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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다시 감따는 날

몇 해 전부터 감따는 걸 사진으로 기록한다.

우리 막내가 올해 쉰이고, 큰형이 예순셋이다. 한 해 한 해가 귀하고 안타깝다.

올해는 10월 중순께부터 어머니가 감 다 붉어간다며 이 집 저 집 <전화질>을 하셨다.

그렇건만 지난 주에는 다 모이지 못했다.

더구나 큰형이 나이를 느끼는지 "그깐 감, 사먹는 게 싸다."며 어머니 비위를 건드린 모양이다.

어머니는 큰형 안와도 좋으니 나머지라도 와라, 네째가 바쁘다니 둘째와 세째와 막내만 오너라, 이러면서 이틀 건너 한번씩 전화를 걸어오신다.

기어이 2012년 10월 28일 오전에 형제들이 모였다.

웬걸, 큰형도 새벽같이 나타나 장대를 손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다시 예전 그림이 된다. 언제나 나무에 올라가는 건 큰형, 둘째형 몫이다.

난 올라간 적이 없다. 아래서 딴 감을 받아 옮기는 일이 내 일이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다.

네째가 오지 못해 아쉽다. 다섯 형제가 다 모이는 게 별 일이 아니라고 믿어왔는데 막상 네째가 빠지니 섭섭하다. 세상사 뜻대로 되는 일이 뭐 그리 많던가. 이놈의 세상, 떠날 때 아쉬움 한 올 없이 시원하게 떠나고야 말리라.

 

- 중년 사내 다섯이 추석날에 어머니 집 소파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은 막내조카 명원(오른쪽 작은사진)이가 폰으로 찍었다.

왼쪽부터 1, 2, 3, 4, 5다.

전에 막내 결혼식 때 아버지 형제자매가 다 모여서 기념촬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진에 있던 분들 중 대부분은 바쁜 일로 다른 세상으로 가시고,

숙부 중 한 분과 고모 한 분만 남아 이승을 지키신다.

 

<감 따는 날, 2008년 11월 9일>

<또 감따는 날, 2010년 10월 30일>

우리 형제가 따는 감은 숙부(이삼범)가 심어 따시던 걸 물려받은 것이다. 원래 우리 가족이 따던 감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아래의 감나무를 심어준 숙부는 그 옛 감나무 터에서 영면하시고 있다. 그 감나무 자리도 실은 숙부가 어린 시절 부지런히 감따러 다니던 자리다.

 

아래 감나무 근처에 큰 오가피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열매가 실하게 열린다. 올해는 내가 따고, 형수가 효소 만든다며 가져가셨다. 불과 10년 전 저 위 숙부가 이 오가피열매를 따다가 주인인 당숙하고 다투었다. 아무리 사촌지간이라도 왜 마음대로 따느냐는 질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 하나 뭐라는 이가 없다. 바람 한 점 없다. 세월 앞에 온전히 남는 것 하나 없는 모양이다.

 

- 문제의 오가피나무. 수확기가 지나 열매가 많이 떨어졌다. 그냥 둬도 따가는 사람도 없는 걸, '노인들'이 왜 다퉜는지, 지금쯤 하늘에서 웃으시겠지.

 

 

 

 

- 형제들이 딴 감은 곶감용 반시 종이고, 이 사진의 감은 씨없는 '골감'이다.

 

 

 

 

 

 

- 앞에 보이는 무밭은 어머니 텃밭. 정자를 포함한 건너밭도 어머니 전용이시다. 보이는 은행나무 등도 우리 형제들이 관리하는 나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