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소국 한(韓)나라에 한비라는 왕자가 있었다.
* 한(韓) ; 우리나라 국호 한(韓)은 이 나라와 상관이 없고, 한반도 남부에 있던 삼한(三韓)을 따른다. 또 우리나라 등 북방민족(고구려족, 여진족, 몽골족, 거란족 등)에서 쓰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같다. 즉 몽골의 왕이나 부족장을 가리키는 '한'과 같다. 따라서 대한(大韓)이라고 하면 황제를 가리키는 카한(khahan)이 되어 매우 큰 나라라는 뜻이 된다.
* 왕자 ; 당시에는 공자(公子)라고 했다. 전에 오등작에 의해 제후의 작위가 공작일 때 습관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종주국인 주나라 왕자만이 진짜 왕자로 불렸다. 요즘 의미로 왕자라는 뜻이다.
* 한비 ; 흔히 법가 사상을 펼친 그를 한비자로 부른다. 子는 오등작 중 4번째인데, 公 侯 伯 외에는 실제로 수여되는 일이 없어 학자들에게 붙이는 경칭으로 변했다.
이 사람 글 중에 설난(設難)이라는 게 있다.
10년 전 이 시기 이야기를 10권 소설로 쓴 바 있다. 대하를 잘 안읽는 세상이라 아직 출간을 못하고 그 10권 중에서 뽑아낸 <상왕 여불위>를 신문에 연재하여 이후 6권 소설로 출간하고, 그중에서 왕과 제후, 혹은 제후와 대부들의 관계 중 극적인 것만 골라 <왕과 제후>라는 3권 소설로 출간한 바 있다. 이중 한비 이야기는 <상왕 여불위> 부분에 나온다.
* 설난(設難)은 세난으로 읽을 수 있다. 유세할 때의 세가 되면 그렇다. 따라서 한비의 설난은 종종 유세의 어려움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유세란 춘추전국시대의 왕이나 제후들에게 정책, 계책 등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왕이나 제후는 3권을 틀어쥐고 있었으므로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즉석에서 사람을 죽이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한비는 옳은 말이라도, 바른 말이라도 설하거나 세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이 글을 지었다. 실제로 그는 진시황에게 감동적인 유세를 했지만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나는 바이오코드를 발명하고, 역사소설을 꽤 여러 종을 쓴 이래 저절로 눈에 보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를 참지 못하고 글로 적는 일이 종종 있다. 지금은 좀 자제력이 생겨 바이오코드연구소 카페 중 등급이 있는 카테고리에 이런 글을 주로 적는데, 혈기왕성하던 시절에는 함부로 주장하고 글을 쓰다 혼난 적이 여러 번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 5학년 무렵부터 <과학동아>를 몇년간 읽은 적이 있다. 돈 많이 벌던 숙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과학동아>를 정기구독하셨는데, 숙부집은 산골짜기에 있다보니 내가 우체부한테서 받아 먼저 읽고난 다음에 갖다드리곤 했다. 숙부는 내가 <과학동아>를 먼저 읽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셨다.
내가 <과학동아>를 본 건 내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읽을거리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집에는 한적(漢籍) 밖에 없고,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어 주변에 읽을거리 자체가 없었다. 교과서는 봄방학 때 학교에서 받아오는대로 다 읽어버려 막상 개학이 되면 읽을거리가 떨어져 아쉬워하던 기억이 있다.
동네 누구네서라도 책을 보면 얼른 빌려다가 읽어치울 때이니 <과학동아>야 말로 얼마나 반가운 책이었는지 모른다. 어려운 내용이라도 반복해서 읽으면 문리가 트인다는데, 그건 인문 관련 내용일 때 그렇고 과학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도 무작정 읽었다.
이때부터 나는 은근히 과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점심을 고구마 삶아먹고, 저녁을 가끔 건너뛰거나 호박죽 따위로 견디던 때였으므로 뇌력(腦力)이 많이 약해 그러지 못했다. 또 다른 과학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내가 가까스로 입학한 중학교 25리길을 걸어다닌 지 두 달만에 신경쇠약에 걸려 귀신 같은 헛것을 자주 보고 오줌을 싼 걸 보면 영양 상태가 매우 심각했던 듯하다. 지금도 내가 학부모 강연 등에서 두뇌영양식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그때의 아픈 경험 때문이다. 그때 만약 아버지가 용기를 내어 나를 읍내에 사는 당숙에게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이후 내 인생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당숙의 아들, 즉 내 종형은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 물리, 화학 교사였다. 당숙 댁은 우리 집안 종가라서 제법 잘 살았다. 그때 어찌나 잘 먹었는지 키가 무럭무럭 자라서 당시로서는 큰 편에 속한 176센티미터가 되었을 정도다.
이때에도 나는 형이 대학다닐 때 보던 책들을 주로 읽었다. 중학교 수업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는데, 다락에는 형이 공부하던 물리, 기하, 화학, 생물 등에 관한 대학서적과 참고서들이 많았다. 그 많은 책이 왜 책장이 아닌 다락에 먼지 뒤집어 쓰고 있었는지, 내가 좀 더 컸더라면 형님한테 한 소리했을 텐데, 하여튼 당시 교사들은 참고서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교사 생활을 해낼 때여서 묵인하고 넘어갔다. 또 형은 나보다 나이가 무려 23세나 많기 때문에 말이 형이지 실제로는 내 숙부 또래였다.
이때 과학 책을 실컷 읽었는데, 과학동아보다 훨씬 읽기가 어려워 겨우겨우 읽거나 골라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과학을 전공하지 못했다. 형한테서 밥을 얻어먹으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있었으면 좋으련만 3학년 때는 버스가 생겨 사촌형에게 미안함(나중에 들으니 내가 가 있는 동안 쌀 한 말 갖다 드리지 못했다고 한다.)을 갖고 있던 아버지의 호출로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집 형편은 여전해서 먹는 거라고는 여전히 푸성귀 뿐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 대전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그러지 못하고 읍내에 있는 농고에 들어갔다. 그런데 오전만 공부하고 오후에는 늘 밭으로 논으로 나가야 해서 11월인가에 아예 학교를 그만두어버렸다. 그제야 놀란 어머니가 공주에 사는 이모에게 사정해서 날 데려다 기르게 했다. 그제야 고입 시험을 치러야 하니, 체력시험 20점을 포기한 채 응시할 수밖에 없어 충남지역에서 전에 내가 가고 싶어하던 학교는 못가고 한 단계 낮추어 인문고로 들어갔다.
이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독서에 미쳐 읽고 쓰는 일에 열중했다. 학교 수업은 하도 만만해서 교과서쯤은 한번 훓어보고 마는 정도였다. 그래도 720여명 중 성적이 한손가락 안에 들었다. 청양농고 다닐 때 농업 공부하기도 싫고 일하기도 싫어서 수첩을 들고다니며 시를 쓰거나 산문을 쓰곤 했는데,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바라고 바라던 인문고에 가서도 공부보다 글 읽고 쓰는 일에 빠져버렸다. 게다가 불교를 접하면서 그 심오한 철학에 반해 나는 점점 과학에서 멀어져 인문 쪽으로 빨려들어갔다. 당시 불교를 가르쳐준 스님은 공주에서 제법 유명한 스님이었는데, 이모 댁 뒷산에 계신 탓에 저녁만 먹으면 올라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스님께서 어린 고등학생을 놓고 뭘 그리 많이 가르쳐주려고 애쓰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심지어 주역, 금강경, 천부경 같은 것도 그때 다 배웠다. 공자가 주역을 위편삼절했다고 하는데, 난 이 스님 덕분에 고등학교 때 주역을 위편삼절했다. 한문쯤은 상식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내게는 과학이라는 뿌리깊은 본능이 자리잡고 있었다. 불교조차도 과학으로 접근하고, 주역도 과학으로 접근하기를 좋아했다. 이런 버릇이 글에도 남아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
얼마 전 한글날에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한글은 ....한 우리 글이다."란 걸 보고 즉각 "한글은 글이 아니고 문자."라고 비판했는데, 친박 홍위병 중에 말귀를 못알아듣는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다. 한글과 한국어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혼자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도리어 무식을 용기로 덤벼드는 놈들이 있는 것이다. 한문과 한자가 같은 줄 아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일본은 노벨상을 스무 개 이상 탔는데, 우린 아직 머리로 탄 노벨상이 없다. 유태인은 200여 개 가깝게 노벨상을 수상했건만 하여튼 우리는 없다. 매사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대충 말하고 생각하는 습관 때문인 것같다. 지하철 벽에 걸어놓은 시를 보면 같잖아서 웃음이 나오는 때가 많다. 너무 비과학적이고 너무 비논리적이고,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무당 공수 같은 시>들이 너무 많다.
이러니 내가 설난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겪은 설난 중 고향 청양에 관한 것이 있는데, 내가 어딘가에 청양고추는 청송과 영양에서 한 자씩 따 만든 상표명이라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현지 신문이 나를 비판하는 기사를 올렸다. 고향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향 신문과 싸울 수는 없어 아예 내가 만든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사전>에 이 내용을 박아버렸다. 그러면 내가 이기는 것이니까 굳이 한 개인과 더불어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 청양고추 상표명을 지은 홍농종묘 담당자조차 청양 사람들의 줄기찬 항의와 비판을 받고 슬그머니 '진실'을 외면해버리는 걸 보았다. 아마도 청양고추 개발 당시 청양 관계자들에게 약속했던 게 있었던 모양인데, 그만 <청송+영양>에서 따온 상표라고 주장하면서 관계가 불편해진 모양이다.
요즘 배우 김부선 씨가 난방비 도적질 문제를 놓고 같은 아파트 주민들하고 한판 붙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언론과 정치권이 이 사건을 외면하거나 왜곡한다.
아파트 비리는 매우 심각하다. 단지마다 수십 억씩 회비를 모아 살금살금 빼먹는 놈들이 아주 많다. 1500세대 단지에 만원씩만 걷어도 1500만원이다. 이런 식으로 잔머리를 써서 부자된 놈들이 꽤 많다는 걸 내가 들어서 안다. 언론과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를 외면할 때는 뭔가 정치적인 이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의심한다. 난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득이 없는 일에는 일절 돌아보지 않고, 자기들 이득이 있는 일에는 불법도 서슴치 않는다는 걸 지난 지방선거에서 목격했다.
<옥수동 아파트 난방 비리 보도, 언론이 비겁하게 양비론이나 퍼나른다>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중앙하이츠아파트 사태를 통해 세월호를 바라본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조차 경선이 아이들 반장선거보다 못하다는 걸 보고는 혀를 찼다. 아마도 경선 자료를 홀라당 까면 경선 진행한 놈들의 비리가 다 드러낼 텐데 참 아쉽다. 결과만 달랑 보여주고 데이터는 일절 안보여준다. 그짓한 놈들이 희죽거리며 국회의원입네 하고, 참신하네, 젊은 정치인이네 하고 위장하고 다니는 걸 보면 역겨워 미치겠다. 물론 새누리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이 세상에는 부조리, 비리, 모순, 거짓, 사기 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들이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말하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손해라는 걸 안다. 하도 당해보니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사는 용인에서도 직접 나서서 오만불손하고 무례한 국회의원 하나를 겨우 몰아냈는데, 웬일인지 지역 언론이나 지역 인사들은 이런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언론의 경우 도리어 그를 인터뷰하여 활짝 웃는 사진을 넣은 미화 기사를 쏟아낸다. 시장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취임기념, 2주년, 3주년, 신년, 연말 갖은 핑계를 대어 인터뷰를 하고 갖은 찬사를 바치는 언론들이 있다. 이런 쓰레기를 보고도 꾹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 안그러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나쁜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고, 끼리끼리 작당하여 불이익을 주려고 든다.
한비가 죽은 이유도 비슷하다. 그는 진시황(당시는 진왕)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여기까지다. 진시황을 팔아먹고 사는 놈, 진시황의 권력에 의지해 먹고 사는 놈, 거기 붙어 먹는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드글드글하다 보니 이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결국 한비의 동창생인 승상 이사가 한비를 무고하고, 음해하여 결국 진시황이 그를 죽이게 만든다.
그러니까 지금 배우 김부선이 난방비를 도적질해먹은 아파트 주민들을 비난 해봤자 그들을 둘러싼 아파트 비리 동지들이 똘똘 뭉쳐 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이 잘못 끼어들면 다음 선거에서 응징당할 게 뻔하니 아예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오직 표가 진실이고, 경제인들에게는 오직 돈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옥수동 중앙하이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곳이 터지면 다른 아파트 커넥션도 도미노처럼 무너질 게 뻔하니 서로 쉬쉬하고 감춰주고 무마하고 덮어버리려는 것이다. 청와대도 사회혼란을 원하지 않는다,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미 천안함 침몰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어 알 수 있듯이 사건 자체를 덮으려고 날뛰는 종편, 검찰, 언론 등 여러 은밀한 세력이 있다는 걸 안다. 의심스러워도 말 못하고, 앞뒤가 안맞아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헌법재판관 임명하는데 천안함이 북한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걸 믿느냐고 물어 모르겠다고 대답한 조용환이란 사람을 떨어뜨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판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군함이 어떤 이치로 반쪽이 나고 폭발하고 가라앉는지 상식조차 모를 텐데, 단지 <믿음>이 없다는 이유로 내치는 이런 몰상식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불신지옥 떠드는 터미널 근처 시뻘건 확성기 무리와 무엇이 다른가. 판사가 법전이나 잘 알지 중력을 알겠는가, 부력을 알겠는가, 지진파를 알겠는가. <천한암은 북한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걸 하느님이 가라사대로 믿으라니 이런 폭력이 어디 있는가. 그래도 대부분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입을 다문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래도 참고 고개 숙이지."다. 그 사람도 설난을 당한 것이다.
<천안함 폭침, 내가 직접 보지 않아 확신 못해 - 조용환이 그렇게 말했을까>
양심이 있어도 꾹 눌러야 살고, 진실이 보여도 못본 척 외면해야 하는 세상은 아주 나쁜 세상이다.
이 나쁜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야당하는 정치인, 정론직필이라는 말을 감히 뇌까리는 언론인, 사회지도층으로 착각하고 사는 지식인들만은 설난을 무릅쓰고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런다고 그때 그 시절처럼 양계장 분쇄기에 갈아넣고, 북한산 높은 바위에서 떠밀고, 동해에 빠뜨려 죽이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중국이나 북한처럼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 나라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가 중국이나 북한보다 약간 낫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자랑이니까.
내년에 발표할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인데, 출판사 사장더러 감옥갈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물었다. 가서 독서하고 나오지요, 고맙게도 그렇게 말한다. 감옥까지 갈 내용은 아니지만 아마도 나는 홍위병들에게 대단히 <나쁜 놈>이 될 것이다. 그러거들랑 바이오코드나 들고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야겠다.
맹자는 [맹자]<공손추상>에서 지언(知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 말할 때가 아닌데 말하는 것은 말함으로써 아첨하는 것이고, 말해야 할 때에 말을 안하는 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아첨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도둑질과 같은 처사이다.
- 내 인생에 갈비뼈가 드러날만큼 치열하게 공부한 적이 없었으니
감히 붓다에게는 대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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