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전막(스크린도어)에 허접한 시들이 지저분하게(내 눈에만) 붙어 있는 걸 종종 본다.
도무지 시라고 할 수 없는, 마치 아무 재료나 마구 뒤섞어 놓은 글이 버젓이 걸려 있다.
나는 대학 시절, 김동리 선생으로부터 쉼표와 조사 사용법을 배웠다. 구체적인 걸 배웠다기보다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걸 회초리 맞아가며 배웠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같다. 나와 함께 문예창작과를 다닌 친구들 역시 김동리 선생의 혹독한 문법, 어법 교육에 진저리를 냈을 것이다. 조사 하나 쓰는 문제로 한 시간을 다 쓸 정도였다.
그와 함께 나는 서정주 선생의 지도를 받았다. 시가 뭔지 그분이 알려주셨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여러 재료 중 서로 어울리는 것을 모아 최상의 레시피를 찾아내어 차린 밥상 같은 것이 시라는 건데, 요즘 대부분의 시를 보면 무의미한 비빔밥 같다. 재료 손질조차 안된 거친 나물밥, 나아가 여물(소 먹이) 수준의 시가 너무 많다.
특정 시를 놓고 의견을 적기에는 부담이 되니 오늘 아침 카톡에 올라온 글 한 줄을 놓고 보자.
감동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감동이다. 언어가 바르지 않으면 내용과 실질이 달라진다.
사실 이 그림을 올린 분에게 답글 달다 그만두었다. 이해 못하면 화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하찮은 일로 내 시간 내어 일일이 가르쳐 주기도 귀찮다. 그래서 적던 댓글 복사해 여기 옮긴다.
- 혹시 바람 안맞은 꽃은 피지 않습니까? 나이 먹으니 아름다운 단어만 나열해놓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시를 보면 짜증이 납니다. 진실에 감동하고 사실만 받아들입시다.
이 사진글에서 틀린 건 딱 하나다. '꽃은'이 아니고 '꽃이'다.
김동리 선생이 나이 60이 넘어서도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시던 가르침이다.
만일 글쓴이가 꽃이라고 했으면 이 글의 '꽃'은 글쓴이가 본 특정한 꽃으로 변한다. 해바라기나 다알리아, 과꽃일 수도 있다. 그 특정한 꽃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든, 눈보라를 맞으면서 피든 그것은 개별적인 사안이므로 인정이 가능하고, 감동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꽃은'이라고 하는 순간 '바람에 흔들리면서 핀다.'는 설명은 사전적이어야 한다. 이 꽃은 '식물의 가지나 줄기 끝에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으로 피어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꽃이 꼭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던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꽃은 피고, 흔들리지 않아도 핀다. 실내에서 기르는 난초는 바람을 맞지 않아도 꽃을 피운다. 그러므로 저 사진글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사실도 아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이런 문장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자신의 두뇌가 아직 논리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 사기당하고, 거짓 선동에 넘어가고, 독재자의 외침에 박수치는 일이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확대과장하면, 박정희가 이런 속임수 위에 앉아 웃고, 친일파들이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살아간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문장의 주인은 이근대라는 사람이다. 1965년 6월 27일 생으로 0530이 된다. 바이오코드상담사라면 벌써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이심전심이 이런 걸 가리킨다. 이 사람 프로필에 보니 '새들은 죽은 나무에 집을 짓지 않는다'도 있다. 까치는 죽은 나무인 전봇대에도 집을 짓는다.)
심심파적 삼아 하나 더 올려보자.
같은 분이 잇따라 올린 그림이다.
이 사진 올린이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들이 태연하게 "복받으세요"라고 하는 인사하는 걸 종종 본다.(축복받으라고도 한다.)
친하게 지내는 한 장로가 내게 그렇게 말씀하길래 "전 복 안받습니다."하고 사양한 적이 있다.
당연히 그분은 당황했다.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은 귀신이 갖다주는 우연한 이익을 가리킵니다. 福이란 글자의 변 示가 귀신입니다. 제가 제 손으로 일하여 이익을 구하지 왜 귀신의 도움을 받습니까. 특히 기독교인들이 복을 주고받으라고 덕담하는 것은 우주의 주재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배신입니다. 그분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셨다는데 왜 하찮은 귀신 따위에게 복을 빕니까."
(축복의 祝도 귀신이 주는 것이다.)
좀 까칠하게 느낄 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산다.
*** 다음 사전이 나를 웃겼다.
'예쁜'을 빼야 한다. 예쁘지 않으면 꽃이 아닌가. 예쁘고 예쁘지 않은 주관을 사전 해설에 넣어서는 안된다.
저 위에 복사해 옮길 때 나는 '예쁜 색깔' 대신 '여러 가지 색깔'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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