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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스님에게 여쭈었다

경기도 양주 봉선사에 갔다가 1978년 여름방학 약 1달간 내가 머물던 방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하여 조실로 가니 앞마당에서 누군가 잡초를 뽑고 있다. 뒷모습이 틀림없는 월운 스님이시다. 지금은 조실로 있다고 들었다.

- 큰스님, 풀을 뽑으시는군요?

- 뽑는 게 아니라 미는 거유. 뽑히질 않으니 밀지.

그뿐, 괭이로 잡초가 깔린 흙바닥을 밀고 계시는 걸 잠시 지켜보다가 돌아섰다.

마침 늙은 장애견 바니 할머니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굳이 30년도 더 지난 날을 들추어 피차 어지러운 기억의 숲을 헤매는 것도 번거롭다.

스님에게야 수없이 찾아온 손님 중의 하나였을 뿐이니 더욱 더 그런 수고를 끼쳐드릴 필요가 없다.


자료를 보니, 스님 세수가 86세다. 한 눈에 매우 건강해보인다. 잠시 머물던 스물한 살의 내게도 운력을 강조하시어 오전마다 일을 시키시더니 당신은 지금껏 그래오시는가 보다.


- 보이는 건물 왼쪽 끝방이 1978년 여름방학 때 내가 잠시 머물던 곳이다. 그 오른쪽 방이 스님께서 기거하시던 방인데, 여기서 스님은 불경을 번역하셨다. 한문원전을 놓고 원고지에 대고 바로 번역을 해내는 게 신기해보였다. 내가 이후 한문을 열심히 공부한 계기 중 하나다. 외출했다 오시면 내 또래 스님이 시원한 물이 담긴 대야를 마루에 올려놓곤 했는데, 그러면 스님은 거기서 발을 씻은 다음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 건물 왼쪽에는 아무 것도 없는 언덕배기여서 종종 이쪽을 통해 뒷산으로 산책을 가곤 했었다.


아래는 봉선사 큰법당 등이다. 새로 생긴 건물이 너무 많아 옛 흔적을 찾느라 고생했다. 스님들하고 산책하던 뒷산 길에도 전각이 너무 들어차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스님들과 축구하며 놀던 절 입구 학교는 용도는 모르지만 아직 있는 듯하고, 함께 권투시합을 구경하던 길옆 가게들은 다 절 땅이 되어 연꽃밭이 되거나 주차장으로 변했다. 새로 지은 건물들은 안찍었다. 심술이 났는지 찍고 싶지 않았다. 연꽃축제 중이라는데 한 컷도 찍을 만한 연이 보이지 않아 결국 찍지 않았다.


- 스님들이 깻잎을 좋아해서 알뜰히 뜯어간 모양이다. 

순에 달린 잎이 몇 개씩만 남아 들깨가 앙상한 대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