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99%” “월가를 점령하라” 는 세계적 시위는
자본주의를 접고 ‘기창주의’로 향하라는 민중의 함성이다
- 허신행 박사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99%와 1%의 싸움이다”, “우리는 99%다”, “상위 1% 부유층의 탐욕 때문에 99%의 사람들이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모두 함께 점령하라(Occupy Together)” 며 세계 주요 도시로 불꽃처럼 번져나가는 시위는 자본주의를 빨리 접어라는 일종의 명령이다. 자본주의의 수명은 이제 다 끝났음을 알리는 경종이요 함성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라는 독촉이기도 하다.
물론 시위대들은 금융권과 대기업들의 부패와 탐욕에 대해 항의하면서 이런 현상을 자초하거나 방치해둔 현 정치⦁경제 환경에 반대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은 시위에 나섰다고 항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부자와 금융권⦁기업 등의 탐욕이 빈부격차의 주된 원인이라는 데 공감하여 모였다고들 시위대는 힘주어 말한다. 고학력⦁저임금 청년세대가 배부른 1%에 분노하는 노도와 같은 물결이라 어느 신문은 평했다.
이들의 분노 속에 표출된 아우성은 자못 심각하게 비춰지고 있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일자리 감소’, ‘20%를 넘어선 청년 실업률’, ‘성인들의 취업률은 58.2%로 최저 수준’, ‘복지예산 삭감’, ‘대학 등록금 인상’, ‘고학력 저소득’, ‘정치인들에게 미래를 매수당한 고학력 저소득 세대’, ‘우릴 이 꼴로 만든 골드만삭스와 씨티은행은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잘 살아가지만 정작 우리에겐 구제금융이 없다’, ‘대학 음모론’(미국 대학이 업계와 유착해 등록금⦁교재비⦁과외비 등을 계속 높이며 이른바 ‘학위 장사’를 한다는 내용의 고발성 다큐멘터리가 유행) 등이 피켓을 장식하고 있다.
미국 최고 부자 1%가 미 전체 부(富)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 한다고 야단이다. 시위대와 지성인 사회 그리고 언론에 비친 내용은 분노를 자극하고도 남는다. “월가의 거대한 금융기관들은 우리들의 집을 압류해 빼앗아갔다. 그들은 납세자들의 돈으로 구제를 받은 후 터무니없는 보너스 잔치를 계속해서 벌인다.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8년 10월, 미국 의회는 거대 금융기관의 파산을 막기 위해 뱅크오브아메리카에 450억달러(약 53조원), JP모간체이스에 250억달러, 골드만삭스에 100억달러 등 총 7000억달러(약 835조원)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엄청난 재난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겼던 미국의 국민들은 이듬해 이들 기관의 직원들에게 지급된 막대한 연봉과 보너스에 경악했다. 골드만삭스는 2009년 직원 1명당 59만달러(약 7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했고, JP모건체이스 직원들도 평균 46만달러를 보너스로 챙겼다. 뉴욕주 감사원은 2009년 월가의 보너스 총액이 전년 대비 17% 늘어난 200억달러라고 발표했다. 2009년 골드만삭스가 지급한 총 167억달러의 보너스는 뉴저지⦁뉴욕⦁애리조나⦁일리노이⦁매사추세츠주 등 5개 주의 2009년 재정적자와 맞먹는다. 금융회사 단 하나의 직원 3만여 명이 평균 55만달러의 보너스를 받기 위해 국민 수천만 명이 정부지원 일자리와 사회보장 서비스를 잃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기관들은 규제 강화와 세금 인상을 막기 위해 광범위한 로비활동을 벌이며 막대한 돈을 쓴다. 지난 해 금융 거래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 다수 상정될 조짐을 보이자 금융계는 반년(1~6월) 동안 총 1억2600만달러의 로비 자금을 뿌렸다. 국민의 세금으로 번 돈을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로비로 쓰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해진 하버드대 센델 교수마저 “미국의 은행과 투자회사들이 호황 때만 이익을 챙기고 위기 때 생긴 손실은 구제금융을 통해 납세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시장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치 있는 도구이긴 하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절감했다”고 그는 부연했다. 그리하여 ‘배운 것은 많지만 배가 고픈 젊은이들’이 주로 참여한다고 언론이 밝히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값 걱정, 끼니 걱정 하지 않게 해 달라”는 어느 시위대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암담한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청년실업과 고학력⦁저임금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의 보편적 현상이라는 데서 우리는 거대한 변동의 물결을 감지한다. 어느 진보 학자는 “미국 청년들의 시위사태는 부자들이 공생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고 정치권이 각성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은 “상위 1%의 부자가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만 급급한 사이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고 있다”며 탄식한다.
아닌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제일 먼저 붕괴했던 영국에서는 2011년 8월 6일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첫 폭동이 시작되어 세계가 놀랐다. 두건을 쓰고 얼굴을 가린 10~40대 수십 명씩 몰려다니며 방화와 식량⦁의복 등 생필품을 약탈하는 살벌한 현상이 대낮에 벌어졌다. 영국의 경우 청년 실업률(16~24살)이 20%를 넘어서면서 최악의 불만이 폭발했다고 한다. 재정적자에 복지는 축소되고, 일자리가 없어진 젊은이들은 “잃을 것 없다” 고 생각하여 약탈과 방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런던 폭동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불만이 작용한 폭동이다. 1980년대 이후 대체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던 서구 민주주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 중엔 사회적 하층민으로 살면서 경제적으로 박탈당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불평등과 번영의 뒷면에서 숨죽이고 살았지만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지자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라고 어느 학자는 분석했다.
분노의 발원지인 월가 주코티 공원에서 일어난 미국 젊은이들의 시위에 노조도 가세했다. 뉴욕시 교원노조, 운송노조, 보건의료노조, 통신노조, 공무원노조 뉴욕지부도 잇달아 지지를 선언했다. 중산층의 노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합세해 시위군중은 눈을 뭉치듯이 불어나고 있다. 시위는 블랙베리 스마트폰 등을 타고 확산하여 미국 내의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는 물론 캐나다의 토론토와 런던 및 쾰른을 거쳐 11월 15일 80여개 국, 1500여개 도시로 불꽃처럼 번져나갔다. 이번 “1% 대 99%” 시위는 좀처럼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시위대들의 구호 속엔 벌써 “신자유주의를 점령하라”, “직접민주주의가 도래하고 있다”, “민중의회를 만들자”, “유럽민중들의 의회”, “찬성⦁반대⦁조용히” 등의 의사표현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작동방식까지 등장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의 세계적 확산을 지켜본 필자가 지난 30여년 간 탐구해온 문명사 연구결과와 접목시켜볼 때, 이번 “1% 대 99%” 사상은 단순한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고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발상이자 전 인류가 하나의 가족처럼 통합 진화되고 있음을 웅변해주는 상징적인 슬로건이라 여겨진다. 필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이미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몰락과 ‘기창주의’ ‘한몸사회’의 도래를 예언해두었으며, 직접민주주의의 도래는 물론, 금융시스템은 이윤추구가 아닌 온몸의 영양을 공급해주는 인체의 혈관시스템처럼 개편돼야 한다는 것, 대표자 없는 수평적 지배구조와 기업의 가족적인 경영체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 유엔을 세계정부로 전환하여 군비를 감축하고 그 돈으로 후진국에 투자하여 선⦁후진국이 윈⦁윈 할 수 있어야 세계평화와 함께 나눔과 사랑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역설해두었는데, 이번 시위는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허신행 박사는 ROTC 4기로, 서울대학교 졸업 후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과 농림수산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0년부터 27년간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산업사회 이후의 새로운 문명사회에 대해 연구, 『한몸사회』라는 7권의 전집을 포함, 22권의 저서를 내놓은 학구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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