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누우신 지 오래 되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함께 할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불가항력,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는 그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소뇌 뇌경색 이후 어머니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렵다.
천천히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데, 어머니 목청이 워낙 크고 성격이 급한지라 무슨 말씀을 하시면 일사천리로 흐르고 만다. 눈치로 알아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형제들은 비겁하게도 어머니 홀로 계신 시골집에 간병인을 두어 모시고 있다.
그러니 어머니는 여전히 혼자다.
손자 동규와 손녀 명원이를 보고 면내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시키라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밥 해 먹일 테니 애들 데려가지 말라신다. 내 딸 채연이는 직장다니는 줄 아니 그런 말씀 안하시고 어린 것들 둘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
네째가 어머니 귀에 익숙할만한 트로트를 깐 다음 어머니 사진첩을 파일 다섯 개로 편집해와서 텔레비전으로 보여드렸다. 어머니가 환자용침대를 일으켜 앉아 골똘히 바라보셨다.
같이 보자니, 마치 어머니더러 이 세상과, 모든 추억과 그만 이별하라고 재촉하는 것같아 나 역시 애닲다.
어머니도 연신 "아이고, 원통해! 아이고, 원통해!" 하신다.
몇년 전 어머니를 업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묘소를 참배한 적이 있는데, "내가 어머니 가실 때 명원이만했는데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모르겠다."며 통곡하셨다. 어머니는 손녀 명원이 같은 대여섯 살 무렵에 생모를 여의어서 기억이 그 때 그 나이에 묶여 있는 모양이다.
어머니 모시고 외조부모 묘소에 다녀온 날짜를 따져 보니 2010년 2월 14일이다.
어느새 5년이 지났다. 그때 어머니 팔순을 기념하여 등산을 하자고 의기투합한 우리 5형제는 어머니를 꼬드겨 외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형수, 조카는 자동차로 이동하고, 우리 5형제는 어려서 외할아버지 댁을 오가던 그 옛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어머니의 설>
사실 그때도 어머니 인생을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어머니가 태어나 살던 옛집을 한번 가보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묘소에 들러 인사도 드리자고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5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오늘 동생이 마련한 사진첩 영상을 보니 <Just Do It!> 정신이 새롭다. 어머니를 모시고 무작정 떠난 만수산 무량사, 그것이 어머니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었고, 후다닥 차 따고 떠난 불국사, 그것이 어머니 생의 마지막 불국사 여행이 되는 것이다. 몇년 전부터는 가시는 걸음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군데를 다니셨다. 신륵사, 부여 고란사, 에버랜드, 전남 함평 시조묘 등이 대개 그러하다.
아버지가 몸져 누워 계실 때도 내가 휠체어에 태워 에버랜드를 돌아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아버지 영정 사진 들고나서 돌이켜 보니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잘 할 수 있을 때 하자고 말한다. 두 번 못한다고.
내 기억에도 두 번이라는 게 별로 없는 것같다. 인도, 고비사막, 이르쿠츠크, 바이칼호수, 태국 왕실 산장, 북망산... 등등 두 번 다시 가지 못한 곳이 너무나 많다.
그저 딱 한 번이다.
어머니 병이 깊어지고 길어지다보니 형제들이 지쳐간다. 부끄럽지만 동네에 우애 좋다고 소문난 우리 형제들마저 이런다. 어머니 시간이 많은 것같은 착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럴수록 한 시라도 더 잡아야겠다. 추모하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허망하기 짝이 없고, 후회하는 넋두리는 강처럼 길어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지난 봄 훌쩍 떠난 리키가 지금도 아빠를 원망하는 것만 같다. 내일 아침에 병원가자, 그랬건만 리키는 그 밤으로 서둘러 가버렸다.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우주의 법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매우 잔인하게 집행된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금, 리키 간 날 며칠 뒤, 느닷없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안산을 떠나 팽목항으로 도보행진을 하고 있고, 리키를 잃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밟고 계신 어머니를 그리는 나는 잠을 못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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