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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아들 없는 거, 하나도 서운해 할 것 없다"

지난 12월 1일, 정산 외갓집 결혼식장에 가려다 길이 막혀 못가고 대신 시골 어머니 집에 갔다.

마침 집에서 끓여먹는 꾸지뽕나무 재료가 떨어져 텃밭가에 심어둔 나무에서 나뭇가지를 몇 개 베어 톱과 도끼로 조각내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러고나니 할 일이 없어 낮잠을 한 시간 잤다.

그러고나니 이 날 낮에 결혼식에나 참석하려던 차라 바니와 리키 용품을 챙기지 못해 저녁만 먹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사료, 기저귀, 간식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막내동생과 조카 명원이가 뒤에 남아 있으니 난 별 생각없이 시골을 떠났다.

 

그런데 내가 사라지자 조카 명원이도, 막내동생도 심드렁해져서 결국 천안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는 걸 길 떠나는 막내 머리 뒤꼭지에 대고 어머니가 기어이 한 마디 쏘아부치셨다.

"아들 없는 거 하나도 서운해 할 것 없다."

나처럼 막내도 딸 하나만 두어 아들이 없다. 그래서 그걸 빗대 하시는 말씀이지만 실은 당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것이다. 아들 다섯이나 둬봐야 주말이라고 와서 자고가는 자식 하나도 없잖느냐, 이런 말씀이시다.

어머니는 그러시고도 날이 춥다고 들어가시더니 커텐 사이로 막내아들과 손녀 명원이가 길 떠나는 걸 끝까지 지켜보시더란다. 어머니는 0660이시다.

 

옛날에는 아들 낳으면 부모를 모시는 전통과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 다섯을 둔 어머니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자식 잘 둔 것이고, 그렇게 믿어왔지만 막상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식은 아무도 없다. 주말에나 잠시잠깐 얼굴 보여주는 게 고작인 자식들이 토요일에 오자마자 간다고 나서니 어지간히 서운하셨던 게다.

나도 힘이 들 때는 따로 사는 딸을 불러들이는데, 연로하신 어머니는 오죽 하실까. 그래도 핑계거리는 쌓여만 가고 마음과 달리 시골에 자주 갈 수가 없다. 훗날 틀림없이 후회하겠지만 달리 뾰죽한 수가 없으니 더 안타깝다. 12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추위를 피해 도시로 모시는 게 고작이다.

 

- 올해 초 어머니 생신날에 막내아들 집에서 생일상 받으신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