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행 승려나 일반 신도들 주장을 들어보면 불교를 믿는 이유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불교는 진리를 찾는 종교만이 아니다. 단지 진리만 배울 것이라면 종교가 아니라 학교나 연구소, 그리고 도서, 논문 등을 통해 배우거나 찾는 게 훨씬 빠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만유인력, 상대성이론, 전자기이론, 이런 건 진리다. 참 이치라는 뜻이다. 붓다가 처음 깨달은 것도 12연기론이라는 진리였다. 원자의 세계, 분자의 세계에서 이러한 연기법은 명확히 증명된다.
그런데 그 이후, 그러니까 붓다가 자신의 고민이던 생로병사의 문제는 이러한 진리보다는 지혜로써 풀었다.
지혜는 진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간 해법이다. 요즘 말로 설명하면 진리를 전제로 한 솔루션이다. 붓다가 존재의 3가지 특징을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라고 말했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현상에 대한 규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혜로 풀어나갔다.
* 불교에서는 지혜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반야(팔리어 발음)라고 주로 말하고, 반야바라밀(파라미타), 또는 보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 불교에서는 진리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다르마(佛法으로 번역)를 그대로 쓴다. 달마 스님의 그 달마가 바로 다르마다.
원자는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사슬을 이루는데, 이러면 성질이 나타난다. 원자로 있으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결합하여 분자가 되면 눈에 띈다. 하지만 그 분자도 결합구조를 해체하면 또 사라진다. 그런다고 해서 원자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언제든 다시 생겼다가 또 없어진다. 따라서 <존재의 3가지 특징>은 분자세계의 진리이지 원자 세계의 진리는 아니다. 원자는 끝없는 핵분열과 핵융합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면 원자의 성질도 달라진다. 원자가 달라지면 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천변만화한다.
붓다의 깨달음은 12연기론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인연의 법칙을 뛰어넘어 생사윤회의 문제까지 파악했으며, 윤회를 하지 않는 궁극의 도리를 깨달았다. 이 부분에 대해 붓다는 말하지 않았다. 이른바 위대한 지혜, 궁극의 지혜인 <마하반야바라밀>은 붓다만이 행할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현대뇌과학은 좌뇌, 우뇌를 통섭하는 전두엽을 발견하고, 이 기능을 연구하면서 감성과 이성을 대표하는 이 좌우뇌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내었다. 좌우뇌는 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하지만 전두엽은 두 가지 뇌를 동시에 살핀다. 감성적인 요소라도 좌뇌의 거울이 비쳐보고, 이성적인 요소라도 우뇌의 거울에 비쳐 그 오류를 점검하고,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이는 마치 다르마를 기본으로 삼되 반야로 행하는 붓다의 기본원칙과 맞아떨어진다.
나는 바이오코드를 강설하면서 다르마와 반야의 차이를 자주 강조한다. 다르마가 금강경의 세계라면 반야는 화엄경의 세계다. 더 부지런히 닦아 세상에 유익해지기를 소원한다.
- 보리수 나무 그늘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12연기론을 계산하고 있는 고타마 싯다르타.
그는 12연기론을 완성한 뒤 "나는 깨달았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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