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논문은 서론이 아무리 거창해도 결론이 더 중요하다

- 논문은 서론이 아무리 거창해도 막상 결론이 중요하고, 소설은 스토리가 숨막히듯 달려가도 마무리인 결(結)이 핵심이더라. 인생 역시 마지막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생로병사 4가지 삶의 큰 주제에서 생로병은 비판 혹은 칭찬의 대상이 아닌 그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생로병사 중 맨 나중에 오는 사(死)는 너무너무너무 중요하다. 죽음 하나 때문에 수천 년간 역사에 기려지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이 하나 때문에 오욕을 씻지 못하는 인물이 수두룩수두룩하다.

백선엽...
그는 우리 현대사의 암덩어리인 서북청년이다.
독립군 때려잡는 일본의 사냥개인 간도특설대였다. 일본군 장교였다는 말이다.
분단이 되자마자 월남, 당시 일본군 출신들이 대개 그러했듯 육군에 지원하였다. 개신교 믿고, 영어 배우고, 반공 정신을 갈고닦았다. 그래야 승진하고 출세하니까.
거의 모든 서북출신들이 그러했듯, 거의 모든 일본군 출신 육군이 그러했듯 그는 서북청년단에 뿌리를 둔 반공극우친일 개신교인이었다.
이 개신교인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과 이들이 중심이된 토벌대에 의해 제주학살이 일어나고, 여수순천 학살이 일어나고, 기타 다른 지방에서 무수히 일어난 '조작된 빨갱이 토벌작전'의 책임에서 그는 전혀 자유롭지 않은 인물이다.

이쯤에서 그의 인생이 끝났다면 그는 부관참시당할 수준의 아주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육이오전쟁을 맞아 자신의 실력과 노력을 다했다. 김일성의 적화통일 전략을 앞장서서 막아냈다.
전쟁 이후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던 시절, 미군들의 존경을 받으며 한미동맹의 선두에 섰다.

육이오전쟁, 개발시대에 그는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했다. 하필 처형 직전의 박정희 소령을 살려준 인연으로(같은 일본군 출신으로서 동지애를 느꼈을지는 모르나) 5.16쿠데타 이후 분에 넘치는 영화를 누렸다.
그는 앞에 과가 있고 뒤에 공이 있다.
위선의 시대에, 잡놈의 시대에, 광란의 시대에 이만하면 그럭저럭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별히 기릴 바는 아니나 1920년, 나라 없는 식민지에서 일본국적의 백성으로 태어나 제 한 몸 살고자 몸부림친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죄를 묻기 어렵다. 나라를 잃은 우리 국민 모두의 원죄가 있으니 딱히 그 한 사람에게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 양반은 불과 3% 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양반 아닌 사람이 없고,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거나 후원한 이는 3%도 채 안되었으나 지금은 다 독립운동한 것처럼 떠든다. 가소로운 것들)

백선엽은, 내가 언제고 찾아가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현대사가 뒤틀린 과정에 그가 주요 인물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내게는 백선엽 같은 인물이 한 명 더 있는데, 김종필이다. 김종필에게도 묻고 싶은 말이 있어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내가 그만두었다. 인터뷰한다고 진실이 나오는 건 아니다. 사람의 말은 진실보다는 거짓과 변명과 궤변이 90%거든.

나는 주요 역사인물 소설을 쓰며 30년을 살았다. 요즘에는 해방 이후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고, 내 부모와 숙부들이 휘말린 <내 시대>에 대해 쓰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위선이 나팔부는 시대, 정의가 목졸린 시대, 인간의 광기가 창궐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는 내놓고 싶지 않다.
메뚜기떼가 멀리 날아가거든, 역병이 가라앉거든, 태풍이 물러가더든 그때 생각해 보겠다.

 


* 한 인간의 이름이 2600년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거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전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뒤 자신은 가사 한 벌, 발우 한 개의 거지 수행자로 물러난 시바리 존자. 그의 고향 네팔이 아닌 한국 용인의 황금탑 앞마당에 서 있다. 함박눈이 내리는 밤에도 보시와 자비를 상징하는 그의 이름은 이렇게 빛난다.
* 더럽게 죽은 이름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오명을 씻을 길이 없다. 잘 살다 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