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잖아도 내가 쓰는 글이 내 말인데, 굳이 일상에서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다. 이러면 내가 퍽 겸손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몸이 피곤해서 그렇다.
일반인들은 글을 쓰거나 읽으면 그 글을 읽는 자신의 목소리만 듣겠지만, 나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그걸 색깔로 한번 더 인식한다. 말하자면 남들이 흑백티비를 본다면 나는 늘 천연색티비를 보는 것과 같다. 당연히 에너지 소모가 많다. 문자를 문자로만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문자를 보면 그에 따른 소리가 들리고, 말소리가 들리면 그에 따른 문자가 눈에 보이는 것과 같다. 난 여기에 색깔까지 더 보는 것이다.
어쩌다 강연을 하고 돌아오면 그 시간만큼 따로 무념무상으로 쉬어야만 한다. 안그러면 낮잠이라도 자야 컨디션이 돌아온다.
이처럼 내가 내 말을 듣는다는 게 여간 피곤하지 않다. 남의 말은 더 그렇다. 흥미가 생기는 말이라면 귀를 기울여주지만 논리를 벗어나고 주장이 거칠어지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그 사람의 말 색깔이 매우 거칠어져 시각적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말을 하거나 듣지 않고, 오직 글만 쓴 날도 피곤하다. 바쁜 날은 하루에 50장 이상을 쓸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긴 잠을 자야 피로가 가신다.
글을 쓸 때마다 그게 소리가 되어 귀에 들리고, 거기에 색깔까지 입혀지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내 말에 나도 지친다.
나는 어려서 후두엽의 시각 기능을 약간 다쳤는데, 그래서 그런지 안면인식 기능이 떨어진다.(prosopagnosia)
원래 안면인식기능은 뇌경색, 뇌출혈, 치매, 알츠하이머 같은 두뇌질환이 있을 때 생기는 병변이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이후 그런 증세가 생겼다.
30리 길을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는데, 4월말부터 기어이 몸이 지쳐 오줌을 싸고, 이어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 귀신이 눈앞에 걸어다니는 것쯤은 초기증상에 불과했다. 귀신이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대화가 가능하고, 몇 분이나 이어진다.
나중에는 시각과 청각에 문제가 생기면서 작은 소리가 엄청난 굉음으로 들리거나 작은 물체가 대형으로 보이는 등 복잡한 장애가 생겼다. 그때만 해도 내 고향 청양에는 신경정신과가 없고, 이런 증세를 갖고 병원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껏 어머니는 나를 무당에게 데려가 굿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학교에 계속 다닐 수밖에 없어 증세는 널로 심해졌다.
귀신이 돌아다니고 시각과 청각이 폭발하는 현상이 줄어들면서 대신 소리가 색깔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깜깜할 때 집으로 돌아오는 적도 있는데, 그러면 높은 산 사이로 난 비포장길을 혼자 걸었다. 그때 산중에서 들려오는 온갖 새소리, 동물소리가 나는데, 그때마다 그 소리가 난 곳에서 내 쪽으로 색깔이 흘러오는 게 보였다. 노란 빛줄기가 산에서 내게 흘러내려오는 것이다. 밝은 청색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있었고, 색깔은 그야말로 가지가지였다.
내가 고통을 자주 호소하자 아버지는 하는 수없이 읍내 6촌형에게 나를 맡겼다. 형은 내가 다니는 중학교 물리, 화학 교사였는데, 나보다 23세가 더 많은 우리집안 종손이다.
학교에서 불과 수백 미터밖에 안되는 곳에 집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30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형수가 워낙 잘 먹여줘서 영양섭취도 충분했다. 집에서 어머니에게 얻어먹은 건 풀과 밥 뿐이었지만, 형수는 대가족을 먹여살리는만큼 영양을 골고루 갖춘 좋은 식단을 내놓았다. 당시 당숙, 당숙모와 큰방을 같이 썼는데, 형수는 시부모를 모시는 처지라 한 끼 한 끼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이때부터 내 두뇌가 급속히 회복되어 형수가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게 아깝지 않을만큼 아주 잘 나왔다.
이후 귀신은 더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시각과 청각이 폭발하는 듯한 현상도 사라졌다. 다만 소리를 색깔로 보는 건 유화 물감처럼 아주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내 증세가 다 나은 줄 알고 있었다. 34살 이전은 제한된 사람만 만나도 되는 환경에서 살았는데, 34살 때 발표한 <소설 토정비결>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방송국, 신문사, 잡지사, 강연 등에 자주 나가게 되자 드디어 숨어 있던 장애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게 안면인식장애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모임에서 처음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눈 사이라도 두어 주 지나 다시 만나면 그가 누군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수가 많아졌다. 일반 텍스트 정보는 기억이 잘 되는데, 꼭 시각정보만 안된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라고 한번 더 상기시켜줘야만 그런 줄 알지 얼굴만 봐가지고는 내 머릿속의 인물정보와 연결되지 않는다.
내 시각 기능과 청각 기능 사이에 시냅스가 잘못 연결되었거나 그쪽으로 뇌세포가 더 많이 할당된 듯하다. 측두엽과 후두엽 사이에 무슨 길이 잘못난 것같다. 말하자면 1밀리 시냅스다발로 충분한데 100밀리 폭으로 불에 타버린 듯 길이 뻥 뚫린 것같다. 더구나 처음 만날 때 소리를 색깔로 인식하기 바빠서 안면윤곽 정보를 해석하는데 소홀하고, 결국 기억하려는 의지가 약해져서 이런 증세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즉 안면인식에 열중하기보다 상대의 목소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다보니 안면인식장애가 생기는 것같다.(난 처음 만나는 사람의 목소리에 더 많이 반응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잘 나가지 않는다. 특히 불특정다수가 모이는 파티 등에는 웬만하면 나가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아는 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거만하다거나 뻣뻣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서다. 기억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어렴풋이 알기는 알겠는데, 정확히 누구라고 찍지 못한다.
전에 어쩔 수 없는 자리에 갈 때는 애엄마가 동행하여 내가 알만한 사람을 먼저 가리키며 저 사람 누구다, 이렇게 알려주어야만 그제야 기억을 되찾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는 정보를 열어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키워드만 알면 나머지 기억은 순식간에 열려 소소한 것까지 다 생각난다는 점이다. 텍스트 기억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서너 번 반복해 만나면 그가 누구인지 잘 기억해낸다. 증세가 심한 건 아니다. 그러기 전에 다소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나도 상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목소리와 안면윤곽을 묶어 연상기억법으로 저장해두는데, 이게 늘 잘 되는 게 아니다. 목소리는 기억이 나는데, 안면윤곽과 연결을 시키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서너 번 반복해서 만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되는데, 그러기 전까지가 문제다.
물론 만나지 않은 지 여러 달이 지났을 때에도 안면인식기억이 가장 먼저 소실되는 것같기도 하다. 본인이 알면 속상하겠지만, 헤어진 지 반년이나 일년만에 만난 사람이 거의 새로 만나는 다른 사람쯤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오래 헤어져 있다가 만나도 여전히 기억이 잘 나는 사람이 있는데(전화라도 하고, 문자메시지라도 나누면서 그 사람에 관련된 기억정보를 자주 열어본 경우인 것같다), 머리에서 한번 정리된 사람은 좀 다른 것같다. 이런 건 마치 사진을 찍으면 얼굴 형태가 여러 가지로 나오는 것처럼 내 머릿속 잔상이 그중 한 형태로만 남아 있다가 실물을 보는 순간 당황하는 것같다.
더러 이런 내 증세를 아는 사람은, 나 아무개야, 이렇게 먼저 말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때는 거의 0.001초만에 기억을 회복해낸다. 게다가 텍스트 정보는 세세한 것까지 빠짐없이 다 기억해서 대화에 아무 불편함이 없다. 10년 만에 만난 사람이라도, 어제 저녁에 헤어졌다가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굴 수도 있다. 심지어 민감한 감정 교류 기억까지 고스란히 회복된다. 몇 년 전 30년만에 만난 대학 시절 여자친구가 여름학기 봉사활동 얘기를 하는데, 그와 나 사이에 섬세하게 오고간 감정까지 회복되는 걸 경험했다. 얼굴은 굉장히 많이 달라졌는데도 30년 전의 기억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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