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경(普文經) 중(中)
나는 이렇게 들었다.
2017년 7월 26일 수요일 오후 8시,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보문정사 여래원 2층에 미얀마 정글스님 삐냐저따(Ashin Pyin Nya Zaw Ta) 큰스님과 자와나 스님 두 분이 동쪽 창 앞 큰 의자에 나란히 앉으시고, 그 왼쪽 창가에 보문정사 주지 덕산 큰스님이 앉으시고, 삐냐저따 큰스님 곁에 통역을 맡은 한대웅(미얀마출신 Zaw Moe)이 두 다리를 미얀마식으로 접어 앉고, 그 옆으로 내가 앉고, 그 오른쪽으로 김상국 거사, 그 오른쪽에 불모, 그 옆에 불모 부부가 나란히 앉고, 그 옆에 불모 따라온 제자가 앉고, 그 오른쪽에 그 제자의 친구가 앉고, 그 옆에 불모 거사가 앉았다.
거사와 보살들이 모두 일어나 삐냐저따 큰스님께 삼배를 드린 다음 좌정하고, 나는 삐냐저따 큰스님과 인증 사진을 찍은 다음 통역 한대웅 조모아 오른쪽에 가 앉았다.
* 거사와 보살 ; 남성 불자를 뜻하는 거사에는 거사의 계가 있고, 여성 불자를 뜻하는 보살에는 보살계가 있어 구분이 추상같지만, 여기서는 남성, 여성이라는 성의 구분을 나타낼 뿐 사전적 정의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불모라는 뜻도 불교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경계와 필치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 날 삐냐저따 큰스님은 오후 3시에 충북 진천의 태양광 업체를 방문하여 미얀마의 마하먀인에 있는 때퓨 위빠사나 선원에 가설할 수 있는지 기술상담을 받고 오후 7시경에 보문정사 여래원으로 돌아오셔서 1시간 정도 선정에 들어 계셨다.
우리들이 여래원 1층에 모인 뒤 보문정사 주지 덕산 큰스님께서 통역 한대웅 조모아를 불러 "오후 8시인데 대중을 위해 법문을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라."하는 명을 받고 여래원 2층으로 올라가 삐냐저따 큰스님께 그대로 여쭈었다. 그러자 삐냐저따 큰스님은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오라 이르라." 하시어 보니 이미 에어컨이 켜져 있고, 천장 선풍기가 돌고 있었다 한다. 본디 미얀마 스님들은 저녁에는 춥다고 에어컨을 끄는데 삐냐저따 큰스님은 한국의 불자들이 법문 듣는데 날이 더워 힘들까봐 미리 에어컨을 켜두셨다고, 통역 한대웅 조모아가 전했다.
- 용인 보문정사 여래원 2층. 왼쪽으로부터 통역 한대웅 조모아, 아라한 삐냐저따 큰스님, 자와나 큰스님, 보문정사 주지 덕산 큰스님. 세상의 나이로는 덕산 스님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자와나 큰스님이 많다. 권력으로 치면 미얀마 수치 여사의 친구이자 수치 여사 집 이웃에 사원을 갖고 있는 자와나 스님을 따를 수가 없지만 법랍으로는 삐냐저따 큰스님이 제일 높고, 불가에서는 오직 법랍으로 나이를 헤아리므로 삐냐저따 큰스님이 상석에 앉고, 나이 제일 많은 덕산 스님은 스스로 낮추어 방바닥에 방석도 없이 앉았다. 삐냐저따 큰스님 앞의 매트는 불자들이 절을 드릴 때 무릎 아프지 말라고 깔아 놓은 것이다. 통역 한대웅이 오른쪽으로 두 발을 모아 내밀어 앉는 것은 미얀마 전통 방식이다. 이 사진은,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내 질문에 귀를 기울이시는 장면이다.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웃으시며 질문을 허락하시므로 먼저 나 이재운이 나서서 합장하고 질문을 드렸다.
"큰스님께서는 아나파나 말고 다른 공부도 하셨습니까?"
"열세 살에 출가하여 아나파나 사티만 열심히 닦았다. 그뒤에는 출가 사문의 절차와 법도에 따라 경전 등을 공부하였다."
"아나파나만으로도 공부가 완성되겠습니까?"
"아주 중요한 시작이다. 아나파나를 오래도록 깊이 하지 않으면 다른 공부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아나파나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아나파나로 집중한 뒤에라야 비파사나로 간다. 물론 수행이 많이 쌓인 사람은 비파사나로 빨리 갈 수 있다."
* '수행이 많이 쌓인 사람 ; 근기가 높은 사람이라는 뜻. 여러 전생에서 수행을 많이 한 사람.
나중에 생각해보니, 삐냐저따 큰스님은 수행자가 되는 것은 여러 전생에 걸쳐 쌓은 큰 공덕에 의한 인연이므로 혹시라도 공부를 방해받을 업이 남아 있으면 중간에 장애가 오므로, 미리 아나파나 사티를 많이 하여 그 모든 업을 소멸시켜야만 그 다음에 계정혜로 겨우 나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새겨졌다.
"아나파나 사티는 어떻게 합니까?"
"먼저 오른쪽 콧구멍으로 들숨을 쉬고 왼쪽 콧구멍으로 날숨을 쉬기를 다섯 번한다. 그런 다음에는 순서를 바꾸어 왼쪽 콧구멍으로 들숨을 쉬고 오른쪽 콧구멍으로 날숨을 쉬기를 역시 다섯 번한다. 그 다음에는 두 콧구멍으로 들숨을 쉬고, 날숨을 쉬기를 또한 다섯 번한다. 이렇게 반복하되 한 시간 이상 꾸준히 해야 한다."
- 고타마가 6년 고행을 버리고 보리수나무 그늘에 앉아 아나파나 사티를 하고 있다.
고타마의 고행상.
나는 오래 전부터 아나파나 수행을 하고 있으므로, 아나파나로 어떤 경지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두뇌와 네트워킹된다는 사실을 체험하여 알고 있으므로 짐짓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여쭈어 보았다.
"큰스님, 아나파나 사티를 열심히 수행하면 다른 사람의 두뇌를 읽거나 들여다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기도 하고 나의 뜻을 전할 수도 있다. 이것은 4번째 단계이다. 첫번째 단계는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럿이 모여서 하는 아나파나 명상의 효과가 매우 궁금했다. 여럿이 함께 아나파나를 하면 깨달음의 정도가 더 깊어질 수 있는가 매우 궁금하여 다음 질문을 드렸다.
"그러면 여럿이 함께 아나파나 사티를 하여 다함께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하지 않다. 여럿이 함께 기도하거나 아나파나를 하면 잡신들의 방해는 줄어든다. 기도도 혼자 하는 것보다 더 성취가 잘 될 수 있다. 그러나 깨닫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두뇌를 읽거나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깨닫는 이는 오직 한 명일 뿐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업이 다르고, 각각의 서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 함께 깊은 선정에 들어 수행을 해도 다른 사람을 깨우쳐 줄 수가 없습니까?"
"없다. 다만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줄 수는 있다. 깨달음은 오직 깨달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사람만이 가능하다."
큰스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같고, 또 처음부터 너무 무거운 질문을 드린 듯하여 나는 가벼운 질문을 올리기로 했다.
"큰스님, 오늘 여기 모인 거사와 보살 들 중 여러 사람이 붓다를 그리는 불모가 있습니다. 이들의 공덕이 있습니까?"
"크다."
"얼마나 클까요?"
"붓다를 그리되 아나파나 사티를 하면서 그리고, 붓다의 명호(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등)를 염송하며 그려야 한다. 그러면 날로 그림이 향상되고, 심지어 이렇게 저렇게 그리라는 어떤 가르침이 들릴 것이다. 미얀마에 내가 아는 70세 된 불모가 있는데, 그는 내가 일러주는대로 붓다를 그렸더니 그만 부처님이 그림에서 튀어나오실 것같은 3D로 생생하게 나타나시더라. 미안먀에 오면 그 불모의 그림을 보여주겠다."
불모들이 합장하며 큰스님의 말씀을 받아지녔다.
무거운 질문을 다시 올렸다.
"큰스님, 지금 석가모니 붓다는 어디 계십니까?"
"없다."
"서방정토에 계시다는데 없다니요? 이 우주 어디에도 안계십니까?"
"이 세상 안에도 밖에도 안계시다. 붓다는 윤회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이 부분에 대해 김상국 거사는, 통역자가 해석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붓다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현(現)>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닌 것같다고 의심했다. 나중에 확인하여 수정하겠다. 아래에 이어지는 삐냐저따 스님의 답변으로 볼 때 그럴 정황이 크다.
"그러면 우리가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염송을 해도 소용이 없겠습니다? 그래서 말세라고 하는지요?"
"석가모니 붓다의 기운은 이 우주 안에 감돌고 있다. 지금도 퍼지고 있다. 더구나 현 세상에 붓다의 모발과 사리가 남아 있다. 극락은 도리천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몸에 있다. 붓다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축복하라. 붓다의 신통령과 공덕은 이 우주에 가득히, 계속 존재하신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곳에 세울 황금대탑에 진짜 붓다의 사리와 모발을 모실 것이다. 미얀마는 붓다가 친히 방문하신 유일한 나라이고, 붓다의 수행 방식 그대로, 승가 방식 그대로 전통이 수천년 유지되고 있는 나라다.
붓다의 사리가 머무는 한 붓다의 기운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고, 석가모니 붓다의 법도 또렷이 살아 있는 것이다. 함부로 말세라고 말하여 중생의 작은 근기마저 끊지 말라."
삐냐저따 큰스님은 지난 7월 24일의 법문 때 "지금이 말법 시대입니까?" 하는 질문에 "석가모니 붓다의 시대가 3분의 1 가량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회상의 거사와 보살들이 기쁜 마음으로 합장하여 말세가 아니라 아직 불세(佛世)라는 기쁜 말씀을 받아지니었다.
"큰스님, 오늘도 이 자리에 여러 거사와 보살들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전생이나, 그 전생에서나..."
큰스님께서 회상의 여러 거사와 보살 들을 두루 살피면서 눈시울을 잠시 붉히셨다.
"나는 그대들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대들이 이 방에 들어오는 걸 보고 실은 옛 생각으로 눈물이 났다."
통역 조모아가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놓고 기다리셨다는 점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
다들 울컥한 마음으로 깊은 합장의 예를 올렸다.
"아라한 큰스님,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습니까?"
"아나파나 사티를 충실히 하면 누구나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자비심을 갖고, 계정혜(戒定慧)를 부지런히 닦으면 누구나 지혜의 눈이 열려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도 큰스님께서 아라한과에 이르실 때는 아나파나 사티와 비파사나 말고도 다른 비밀한 수행법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삐냐저따 큰스님이 통역으로부터 질문을 전해 받은 뒤 나를 빤히 들여다보시었다. 대답을 어디까지 해줘야 하나 생각하는 것으로 상이 읽혀졌다. 더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라한이란 어휘에 부담을 느끼신 듯한 상이 읽혀졌다.
이때 회상의 한 보살이 손을 들어 질문을 청하므로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허락하셨다.
"저는 불모입니다. 이 길이 제가 가야 하는 바른 길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가야 하는데 이 길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저의 전생이 어떠했는지도 궁금합니다."
* 불모(佛母) ; 붓다와 보살 등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상으로 만드는 사람. 불모는 본디 그로부터 불상이 나오고 불화가 나오므로 평소 출가 사문 못지 않게 깊은 수행에 진력한다. 사전적 정의로서 이 날 참석자들에 대한 직접 묘사는 아니다. 다만 신진환 거사는 매일 새벽마다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그 자리에서 불화를 한 장씩 스케치하는 독특한 수행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
* 이 질문은 질문자가, 자신이 불모로서의 오랜 전생 인연으로 현재 불모로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인연으로 지금 불모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취지였으나, 통역자가 이 질문에 대한 이해를 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되며, 나중에 다시 한번 여쭤보기로 하였다..
삐냐저따 큰스님은 질문한 보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질문을 보살이 하는 것인지, 보살의 몸에 들어와 있는 귀신이 묻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내가 알 수가 없으니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나중에 선정에 들어 보살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해 볼 것이다."
* 삐냐저따 큰스님은 이후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셨다. 아마도 통역 과정에서 누락되었거나 내용이 잘못 전달된 듯하다.
내가 다시 나서서 질문을 드렸다. 대표로 묻는 것인만큼 대중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골랐다.
"큰스님, 귀신은 왜 사람으로 안태어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닙니까? 산다 무키 신도 안태어나고 계시잖습니까?"
"하하하. 그건 태어나기 싫어서다. 귀신이라고 해서 어둡고 외진 곳에 숨어 있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너무 재미있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싫은 것이다."
"귀신으로 사는 거도 재미있다고요?"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아주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러니 사람으로 태어나기 싫지."
순간 우리 인간이 텔레비전이나 영하를 보듯이 귀신들은 우리 인간들을 따라다니며 인간의 삶을 그렇게 보며 즐기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귀신이란 정체는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이를 테면 파동이나 입자인지, 아니면 에너지인지, 혹은 무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지로 존재한다. 이런저런 흔한 이미지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지만 귀신은 이미지로 있지만 거기에 마음이 있다."
"그럼 무게도 있나요?"
"있고 말고. 재미있는 실화가 있다. 양곤 외곽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양곤이 커지니까 나중에 그 지역이 시내권으로 들어오자 이 묘지를 더 멀리 옮기려고 했다. 그때 귀신들더러 새 묘지로 가야 하니 차에 타라고 하니 갑자기 차가 무거워져 빨리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귀신들더러 일부는 내리라 하니 그제야 차가 가벼워졌다."
(통역이 자기가 아는 상식이나 이야깃거리를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 큰스님께서 진짜로 하시는 말씀이냐니까 그렇다고 하면서 미얀마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검색할 수가 없어 일단 기록해둔다.)
"큰스님, 이곳 여래원 2층에도 귀신이 있습니까?"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방을 두루 둘러보시고 나서 말씀하셨다.
"있다."
"귀신들은 들어라. 뒤에서 쭈빗거리지 말고 큰스님 앞에 모여 앉아 귀를 기울여라. 이러면 귀신들이 앞으로 나옵니까?"
"말을 듣는 귀신도 있고, 안듣는 귀신도 있다."
"큰스님, 보문정사 귀신들이 덕산 스님 말을 잘 듣습니까?"
"듣는 귀신도 있지만 안듣는 귀신도 있다. 덕산 스님의 불력이 더 커지면 다 듣는다. 다만 귀신에도 힘있는 귀신이 있고, 힘없는 귀신이 있는데 힘있는 귀신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저희가 이곳에 황금대탑을 세우고자 서원했는데 그러자면 이 도량의 귀신 공덕이 더 큽니까, 신도들의 공덕이 더 큽니까?"
"일단 신들의 공덕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도들의 공덕이 따라 일어난다. 무엇보다 신장, 포대화상, 산다무키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 대불사의 시작은 산다 무키 신이 스스로 발원하여 시작된 일이다. 이처럼 하늘에서 땅에서 큰 기운이 모여야만 불사가 이뤄진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거사와 보살 들의 보시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불사가 이뤄진다."
통역에게 "귀신을 뭐라고 번역하고 있느냐?" 물으니 "신과 귀신을 구분하지 않고 그때그때 말하는 중"이라고 했다. 따라서 귀신이라 함은 불보살, 신장 등이 다 포함된 개념인 듯하다. 그래서 물었다.
"큰스님, 사람만 죽어 귀신이 되는 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역시 귀신이 되는 것입니까?"
"어떤 생명이든지 다 혼이 있다. 이를 테면 나무마다 목신이 있다. 미얀마에서 큰 나무를 베다가 두 사람이 죽고, 승려 하나는 크게 다쳐 기절한 걸 보았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문정사의 황금대탑 불사를 산다무키 신께서 보시하여 잘 시작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신장님들이 돕고, 포대화상이 돕고, 사해의 인연있는 여러 사람들이 돕더라도 막상 큰 돈이 들 것같습니다. 원만성취되리까?"
- 황금대탑을 세우는 서원은 크고 무거워 웬만한 원력으로는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로 맨발로 걸어 들어가 마침내 황금대탑을 세우고, 또 더 큰 탑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 곳에 아스팔트 도로가 나고, 다리가 놓이고, 우물이 생기고,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들게 되었다. 의심하지 말라."
삐냐저따 스님은 "그리고 내게는 커다란 비취가 있다. 이 비취는 산다무키가 준 것이다."라고 덧붙이셨다. 이 말씀은 값진 비취가 아직 큰스님께 있는데 어찌 불사를 두려워하느냐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 비취 ; 푸른색이 나는 경도 높은 옥((jadeite). 옥 중에서 가장 귀하다 하여 진옥이라고 불린다. 2010년에 미얀마에서 출토된 10t짜리 비취가 약 460억원에 경매낙찰되었다. 미얀마는 보석이 가장 많이 나는 나라다.
- 황금대탑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양곤의 안락한 사원을 떠나 바릿대 들고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 들어갔을 때의 삐냐저따 큰스님. 맨발이다. 입고 계신 가사는 원래 Kasaya로서 '똥치우던걸레옷'이란 뜻이다. 석가모니도 이 가사를 입으셨고, 가섭, 아난, 목련, 사리불 등 모든 초기 붓다의 제자들이 이 가사를 입었다. 미얀마 승려들은 아직도 이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신발도 신지 않아 늘 맨발로 다닌다. 석가모니 붓다도 그러하였다. 다만 공항 등 격식을 차려야 할 곳에 갈 때는 샌달을 신는다.
- 정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찍은 사진이 왼편에 걸려 있다. 이곳은 현재의 때퓨 위빠사나 선원에 있는 큰스님 처소다. 정글에 맨발로 들어가 지금은 황금대탑을 세우고도 비취 한 덩어리가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 2015년만 해도 덕산 스님과 삐냐저따 큰스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여러 인연을 거쳐 사진 왼쪽에 계신 자와나 스님을 먼저 뵈었는데, 자와나 스님은 덕산 스님을 만나기 전 한국에서 오는 스님을 삐냐저따 큰스님에게 인도하라는 산다무키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덕산 스님이 믿거나말거나 하는 마음으로 거친 길을 헤치고 정글로 들어가 삐냐저따 큰스님을 뵈니, 그 자리에서 한 마타지에게 산다 무키 신이 실려 전생담이 나오고, 삐냐저따 큰스님은 덕산 스님에게 붓다의 진신사리 등 절반을 나누어 줄 것이며, 한국에 황금대탑을 함께 세우자는 서원을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
"큰스님, 아라한과에 이르신 큰스님께서도 서원이 따로 있습니까?"
이윽고 큰스님께서 무거운 표정으로 통역과 대화를 나누더니 내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본디 미얀마 서울 양곤에 사찰을 갖고 있으면서 수행을 하고 포교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글로 가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양곤에서 이 정글까지는 거칠고도 머나먼 길이지만 나는 오직 바릿대 하나만 들고 걸어서 걸어서 나아갔다. 길이 없고, 물이 없고, 집이 없고 오직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리는 정글이었다. 나를 부른 신은 미얀마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배하는 산다 무키였다. 알고보니, 그는 나의... 전생의..., 여기 덕산 스님은..., 나는 그 아득한 수천 년 전의 비극이 오늘에야 업보로 나타나 그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언젠가는 그 밀림에 황금대탑을 세우고, 우리가 몇 번이나 환생한 적이 있는 이곳 한국에도 황금대탑을 세워 나와 내 전생의 아내와 전생의...인 산다 무키와 덕산 스님과 더불어 세계평화를 위해 이 한 몸을 던지기로 결심하였다."
삐냐저따 큰스님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통역에게 힘주어 말했고, 통역도 심각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전해주었다.
"올해 봄 38m 황금대탑을 세우던 중 나는..."
이때 통역 한대웅 조모아가 "큰스님께서는 지금 하실 말씀을 단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답니다. 미얀마에서라면 영원히 말할 수 없으시답니다. 이 말로써 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황금대탑 서원을 위해 말씀하시는 거랍니다."하며 설명을 붙였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먼 세상 먼 훗날에...(생략) "
"수기를 받으셨습니까?"
깜짝 놀라 여쭈니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웃으시며 "수기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한 발 물러서시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레짐작하고 경망스런 질문을 올렸다.
"큰스님, 미륵 붓다보다 먼저입니까, 나중입니까?"
삐냐저따 큰스님은 웃으시면서 다음 다음의 나중 나중이라고 대답하셨다.
"큰스님, 큰스님께서 성불하시면 이 회상의 여러 처사와 보살들도 같이할 수 있습니까? 붓다의 회상에서 뵙기를 소원합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보살이 되었지만 그뒤 천인으로, 인간으로 도리천 도솔천 등에서 수천 생을 더 태어나고 죽어가면서 업을 갈고닦고, 지혜를 다듬어 붓다가 되셨거늘 어찌 이 회상에 모인 공덕만으로 붓다의 회상에 같이 갈 수 있겠는가. 아나파나를 하고 또 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 그 뜻을 각자 성취하라. 계정혜 잊지 말고, 한번 더 말하니 아나파나 사티를 꾸준히 하라. 그래야 붓다의 회상에 참여할 수 있다."
붓다가 세상에 나도 하필 그때 죽는 사람이 있고, 그때 멀리 떠나는 이도 있고, 근처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있고, 근처에서 농사짓는 사람도 있고, 근처에서 도적질하는 사람도 있어 중생이 서로 각각이듯이 인연은 자기가 지은 업과 공덕대로 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새겼다.
회상의 처사와 보살들이 두 손 모아 합장하면서 그 말씀을 가슴에 받아 지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황금대탑이 과연 이곳에 세워질까 걱정하는 그대들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서다. 내가 처음 정글에 들어가 나무그늘에 앉아 아나파나 사티를 할 때 그 정글에는 호랑이, 사자 등 맹수들이 있었고, 독사들이 우글거렸다. 내가 나를 지킨 것이 아니라 신장들이 나를 지킨 것이다. 서원 품은 사람을 누가 해치겠는가. 굳은 마음으로 나아가면 아무도 해치지 못한다."
이때 미얀마에서 큰스님을 이바지하기 위해 따라온 마타지 보살 두 명 찌찌에와 딴따니에, 보문정사 보살 진여성 유승민, 전법심 이금순 두 명이 들어와 절하고 합장한 채 자리에 앉았다.
한편 '굳은 마음으로 나아가면 아무도 해치지 못한다'는 말씀은 업이 소진된 삐냐저따 큰스님 같은 경우이지 중생은 저마다 갖고 있는 업이 다르므로 맹수들에게 죽을 수도 물릴 수도 있다. 즉 아나파나 사티로 업을 다 소진시키기 전에는 그 과보를 받아야만하기 때문에 누구나 정글 맹수와 독사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나는 새겼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또 하나의 큰 질문을 드렸다.
"고타마 붓다께서는 보리수 그늘에 앉아 아나파나 사티를 하시다가 붓다가 되셨습니다. 그게 1차 깨달음이고, 그뒤 2차, 3차 깨달음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다 깨우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때 깨달음이 완성되었다. 그뒤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깨달음이 맑고 깨끗하게 유지되었다. 여러 제자들의 질문에 설명이 달라졌을 뿐 붓다의 깨달음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완성되었다."
"그뒤에는 다른 깨달음이 필요없을만큼 며칠만에 정말 다 깨우쳤습니까?"
"사람들은 소소한 깨달음을 얻지만 붓다는 그때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지혜를 완성시켰기 때문에 붓다라고 하는 것이다. 붓다가 되실 때까지 고타마의 전생 인연의 뿌리는 매우 깊다. 누구나 다 보리수 그늘에 앉아 숨을 세면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고타마는 수천 생의 수행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사문 고타마가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모든 것을 다 깨우쳐 '지혜의 완성자' 붓다가 됐다는 삐냐저따 큰스님 말씀에 나는 붓다가 그뒤에 또다른 깨달음이 두 세 차례 더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으로 여쭌 것인데, 김상국 거사와 이 부분에 대해 결집 토론을 하면서 "그때 그 자리에서 붓다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연등불 수기를 받은 후 수많은 겁동안 이 씨앗은 발아를 못하다가 그때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핀다고 해서 붓다라는 근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작은 은행알에서 싹이 나온 것과 같으니, 수천년이 지나 나무가 수십 미터 거목으로 자라든, 싹은 틔운 지 며칠 안돼 작은 잎을 내밀든 은행나무라는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합의했다. 2017년 7월 31일 오전 11시에 이재운, 김상국, 합의하다.
"삐냐저따 큰스님, 큰스님은 아라한이십니까? 보리살타이십니까?"
그러자 통역 한대웅이 통역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붓다 재세 시의 전통을 고수하는 남방불교(소승불교)에서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 개념이 없다. 다만 미륵보살 같은 보살마하살은 있지만 그건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분을 특정해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큰스님은 한국 여신도를 가리켜 보살이라고 하는 문화를 알고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때 문답을 듣기만 하는 회상의 거사와 보살들을 위해 질문 기회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여쭈니 큰스님께서 그러라고 허락하셨다.
불모 한 명이 손을 들어 여쭈었다.
"큰스님,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슬픔, 화 등을 어떻게 떨쳐야 합니까?"
삐냐저따 큰스님이 빙그레 웃으시었다.
"업 때문에 아픈 것이다. 수행할 때 다리 저리고 아픈 것도 전생의 업 때문이다. 업이란 풀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
내가 다시 여쭈었다.
"보시를 많이 하면 업이 풀립니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보시해도 공덕은 쌓일지언정 업은 한 오라기도 풀리지 않는다. 보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계율이지만 아무리 해도 오직 복을 지을 뿐이다. 복을 지어야 공부 인연을 만나고, 좋은 벗과 가족과 스승을 만나고, 깨달음의 인연을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한번 맺힌 업은 보시로도 풀 수 없다. 업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나파나와 비파사나 뿐이다. 오직 아나파나 사티와 비파사나만으로 그 불길을 끌 수 있다."
회상의 처사와 보살들은 두 손으로 합장하여 삐냐저따 큰스님의 이 말씀을 받아 가슴에 지니었다.
* 업은 선정으로 풀고, 공덕은 보시로 쌓는다는 삐냐저따 큰스님의 말씀에 의문이 있어 포항 고석사 자륜 스님께 문의하니, 일반적인 정의로서는 맞지만 보시에도 업을 푸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로부터 나라에 기근이 들거나 재해가 잇따를 때는 나라의 부고를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옥사에 갖혀 있는 죄수들을 방면하고, 사형수들을 감형시키는 예가 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재산을 털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보시하여 그 위기를 벗어나는 예도 있다. 그러니 '업을 보시로는 풀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얀마에서 내가 이유없이 고통스러워하는 한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이는 고기장수였는데 그동안 잡아 판 고기가 너무 많아 그 업이 쌓여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아나파나를 시켰더니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아프던 게 조금씩 견딜만할 정도로 괜찮아지고, 오래도록 잊지 않고 아나파나를 꾸준히 수행하니 고통을 끌어안고 살만한 정도는 되었다. 업이란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이 가르침을 잊지 말라."
삐냐저따 큰스님은 보시는 미래를 닦는 수행이요, 아나파나 사티는 과거를 닦는 수행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셨다.
이때 불모 거사가 손을 들어 질문을 드려도 좋으냐고 여쭈니 그러라고 허락하셨다.
"큰스님, 저는 40년간 부처님을 그려온 불모입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것으로 깨치고자 소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붓을 들어 한 점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아나파나 사티를 하라. 일어서고 앉고 걷고 누울 때(行住坐臥)에도 24시간 수행해라. 그러면 불모로서 깨우치리라. 3개월 정도 하면 전생도 보이고 아라한과도 얻을 것이다."
불모 거사가 합장하여 말씀을 받아지니니, 김상국 거사가 미리 휴대폰에 메모해두었던 질문을 드렸다.
김상국 거사는 천주교도 겸 불교도로서 두 종교의 교리 차이로 번민하던 내용을 질문으로 요약해두고 있었다.
"큰스님, 석가모니 붓다의 전신인 선혜보살은 하찮다면 아주 하찮은 의심 하나로 6년고행이라는 과보를 받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중생은 늘 실수하고, 남을 원망하고, 욕하고, 비난하고, 죄를 짓습니다. 이러다가 중생 역시 축생처럼 영영 깨닫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여 두렵습니다."
이에 통역 한대웅이 질문을 줄여서 간단하게 정리해주기를 원하니 김상국 거사가 이렇게 고쳐 질문했다.
"악한 사람이 잘 살고 착한 사람이 못사는 이치는 무엇입니까?"
"잘 살고 못사는 건 다 전생의 공덕 대로 가는 것이다. 다만 전생의 공덕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면 더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을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그 기회에 진리를 구하거나 수행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공덕을 쾌락과 욕망을 푸는데 소진시켜 도로 업보를 짓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를 열심히 해라. 그러면 다음 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이에 대해 능엄경 제4권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삐냐저따 큰스님의 말씀은 이런 뜻이었다고 여겨진다.
-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다.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 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 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된다.<능엄경 제4권>
김상국 거사가 다시 여쭈었다.
"기독교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 죽여 희생으로 바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구약에 적혀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이나 하느님에게 돌리기만 하면 단번에 용서를 받아 죄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목련 존자의 어머니는 살생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차이가 무엇입니까?"
* 무간지옥 ;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없어서 한번 빠지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가장 높은 단계의 지옥. 5역죄(五逆罪)의 하나를 범한 자, 인과(因果)를 무시한 자, 사찰의 탑을 부순 자, 성중(聖衆)을 비방한 자, 시주받은 물건을 사적인 용도로 낭비한 자, 아라한(불교 성자)을 살해한 자, 비구니를 강간한 자가 가는 지옥이다. 오역죄는 부모를 살해하고, 아라한을 죽이고, 부처님을 해치고, 수행자 집단(승가)을 혼란 분열에 빠뜨린 죄를 가리킨다.
이에 큰스님은 다른 종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김상국 거사는 기독교의 대속, 즉 사람들이 지은 죄를 예수님이나 하느님께 돌리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여쭈었다. 그러자 큰스님은 짧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죄를 지어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 그런 말을 지어내 자기 이익을 위해 썼을 뿐이다. 업은 누가 대신 풀어줄 수 없고, 공덕도 대신 지어줄 수 없다."
김상국 거사가 또 여쭈었다.
"기독교는 하느님이 지구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지구가 왜 생겼는지 말이 없는 것같습니다. 그러고는 오직 윤회만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이에 대해 큰스님께서 친절하게 답변을 하시는데 김상국 거사는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내가 듣자하니 삐냐저따 큰스님은 능엄경을 설하고 계시었다. 이에 능엄경 해당 부분을 오려넣는다.
* 능엄경 제4권에 부루나가 석가모니 붓다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까?"
이처럼 우주의 생장소멸의 이치를 부루나가 묻자 붓다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 ....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부루나야!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이때 김상국 거사가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교리 차이를 더 여쭈려 했으나 이미 시각이 오후 10시를 넘었으므로 보문정사 주지 덕산 큰스님이 회상을 마치도록 음성으로 죽비를 치시었다.
회상의 모든 거사와 보살이 부리나케 일어나 절하고 여래원을 물러나왔다.
- 삐냐저따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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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파나 사티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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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라, 쿠타라, 태이자가 있습니다.
<황금탑을 세우는 용인 보문정사>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1
문의 / 031-332-0670 1899-3239
안내/유승민 yuchunni@hanmail.net
*** 붓다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붓다는 스승이 없습니다.
그가 붓다이고, 그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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