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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젊은 시인들이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걸 보고

시인들 얘기는 잘 안하려고 하는데, 불편한 기사가 보여 일부러 읽어보았다.

그러잖아도 시가 사회 기능을 하지 못한 지 오래 되었는데 그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같아 씁쓸하다.


<한국일보 / 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

<경향신문 / 김현 시인 “어디서 무엇을 배웠기에…” 한국 문단 여성혐오 폭로?


* 두 기사는 논조가 정반대다.


먼저 바로잡을 게 있다. 기사 중에 <문단>이란 어휘가 자주 나오는데. 우리나라에 문단이라는 건 없다.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후에는 문학인구가 워낙 적어 다방에 모여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는 증언을 많이 들었다. 거기서 할 일이 별로 없는 시인들이 만나 서로서로 추천하며 시인 만들어주고, 또 떼를 지어 다니며 술 마실 곳을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마치 화가들이 더러 선후배나 스승과 제자 등으로 뒤얽혀 패거리를 짓고, 그걸 화단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었는데 문단 역시 그런 범주의 추상적인 어휘이다. 

일제시대, 자유당 시절, 유신시대에는 문인들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만큼 정권 차원에서 관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전두환 같은 이는 제법 이름있는 시인, 소설가를 골라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씩 차등 지급한 사례도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가 별로 없던 당시 소설이나 시집은 국민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런 차원에서 문인협회 등 단체 활동은 정치인들과 뒤엉켜 제법 활발했다. 이런 것도 민주화가 되면서 사실 다 없어지거나 이름껍질만 남아 있다. 지방 같은 데에는 아직도 문인협회라는 게 남아 있는데 대개 문학지망생들의 사교모임, 혹은 잡지사 등의 추천이라도 받아 시인 타이틀이라도 얻어 명함에 써보려는 사람들의 친목단체 정도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문단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고, 문학잡지의 영향력도 없고(80년대까지는 문학잡지가 굉장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문학 단체 활동이 활발하지도 않다. 중앙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은 대개 이런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같은 시인이라도, 소설가라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소설가, 시인이 무슨 자격고사를 치러 되는 것도 아니고, 워낙 다양한 작품 발표 방법이 있는만큼 옛날처럼 패거리지어 다니며 추천받을 일도 없고, 얼마 안되는 잡지 원고료 받겠다고 줄 설 일도 없다. 다만 아직도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문학잡지(전에는 잡지를 팔아 수익이 났었다) 주변에 시 한 편이라도 실어보려고 애쓰는 '안타까운 예비시인들'이며 '안타까운 예비소설가'가 있어 줄을 대려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것도 80년대, 90년대 이야기지 2000년 이후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정부가 원고료를 대신 주는 문학잡지가 꽤 있는 것같고, 패거리를 지으면 적당히 빼먹을 수 있는 문학기금이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기사에서 말하는 문단은 그런 잡지나 기금 주변에 형성되는 작은 모임 정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위 기사를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글의 영향력은 그것이 소설이든 시든 점점 시들어가는데 수레를 막아서겠다고 버티는 사마귀 같은 젊은 시인들이 있다니 놀랍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전에는 어떤 신문이든 문화면이 있고, 거기에 문학란이 있고, 출판란이 있어 소설과 시가 자주 소개되었는데 지금은 문화면도 따로 없는 신문이 많고, 있다 해도 저 뒤에 밀리거나 라이프니 뭐니 하는 외래서 밑에 숨겨져 있기 일쑤다. 문학담당기자, 출판담당기자의 위세도 예전만 못하다.

이처럼 직업시인으로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분이 몇 안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렇게 서로 헐뜯을 동료나마 남아 있고, 비판 비난할 패거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고 신기하다.


나는 80년대, 90년대 작가, 시인들이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다 사라지고 나면 젊은 작가, 시인들이 나와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트로트 부르던 가수들이 병풍처럼 막고 섰던 그 철벽을 깨부수고 젊은 가수들이 나와 우리 가요를 세계화시켰듯이, 나 역시 20대, 30대 작가, 시인들이 나와 멋진 문학작품을 써주길 고대하고 있다.

다만 몇 안되는 젊은 작가, 시인들이 이런 허섭하고 유치한 주제로 싸우고 있는 현실이 안쓰럽기는 하다. 세계적인 주제나 담론에는 접근하지도 못한 채, 아직도 저런 19세기 사고에 머물러 있다니 어느 세월에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발전할까, 죽기 전에 세계문학으로 발돋움한 후배들의 작품을 읽어볼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런 걱정이 기우이길 희망한다.


- 작년에 자색고구마가 아닌 일반 고구마가 꽃을 피운 걸 드문 사례를 직접 보고, 당시 채취한 구근으로 올해 싹을 틔워 다시 심었다. 그런데 역시 자연스럽게 꽃을 피운다. 온난화가 계속되면서 일반 고구마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에는 자색고구마 외에는 잘 꽃이 피는 법이 없었는데, 고구마의 생육 환경이 바뀐 듯하다. 이 고구마를 내년에 다시 길러 꽃이 피나 안피나 볼 참이다.


- 작년에 꽃을 피운 밤고구마에서 씨앗 5개를 채취해, 잊고 있다가 올해 8월초에 심었는데 그중 한 개가 싹을 틔웠다. 어쩌면 고구마씨로 싹이 자란 드문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