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필로폰 맞은 듯 무작정 애국심을 부추긴다는 의미의 속어)이라는 비난을 받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았다.
보지 않고 비난하는 건 옳지 않기 때문에 관람료가 아깝지만 기꺼이 보았다. 동서고금의 전쟁 역사를 즐겨 공부해온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유혹이고, 딸도 역사공부 시킬겸 데리고 갔다.
작년엔가 <국제시장>이야말로 진짜 국뽕이라서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 영화는 연출은 아주 잘 되었지만 육이오전쟁과 영화 나레이션이 나오는 현재 사이의 주요 역사를 다 빼먹어버렸다. 숨기거나 감춘 것이다. 즉 흥남철수 이후 벌어진 4.19혁명, 5.16쿠데타, 10월 유신, 10.26쿠데타, 5,18광주항쟁, 6.10민주화운동, 문민정부 수립, 외환위기 등이 다 빠지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부하려는 듯 박정희가 주도하는 월남전과 서독광부파견 이야기가 장황하다. 그 시대에 청년 시기를 보낸 나로서는 무척 화가 났다. 역사를 숨기려는 의도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중에 티비에서 방여하는 걸 잠깐 보니 그럼에도 연출은 깔끔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은 연출도 엉망이고, 거짓말 투성이고, 도무지 뭘 말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딸에게 재미있더냐고 물으니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감동해야 할지 몰라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딸이 묻는다.
"아빠, 왜 미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뭐라고? 남한하고 북한하고 전쟁했잖아?"
"그런데 왜 미군이 인천에 쳐들어오냐구?"
"그야 인민군이 인천을 점령했으니까. 서울도 빼앗겼고."
"그런데 왜 미군이 싸워? 우리 국군은 어디 갔어?"
여러 가지 이유로 공부를 많이 못한 딸인지라 스마트폰으로 육이오전쟁을 검색해 공부하라고 일렀다.
솔직히 말해 육이오전쟁에 관해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남한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육이오전쟁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장담한다. 이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테니 나중으로 미루고 영화 이야기만 하자.
이 영화는 완전한 허구요 날조다. 스토리, 연출, 연기, 촬영 모두 엉망이다.
영화 본 기억은 다 지워버리고 진짜 인천상륙작전을 공부하자.
1. 엑스레이작전은 우리 해군이 수행한 것이다.
(우리 해군은 육군, 공군과 달리 일본군이 만든 군대가 아니다. 손원일 제독 자신이 민간인 출신이고, 일본해군이 버리고 간 목선으로 해안경비를 시작하여 일본군 출신은 거의 없었다. 있어도 일본군 해군은 조선인은 주요 보직에는 쓰지 않아 애초에 일본군 해군이 많지 않았던 듯)
맥아더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부대원들이 맥아더를 만나 대화하고 경례하는 일은 없었다. 그럴 수도 없다. 거짓말하려면 차라리 이승만 대통령에게 경례하거나 해군참모총장에게 경례하는 것으로 하지 왜 하필 도쿄에 있는 맥아더한테 하는가. 한국에 군사주권이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가?
8월 16일, 인천 출신인 김순기 중위가 이끄는 1개팀, 임병래 소위가 이끄는 1개팀, 장정택 소위가 이끄는 1개팀, 모두 3개팀 장교와 하사관 17명으로 엑스레이팀이 꾸려졌다. 소집 당시 임무 비밀, 침투지역 비밀이었다.
2. 해군 작전사령관 이희정 중령은 인천 앞바다의 연평도(고경영 중위 팀), 덕적도(장근섭 중위 팀), 영흥도를 차례로 기습 공격해 탈환했다. 이 작전은 별도로 ‘리 작전’(Lee Operation)으로 불리지만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작전의 위험도도 굉장히 높았다.
- 엑스레이작전 이전에 영흥도 등을 점령한 해군 육전대 대원들. 모두 100명이었다. 영흥도 점령 때 이가운데 4명이 전사했다.
그중 박동진의 영웅적인 전투가 있었는데, 그의 군인정신은 유도탄고속정 박동진함으로 기려지고 있다.
3. 첩보부대인 켈로부대와 해군 엑스레이 작전 팀은 완전 별개로 활동했다. 미군 첩보부대인 켈로부대는 인천상륙작전 때 팔미도 등대를 밝히는 임무를 받아 이를 성공시켰다.
팔미도 등대는 8월 20일에 캐나다 구축함 아사바스간 상륙팀이 장악했다. 켈로부대원과 미군은 인민군 2개 분대가 지키던 팔미도 등대를 탈환했다.
- 팔미도 등대를 탈환한 뒤 귀환하는 켈로부대원과 미군들.
- 오늘날의 팔미도 등대.
3. 8월 24일 0시 30분, 본인들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엑스레이팀은 부산항을 떠나 해군이 이미 장악해둔 영흥도에 상륙했다. 영흥도에서 보자면 북동쪽으로 등대가 있는 작은 섬 팔미도가 있고, 인민군이 주둔 중인 월미도가 있다. 이때 해군 함정이 섬 주변을 순회하고, 50명 규모의 주민 의용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팔미도는 이미 장악한 뒤였다.(영화에서는 기차 타고 잠입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완전허구다.)
김순기 중위 팀 - 인천 및 월미도 잠입, 첩보 활동. 김순기는 인천 출신으로 팀장 역할.
임병래 소위 팀 - 인천 및 월미도 잠입,첩보 활동. 이 팀이 최후까지 남아 있다가 인민군 대대와 교전을 벌인다.
장정택 소위 팀 - 영흥도 본부 내 통신, 경비, 정보분석
임병래 소위는 인민군 보안서원으로 일하던 권씨를 포섭, 통행증을 손에 넣는다.
이후 인천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첩보 활동을 계속했다. 노무자, 인민군으로 위장, 첩보를 얻었다.
월미도에 고사포 4문, 인민군 400명, 해안포 20문이 있다는 등의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이때 수백 명의 민간인 거주 정보도 올라갔을 것이지만 비극이 일어난다.)
9월 1일, 미 해군 클라크 대위 팀 5명이 영흥도에 도착, 모든 정보를 받아 직접 맥아더사령부로 보고했다. 그러면서 팔미도 등대를 배터리로 가동시켰다.
- 클라크 대위가 남긴 기념 사진. 그의 대원 5명 외 학생으로 보이는 의용대원이 보인다.
4. 9월 13일, 엑스레이팀에게 철수명령이 떨어진다. 이에 2개팀은 해군 함정으로 귀환하고, 서류 소각 등 잔무 처리를 위해 임병래 소위 팀이 남아 있었다. 이때는 유엔군과 해군 함정이 인근 해상에서 호위할 때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4일 0시, 인민군 1개 중대(혹은 대대)가 대부도와 선재도를 통해 기습 공격을 해왔다.
이에 임병래 소위는 의용대 30명과 함께 7명의 팀원으로 인민군을 맞아 전투를 치렀다. 결국 의용대원 중 6명이 전사하고, 팀원 5명도 죽어 임 소위와 홍시욱 하사 두 사람만 남아 교전을 벌이던 중 포로가 될 위기에 빠지자 인천상륙작전 기밀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총으로 자결해버렸다.(이때 살아남은 의용대원 임승열林承烈 씨 증언)
- 실제 임병래 소위(이후 중위)
홍시욱 하사(이후 중사)와 함께 을지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해군 유도탄고속함정 10번이 임병래함, 11번이 홍시욱함이다.
- 영흥도 전적비에 새겨진 엑스레이작전 중 전사자 명단. 중위 임병래 외 7명의 하사관이 전사했고,
의용대원 6명이 전사했다.
어쨌든 미군은 엑스레이작전으로 알아낸 월미도의 인민군을 제거하기 위해 3일 내내 엄청난 양의 네이팜탄과 폭탄을 퍼부었다. 민간인 100명(진실화해위원회 추산)이 네이팜탄에 희생되었다. 엑스레이팀이 민간인 주거 정보를 보고했을 텐데도 미군은 무차별 폭격으로 인민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몰살시켰다. 결국 엑스레이팀의 작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은 보호받지 못했다.
이 날 영화에서 보이는 태풍은 없었다. 번개가 치거나 거센 풍랑이 일지도 않았다.
배우 이정재가 인민군 열차에서 박남철 중좌를 죽이고 신분세탁을 하는 것도 상상일 뿐이다.
인천 시내 전봇대마다 걸려 있던 시신도 상상이다.
또한 이 작전 이후 인천 시민들 중 많은 사람이 인민군에 부역한 혐의로 처형되었다.
육이오전쟁 사망자 3백만 명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우리는 진실을 잊으면 안된다.
이 영화에 예술성이라고는 거의 없다. 단지 애국심에 호소하여 국내용으로는 인기를 얻을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아마 며칠 상영하지도 못할 것같다. 무엇보다 육이오전쟁의 진실, 인천상륙작전의 진실이 왜곡되어 안타깝다.
그러거나 말거나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는 사진을 감상하자.
미군이 쏘아대는 함포, 하늘을 가득 덮은 폭격기 떼가 새카맣게 투하하는 폭탄들이 바로 피난가지 못한 우리 국민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 이 영화가 국뽕인 진짜 이유.
엑스레이 부대를 이끈 3개팀 중 인천 출신 김순기 중위가 이끄는 팀이 선임팀이었다.
만일 이 영화가 국뽕이 아니라면 북핵과 사드 국면에서 애국심이나 불러일으키고 끝내서는 안된다.
김순기 중위는 현재 일본에 생존 중(올해 90세, 전역 때 계급 중령)이며, 충무무공훈장 등 훈장 수당으로 2만엔을 받아 생활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그를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 초대한 바가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이다.
국뽕이 아니라고 우길 거면 거짓 역사에 환호하지 말고, 진짜 역사를 존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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