으로 누워 있는 아돌프 히틀러.
광풍 같은 히틀러의 일생에 떨어진 마침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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