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는 방법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외모를 먼저 보아 1차 판단하고, 말하는 걸 들어보아 2차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글을 보고 3차 판단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처럼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갖은 도구가 다 동원된다. MBTI, 에니어그램 등 여러 가지 성격 분석 도구가 있고, 여기에 나의 <바이오코드>도 명함을 내밀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여러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 일을 도모하다 보니 품격(品格)을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이 선다.
품은 그야말로 사람의 품질이다.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 어떤 경력을 가졌느냐를 따지면 대개 품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품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이 선에서 의사결정을 내려버린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격이다.
격은 생각이 어디 가 있느냐 하는 문제다. 품이 높아도 격이 낮으면 큰 화를 입게 된다.
고시 수석을 한 사람이라도 격이 안되면 범죄자로 성장할 뿐이다.
역사를 보면 어찌어찌하여 품이 올라가는 사례는 많다. 줄을 타고 9품에서 1품까지 펄쩍 뛰어올라간다. 하지만 격은 그러지 못한다. 격이란 올라가고 싶다고 올라가지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라도, 왕이라도 격은 별도로 갖춰야지 타고나지는 못한다. 그러니 왕이라도 격이 안되면 말단 관리만 못하다. 정승판서의 품이라도 격이 그에 미치지 않으면 나라에 분란이 일어난다.
초나라 양치기 백리해는 염소 가죽 다섯 장에 진나라에 팔린다. 진나라는 양치기에 불과하던 천민 백리해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승상 자리에 앉자 그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초나라는 그의 품도 격도 보지 못했다.
위나라 사람 범수는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곤장 100대를 맞은 뒤 그대로 죽으라고 변소간에 버려졌다. 위나라에서는 그를 쓰레기로 취급했지만 진나라는 그런 범수를 몰래 데려다가 승상으로 썼다. 범수가 위나라에 복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격을 깎아 취급하는 거야 다반사고, 대개는 격이 안되는 인물을 올렸다가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품은 되지만 격이 안되는 인물 박영준을 애지중지하다 감옥에 가게 만들고, 본인이 망신당했다. 박정희는 자신은 비록 대통령의 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나 결국 차지철 같은 시정잡배 수준의 품격에게 고위직책을 맡김으로써 재앙을 자초했다. 이승만 역시 자신의 비서이던 이기붕의 품격을 잘못 봄으로써 국회의장을 시키고 부통령까지 시키는 등 걸맞지 않은 자리에 올려놓았다가 자기 자신이 망했다.
누구든 직책을 주면 잘 해내려니 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품이 있더라도 격이 모자라면 안되고, 격이 되더라도 품이 모자라면 역시 안된다. 품과 격을 갖췄을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아무에게나 완장을 채워주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왕조 정치가 망한 것은 품과 격에 관계없이 왕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최고 권력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품도 안되고 격도 안되는 이들이 왕이 되었을 때 나라가 망하거나 왕실이 망하거나 늘 사고가 뒤따랐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 격인지, 어느 정도 품인지 스스로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걸맞지 않은 품과 격이 다가올 때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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