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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반야(Metacognition)란 무엇인가?

붓다의 가르침 중에 뱐야라는 개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즈냐(prajñā), 팔리어로는 빤냐(paññā)다. 

붓다는 빤냐라고 말했고, 우리는 한자로 번역된 般若로 알고 있다.


이 반야를 가장 정확하고, 간절하게 설명한 경전이 금강경이다.

금강경의 원제목은 <붓다, 다이아몬드처럼 뭐든지 끊어버릴 수 있는 최상의 지혜를 가르쳐주시다>이다.


* 현장 스님은 금강경의 제목을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고 번역했다.


붓다 자신은 이 반야를 깨우치기 위해 태자로서 당대 최고의 학문을 공부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6년간 요가 지도자 등을 찾아다니며 고행했으며, 마지막으로 아나파나사티를 하다가 마침내 반야를 얻었다. 

<이 과정을 적은 것이 아나파나사티다>


이 반야를 곧 깨달음이라고도 하고, 중국에서는 道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붓다는 이 반야가 최상이며, 완벽하며,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확신을 갖고 마침내 300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장정에 나선다. 

목표지는 녹야원. 그곳은 바로 자신을 버리고 떠난 도반 5명이 있는 곳이다. 

싯다르타와 함께 6년간 수행해온 이 도반들은, 그가 6년이 되도록 별 신통한 능력을 보이지 않자 그를 버리고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나간 것이다.


그 찌는 듯한 무더위를 무릅쓰고 맨발로 길을 걸어서 왜 녹야원까지 가야만 했을까? 

바로 자신이 깨달은 반야에 대한 <강력한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이때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까짓 300킬로미터 길쯤 멀다, 어럽다, 힘들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붓다의 머릿속에는 바로 metacognition 즉 최고의, 궁극의, 완전한 지혜를 가졌다는 믿음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반야다.


이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는 걸 John H. Flavell(0440)이 일찍이 주장했다.


* 존 플라벨은?

1928년 8월 9일,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남. John H. Flavell은 아이의 인지 발달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이다. 1952년 클라크 대학에서 석사 학위. 1955년에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해석하는 능력이 동물과 영장류와 인간을 가른다. 같은 인간 중에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 판단을 확신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능력의 우열을 가른다. 이것이 반야이며 Metacognition이다. 우리말로는 지혜, 슬기다.


인간은 판단하기 위해 좌뇌 우뇌로 구성된 해마와 대뇌를 갖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이 알고 있거나 알게 된 정보를 스스로 검증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에 존 플라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확신으로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알고는 있으나 그것을 반야로 만드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면,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에 관한 상식과 지식"을 동원하여 답을 꾸미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대답이 불완전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더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쉬운 답을 먼저 내민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답을 듣고 질문자가 "그러면 네안데르탈인은 인간이 아닙니까?" 하고 묻는다면 대번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대답하는 사람이 만일 무엇 하나라도 확신을 갖고 자신의 지식이나 정보를 활용한다면 대답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유형의 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판단하는 능력, 그것이 반야이고, metacognition이다.


바이오코드는 바로 metacognition를 기르는 공부요, 그 여정이다.

<바이오코드, 생각을 계산하다>



* 반야 즉 metacognition에 대해 듣고 쓴 0735의 글


나는 평소에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한 가지 있었다.

내 주장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머릿속에 넣긴 넣었는데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논리가 엉키고 불분명해진다. 그러면 말에 두서가 사라진다.

나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부를 하고나서 시험을 치르면 다른 아이들보다 늘 높은 점수를 받곤 했는데도 그렇다. 나는 왜 성적은 높은데 그렇게 공부하여 습득한 내용을 말로 설명하라고 하면 잘 안될까, 다른 사람보다 왜 설명 능력이 떨어질까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두뇌 기능의 차이겠거니 여기고 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 

반야 즉 metacognition이 부족해서다.


EBS에서 전국모의고사 성적 0.1%안에 들어가는 800명과 평범한 학생 700명을 비교 분석했다고 한다.

두 그룹 간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지능지수,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기억력 등에서 별반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단 한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0.1% 학생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아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확실히 앞섰다.

자기 확신 능력인 metacognition이 뛰어났던 것이다. 

그럼 자기 확신 능력은 어떻게 하면 키울수 있을까? 바로 글쓰기란다.

여기서 이대로 끝나면 안되고, "나는 글쓰기가 자기 확신 능력을 길러준다고 확신한다."고 적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