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오후 7시 42분, 활짝 핀 분꽃을 만났다.
꽃이든 나무든 기억할 때는 대개 그에 관련된 사연들이 한데 묶여 뉴런에 저장된다.
빨간 하늘나리는 어머니-새앙골과 엮이고, 브로콜리는 갈색 갈기가 아름다운 견종 콜리가 한데 묶이고, 새카만 버찌 열매는 우리 네째 동생과 묶이고, 아이들 장남감 권총이나 호랑이는 내 막내와 엮이고, 버드나무는 둘째형과 엮이고, 스패너는 큰형과 엮이고, 참외는 시골장과 엮인다.
이처럼 나는 분꽃을 보면 그 즉시 시냅스로 엮인 집안 누이가 떠오른다. 한 살 위인 누이는 어린 시절 내 동무였다. 누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 종일 웃는 얼굴이다. 언젠가는 하도 웃음이 그치지 않아 한약을 지어 먹여야 낫는다는 말도 들었다.
누나는 부잣집이라 잘 먹어서 그런지 나보다 늘 덩치가 커서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날 어린 동생으로 여기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었다.
하지만 누이는 재미나게 놀다가도 이 분꽃이 피면 "어머, 밥할 때 되었네?" 하면서 아쉽게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일 때였다. 그게 얼마나 아쉬웠으면 내가 쉰다섯이 된 이 나이까지 분꽃만 보면 그 생각을 할까.
분꽃은 7월부터 피는 여름꽃이다. 대개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에 핀다. 이때는 어른들이 한창 농사일을 하는 시각이라서(그 시절에는 비료가 부족하고 농기구가 발달하지 못해 어른들은 하루 종일 밭에 나가 김을 매며 살다시피 했다) 어린 누이가 대신 밥을 앉혀 놓고 불을 때야 했던 것이다. <분꽃-누이-저녁밥-아쉬움>은 내게 하나로 묶인 '세트기억'이다.
이 누이를, 나는 분꽃이 피는 여름이면 한 차례씩 추억한다. 누이와 나 사이에 공유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아 혹시라도 분꽃을 보지 못하면 잊고 지나는 수도 있지만, 거기가 서울이든 부산이든 하여튼 분꽃만 보면 나는 이 누이를 떠올린다. 정확히 말하면 분꽃만 보면 내 두뇌가 알아서 그 시절 추억을 비디오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수십 년 떨어져 살다보니 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는 이 누이를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명절에 혹시라도 보면 어린 시절을 한번 더 떠올릴 뿐이다. 누이는 스물이 넘어 가까운 동네에 살던 사람에게 시집갔는데, 그 형이 병으로 요절하는 바람에 이른 나이에 홀몸이 되었다.
* 분꽃
분꽃은 분꽃과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Mirabilis jalapa이다.
분꽃이라는 이름은 씨앗의 배젖이 분가루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뿌리는 검은색의 덩이뿌리다. 줄기는 녹색으로 마디가 있고, 높이는 60-100㎝ 가량으로 여러 갈래로 나뉜다.
잎은 마주나는데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나팔꽃 모양의 흰색·적색·황색 꽃이 해질 무렵부터 아침까지 핀다.
수술은 5개가 있고, 열매는 둥글며 검은색으로 익는데, 안에는 흰가루가 들어 있다.
꽃 향기가 좋다. 씨앗은 둥글며 얇은 흰색 껍질에 싸여 있고, 검게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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