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稀代)의 위작(僞作) 스캔들이란 말. 미술계의 추문(醜聞)인 가짜, 위작 스캔들을 보면 우선 개탄할 일이라는 생각 이전에 살아 생전 가난과 병고, 무명의 설움 속에서 살다가 간 화가와 그로 인해 그의 사후 후대의 누군가가 누리는 엄청난 부(富)가 생각이 나 불편한 마음이 든다. 작품의 배경은 이중섭이 타계한 지 2년 정도 지난 1958년이다. 이승만의 삼선(三選)을 위한 검은 돈이 필요한 암흑 세력과 먼 미래를 보고 돈이 되는 이중섭의 그림을 사모으는 일본 야쿠자. 두 세력의 접점은 이중섭이었다.
팔기 위해 모으는 세력과 미래를 보고 사들이는 세력의. 친일, 우익, 부정(不淨), 불법, 관건 선거, 권력 등이 한데 어우러진 시대이다. 이중섭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허중이란 자가 있다. 스승 이중섭을 느끼기 위해 스승이 그림을 그린 장소를 찾아다니고 스승이 노동한 곳까지 가서 직접 체험을 하는. 그는 스승이 화가(畵家)가 아닌 화공(畵工)을 자처했다며 자신도 그렇게 불러달라고 말한다. 고아원에서 자란 스물 넷의 허중은 스승의 그림을 모사(模寫)하고 있다. 허중에게 모사는 스승으로부터 받던 가르침을 잇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승만 - 이기붕 - 곽영주 - 이정재 - 임화수 라인의 끝줄인 마창룡은 부정 선거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허중에게 가짜 이중섭 그림을 만들어 팔자고 제의한다. 우리에게 그토록 크나큰 희생과 수모를 안긴 일본에게 그깟 그림 몇 점 속여 판다고 대수이겠는가, 란 논리를 내세우며. 이허중은 이중섭의 생활 자체를 모방, 답습했다. 안 피우던 담배도 일부러 피우고 안주 없이 오직 왕소금만 놓고 소주를 마시는 식으로. 아니 이중섭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이허중은 진짜 이중섭 선생님 혼이 자신에게 빙의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저절로 모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창룡으로부터 거금을 받은 이허중은 다른 것은 다 스승을 닮아도 가난만은 닮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허중은 모사가 범죄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무인 듯한 착각마저 갖는다. 문제는 이허중이 조증과 울증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허중은 모든 예술적 영감은 조증(躁症) 상태에서 터진다고 생각한다. 이허중이 이중섭과 절대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불에 타고 찢기고 저주받은 유령의 도시, 수십만 명이 불에 타 죽은 도쿄에 있는 이중섭의 처가와 달리 자신의 처가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중섭의 아내는 일본인인 야마모토 마사코이다. 이중섭은 따뜻한 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의미의 이남덕(南德)이란 이름을 아내에게 붙여준다. 통영, 서귀포, 진주, 칠곡, 대구 등은 이중섭이 거처했던 곳들이다. 이허중이 이중섭과 유일하게 닮은 구석은 정신병력이다. 이허중은 스승 이중섭을 뛰어넘으려는 데만 온 정신을 쏟는다. 4. 19 이후 이허중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왜놈들에게 밀반출한 것으로 몰려 자신은 가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통하지 않아 연행되어 간다. 그에게는 민족혼을 팔아먹은 매국노란 낙인이 찍힌다.
야쿠자들은 자신들이 사들인 그림이 이중섭의 것이 아니라 이허중이 모사한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마창룡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이허중이 살기 위해 자신은 이중섭의 그림을 밀반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 보도가 되어 야쿠자에게까지 알려진 것이다. 마창룡이 고용한 변호사는 이허중에게 진품을 구해 일본에 팔려고 했지만 한 점도 팔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한다....배후에서 마창룡은 진품 소장자들을 설득해 두었다. “소장했던 작품을 이허중에게 팔았다. 그런데 헐값에 팔아 억울하다.”고 진술하면 사들인 가격에 그림을 그대로 돌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진품은 팔아먹고 위작은 진품이라고 하여 되판 것이다. 장물 소장죄 등으로 6개월 형을 받은 이허중은 그것을 이중섭을 공부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련이라 여긴다. 이허중은 그림의 비밀을 안 야쿠자의 협박을 받는다. 이허중은 마창룡에 의해 고발을 당한다. 이허중이 상의 없이 그림을 너무 많이 그리면 언젠가는 발각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림 값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허중은 이중섭의 아들 이태성의 대리인이라는 야마모토로부터 30만원을 받게 된다. 가짜 이중섭이 아닌 이허중으로 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허중에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허중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 허탈감마저 느낀다.
마창룡을 면회간 이허중은 야마모토와는 다른 말을 듣는다. 이중섭의 미발표 유작 전시회에 간 이허중은 자신의 작품을 졸작은커녕 심사조차 할 수 없는 쓰레기라고 악담을 하던 평론가들이 (진품으로 알려진) 자신의 그림을 보고 한없는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본다. 그 그림들은 모작이 아니라 (원본에도 없는) 위작이었다. 인생이 사기인데 예술인들 사기가 아니겠는가란 말을 한 마창룡이 생각난다. 이허중은 사태를 바로잡기로 한다. 이허중은 마창룡이 모사하라며 가져다 준 이중섭의 작품을 숨겨두고 자신이 그린 가짜를 진품이라고 속여 되돌려주었음을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위작을 하나 더 그려 진품이라고 준 것이다.
그리고 일간지 기자에게도 사실을 폭로한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서명이 덧칠해진 것이 밝혀진다. 하지만 이허중은 위작을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기자가 경찰에 신고한 화랑 사장을 편드는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화랑 사장은 신문사 부장의 연락을 받고 위작으로 판명된 작품을 (촬영하라며) 건네준 것이라 말한다. 이허중은 조울증 병력이 있어 오히려 모든 것을 조작한 사람으로 몰린다. ‘가짜화가 이중섭’은 위작 스캔들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가짜화가 이허중이 이중섭의 그림을 모사하기 위해 그의 영혼까지 따라하려 한 것을 통해 예술정신에 초점을 두고 보게 된다.
이중섭과 이허중이 조울증으로 한때 같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던 것을 보며 예술가의 창작과 정신세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 점에서 보면 이중섭과 이허중이 정신병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소설의 정수(精髓)라 할 만하다. 여기에 인생과 예술, 정신세계 등에 대한 작가의 진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이허중은 가공의 인물이다.) 이중섭의 그림세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의 이른 죽음과 명성(名聲)에 어떤 관계가 있으리란 생각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른 죽음이 명성의 필요 충분조건은 아니다.
작가가 소설의 서두에서 제시한 한스 반 메이허런의 위작 스캔들에서 보듯 위작을 진품으로 판정하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감정가들의 면모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중섭은 한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고 한다. 에곤 실레는 200점, 렘브란트는 80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이중섭은 친구에게 자화상을 그려주며 정신이상자가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겠냐며 자신을 정신이상자로 몰아 병원에 가두려는 사람들에게 항의했다.
고흐도 39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최근 고흐가 귓불 일부가 아닌 왼쪽 귀 전체를 잘라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공개되었다. 세례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한 성경 속 femme fatale인 살로메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카라바조에 대해 다시 찾게 되었고 그가 그린 ‘나르시소스’도 다시 보았다. 그림의 압권(壓卷)은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지만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나르시소스가 지은 탄식의 표정이 생동감으로 넘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병은 전이(轉移)를 일으키지 않기에(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고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물론 이는 현대 정신의학의 관점으로는 잘못된 진단이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다.
전이라는 착각이 생겨야 치료에 필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했겠지만 궁금한 것은 정신병도 어떤 단서를 드러내지 않느냐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미술품들을 강박, 멜랑꼴리, 히스테리, 성도착증 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한 ‘라깡의 루브르’를 마저 읽어야 한다. ‘가짜화가 이중섭’의 핵심적 전언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는 거짓이 진실을 죽인 사례가 수두룩하다. 그림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그림은 화가와 소장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발표 유작 등 갖은 명분으로 위작을 그려낼 수 있고, 종종 사건으로 터지곤 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밝혀지지 않은 위작 사건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277 페이지)
이허중은 가짜라고 지목된 이중섭의 진품을 사수하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진품들을 불태우지 말고 차라리 자신을 사형시키라는 말은 비웃음에 부딪히고 만다. 세상이란 하나의 거대한 허상일까? 이렇게 말하면 너무 지나치다. 그러니 세상은 거대한 허상에 따라 진실이 요동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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