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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스크랩] 350년 묵은 인종차별을 깨부순 만델라 영면

 

<모닝타임스로 가서 만델라에 관한 자세한 기사 직접 보기>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이야기
2013년 12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제이컵 주마가 그의 사망을 공식 발표

 


- 왼쪽 사진 두번째가 만델라, 세번째가 데 클레르크. 첫번째는 라빈 이스라엘 총리, 네번째는 아라파트.
오른쪽 그림은 노벨 메달.

 

당신이 사는 세상이 불의와 협잡,  부정 부패, 차별과 학대, 살륙과 핍박으로 휩싸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국인으로부터 노예로 간주되어 인종차별을 당하는 동포를 본 마하트마 간디가 자신의 전생애를 독립운동에 바쳤듯이 넬슨 만델라 역시 그러했다. 그런 세상이라는 걸 몰랐다면 운명이려니 하고 그냥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무고한 조선인이 일제헌병에게 폭행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김구는 그 헌병을 때려죽인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처럼 넬슨 만델라도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파르트헤이트를 보았고, 그 길로 무장투쟁에 나섰다. 간디, 김구, 만델라 같은 이들은 결코 흔한 인물이 아니다. 대개는 모른 척하고, 뒤로 숨고, 도리어 이런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대열 속으로 기어든다. 그러니까 남아공에 백인독재정권이 선 지 350년만에, 지독한 흑인학대법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된 지 46년만에 겨우 정상화되는 것 아닌가.

 

- 백인들이 저지르는 350년 차별정책을 멈추게 하다 

 

그는 아프리카의 템부족(族) 족장의 증손자로 출생했다.
포트헤어대학 재학 중 시위를 주동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비트바테르스란드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러자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연맹을 창설하고, 서른네 살인 1952년에는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상담소를 열었다. 이때 그는 흑인들이 얼마나 혹독한 차별을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는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제야 제대로 보았다. 그는 이때부터 인종격리정책을 반대하는 운동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흑인인권운동에 나섰다.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법으로 흑인 탄압
독일인들의 유태인 대학살, 일본인들의 난징대학살과 731부대 만행 같은 인류사의 오점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법률로 선포된 아파르트헤이트는 백인정권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 정책이다. 이 법은 인종을 백인, 흑인, 컬러드, 인도인으로 분류하였다. 인종별 거주지 분리, 통혼금지, 출입구역분리 등으로 남아공을 백인 위주의 나라로 만들었다.

 
- 백인전용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 

 


- 백인 전용 해변 구역

 

만델라는 백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러한 악행을 막기 위해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그가 분노한 아파르트헤이트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 인종간혼인금지법 ; 인종이 다르면 결혼할 수 없다.
- 배덕법(背德法) ; 백인은 유색인종과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
- 반공법 ; 한국처럼 흑인탄압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 집단지구법 ; 인종이 다르면 서로 다른 지역에 살도록 주거지역을 강제했다.
- 반투자치법 ; 불모지에 흑인을 집단이주시켜, 흑인을 외국인근로자처럼 취급했다. 이 구역을 홈랜드로 선언하고, 흑인을 사실상 외국인으로 간주하였다.
- 시설분리보존법 ; 흑인이 백인의 식당, 수영장, 화장실 등을 못쓰게 하려고 만든 법이다.
- 반투교육법 ; 흑인 아동의 취학을 정부 권한에 두었다. 남아공은 흑인아동에게 질낮은 교육을 별도로 시켰다. 

 

만델라는 이 끔찍한 <백인 천국, 흑인 지옥 국가>를 깨부수기 위해 진력했다. 그러다가 체포되고, 이후에는 무장투쟁을 지도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이어서 다른 범죄 혐의 추가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옥중에서 갖가지 상을 받으면서 27년간 복역했다.  

 


- 남아공 대통령이 된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그는 출옥한 뒤인 1991년 7월 ANC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면서 무장 투쟁 방식을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여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그로써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함께 1993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투쟁 방식을 바꿈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결국 1994년 4월 27일에 65%의 압도적인 지지로 흑인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만델라는 무장 투쟁에서 대화 투쟁으로 나서면서 그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 그의 영광 뒤에 숨은 인물 데 클레르크

 


- 넬슨 만델라와 타협,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한 남아공 대통령 데 클레르크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공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만델라의 영광도 없었을지 모른다. 넬슨 만델라와 타협해 흑인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끝냈다. 또 그의 임기 중에 흑인의 보통평등비밀투표가 보장되고, 흑인과 백인의 모든 권리가 동등해졌다. 1993년 넬슨 만델라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대리통령(대통령 부재시 임시 맡는 남아공관직. 일종의 명예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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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용인시민주권연대
글쓴이 : 별이빛나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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