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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왜 절에 나가시느냐고 물으니... / 붓다의 깨달음을 토론하다

30년 불자(불교 신자를 뜻하는 말. 者가 아니라 子를 써서 붓다의 신실한 제자임을 가리킨다)라는 한 여성을 보았다. 삼천 배도 하고, 성지순례도 하고, 고승 참배도 하고, 초하루 법회도 보고, 천도재도 하고, 연등도 달만큼 달았단다. 물었다.

- 싯다르타는 왜 좋은 궁궐과 태자란 지위와 아리따운 부인, 첩들을 놔두고 집을 나갔대요?

~ 성밖에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늙은 사람을 보고 출가한 거지요


- 태자면 궁중 의사라도 보내어 아픈 사람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 밥 주어 구휼하면 되지요. 노인들은 안락하게 요양원을 지어주고요. 죽림정사, 기원정사, 이런 데다 요양원 짓지 않고요. 태자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걸요?

그렇다 치고, 그까짓 게 부귀환락보다 더 중요할까요? 맛있는 음식 실컷 먹고, 예쁜 여자 마음껏 취할 수 있고, 노래하고 춤추고... 아니, 그걸 못해서 저 난리들인데... 봉사활동은 신하들 보내 적당히 하면 되고...

~ 예?


- 아니 태자니까, 나중에 왕이 될 사람이니까 그만한 재력도 있고 힘도 있고, 그러면 왜 직접 그 사람들을 구해주지 않은 채 방치해놓고는 혼자만 떠나갔냐구요?

~ 글쎄요. 생로병사를 초월하려고...


-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배고파 우는 백성들이 있는데 왜 그냥 두고 멀리 설산으로 떠났지요? 매정하게시리. 그게 미인과 산해진미와 태자라는 지위를 버릴만큼 중요하냐고요. 재벌들 보세요. 한 푼이라도 덜 기부하려고 머리 쓰잖아요. 지금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인 이건희 씨가 우리나라 부자 1등이잖아요. 죽어도 내놓기 싫은 게 돈이고 권력인데...

~ 그러게요. 아까웠을 텐데...


-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 몇몇 밥 주고, 병 고쳐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온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로병사를 한 번에 끊어 해탈시키는 무슨 묘안을 찾으러 갔겠지요.

~ 아, 그렇겠네요.

- 싯다르타 당시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 나아가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뭇 생명까지 구원하는 근본적인 답이 없을까 하여 그 답을 찾으러 설산에 간 거겠지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 가난한 놈이 부자되면 움켜쥐고만 있고 싶고, 천한 놈이 권력 잡으면 그거 안놓으려고 부둥켜 안는 법이지요. 하지만 태어나고 보니 태자래요. 게다가 아버지는 왕이고, 엄마는 공주래요. 결혼하고 보니 아내는 태자비가 되고, 자식은 저절로 왕족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냥 그게 세상이지요. 산해진미조차 일상 음식이고, 예쁜 미인이라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취할 수 있으니 급할 게 하나도 없어요. 목이 말라야 물이 그립고, 배가 고파야 음식이 기다려지는데 싯다르타는 그럴 일이 없잖아요? 배가 고팠겠어요, 목이 말랐겠어요?

~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 재벌 자식이 세상 구경한답시고 집에서 뛰쳐나온 셈이지요. 재벌한테는 가난해보는 게 현장체험이라니까요. 싯다르타가 템플스테이 며칠 하러 설산에 갔나요?

~ 그렇지는 않겠지요.

- 그럼 그렇게 좋게 봐줍시다. 


- 집나간 싯다르타는 설산에 가서 뭐했대요?

~ 6년 고행...

- 다리 꼬고, 손 비틀고, 그런 요가요?

~ 고행도 하고요.

- 밥 굶고, 빨개 벗고, 뭐 그런?

~ 그래서 고행으로 안되니까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수련했지요. 다섯 친구들은 다 떠나가버리고요. 싯다르타가 포기했다, 변절했다 이러면서요.

- 그나저나 싯다르타는 거기서 뭘 깨달았대요?

~ 생로병사를 끊는... 

- 그럼 싯다르타가 깨달은 이후 사람들은 태어나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았습니까? 출가 전에 보았던 성밖 사람들은 병도 고치고, 가난도 이겨내고, 늙지도 않게 됐나요?

~ 예?

- 생로병사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끊는 법을 찾으러 갔으니 그걸 깨달은 거 아닌가요? 인류를 구원했다면서요. 아니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그렇게 단순하게? 차라리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여 외국여행을 떠나지 않고. 당시 중국이나 조선으로. 조선에 왔으면 단군도 만났을 텐데...

~ 글쎄요.

- 그럼 싯다르타가 뭘 깨달았다는 거지요? 집 나오니까 고생이다, 이런 건가? 성밖 사람들 중 아무도 구원받지 않은 거잖아요? 막상 나와보니 모든 중생이 다 죽을고생이다, 그냥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게 그나마 좋더라, 이것도 복이다, 이런?

~ 그건 아니지요.

- 맞아요. 싯다르타는 분명히 답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너무 신이 나서 마구 뛰었지요. 너무나 황홀해서 7주 동안 자기가 깨달은 내용을 되씹고 돌아보고 또 생각했나봐요. 그러다가 이 좋은 걸 동료들에게 자랑해야겠다 결심했지요. 그 뜨거운 여름에 친구들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잖아요. 그래놓고 녹야원에 머물던 다섯 친구들에게 자기가 깨달은 걸 열정적으로 설명하잖아요. 아이작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을 때, 알버트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했을 때도 이처럼 감격적이진 않았을 거에요. 붓다의 깨달음은 그만큼 우주적인 소식이었던 모양입니다.

~ 초전법륜이라고 하잖아요.

- 그렇지요. 그런데 녹야원으로 달아났던 이 친구들이 잘 알아듣지를 못해요. 싯다르타는 이 친구들을 며칠씩 붙들고 자기가 뭘 깨달았는지 설명했어요. 그러다가 한참만에야 겨우 교진여가 말귀를 알아듣자 싯다르타는 기뻐서 마구 소리쳤지요. 교진여가 알아들었다! 교진여가 알아들었다!

~ 예, 맞아요.

- 그럼 보살님도 싯다르타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들었어요? 싯다르타가 얘기해줬잖아요?

~ 언제요?

- 아함경이 그거 아닌가요?

~ 아, 그렇지요.

- 내가 보기에, 생로병사 넉 자로 끝나는 세상인 줄 알던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생로병사생로병사....로 이어지는 무수한 인연의 법칙을, 연기의 법칙을 알아낸 것같아요.


~ 그게 무슨 말이지요?

- 죽는 게 낳는 것이라는 걸 알았지요. 질량불변의 법칙, 에너지불변의 법칙, 즉 윤회의 고리를 연기론으로 이해한 거지요.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싯다르타는 이 고리를 끊어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평생 노력한 거구요.

~ 어떻게 윤회를 벗어나요?

- 그래서 그 방법을 찾아나서지요. 그 열쇠가 바로 반야인 것같아요. 진리를 뜻하는 다르마, 이 다르마를 넘어서는 지혜 즉 반야가 있지요. 반야를 닦아 해탈하는 법을 찾은 거지요. 윤회의 사슬에 묶인 영혼이 마침내 반야의 열쇠로 사슬을 풀고 자유를 얻는 거지요. 마술사처럼.

- 그 열쇠가 뭔데요?

- 나도 찾고 있어요. 열쇠 이름은 반야래요.

이 열쇠를 찾으려면 먼저 8정도의 방을 지나야 하고, 그래서 겨우 다르마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 수식관 등 불철주야 수련하여 마침내 반야의 열쇠를 잡을 수가 있다는 거지요.

~ 아,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군요. 열쇠 찾으려고.

-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그 열쇠를 찾은 이가 몇 명이나 됩니까?

~ 열쇠요? 깨달은 분요?

- 몇 명이나 부처가 됐냐고요.

~ 석가모니 부처님 말고는...

- 되게 어려운 일인가 봐요. 2600년간 싯다르타 말고 부처된 이가 아직 없으니...

그나저나 싯다르타는 윤회 안했을까요?

~ 해탈했다니까 하늘로 갔겠지요.

- 다시 태어나 회사 다니고 있지는 않을까요? 쌍룡차 다니다 잘리지는 않았을까요?

이 우주 안에서 도망갈 데가 없는데... 우주 법칙에도 안맞고...

~ 에이, 아니겠지요. 천상에 계시겠지요.


- 그냥 그렇게 믿읍시다.

그런 건 우리가 의심할 필요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지요. 오로지 진리를 등불 삼으라고 했으니 그러기만 하면 되지요.

~ 그럼요.

- 그래서 나도 반야를 찾아 그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요. 부처님이 본 세상을 나도 보고 싶거든요. 아마도 나가르쥬나 즉 용수보살은 붓다가 본 세상을 직접 본 것같아요. 나가르쥬나만큼이라도 눈을 뜰 수 있다면 좋겠어요. 달마도 본 것같고, 사리불도 본 것같고.....

~ 아.

- 절 백년 다녀도 눈감고 다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 애들 밥해주러 가야 하는데...

- 그래야지요. 나도 갈 데 있고...



<자식은 어미를 버릴지라도 - 동산 양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