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전 아버지를 대신해 일본 미쓰비시에 소송을 하려고 준비했었다.
1924년 1월 26일,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 相자 範자께서는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광산에서 일했다. 광산은 내 고향 뒷산, 곧 우리 종산에 있었다. 우리 종중은 광권을 가진 미쓰비시중공업에 광산 일대를 임대해주었는데, 당시 아버지는 이 금광 막장에서 착암기로 바위를 뚫는 일을 했다. 10대 시절을 미쓰비시광산에서 보낸 것이다. 당시 아버지가 받은 급료로 잘 살지도 못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 자랄 때까지 점심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임금 착취, 노동 착취 현장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다가 1945년 봄,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에게 밀리던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위해 조선 청년들을 마구잡이로 징집했다. 아버지 나이 스물두 살, 적령기였다. 아버지는 충청남도 청양군 북하면 장정들과 함께 징집되었다.
- 징집되어 모여 있는 청년들이다. 아직 군복을 지급받지 않은 상태다. 이 가운데 아버지는
맨아랫줄 오른쪽에서 네번째 인물 바로 뒤에 있다.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소집에 응한 듯하다.
일본군이 여러 명 보인다.
- 위 사진 중 아버지 부분.
- 북하면 장정들이 일본 군복을 입고, 머리까지 짧게 자른 뒤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아버지는 아랫줄 앉은이들 중 왼쪽에서 다섯번째 분이시다. 이 장소는 헌재 운곡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추정된다.
- 위 사진을 확대했다. 아랫줄 가운데 앉은 이가 아버지시다. 머리를 짧게 깎고, 일본식으로 감는 형태의 각반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미쓰비시에 소송을 준비하던 1990년대에 대한민국은 일본에 맞서 소송을 걸 수 있을만큼 힘이 강하지 못했다. 더구나 1997년 외환위기 때 일본은 가장 먼저 달러를 빼가 우리가 확실히 죽도록 등을 떠다밀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광산에서 얻은 진폐증으로 고생했다. 당시 증세가 심해 진폐증 전문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보면서 소송을 상상했을 뿐 실행하지는 못한 것이다.
아버지는 진폐증을 얻어 고생하는 반면, 원자탄 두 발을 맞고 침몰했던 일본은 하필 식민지이던 한국에서 육이오전쟁이 일어나주는 바람에 대규모 군수공장을 가동시키면서 벌떡 일어섰다. 실업자들이 공장으로 몰려들고, 이들은 미군을 위해 군복을 짓고, 전투식량을 만들고, 탄약을 만들고, 각종 군수품을 만들어냈다. 패전 후 문을 닫았던 공장들이 일제히 문을 열었다. 흩어졌던 기술자들이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미군들은 일본에서 훈련하거나 휴양하고, 한국인 카투사들도 후지산에서 훈련하는 등 일본은 육이오전쟁의 후방 병참기지가 되었다. 육이오전쟁의 작전회의도 일본에서 열렸다.
이 더러운 인연으로 패전국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교두보로 탈바꿈되고, 미국의 적에서 둘도 없는 혈맹동지로 입장이 바뀌었다. 미국의 신기술과 막대한 부가 고스란히 열도로 흘러들어갔다.
육이오전쟁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은 온 국토가 유린되고 고아와 거지와 상이병사로 들끓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헐값에 전쟁배상 문제를 매듭지었다. 그러잖아도 쿠데타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박정희 군부세력은 허겁지겁 일본이 던져주는 떡을 받아먹었다. 그 돈 3억 달러라도 급하긴 급한 상황이었다.
이런 중에 위안부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북한 지역 피해자에 대한 배상문제는 별도 미제로 남아 있던 중이다.
우리 대법원에서 박정희와 김종필이 성급하게 저지른 전쟁배상금 타결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고, 사인간의 문제는 아직 청구권이 유효하다가 판시했단다.
나는 생각해본다.
우리 아버지는 일정 기간 일제에 징병되어 일본군복을 입고 훈련을 했다. 얼마간이나 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당시 훈련 중 혹은 이송 중 탈출했다. 따라서 다른 분들에 비해 징병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 사진 속의 인물들도 태평양 전선에 실제 투입되었는지, 중간에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 대전 224부대에 징병된 우수용 씨의 경우 자폭훈련을 받았다고 한다.<참고/아버지, 일제 징병시기를 알아내다>
나와 우리 형제는 일본국 또는 미쓰비스를 상대로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량한 엔화 몇 푼으로 아버지의 청년 시절이 복구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2000년 4월 15일에 하늘로 가셨다. 그러니 일제가 아버지 묘원에 무릎을 꿇은들 살아돌아올 리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결코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라가 일제에 망할 때 나라를 지켜야 할 위치에 있던 자들의 무능력과 탐욕에 대해서도 꾸준히 지적할 것이다. 나는 일제보다 대원군 이하응, 고종 이재황, 명성왕후 민자영의 죄가 일제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시 대신들도 마찬가지다. 요직을 맡고 있다 자살한 민영환도 나는 곱게 보지 못한다.
또한 김일성이 감히 남침하도록 허점을 보인 이승만 세력에 대해서도 일점 용서할 생각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잦았다.
그렇다고 호랑이의 야수성을 길들여 호환을 막을 길은 없다.
호환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포수를 동원해 그 살인 호랑이를 잡거나, 울타리를 튼튼하게 짓고, 대문을 잘 단속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고종 이재황 따위는 겨우 수십 명에 불과한 일본 사무라이들이 경복궁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도록 방치했다. 이런 놈이 국왕이란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나라가 망한 것이다. 명성왕후 민자영을 죽인 사무라이들만 문제가 아니라 자기 목숨 하나 지키지도 못하면서 시아버지와 정쟁에 몰두한 그 민자영과, 그런 집안의 갈등을 방치해 나라가 망하도록 만든 고종 이재황이 더 문제인 것이다.
나라가 망하니까 조선 국인들은 주인없는 식민지 백성이 되어 일제에 징용되어, 징병되어, 혹은 위안부가 되어 갖은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양이 늑대에게 물려갔다면 늑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목동이 잘못한 것이다.
일본은 늑대나 다름없는 침략근성의 나라다.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우리에게 늑대같은 존재였고, 이런 행태는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고, 고쳐질 수가 없다.
나는 우리 아버지를 나라 없는 백성으로 만든 위정자들의 죄를 먼저 묻는다.
따라서 아파도, 억울해도 일본을 상대로 배상청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왜구의 후손으로서 어차피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게 천업인 사람들이다.
우리가 잘 지켰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일본 동북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우리 도움을 원하지도 않았다. 호들갑떨며 우리가 보낸 물품들, 그들은 지급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핸드폰이며 텔레비전이며 자동차 따위도 일본인들은 그저 괜찮은 공물(貢物)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로 한국산을 사지 않는다. 빼앗아가거나 훔쳐가면 되는 것을 하찮은 조센징들이 만든 물건 따위를 돈 줘가며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류 따위는 그들을 위한 재롱으로 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머슴들이 주인을 위해 벌이는 재롱잔치 격이라고 그들 우파는 믿고 있다. 남자 가수나 탤런트는 그들을 위한 남자 위안부요, 여자 가수나 탤런트는 그들을 위한 여성 위안부로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겁난다. 지금 팔십 구십 먹은 일본놈들 중에는 조선 처녀 위안부를 탐한 놈들도 부지기수로 있을 것 아닌가. 그렇게 큰 죄를 짓고도 일본인은 장수민족이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답은 간단하다.
그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 그들보다 국력을 더 키워야 한다.
기술을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국방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16세기 임진왜란 때도, 20세기 일제에 강점될 때도 군대가 없었다. 매국노들은 끝없이 군대를 약화시키려고만 한다. 해적기지니 군대에서 썩느니 살인을 가르치느니 비아냥거리면서 국군을 모욕하고, 국력이 약해지도록 좀을 먹어댄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항공모함을 서해에 띄우고, 대한민국 어느 땅이든 콕 찍어 폭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 등 정밀 미사일 무기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곧 스텔스기가 나온다고 한다.
일본은 상업용 로켓발사까지 한다. 중국은 사람을 태우 우주선을 쏘기도 했다.
적들이 이러는 사이 우리는 구럼비 타령이나 하고 있다.
저 찬란한 문화유산 해인사조차 육이오 때 폭격 대상이었다는 걸 알고나 있을 것이며, 그 자랑스럽다던 문화유산 수만 점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는 걸 알고나 있는가? 심지어 일제는 꽃나무까지 뽑아갔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일제 때도 그랬다.
황룡사를 불태운 게 우리인가 적인가. 실록을 보관하던 서고를 불태운 게 우리였나 적이었나.
궁궐에 불지른 게 우리였나? 육이오 때 우리가 400만 명을 살륙했나?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진실을 호도하는 세력은 동족이어도 적과 다름없다.
나는 일제의 만행과 김일성의 만행, 중국에서 발진한 수많은 침략자들의 만행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세력들이 누구였나 일일이 그 면면을 헤아려본다.
우리가 먼저 굳세지 않고는 남탓할 자격이 없다.
-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일제 광산에서 일하다 얻은 진폐증으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묘원.
아버지는 가셨지만 기억력 좋은 그 아들 다섯이 있다.
- 일본의 정체를 더 똑똑히 알 수 있는 글들
< | '침략군 앞잡이' 일본불교 조동종의 뒤늦은 참회> |
<일본인들은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
<
나는 일제에 징용 피해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
<일본 전쟁 범죄 기업 명단을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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