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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스크랩] 세계정부의 수도는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

세계정부의 수도는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

- 글 / 허신행 박사(전 농림수산부장관)

 

지구촌 세계 정부의 수립은 불가피하고, 만일 그 일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때에는 시기와 장소의 선택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시기는 여건의 성숙과 사람들의 노력에 따라 앞당겨질 수 있는 것이므로 논외로 해둔다. 우리의 관심은 지구촌 정부의 장소선택 문제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 자리가 어디인가?

 

1980년에 출간된 탄허 스님의 법어집法語集 《부처님이 계신다면》을 읽어보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정역의 원리로 보면 후천의 세계가 열리고 있는데, 지금 중국의 영토인 만주와 요동반도의 일부가 한국 영토로 속하게 될 것이고, 일본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바다로 침몰할 것이라 했다. 한국은 지구의 중심 부분에 있고 간태艮兌가 축으로 되므로 계룡산이 지구의 축으로 변해 서해안 쪽으로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하여 영토가 크게 늘어나리라는 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후천세계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 말을 꼭 믿는다기보다는 흥미있게 기억해두고 싶은 이야기이다. 사실 인간의 의식세계란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우주의 변화와 신비에 대해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상상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대해 함부로 속단하는 것은 좋지 않은 습성으로 여긴다.

탄허 스님은 1983년 6월에 71세의 나이로 속세를 떠났지만 불교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법어집도 많이 남겼다. 속인의 경지를 넘어선 수도승으로서 허황된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탄허 스님의 ‘한국이 후천세계의 새로운 주역이 된다’는 이 말은 매우 관심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손석우 씨의 《터》라는 책을 보면 풍수와 명당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있게 풀어 썼고 유명인사의 사망까지 알아맞혔다. 이 책에 의하면 앞으로 한 세대 정도 지나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고 한국이 세계연합정부를 주도해갈 것이라 했다. 국가연합의 지구촌 정부가 서게 될 터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계룡산 아래의 넓은 곳이지만, 그때가 되면 그곳은 우리 땅이 될 것이라 한다. 지구촌 의회 의사당은 금강산 아래 통천에 서고, 세계 통일의 지도자가 나올 터(음택)는 충남 서산 자미원이라 짚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이야기가 탄허 스님의 역학에 대한 해석내용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데에서 흥미를 가중시킬 뿐이다. 또 하나의 설득력을 갖는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명당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농촌문제를 연구하다보니 우리나라의 기후풍토가 세계에서 분명히 으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국이 명당이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가질 정도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소박한 질문은 과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이 땅에 세계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 것인가이다. 만일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이유와 논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높은 도덕성과 전통 있는 문화 그리고 심오한 동양철학을 내세워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도덕성이야 요즈음 많이 퇴색되고 전통문화도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듯하여 선뜻 와닿는 것 같지 않지만 동양철학만큼은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세계의 으뜸이 아닐 수 없다.

 

유학과 도학, 성리학, 퇴계철학 등도 서양철학을 능가하고 있지만 불교철학은 우주의 용광로처럼 모든 것을 눈 녹이듯 다 녹여버리기 때문에 철학에 관한 한 단연코 다른 나라보다 앞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다행스러운 것은 요즈음 살기가 옛날에 비해 많이 나아지게 되자 동양철학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이 있게 파고 드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1993년 6월 모 일간지를 통해 우리나라 ‘보자기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보자기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조각보는 모습과 색상이 다양한 쓰다 남은 자투리 천들을 모아두었다가 만들어낸 것으로서 무엇이든지 손쉽게 쌀 수 있는 편리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오게 될 후기 산업사회의 문명과 그 문화적 특성은 이 ‘싸기’, 즉 보자기 문화로의 회귀선상 위에서 전개될 것이라고 그는 예측하고 있다. 그의 이런 관찰은 한번 깊이 있게 음미해볼 만하다.

 

자투리 조각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각양각색의 무늬들로 멋있는 보자기를 만들어내는 그 아이디어와 솜씨도 값진 것이지만, 그 조각보로 무엇이든지 싸안아 포용하는 그 넓은 마음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차원에서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보자기 문화는 분명히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두루 싸안을 수 있는 여유와 유연성을 갖고도 남는다. 이런 통찰력으로 우리의 고유한 문화 하나하나를 관찰해보면 세계의 중심적인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전 과기처장관 김진현 씨는 1994년 3월 한국이 전 세계 공동체의 주동자가 됨과 동시에 ‘세계 평화의 발신자’가 될 수 있을 것임을 제창하고 나섬으로써 주목을 끌었다. 그 이유로서 한국의 굴절 많은 경험과 조건, 그리고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까지를 흡수하는 강한 소화력을 들고 있다. 특히,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김진현 씨는 좋은 예로서 스위스를 들고 있다. 15~20년 간격으로 피비린내나는 전쟁터로 큰 아들은 프랑스의 용병으로 보내고 작은 아들은 이탈리아로 보내서 서로 맞싸우는 비극적 경험을 다시는 겪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스위스는 적십자를 창설하여 그 비전과 철학, 정책, 기구, 상징 등을 전 세계에 전파시킴으로써 200여 년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후풍토도 참으로 다양하여 세계 대부분의 기후를 다 겪어볼 수 있다. 뚜렷한 4계절과 3한4온, 여름과 겨울의 극심한 온도차이, 주야간의 큰 온도차, 여름에는 폭우와 장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등 세계의 기후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금강산과 설악산은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고, 백두산은 영산으로 손꼽힐 정도이다. 아프리카나 남미 그리고 중동 사람들은 한여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비슷한 기후를 접할 것이고,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사람들은 추운 한겨울 강원도 깊은 산에 들어가면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기후풍토는 세계인들에게 낯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 지구의 중심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까지 열거한 후천세계, 터, 도덕성, 동양철학, 전통문화, 굴절 많은 경험과 지정학적 위치, 다양한 기후풍토 등의 이유와 논리에 접하면서도 한반도가 지구촌의 중심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런 것들이 충분한 이유가 되는가? 우리나라만 이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가? 지나친 아전인수격 해석은 아닌가? 숱한 의문을 되뇌이면서 충남 서해안 지대를 두 차례 돌아보던 어느날 문득 유럽공동체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이 떠올랐다.

 

12개 유럽 대국들의 연합체인 유럽공동체의 정부격인 본부가 왜 하필이면 가장 작은 나라 벨기에의 브뤼셀에 위치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섬광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렇다, 힘의 균형문제이다. 유럽공동체의 본부가 독일의 베를린이나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 이탈리아의 로마에 위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중 어느 한 지역에 유럽공동체의 중심인 본부가 위치하면 세력이 그곳으로 치우쳐 쏠리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이 사력을 다하여 막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유럽연합의 집행위원장(대통령격)을 선출하는 데에서도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으며, 독일과 프랑스가 벨기에의 국왕을 추대한 것도 이런 힘의 균형유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협의과정에서 소외된 영국의 반발로 무산되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강대국 사람이 선임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한국의 앞날을 밝게 해주는 분명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믿어진다. 후에 룩셈부르크의 자크 상테르 총리가 집행위원장에 선출됐다.

 

미래의 세계정부,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어디에도 자리잡을 수 없다. 힘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세계정부가 워싱턴이나 뉴욕에 있으면 미국의 독무대가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유엔본부 하나만 뉴욕에 있어도 미국의 생색과 고자세는 역력한데 세계정부가 미국에 위치하는 것은 다른 어떤 강대국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런던, 베를린, 파리, 동경, 북경, 모스크바, 뉴델리 어디에도 세계정부가 들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유럽공동체의 브뤼셀과 같은 지역, 작으면서도 중심지이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나라를 포용할 수 있는 그런 곳은 역시 한국이라고 본다. 세계 경제력과 군사력이 집중되고 있는 동북 아시아, 4강의 교량적 역할이면서 남과 북 그리고 동서양을 잇는 중심 반도, 오랜 전통적인 문화와 다양한 종교 및 기후풍토를 가진 아름다운 금수강산, 굴절 많은 경험과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어떤 민족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야말로 세계의 중심, 지구촌의 정부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앞으로 중요한 과제는 각계에서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여 국가의 공동목표로 설정하고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동시에 타당한 논리와 철학을 개발하고 세계인을 향하여 설득할 수 있는 여력을 키우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생각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그 생각이 정당하고 세계와 인류를 위하는 것이면 우리의 뜻대로 이 대한민국이 구원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개마고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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