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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너는 왜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 <2>

<너는 왜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 - 투신 자살한 대구 중학생 유서 전문>

<강남역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들>

<무엇으로 흥분할 것인가>

<세계는 나로부터 열린다>

<정신질환자 대책과 사회관심을 호소한다>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 구의역 사고, 수락산 등산객 피살 사건, 남양주 지하철 사고 등을 다루는 우리 사회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중 <누가 열아홉 살 김군을 타살했는가>란 중앙일보 칼럼을 보고 한 마디 짚고자 한다.

천안함 침몰, 세월호 침몰, 메르스 전염 사태, 북핵 문제 등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세상의 주인공은 <나>이고, <나>로부터 이 우주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라는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등학교 때 다니던 불교학생회에서 배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이 페이스북을 살펴보면 잘 알겠지만 사람들은 뭔가 사실과 상식을 넘어서는 '과도한' 주장을 한다. 이래야만 옳다, 저래야만 옳다, 욕설까지 마구 퍼붓는다. 욕설의 수준을 보면 학문과 교양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가능한 한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냐만 가려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나도 심한 욕을 먹을 때도 있다. 내가 들어본 욕 중에 가장 큰 것은 <曲學阿世하는 危險한 인간.. 너무 單純無識하여 反論 쓸 價値도 없고... 幼稚한..>란 한자어 투성이의 초당대 교수란 자의 욕설이었다.


그래도 내 세상을 위한 한 마디 적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부터 시작하면, 왜 우리는 황해도에서 발진하여 흙탕물 투성이라 눈앞도 안보이는 서해 깊은 물속 수십 킬로미터를 유유히 헤치고 와서 어뢰를 쏘고 도망가는 북한군 소형 잠수정을 만들지도 못하고, 추적하지도 못하느냐는 것이다. 정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우리 해군 전함은 인천 앞바다까지 올라가면 안된다는 말이다. 아니, 더 상상하면 북한군 잠수정은 공해로 내려왔다가 으슥한 시점에 부산항이든 진해항이든 평택항이든 제 멋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 우리 해군은 처벌 받은 장교 하나 없고, 잠수함탐지기 대신 어군탐지기 사 달아도 그만이다. 그저 북한 욕만 하면 자주 국방이 저절로 되는 줄 아는가. 안보 위기 뒤에는 늘 국방비라가 뒤따르는 게 이게 무슨 이치인가.


세월호 배가 기울 때 선실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왜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을 무슨 성경이나 불경 섬기듯 떠받들었단 말인가. 불법개축이나 적재중량초과니 등은 나중 문제고, 당장 배가 기울고 있는데 왜 그 많은 교사들이나 승객들은 선실에 스스로 갇힌 채 탈출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 물론 갑판에서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 배가 더 빨리 뒤집힐 수나 있다지만 그런 대형여객선은 인체 하중 따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면 일단 갑판이라도 나가 상황을 살펴야지 그 깊은 지하실에서 대체 뭘 했단 말인가.

이래놓고 해경이 구조를 안했다, 대통령이 7시간 딴짓했다는 둥 남 비난에만 열중한다.

대통령 말도 안믿는 국민들이 왜 선장 말은 철썩같이 믿었단 말인가. 탑승자 476명 중 172명만이 자주적으로 행동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단원고 탑승자 325명중 생존자는 78명으로 24%가 생존하고, 일반인 탑승자 151명 중 생존자는 94명으로 62%가 생존했다.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 차이가 이처럼 끔찍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강남역 남녀공용화장실 살인 사건이나 수락산 등산객 살인 사건은 <나>의 문제를 넘어서는, 계산이 아주 복잡하기니 하나 사회 책임을 물을 사안이다. 두 사건 모두 범인이 조현병 환자라는 점을 지적한다면 보건복지부 책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도 딱히 보건복지부 책임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법률로 이 환자들을 강제할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인권 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 이런 묻지마 살인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빌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본질은 들여다보지 않고 추모 행렬만 따라다닐 것이다.


구의역 지하철 안전문 사고의 경우 작업할 때 2인1조로 하라는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1시간 내 출동해야 한다는 계약과, 당시 다른 역에도 같은 고장이 나서 구의역에는 미숙련공(19세면 고등학교 졸업하여 취직한 지 몇 달 안되는) 한 명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5월 29일 오후 5시 45분에 구의역 역무실에 들러 안전문 열쇠를 받았다. 고장난 문은 두 곳. 이때 역무원은 김군 혼자 왔다는 걸 알면서도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무슨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군은 5-3스크린도어를 먼저 수리했다. 문제가 없었다. 9-4로 이동해 작업했는데, 이때 진입 중이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여기서 나는 김군이 이 작업을 거부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어린 나이에 그러기가 쉽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또한 역무원더러 열차가 들어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야 하는데 역시 나이가 어려 그런 부탁을 하기가 어려웠으리라고 본다. 그렇더라도 김군이 조금 더 자주적인 정신을 가졌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군이 작업을 거부했다면 다른 누군가가 홀로 정비를 했을 것이고, 그 역시 위험에 노출되어 사고를 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군 문제는 그가 소속된 회사의 문제이고, 서울매트로의 문제이고 서울시장 박원순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박원순 씨가 지금 아래서 일어난 일이라 몰랐다는 변명을 하는데, 그럴 거면 박근혜 대통령 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사고와 수락산 등산객 살인 사건을 보자.

강남역과 구의역에는 정치인들이 떼를 지어 다녀가고 시민들이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요란한 추모를 했지만 막상 수락산과 남양주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몇 날 며칠을 떠들어대던 종편도 수락산과 남양주 얘기는 잘 안한다. 시청률이 안오르는 모양이다. 

수락산과 강남역의 살인 사건의 차이는 60대 여성과 20대 여성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경박하다. 구의역과 남양주 지하철 사고의 차이 역시 이른바 비정규 사고임에는 똑같다. 하지만 19살 김군은 추모하고 나이 많은 남양주 노동자들은 추모하지 않는다. 이게 우리 사회의 천박함이다. 그러면서 뉴스조차 추모조차 자기 입맛에 맞아야 다뤄지고, 그렇지 않으면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침팬지와 인류는 원래 분류상 <사람과> 소속 동일 유전체였다.

그러니까 모두 침팬지였다.

그들은 안전한 밀림에서 과일 따먹고, 위험할 때는 나무에 올라가면 된다고 믿었다.

그때 자주 침팬지 무리가 밀림을 떠나 사바나로 나가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강한 이빨도, 빠른 발도, 날카로운 뿔도, 두꺼운 가죽도 없는 이 침팬지 무리들이 사바나로 나갔다.

이들은 거기서 다른 맹수들이 갖고 있지 않은 무기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바로 두뇌였다. 이들은 두뇌로 계산하여 함정을 파고, 화살을 만들고, 창을 깎고, 언어를 발명하고, 불을 사용했다. 바로 오늘의 우리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두뇌를 이용하여 자주적인 판단을 해왔기 때문이다.

두뇌계산에 실패하면 우리는 도로 침팬지로 돌아갈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을 국가에 돌리고, 국가가 뭐든지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밀림에서 안주하려는 침팬지와 뭐가 다른가. 국가란 곧 우리다. 민주국가란 우리들의 국가란 뜻이다. 그런데 허구헌날 국회와 정부를 비난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나>로부터 국가가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안의 독재, 봉건 유습, 가부장 의식, 남성우월주의 따위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들의 국가가 건강해진다.


사고가 난 구의역 9-4 안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