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의 가뭄을 언론 및 야권 일각에서 <104년만의 가뭄>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현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게 1908년이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1908년 기준으로 몇 년만의 홍수, 몇 년만의 폭우, 몇년 만의 폭설 등의 말이 난무한다.
<104년만의 가뭄>이라고 표기하면 마치 104년 전에 지금과 같은 가뭄이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현대식 기상관측을 실시한 104년 전 이래 처음 있는 가뭄>이라면 말이 맞다.
10년만의 폭설은 10년 전에 같은 수준의 폭설이 있다는 뜻이어야 하듯이 104년만의 가뭄이란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 강우량을 측정한 나라다.
세종대왕은 1442년 5월 19일에 측우기를 만들어 이를 강우량 측정에 썼는데, 이런 나라에서 통계 문제로 헷갈려서는 안된다.(5월 19일의 측우기 발명을 기려 이 날을 발명의 날로 삼았다.)
더구나 기상관측 이래 최대 가뭄이라는 표현조차 사실이 아니다.
가까운 시기인 2001년 3월 - 6월 강수량이 예년의 20% 내지 40%였다. 이 해에는 1월, 2월에는 많은 눈이 내렸지만 농업용수로 쓸 시기가 아니라 의미가 없었다.
2001년 가뭄이 어찌나 심했는지 경기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고생했다.
- 2001년 가뭄은 경기북부지역을 기점으로 물 부족이 심화되어 전국적으로 54개 시군에서 농업용수부족이 발생하고, 생활용수는 상수도 보급률이 낮은 농어촌 및 가뭄 취약지역인 도서지역에서 주로 발생, 전국적으로 1회 이상 제한급수 또는 운반급수를 경험한 시군은 86개 시군으로 조사되었다.
제한급수 지역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6월 17일 86개 시군으로 제한급수 인원은 30만 5,000명에 달했다. ‘94~95년' 가뭄기간의 47개 시군의 약 360,000명의 제한급수인원과 비교할 때 2001년 봄 가뭄은 공간적으로는 더 많은 지역에 피해를 주었으나 제한급수인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2001년에 발생한 가뭄은 과거에 발생한 가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가뭄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가뭄피해지역은 전국 7개도에 걸쳐 25개 시, 59개 군에서 가뭄의 피해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중 가뭄피해지역이 가장 넓은 곳은 전남과 경북으로 각각 19개 시 · 군과 14개 시 · 군에서 피해를 많이 입었다. 따라서 2001년 가뭄에서도 대규모 댐과 저수지의 혜택을 받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뭄피해를 입었다.
최근 30년간의 3, 4, 5월의 강수량 자료를 예년 평균하여 2001년 3월~5월 강수량과 비교하였을때, 모든 유역이 예년과 대비하여 40% 수준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2001년 봄 가뭄이 극심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1년 가뭄으로 인하여 국내에서는 가뭄을 대비한 다목적댐의 효율적인 운영 및 추가 댐 및 저수지의 건설 등과 같은 가뭄 대비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었다. (이상 국가기록원 기록/집필자 중부대 토목공학과 이주헌 교수)
따라서 농번기인 3월 ~ 6월 강수량으로는 2012년보다 2001년이 더 극심했다. 그러므로 올해의 가뭄을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농번기로 쳐도(3월 4월 5월 6월) 아직 6월이 다 가지 않았고, 연간 강수량으로 따진다 해도 아직 6개월이나 남았으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작년 우면산 폭우 때처럼 집중강우량을 따지는 방식으로 3월 - 6월 강우량으로 따지는 것도 한 방법이고, 6개월간 강수량을 따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떤 표현이든 실증적이고 통계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
* 7월 6일 / <104년만의 가뭄이란 호들갑>이 사라졌다. 6월말부터 비가 내려 요 며칠 사이 비가 충분히 내렸다. 두어 달 가뭄에도 이 아우성에 남 못잡아먹어 난리이니 3년 가뭄에 나라 안망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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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하나.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은, 적어도 강수량 관측이 시작된 것은 세종 시기이다.
그 기록이 다 있을 텐데, 왜 자꾸 1908년부터 모든 기록을 따지는지 모르겠다. 통계는 많을수록, 시기가 길수록 정확해진다. 측우기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상학자들이 조선왕조실록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이 통계를 완성하기 바란다. 실록에 보면 지진, 기상 등에 대한 기록은 절대로 빼지 않았다.
하다 못해 1777년부터는 기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300여년 가까운 측우 기록을 보유하는 셈인데, 이 아까운 기록을 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좀 노력을 하라. 기상 연구만으로 국가의 세금을 받아 사는 사람들, 좀 책임감있게 일하시길... <여기 참고하시라. 개인이 이렇게 열심히 연구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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