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다. 그냥 누군가 지은 설화일 뿐이다.
긴긴 밤 동짓달에 화로를 가운데 두고 밤새 이야기를 지어내던 옛 풍류객들이 나누던 그 옛날 이야기에 뼈가 생기고 살이 붙어 오늘날 거대한 무의식을 형성, 용인은 전국에서 영구차가 가장 많이 몰려드는 '죽은 자의 도시'가 되었다. 용인에 아무 연고가 없어도 무덤만 쓰면 축제를 해주기도 한다. 포은(정몽주)문화제가 그것이다.
용인에 와서 이 소문을 듣고 보니 이상하게 영구차가 자주 눈에 띄었다.
어쩌다가 용인은 죽은 자의 도시, 죽은 자의 명당이라는 오해를 받고, 진천은 산 자의 땅, 산 자의 명당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일까.
옛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옛날 충청도 진천 땅에 추천석이란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어찌나 졸린지 잠시 잠에 들었는데, 한참 자던 중에 애절한 통곡 소리에 놀라 퍼뜩 잠을 깼다.
통곡하는 사람은 바로 추천석의 아내였다. 자식들까지 따라 울고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야? 왜들 울어? 누구 죽었어?"
그의 아내는 추천석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목놓아 울기만 했다.이윽고 낯익은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네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울거나 슬픈 표정을 지었다.
“처차직을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다니…. 흑흑!”
"혹시.....?
추천석은 의심되는 게 있어 얼른 방을 둘러보았다.
"깜짝이야! 이게 누구지?"
낯익은 사람이 자기가 자던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차리고 보니 바로 자기, 추천석이다.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사람들이 잡아 흔들어도 아무 기척이 없다.
"뭐, 뭐야? 내가 죽은 거야?"
그제야 추천석은 귀신이 되어 이승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뒤돌아보니 저승사자인 듯한 사람이 실실 웃어가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잖은가.
어려서부터 들은 얘기는 있어 저승사자가 가자는대로 따라가면 죽는다고 하여 버티고 섰다.
"싫어? 이미 네 혼을 거뒀는데 버틴다고 버텨지나?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걸, 추천석!"
"아, 왜 남의 이름은 불러요? 내가 뭐 잘못했다고 잡아가요?"
"나야 알게 뭐냐. 장부에 적힌 순서대로 데려가는 것뿐이지.
"가자, 나 바쁘다."
저승사자가 홱 손을 뻗어 나꿔채니 추천석은 꼼짝없이 끌려가게 되었다.
머지 않아 명부전(冥府殿)이 나타났. 절간마다 가보면 가장 으슥한 곳에 숨어 있는 그 건물 비슷한 곳이다. 거기 염라대왕이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야?”
“예, 추천석입니다. 제가 아주 정확하게 1분 1초도 안틀리게 끌고 왔습니다.
“가만, 름은 맞는 것같은데 내가 데려오라는 사람이 아닌 것같다. 생겨먹은 게 좀 이상한데? 명부 좀 보자.”
명부를 살펴보던 염라대왕은 혀를 끌끌 찼다.
"허, 이런. 이름도 맞고, 생년월일도 맞는데, 진천 추천석이로다. 데려와야 할 사람은 용인 추천석이야. 요즘 너희 저승사자들, 혼을 빼놓고 사는구나! 당장 이 사람은 돌려보내고 용인 추천석을 데려오라구!"
그렇게 해서 진천 추천석은 가까스로 저승에서 풀려났다.
"아, 내가 이놈의 게을러빠진 저승사자들 때문에 무슨 일을 못해먹겠어. 당장 용인 추천석일 잡아와."
혼쭐이 난 저승사자는 진천 추천석을 데리고 진천까지 데려다 주었다.
휴우 한숨을 쉬면서 집에 돌아와 아내를 부르니, 아뿔싸, 이미 장례까지 끝나 그의 몸은 땅 속에 묻힌 뒤였다.
"아이고, 내 몸, 내 육신, 난 어디로 들어간단 말인가!"
아내를 불러도, 자식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거 진짜 죽게 생겼구나. 대체 이를 어쩐다?"
그러고 보니 용인 추천석을 잡으러 간다던 저승사자가 생각이 났다.
"아이고, 이 멍청한 저승사자라도 얼른 따라가 보자."
진천 추천석은 죽을힘을 다해 용인으로 뛰기 시작했다.
진천에서 용인은 약 백여 리 길이다.
진천 추천석은 용인까지 뛰어가 가까스로 용인 추천석이 사는 집을 찾았다.
용인 추천석은 저승사자가 막 혼을 빼간 뒤라 몸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용인 추천석의 아내와 자식, 친척들도 깜짝 놀라 울고불고 난리가 나 있었지만, 진천 추천석은 염치 불구 그 몸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어? 우리 아부지 눈 떴다!"
울던 아들 놈이 소리를 지르자 아내며 친척들이 달려들어 진천 추천석이 들어간 몸을 더듬고, 눈깔을 까뒤집고 난리였다.
"여보, 다시 살아났구려! 그럼 그렇지, 여보."
용인 추천석의 아내는 진천 추천석, 아니 용인 추천석인가, 여튼 이 사람을 부여잡고 울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서 자초지종을 가려야 했다. 진천 추천석은 용인 추천석의 아내를 밀쳐냈다.
"아주머니, 잠깐만요."
"여보, 아주머니라니요? 나 당신 아내입니다."
"아니야. 당신은 내 아내 아니야. 징그러워.
"아이구,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나 보오. 동네 사람들, 이 사람 좀 고쳐주오! 정신나게 좀 해주오!"
"아, 그게 아니고 내가 추천석인데."
"맞소, 추천석이 당신 이름이오. 정신이 돌아왔구려.
"아, 추천석은 맞는데 용인 추천석이 아니고 진천 추천석이오."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여보. 추천석이면 추천석이지 용인 추천석은 뭐고 진천 추천석은 뭡니까. 정신 좀 차려요.
"그러니까 내가 죽었어요. 그런데 내 몸이 없어졌어요. 땅에 묻은 거지."
"묻긴 어딜 묻어요? 이렇게 멀쩡히 있었는데? 발상도 안했는데."
"아니, 이건 용인 추천석이고, 나 진천 추천석의 몸은 묻었지요. 벌써 장사를 치렀다니까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하나둘 물러갔다.
"꿀물 따뜻하게 타서 멕여봐요. 기절했던 사람이니 하루이틀은 지나야 제 정신이 돌아오겠지, 암. 어휴, 얼마나 놀랐으면 저리 헛소리를 지껄이누."
그러고보니 그럴 듯한지 용인 추천석의 아내는 꿀물을 타다 대령했다.
주는 것이니 일단 받아마셨다. 목이 마르던 참이니 꿀물이 달다.
"아이구, 시원하다."
"일단 오늘은 주무시구려. 얘기는 내일 합시다."
그의 아내는 금침을 깔아놓고 어디 나가지 못하게 문쪽을 가로막으며 팔베개를 하고 잠을 잤다.
"아, 이거 가까이 오지 마시오. 나도 아내가 있는 몸이오."
"내가 당신 아내인데 무슨 아내가 또 있어요? 갑자기 내외하고 그런대? 누가 지금 하쟤요?"
그러면서 남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진천 추천석은 이리저리 여인의 손길을 피했다.
밤새 고생하던 진천 추천석은, 아니 몸은 용인 추천석이지,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진천 추천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소피를 보러 가는 척하고는 냅다 진천 방향으로 뛰었다.
멀리 가지 못해서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아버지가 미쳐 날뛴다."고 소리지르면서 따라붙었다.
진천에서 용인 올 때는 귀신으로 와서 힘들지 않고 사뿐사뿐 날듯이 왔는데, 용인 추천석의 몸을 끌고가자니 땀도 나고 힘도 들고 목도 마르고, 갈수록 지쳤다.
그래도 진천 추천석의 집까지 죽자고 뛰었다.
마침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실의에 빠져 베옷을 입고 마루에 앉아 있었다.
"여보, 얘들아, 애비 왔다. 내가 살아서 왔다!"
아뿔싸,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는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아니, 나라니까, 당신 남편 추천석, 얘들 애비 추천석!"
자식들이 깜짝 놀라 엄마 등뒤로 물러났다.
"엄마, 저 아저씨 미쳤나봐. 무서워."
"이 남정네가 왜 과부 집에 와서 난리를 치시오! 썩 물러가지 못하겠소!"
"여보, 왜 이래? 내가 당신 남편이야! 이놈들아, 애비도 몰라보느냐?"
"아이구 무서워라. 저 미친 이가 왜 저런대?"
"동네 사람들, 여기 미친 놈 좀 쫓아내주소!"
그 소릴 듣고 이웃들이 뛰어들어와 추천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중에 용인 추천석의 가족들이 뛰어들었다.
"여보, 왜 남의 집에서 소란을 피워요? 어서 용인으로 갑시다."
"아, 놔요! 내가 왜 당신 남편이오. 저기 저 여자가 내 아내요."
여기서부터는 용인 추천석 네와 진천 추천석 네가 옥신각신, 아니다, 맞다, 이상하다, 묘하다, 이러면서 말이 자꾸만 꼬여갔다. 말을 하면 할수록 헷갈리기만 했다.
급기야 누군가 진천 관아에 가서 이 소란을 신고하고, 관아에서 창든 놈 몇이 뛰어와 추천석을 잡아들였다.
이제 재판이다.
진천군수가 인정신문에 나섰다.
- 누군고?
- 저는 진천 사는 추천석입니다.
- 어이, 진천 사는 유가족, 맞아요?
- 아이고, 내 남편 추천석은 며칠 전에 갑자기 죽어서 땅에 묻었어요.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 (동네사람 1) 아, 내가 직접 묻었소.
- (동네사람 2) 난, 추천석이 염을 했소.
- 이런이런, 여기 네 이웃들이, 가족들이 아니라잖아? 누구야?
- 말똥아, 이놈아. 너 지난 보름날 밤에 나하고 투전해서 네놈이 십전을 따갔잖아! 맞아 틀려!
- (진천 추천석 친구 말똥이) 어?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지? 귀신이 붙었나?
- 여보 마누라, 당신 엉덩이에 사마귀가 하나 붙어 있어.
- 헐,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 당신 어머니 돌아가실 때 내가 한약재 지어갔는데 달여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잖아?
- 얼레, 그것도 맞고... 그럼 내가 달거리 언제 있었대요?
- 이 여편네, 이제 늙어서 달거리 안하잖아?
- 오메, 나 죽겄네.
- 자자, 조용. 내가 판결을 내리겠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추천석의 저 몸은 용인 추천석이 맞고, 혼은 진천 추천석이 맞다. 그러니 이를 어쩐다. 그럼 이렇게 하자. 살아서는 진천에서 익히 아는 식구들하고 살고, 죽거들랑 용인 집으로 그 몸을 돌려보내라.
- 아니, 그럼 내가 저 낯선 남정네하고 살 비비며 살란 말이우, 사또?
- 사람이란 정신이 살아야지 몸뚱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구. 용인댁, 아니그러신가?
- 그래도 평생 부대끼며 살아온 우리 영감인데 남 주기는 아깝소만 나이가 웬만하니 내가 사또 말씀을 아니 들을 이유가 없소. 제사는 어쩐다지요?
- 용인 추천석은 죽었으니 죽은 날이 제삿날이지. 몸은 남았지만 진천 추천석이 얻어 쓰는 거라잖소.
뭐, 이래서 군수의 판결문 주문이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거다.
그러니 용인에 명당이 많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냥 긴긴 밤 무료해서 만들어낸 이런 옛날 이야기 하나 때문에 오늘날 용인은 <죽은 자들의 도시>라도 되는양 유명 정치인들의 부모를 이장하는 곳으로 유명해지고(김대중, 김종필 씨 부친 무덤이 용인으로 이사왔다.), 벼라별 묘원이 굉장히 많다.
시립 공동묘지도 많다. 이제 이동면에 생기는 평온의 숲으로 그 잡다한 공동묘지들이 대거 이사하여 그나마 좀 정리가 되는 모양이다. 정몽주, 조광조, 허균, 영창대군, 김수환 추기경 등 그러지 않아도 유명인들의 무덤이 너무 많아서 딱 오해받기 좋은 용인에 이런 설화까지 있어 더 복잡하다. 용인하고 아무 연고도 없지만 무덤 쓴 분들을 찾아 모아보면 어마어마한 역사인물축제를 벌일 수 있다. 상여축제, 곡소리 축제, 이런 것 덤으로 하고.
자, 이제 오해가 풀렸으니 용인을 산 사람 살기 좋은 명당으로 바꿔보자.
죽은 사람 얘기는 좀 그만하고 산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지혜를 모으는 용인시로 만들자.
- 용인 문수산에서 내려다본 미륵뜰. 이 산 오른쪽으로 쭈욱 내려가면 묘봉리라는 곳에 김대중 씨 부친 묘가 있어 풍수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김대중 씨는 부친 묘를 이곳에 써서 대통령된 게 아니라, 김종필 씨의 자민련과 연대하고, 이회창 싫어하는 김영삼 대통령이 이인제 후보를 출마시켜 보수표를 잠식시켰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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