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의 힘/가던 길 멈추고 2011

어머니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다

막내가 어머니 치매 초기 증상을 발견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네째에게 물으니 더러 느끼던 바라고 말한다.

버럭 소리 질러 내일이라도 당장 보건소나 신경정신과로 모셔 치매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으라고 했다.

내일 아침 어머니 일어나시는대로 직접 가실 수 있는지 여쭤봐야겠다.

치매 증상을 방치하면 뇌세포가 계속 죽어간다.

그런 다음에는 도리가 없다. 미리 치료해야 한다.

요즘 치매 약이 좋은 게 많으니 조기 발견만 하면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어머니는 낮에는 별 어려움이 없고 비몽사몽간에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던 모양이다.

82세이니 주의깊게 관찰해야 할 시기다.

 

어머니는 시골에 홀로 사시기 때문에 아마도 영양부족이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하다.

은행알을 구워드시라고 했는데 귀찮아 안드시는 것같다.

징코민이라도 처방받아 상복하도록 말씀드려야겠다.

비타민 비 복합제도 드시라고 사드렸는데 잡숫는 약이 많은지 잘 챙기지 못하시는 것같다.

영양은 형제 중 누구든 모셔야 해결될 문제다. 영양부족은 약으로 해결이 안된다.

 

- 올 가을 마늘 심기 전에 마늘 전용 약을 뿌리던 어머니.

이 날 심은 마늘 중 봄에 심는 게 섞이는 바람에 이놈들이 웃자라 결국 새로 심어야 했다.

총기 좋은 어머니가 그만 실수를 하셨다. 저 뒤 서 있는 건 허수아비가 아니고 우리집 네째다.

-----------------------------------

네째가 어머니를 모시고 보건소에 가 진단을 의뢰했다.

그림 그리기, 덧셈 뺄셈 같은 걸 했는데 별 이상이 안보여 진단은 안나오고 더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단다. 정밀진단은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데 올해 예산이 끝나 내년 3월이나 돼야 가능하단다. 말하자면 자비로 알아서 진단 받으라는 말이다. 할 수 없다.

 

오늘 어머니 생신이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도형을 그려보라고 제시하니 오른손으로도 그려내고, 왼손으로도 그려냈다.

일단 종양이 의심되는 상황은 아닌 듯하다. 다만 주무시다 일어날 무렵 혼란을 겪는 것같다. 큰 증상은 아니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영양부족이다. 일단 월요일에 진단을 받아보고 치매 예방약을 드시기로 하고, 큰형수가 영양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분간 모시기로 했다. 다른 집 같으면 이런 문제로 싸움이 일어나 형제간 의가 상한다는데 우린 이런 문제가 안생긴다.

어머니 복이다. 다만 어머니는 징역 살기 싫다며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그 나이에 혼자 음식을 만들어 드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격도 까다로워 다른 사람과 같이 지내기도 어렵다. 어쨌든 두뇌 기능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기 전에는 보내드릴 수가 없다.

--------------------

12.12 형제들이 대전의 한 신경정신과로 어머니를 모셨는데, 의사는 영양제를 1시간 가량 맞게 한 모양이다. 영양실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내 의심처럼 의사도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다음 주에도 한번 더 영양제를 맞기로 하고, 2주치 치매 예방약을 받아오셨다고 한다. 무슨 약인지 물었는데, 병원 컴퓨터가 고장 나 처방전이 발급되지 않아 모른다고 한다. 이 분야 약은 대개 독성이 없으니 굳이 나서서 물어보지는 않고 2주 후에 처방전을 받으면 그때 알아보련다.

어머니는 14일인 오늘 아침 집 떠난 어린애처럼 집에 가고 싶어 죽겠다고 말씀하신다. 평생 집 떠나 몇 달씩 지내본 적이 없는 분이다. 그래도 겨울 석 달은 큰형집에서 버티시라고 설득했다. 그래놓고 네째에게 전화 걸어 손자 동규 손잡고 하루 두 번씩 큰형집에 들러 재롱을 떨어달라고 부탁했다. 늦게 얻은 귀한 손자 얼굴 보면 엔돌핀이 팍팍 솟는다니 그렇게 해드릴 수밖에 없다.

---------------------

12.13 아침 식사하는데 두 번이나 넘기셨다. 토하는 것이 아니라 넘기지 못해 도로 내놓는 것이다. 병원에 연락하니 MRI 검사를 하자고 하여 두뇌를 스캔했단다. 이상없음으로 나왔다. 12일에 형수가 목욕탕에 모시고 갔는데 이때 무리했는지 걷지를 못해 큰형더러 차 몰고 와 데려가라고 했고, 이 날 MRI 촬영 직후에도 역시 걷지 못하여 큰형이 가서 업어왔다고 한다.

일이 있어 진주에 갔다가 오는 길에 형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셨는데, 전같으면 귀가 밟아 금세 일어나실 분이 거의 까부라진 듯 깊은 잠을 주무셨다. 형 내외하고 큰 걱정을 했다. 형수는 12일부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시는 중인데, 아무래도 시골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 여러 날씩 있다가 와야겠다고 한다. 이웃이 그리워, 그 이웃 못볼까봐 어머니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란다. 이런 식으로 아파서 나왔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 그런 걸 두려워 하시는 것같다는 것이다.

그러기로 했다. 둘째형 내외도 낮에 닭고기며 다른 먹을거리를 갖다놓고 갔단다. 그런 형과 형수에게 또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 형제들이 죄다 놀란 모양이다. 어머니가 다른 건 괜찮은데 공간 감각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같다. 일요일에 천안 막내집에 다 모여 함께 밥을 먹고 둘째 차로 대전에 모셨는데, "둘째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지?" 하더란다. 둘째 형수더러는 "쟨 걸어서 장에 간다니?" 하고 엉뚱한 말씀을 하셨단다. 형수는 장에 가는 게 아니라 집에 돌아가는 건데, 다른 상상과 생각이 겹쳐 올바른 판단을 못하시는 것이다.  비통함이 하늘을 찌른다. 큰형 내외와 함께 한숨을 쉬다 늦게 잠들었다. 밤 늦어 어머니 옆에 누워 있자니 아버지 가신 지 11년이 됐는데 바로 엊그제 일마냥 생생해진다.

 

12.14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형수하고 두런거리신다. 잠결에 듣자니 엉뚱한 대사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쟤가 온 건 알았는데 몸이 너무 까부라져 일어나질 못했다." 하시면서 간밤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하신다. 우리가 어머니를 몹시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아시는 모양이다.

병원에서 준 검사지를 갖다 놓고 내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 큰 형 차 색깔이 뭐지?

- 원래 은색이었는데 차가 낡아 이젠 좀 어둡지.

> 네째 차 색깔은?

- 수박색.

> 100만원이 있는데 3만원을 썼어. 얼마 남았지?

- 7만원?

> 잘 생각해봐. 틀렸어.

- 30만원?

> 10만원 있는데 7만원 썼어. 얼마 남았지?

- 3만원

> (텔레비전, 거울 가리키며) 이름이 뭐지?

- 텔레비전. 거울.

> 시골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무슨 나무?

- 벚꽃?

> 그건 안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는 거지. 바깥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는 나무?

- 아, 향나무.

> 또?

- 감나무.

> 옷은 왜 빨아입지?

- 냄새 나니까?

> 더럽고.

- 때타고.

그밖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는데 셈 말고는 대체로 정확하게 답하셨다.

5각형 도형을 겹쳐놓은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게 있는데 어머니는 이 문제는 틀리셨다.

어머니 연세에, 저학력인 분들이 따라 그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가 있는 동안은, 적어도 오전 열시까지 어머니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약봉투에 적힌 병원 전화번호를 누르니 의사가 연결되었다.

처방약 이름은 콜리니틴정이라고 말해주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자료는 안보이고, 다만 콜린 부족한 걸 보충한다는 의사 설명에 따라 찾아보니 이렇다. 메디컬투데이 기사다.

 

- 식사중 콜린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이 기억력 검사 결과가 더 좋고 치매와 연관된 뇌 변화가 덜 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보스톤대학 연구팀이 '미임상영양학저널'에 밝힌 36-83세 연령의 총 1400명 가량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바닷물고기, 계란, 간, 닭, 우유, 콩 같은 식품속에 든 영양분인 콜린과 기억력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결과 콜린을 가장 많이 섭취한 상위 25% 남녀들이 가장 적게 섭취한 하위 25% 사람들 보다 기억력 검사 결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같은 차이는 매우 미미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표가 나지 않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만으로 전 세계 2600만명이 앓고 있는 기억력을 저하시키는 질환인 알즈하이머질환 퇴치에 콜린이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일생동안 먹는 것이 뇌가 어떻게 노화하는지에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특정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 보다는 중년기 건강하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재강조했다.

 

한편 콜린 합성에 관여하는 것은 엽산(비타민 B9)이다. 임신 중인 여성들이 섭취하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이다. 엽산이 부족하면 콜립 합성이 떨어지고, 그러면 기억력이 감퇴된다.

 

내 바이오코드 클리닉 자료에 보면 콜린에 대해 이렇게 나온다.

- 콜린(choline)

평생 두뇌 보호제다. '과도한 기억 용량'이 가능하다. 머리 좋은 인자란 바로 이런 것이다. 모유에 풍부하므로 모유를 먹지 못한 아이는 약으로 먹어야 한다. 레시틴 25g을 복용하면 기능이 좋아진다. 레시틴의 20%는 콜린이다. 달걀에 가장 많으므로 자주 섭취하는 게 좋다. 레시틴 과립 1큰술이면 250mg의 콜린을 섭취하는 것과 같다.

어머니에게 처방되는 콜린은 200밀리그램 두 정(아침, 저녁)인 것같다. 그런데 어제 토한 이래 의사는 하루 한 정만 먹으라고 권했단다.

-------------------

2012.07.08

어머니 치매 증세는 거의 사라졌다. 겨울을 피해 대전에 가 있는 동안 증세가 더 나빴지만 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시니 감쪽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약은 꾸준히 드신다.

7월 7일에 둘째형이 앞장서서 어머니 집에 CCTV를 달았다. 모니터는 모두 4개로 거실, 부엌, 마당, 된장독을 각각 살핀다. 어머니 침실과 안방은 어머니 개인공간이라 달지 않았다. 전에 침대에서 떨어진 적이 카메라를 설치할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거실로 기어나와 전화를 거시라고 해놓았다. 밤 10시에서 새벽 5시 사이에 거실에서 뭔가 동작이 감지되면 자식들 휴대폰에 알람이 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침실 화장실이 따로 있으니 이 시각에 어머니가 거실로 나오시면 비상상황이 되는 것이니 그렇다. CCTV 회사에서 그런 기능도 삽입해주었으면 한다. 내 생각에 마음만 있으면 그런 기능은 어렵지 않게 추가할 수 있을 것같다.

 

한편 부엌의 경우 가스렌지에 불이 붙어 있는지 식별가능하도록 했다. 그러고도 어머니가 불을 켜놓은 걸 잊는 수가 종종 있다 하여 가스렌지 위에 자동소화기를 설치했다. 이제 5형제와 손자손녀들이 세계 어디서든 어머니의 실내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 어머니를 돕기 위해 오시는 분(독거노인 청소도우미. 군에서 파견해줌)이 오셨을 때 CCTV를 끄라는 안내문까지 써붙여 놓았다.

- 아래 사진은 텔레비전 리모컨인데, 혹시 텔레비전이 잘 안나올 때 리모컨 작동법을 전화로 설명하기 위해 찍어왔다. 거실에서 어머니가 동작하시는 건 CCTV로 볼 수 있으니 전화로 리모컨 어디 단추를 누르시라, 이렇게 설명하면 가능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