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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해마다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저 교수들

교수신문이란  매체가 있는 모양이다.

해마다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는데, 말뜻을 겸허하게 새길 만하다.

그런데 어쩌나.

'뜻도 모르고...' 카테고리 속성상 칭찬은 그 정도고 이제 씹힐 일만 남았다.

미안하다. 사라져가는, 관심이 떨어져 가는 한문 붙잡고 고군분투하는 당신들을 칭찬하지 못하고 이런 글을 쓰게 돼서. 그러니 인신 비방이 아니라 옳고그름을 논하자는 의미로 가볍게 봐주시길.

 

우리나라는 미국 식민지라고 외치는 세력이 아주 약간, 조금 있는 줄 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 미군정의 도움을 받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들이 있어서 영어를 함부로 쓰면 큰일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지난 해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이경숙 씨가 오렌지를 오뤤지라고 발음했다가 크게 망신당했다.

또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일본말을 쓰라고 하도 강요하여 억지로 쓰다가 해방 이후 일본말이 지긋지긋하다고 하여 우리말에서 일본말을 빼내려고 많은 분들이 노력했다. 일본말이 들어간 글이라도 발견되면 무슨 친일파라도 잡은 양 호들갑떠는 사람들도 있잖은가.

 

그런데 조선시대에 대명사대외교를 하면서 자칭 소중화로 굽실거려온 유림들은 알아서 중국어와 중국글을 일상생활화했다. 기침을 해도 한문으로 하고, 똥을 눠도 한문으로 했다.  조선시대 상소문을 읽어보자면, 나오느니 중국인이고, 중국지명이고, 중국인들의 어록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한 것보다 더 심하고, 미 군정기에 'B사감과 러브레터'니 혹은 소설에 K니 S니 하던 넋나간 작가들보다 더 심하다. 원제국의 지배를 받던 고려 후기에 몽골어를 쓰는 것보다 더 노골적이고 악랄하다. 더구나 한문 즐겨써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일본어 쓰고 영어 좀 쓰면 길길이 날뛰던 사람들도 한문 즐겨 쓰는 사람한테는 갑자기 온순해진다.

 

중국의 조선 지배를 무슨 천명으로 알고 자랑스러워 하던 부유(腐儒;썩은 유림)들 덕분에 오늘날까지 우리말에서 화독(華毒;중국을 사대하던 버릇)이 빠지지 않고 있다. 오래 쓰면 우리말이라고 우길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일본어도 한 백 년 쓰면 우리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내가 쓰는 이 글에도 화독이 들어 신경질나는데, 아무리 빼려 해도 뺄 수없어 미칠 지경인데, 한문 즐겨쓰는 걸 자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자.

2009년 교수신문이란, 잘 알려지지 않은 매체가 선정한 사자성어가 '호질기의'란다.

 

護疾忌醫 -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

 

출전이 뭐냐면,《송서(宋書)》〈주돈이전편(周敦頤傳扁)〉이란다.

주돈이라면 성리학의 비조라는 인물로, 성리학이 중국 송나라, 명나라도 망쳤지만 조선까지 문약하게 만든 학설이다. 탁상공론으로 해가 질 날이 없던 조선 당쟁의 이론적 근거가 바로 성리학이다. 공격하는 측도 성리학으로, 방어하는 측도 성리학으로 했다. 성리학으로 시험도 보고, 성리학으로 가뭄이나 장마도 이기고, 장례니 모든 의식을 성리학으로 하다보니 죽은 왕비 장례를 1년 치르느냐, 3년 치르느냐로 사람 죽이고, 유배보내고 유난을 떨었다. 그러니 그런 중심에 있는 책에, 누가 잘 보지도 않는 책에서 어렵게 어렵게 현미경들여다 보듯이 찾아낸 이 네 자 짜리 한문이란 얼마나 웃긴 것인가.

 

2008년 사자성어는 이러했다.

 

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하다.

 

뜻은 좋다. 그런데 이 글 역시 앞에 나온 유학자 주돈이가 『通書(통서)』에 쓴 것이다. 통서 읽어본 이가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유식 자랑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것일까. 또, 2008년 저 어려운 경제상황, 어지러운 정치상황하고 <광풍제월>이 어울리기나 한다고 보는 분은 없으시겠지.

 

여기 2009년 후보 사자성어 면면을 보자.

 

土崩瓦解(토붕와해)

欲速不達(욕속부달)

一葉障目(일엽장목)

雪上加霜(설상가상)

 

굳이 사자성어가 아니라 한문일 뿐이다. 넉 자라고 다 사자성어가 아니다. 어떻게든 중국 책에서 넉 자짜리 글을 집어내 유식한 척 하느라고 애 많이 쓴다. 성어라는 것은 숙어나 관용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저만 용케 어디서 찾아내고, 남들은 거의 쓰지 않는 게 어째서 성어인가. 주돈이전편이니 통서니 하는 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집에 그런 책이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집에 이 책이 있다만, 아마 고전전공 교수들 중에서도 드물 것으로 믿는다. 그래도 내가 미워보인다면 난 사고전서를 가끔 펼쳐보는 사람이라면 좀 용서가 될런지.

 

한문을 즐겨쓰는 사람들이라고 조선시대 성리학을 떠받들던 유림의 대를 잇자는 것은 아닐 텐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알지도 못하는 한문을 골라 내보이는 걸 보면 사대주의가 어지간히 뿌리깊은지 알만하다. 교양서라고 볼 수 있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만 해도 거기 얼마든지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말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한 말들이다.

굳이 한문으로 표기할 이유가 없다. 한자어라면 이미 우리말처럼 되어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말이 더 발달하기 전에는 도리가 없다지만, 한문은 다르다. 그러니 한문 안다고 자랑하지 말고 고전연구의 무기로 삼아야 한다. 아직 번역하지 못한 한문전적이 산같은데 이런 놀이를 즐겨서는 안된다. 한문연구가나 한문관련 학자들은 영문학자나 불문학자처럼 고문전공자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지금이야 어쩔 수없어 우리가 한자어를 쓰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바르고 고운 우리말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백년 안가 그런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때 가서 지금 쓰는 이 글도 '독립선언문'처럼 낯설어질 텐데 어쩌면 그네들의 글은 아예 외국글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좀 세상을 풍자해보자고 한 사자성어가지고 비약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가 얼마나 깊이 한문 중독에 빠져 있는지 자각하는 계기로 삼자는 소박한 뜻만은 저버리지 말아주기 바란다. 미안해요, 그러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한문 연구하느라고 바쁠 텐데, 기운도 안날 텐데 이렇게 잔소리해서. 하지만 이해하시라. 달리는 말에 채찍을 놓지 자는 놈이나, 다른 데로 날뛰는 놈한테야 뭐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