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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스크랩]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글 / 허신행 박사(전 농림수산부장관)

 

-  상대성 원리와 지구촌

 

책상 위에서 친숙하게 대할 수 있는 연필이 큰가 작은가라고 누가 물으면 대답은 망설여진다. 그러나 다른 것과 비교하여 물으면 답변은 매우 쉽다. 연필과 야구방망이를 함께 들고 어느 것이 크냐고 물으면 그거야 연필이 작다고 주저없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연필과 이쑤시개를 나란히 들고 물으면 누구를 놀리느냐고 아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 간단한 비교물음에서 우리는 미처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한 중대한 원리를 체득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크고 작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독자적으로 크고 작음이 성립될 수 없다. 연필 하나만을 들고 크냐 작냐고 물었을 때 대답이 망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1905년에 특수 상대성이론을 그리고 1916년에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시간과 공간까지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관찰자에게 상대적으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관찰자가 보고 느낀 대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과학의 세계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가 상대적이요, 보는 사람들의 방식대로 나타난다.

 

더욱 놀라운 것은 2,538년 전 석가모니는 아인슈타인보다 더 심오하게 상대성 원리를 밝혀놓았다는 사실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요,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며,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나타난다. 네 마음이 그렇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산과 물, 사람과 동식물, 크고 작음, 선과 악, 좋고 나쁨 등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이지 절대적인 실체성을 가진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고 석가모니는 설파하였다.

 

그렇다면 지구도 마찬가지이다. 지구가 크냐 작으냐는 인간의 마음 속에 그려진 대로이다. 350여 년 전,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도 지구는 끝없는 지평선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탄탄히 자리잡고 있었다. 마룻바닥처럼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구가 네모꼴이냐 원이냐 하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인간의 의식세계가 미치는 지구의 표면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걸어서 알아볼 수 있는 영역은 마루처럼 평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당시의 인간들에게는 지구가 그토록 커 보였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당시의 관찰자들에게 비쳐진 지구는 끝없는 지평선이었다.

 

그런 지구가 기계와 기술, 과학, 지식 등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작아지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건너가 국왕과 계약을 맺고 네 차례의 모험적인 항해를 거듭할 때(1492~1504)만 해도 지구에 대한 생각은 부분적으로나마 정복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적인 1회의 항해마저 2년이란 긴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미국의 비행가인 라이트 형제가 글라이더를 만들어 시험비행 하던 1900년과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던 1903년쯤의 지구는 많이 작아졌다. 그래도 지구는 여전히 여객선으로 수개월 걸리는 거대한 행성이었다. 1920년대 후반 여객 전용기가 개발되기 시작하였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트 여객기로서의 대형화가 실현되고 지구가 하루 거리로 좁아졌다. 지금은 지구가 10시간대로 좁혀져서 웬만한 사람이면 세계여행을 어렵지 않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수년 이내 10~15마하로 하늘을 나는 극초음속 여객기가 개발되면 지구는 2~3시간대의 촌락으로 변하게 된다. 지구의 자전속도와 비슷해져서 아침 7시에 김포를 출발하면 같은 시간대에 유럽이나 미국에 내리고, 오후에 돌아오는 1일 출퇴근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때의 지구는 작은 섬처럼 답답함을 느낄 정도의 비좁은 촌락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1950년대부터 지구 밖의 다른 새 땅을 찾아 우주로 도전한 것이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어쩌면 너무나도 미세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로부터 4천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은하계에는 태양 크기의 별만 해도 20억 개가 넘는다고 하니 지구를 어디에 내놓을 수 있겠는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주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지구는 참으로 작은 하나의 안방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지구가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작아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가가 울타리를 높게 쳐놓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에서 별개의 조직과 운영을 따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만일 어떤 형태로든지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개마고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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