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전쟁으로 젊은 사람이 많이 죽어서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가 발달했다. 그래서 곳곳에 아미타불을 모셨다. 그러다보니 신라불교는 귀족불교로 변질이 돼갔다. 말하자면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데서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이 대통령에게 아부 떠느라고 갖은 종질을 해대는 것처럼, 당시에 승려들이 왕을 부처보다 더 높였던 것이다.
이에 철원에 살던 불교 신도(향도;향기로운 사람들) 1500명이 뜻을 모아 석가모니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철불로 조성하여 모시는 대불사를 일으킨다. 나중에 이러한 사상이 이곳 철원을 중심으로 궁예라는 지도자가 나오고, 왕건이 집권하는 토대가 된다.
* 법신불 : 근본불. 자연불. 천진불. 우주의 진리 그 자체로서 삼라만상, 삼세에 없는 곳이 없다. 현대물리학으로 말하면 중력, 쿼크와 같은 근본 진리를 상징한다. 화엄경에 나오는 부처다.
* 비로자나불 ;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의 부처란 뜻이다. Mahāvairocana
대승불교에서 석가모니 붓다를 낳게 한 근본으로 깨달음의 원천인 법신불로 비로자나불을 만들어내고, 이어 보신불로 아미타불을 만들어낸 것은 탁월한 상상력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비로자나불은 형상이 없는 부처로 유명하다.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형상이 있을 수 없다. 대승불교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규정을 했다. 하지만 중생을 위해 비로자나불의 형상도 하는 수없이 만들어 냈으니, 바로 신라사람 1500명이 그런 서원을 세웠다.
철원 지역 불교신도 <향기로운 사람들> 1500명은 진실로 지혜의 존재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무지를 타파하고, 진리의 근원에 부합하겠다는 열망으로 이 비로자나불을 조성했다. 그 어떤 불상 조성 인연보다 거룩한 발원이다.
비로자나불상의 등에 새겨진 명문을 보면 당시 이 불상 조성에 참여한 불교신도들의 열렬한 불심을 엿볼 수가 있다.
香徒佛銘文幷序
향도불의 명문과 서
夫釋迦佛, 晦影歸眞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흐릿한 그림자를 남기신 채 참의 근원으로 돌아가셨다.
遷儀越世, 紀世掩色
또한 의례를 떠나고 세속을 뛰어넘으시고, 세상을 끝내고 형상마저 가리셨다.
不鏡三千光歸 一千八百六載耳
그렇게 이 우주를 비치던 빛을 거두어 가신 지 1806년이 되었다.
慨斯怪斯彫此金容,口,口來哲,
이를 슬퍼하여 쇠붙이로 형상을 구하였으니
因立願之 唯願卑姓室 遂棨椎自擊 口口覺長昏
이로하여 바라는 것은 오직 비천한 우리들이 창과 방망이로 스스로 두드려 긴 어둠에서 깨우치며
換庸鄙志, 契眞源, 恕以色莫朴口見,
게으르고 어리석은 생각을 바꾸어 부처님의 근본 진리와 딱 맞아떨어지기를 바라며 OOO하고자 합니다.
唐天子咸通六年乙酉正月日, 新羅國漢州北界, 鐵原郡到彼岸寺, 成佛之時(伯으로 보기도 함)
신라 경문왕 5년(서기 865년) 을유년 정월에 신라국 한주 북쪽 철원군의 도피안사에서 불상을 조성할 때에
士口龍岳堅淸, 于時口覓居士, 結緣一千五百餘人, 堅金石志, 勤不覺勞因
... 1500여 명이 뜻을 모아 금석같이 굳은 마음으로 불사를 한 바 힘든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번역은 차후 더 가다듬겠음)
불상이든 절이든 지을 때 복을 비는 인연은 많아도, 이처럼 무지를 깨우쳐 진리에 이르겠다고 1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원하여 불상을 조성한 사례는 흔치 않다.
아,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신라인들의 간절한 기원이 이처럼 거룩하였다.
비로자나불이 완성되면서 서기 865년 경문왕 5년에 도피안사가 창건되었다.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신 게 아니라 비로자나불을 먼저 조성하여 이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절을 지은 것이다.
그러다가 1898년 화재로 전소, 주지 법운이 재건하였다. 철불은 화재에도 안전했다.
1941년에 절을 개수하였다.
1950년 육이오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절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59년 지역 관할 15사단 연대장 고주찬 대령이 폐사지에서 비로자나불을 발굴하였다. 이후 15사단이 복원 관리하였다.
1988년 국방부는 이 절을 조계종으로 이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때 어리석은 누군가가 철불 비로자나불에 금박을 입혀 볼썽사납게 했는데
2006년 문화재청에서 복원 사업을 벌여 본래면목을 되찾았다.
* 비로자나불 발굴기연 ; 1959년 철원 지역 15사단장 이명재 장군의 꿈에 "땅속에 묻혀 답답하다."는 비로자나불과 이 부처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한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 이튿날 전방시찰에 나선 이 장군이 갈증을 느끼고 한 마을에 들어가 물을 청하는데, 꿈에 본 여인이었다고 한다. 이에 여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그런 불상이 어디 묻혀 있는데 없느냐고 물으니 그럴만한 데가 있다면서 앞장서는데, 그곳이 바로 철원 도피안사 폐사지였다고 한다. 이에 연대장 고주찬 대령이 나서서 발굴을 하였고, 이후 15사단 장병들이 철불을 모신 후 도피안사를 재건하였다고 한다.
- 법당에 걸려 있는 이명재 사단장(소장)과 고주찬 연대장(대령)
이 비로자나불은 조성한 1500여 불자들의 뜻도 숭고하지만, 미학적으로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미륵반가사유상을 뛰어넘는 한국의 미소가 이 불상에 서려 있다. 너무 늦게 발굴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 미소는 어디 비할 바가 없다. 현재 국보 63호다.
한편 도피안사는 금강산 유점사 소속 말사인데 분단 후 설악산 신흥사 소속으로 바뀌었다.
교구 본사인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는 “도선이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나온다. 아마도 이 불상 조성을 주도한 이는 도선 스님이고, 원래는 안양사에 모시려고 조성하다가 도피안사를 따로 창건한 듯하다.
이제 비로자나불의 미소를 감상하자.
신라인들이 상상한 깨달음의 미소다.
- 비로자나불의 손모양을 지권인(智拳印)이라고 한다.
오른손은 불계, 왼쪽은 중생계인데 서로 맞잡은 것은, 불계와 중생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맨 처음 말씀하신 것이 "아, 기특하구나.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구나."이다.
또한 열반경에서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고 나온다.
법화경에서도 일체개성(一切皆成)이라고 한다.
* 불자들을 위한 안내
비로자나불을 상상하며 외우는 <광명진언>
- 신라 원효대사가 특별히 강조한 진언. 원효는 중생이 이 진언을 2번, 3번, 7번 외우거나 듣기만 해도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고 했다. 무덤을 쓸 때는 그릇에 흙을 담은 다음 광명진언을 108번 외운다. 이 흙을 묘지에 뿌려주면 망자가 죄업을 소멸하고 서방 극락세계로 간다고 한다. 원효 스스로 광명진언 모래를 바가지에 담아 갖고 다니며 무덤을 지나칠 때마다 뿌려주어 영가를 천도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49재 때나 천도재 때 이 광명진언을 쉬임없이 외운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 옴!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비로자나부처님! 진리의 큰 도장과 보주와 연꽃으로 진리의 빛을 비추사 OO를 해탈케해주소서! 훔!
옴 : 진언을 시작하는 근본음
아모가 : 빈 것이 아니다. 불공(不空). 꽉 차 있는
바이로차나 ; 비로자나불. 원효대사는 대승기신론소에서 형상없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크나큰 지혜와 광명이며(大智慧光明) 세상 모든 것을 두루 비추며(遍照法界) 참되게 아는 힘을 간직하고 있으며(眞實識知)맑고 깨끗한 마음을 본성으로 하고 있으며(自性淸淨心) 영원히 행복하고 번뇌가 없으며(常樂我淨) 청량하고 변함이 없다.(淸凉不變)
마하무드라 : 우주 진리의 큰 도장.
마니 : 무엇이든 이뤄지는 보주(寶珠).
파드마 : 연꽃. 참된 나.
즈바라 : 광명. 빛을비춰주소서!
프라바릍타야 : 전변(轉變)하다. 깨닫다. 변하다.
훔 : 진언을 마무리하는 근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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