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뵈러 간 김에 가까운 유관순 생가와 사우에 들렀다.
19살 어린 학생에게 독립운동 시켜놓고 어른들은 친일하느라고 바빴던 시절을 상상해본다.
유관순 생가는 아우내 장터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길, 아주 가깝다. 생가 뒷동산에 오르면 아우내 장터가 보인다. 너른 들판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생가를 보니 제법 살만한 땅으로 보인다. 그렇건만 온가족이 그깐 조국이 뭐라고 모두 목숨을 내놓았다. 1919년 그 시절 이화학당에 딸을 보낼 정도면 눈 하나 질끈 감으면 떵떵거리며 잘 살 수도 있으련만 이들은 그런 삶에 속지 않았다. 3년형을 선고받고, 1년 6개월로 감형되었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 20명이 그 날 그 아우내 장터에서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죽었는데 어찌 한가할 수 있었겠는가. 목청껏 대한독립을 외치고 외치다 기어이 맞아죽었으니 그 어린 것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말한다. 독립정신으로 살자고, 자주적으로 살자고 우리 딸하고, 별군이하고 맹세했다. 종으로 사느니 그런 인생은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별군이는 자주적으로 덤벼든다.
아빠 일하는 중에도 기어이 안아달란다. 그래야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다고.
* 설립자 김활란, 노천명, 신봉조, 박인덕 등 친일파가 유독 많이 배출된 이화여대는 그 치부를 감추기 위해 대학이 아닌 이화학당 고등부, 지금의 이화여고에 다닌 유관순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괘씸한 짓이다. 이번에도 최순실-박근혜에게 부역질하다 걸리지 않았는가. 유관순을 포포로 잡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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