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경(普文經) 하(下) 임시공개본
오늘 오전 7시 56분에 삐냐저따 큰스님 친견이 가능하다는 보문정사 주지 덕산 큰스님의 통지를 카카오톡으로 받았다. 새벽까지 <보문경 중>을 정리하느라 늦게 잠들어 오전 중으로 한번 더 다듬어 일단 임시 공개하고, 오후에는 삐냐저따 큰스님께 어떤 질문을 드려야 대중들에게 공부가 될지 연구했다. 나의 오랜 친구인 비구 자륜 스님의 권유로 능엄경 50변마장을 읽으며 혹시라도 이 문답에 오류가 있는지, 마구니가 깃들 여지는 없는지 살폈다.
2시가 되자 질문지를 정리하고나서 큰스님에 대한 예의로 목욕을 했다. 수염을 다시 깎았다. 그러고는 새 양말 포장을 뜯어 신고,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빨래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별군이를 차에 태워 보문정사에 도착하니 이미 3시가 넘어 5분이 지났다. 큰스님 친견 시각은 '오후 3시'라고 하면 대략 오후 3시로부터 3시 30분 사이쯤 된다. 미얀마 시간 개념은 우리나라 몇십 년 전 전화가 잘 보급되지 않을 때와 비슷하다. 오전, 오후, 저녁 등으로 시간 단위가 구분된다. 따라서 5분, 10분 화급을 다툴 일은 아니다. 차에 내려서 보니 그만 허리띠 매는 걸 잊어 바지가 헐렁했다. 겉옷을 늘어뜨린 채 두었다. 일단 친견이 시작되면 두 시간은 하게 되므로 별군이 소변을 뉘고 차의 선루프를 연 다음 운전석에 앉혀 놓았다.
덕산 큰스님께 나아가니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오시 공양 이후 지금까지 선정에 들어 계시므로 통역 한대웅 조모아를 올려보내 기별을 드리라고 시켰다. 선정에 들었을 때 깨우려면 마치 깊은 잠에 든 사람을 깨우는 듯하다고 한대웅이 말했다.
한대웅이 여래원으로 올라간 다음 덕산 큰스님은 경내에 흩어져 있던 거사와 보살들을 불러모아 옷매무새를 고치게 하고, 화장실에 다녀올 사람은 미리 다녀오게 했다.
친견 법회에 참석할 대중이 다 줄을 서자 일단 여래원 1층으로 가서 삐냐저따 큰스님이 선정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보살들은 삐냐저따 큰스님이 친견 중에 마실 수 있는 주스를 준비했다. 빠냐저따 큰스님 주스는 덮개가 있는 큰 크리스탈잔에, 덕산 큰스님 주스는 그보다 작은 머그잔에 준비했다.
통역 한대웅으로부터 삐냐저따 큰스님이 선정에서 나와 대중을 맞을 준비를 하셨다는 기별이 왔다. 이에 덕산 큰스님과 종현 스님 두 분이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가 앞장서는 법이라서 재가불자들은 더 기다렸다가 통역 한대웅의 신호를 받고나서야 계단으로 차례차례 올라갔다.
여래원 2층에 올라가니 덕산 큰스님과 종현 스님은 예를 마친 후 서쪽 창가로 가 착석하였기에 대중들은 삐냐저따 큰스님께 일제히 삼배를 드리고 각자 자리에 둘러앉았다. 이렇게 <보문경 3차> 법석이 마련되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오후 3시,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1번지 보문정사 여래원 2층에 미얀마 정글스님 삐냐저따(Ashin Pyin Nya Zaw Ta) 큰스님께서 동쪽 창 앞, 뒤에 반야심경 병풍이 쳐진 큰 의자에 앉으시고, 그 왼쪽 창가에 보문정사 주지 덕산 큰스님이 앉으시고, 그 옆에 양주에서 온 종현 스님이 앉으셨다. 종현 스님은 비구니로서 하안거를 하던 중 이 날 3차 법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정진을 마친 다음 부랴부랴 달려오신 걸음이었다. 한편 두 차례 법회에 배석하셨던 자와나 스님은 이 날 오전 일정을 보신 후 피곤하여 여래원 1층 방에서 쉬고 계셨다.
삐냐저따 큰스님 오른쪽에 통역을 맡은 한대웅(미얀마출신 Zaw Moe Aung)이 두 다리를 미얀마식으로 접어 앉고, 그 옆으로 내가 반가부좌를 하여 앉고, 김상국 거사가 책상다리를 하여 앉고, 그 오른쪽으로 관음성 윤명순, 전법심 이금순, 보리심 배복순, 진여성 유승민, 법성화 최근영, 원불심 홍금자, 여래심 박재숙, 법안심 이창희, 진불심 윤점심 보살 등이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앉았다. 이 자리 순서는 보살들끼리 7월 24일 월요일 회상과 똑같이 앉자 하여 그렇게 했는데 오늘 금요일에 한 명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그대로 참석했다.
나 이재운이 합장한 후 질문을 올렸다.
"큰스님, 오늘 오전에 큰스님께서 이 법문을 허락하셔서 보문정사 주지 덕산 스님이 이를 대중에게 공지한 지 9시간이 지났습니다. 이 회상에 모인 비구, 비구니, 거사, 보살은 큰스님의 감로법문을 들을 귀한 기회를 가졌고,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불자들은 나중에 글을 통해 큰스님의 법문을 읽어볼 인연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법회가 열리면 사람만 모이는 게 아니고 천신, 신장, 귀신들도 와서 듣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오늘 이 회상에도 저희 말고 큰스님 법문을 듣고자 와 있는 신들이 있습니까?"
"있고말고. 여기... 저기... 이 터에 오래도록 살았던 귀신들이 모여 있다. 사람이나 귀신이나 기도하고 지극한 자비심을 내면 서로 친해질 수 있으니, 이들과 친하기 바란다."
"큰스님, 이제 이 자리에 있는 대중과 귀신과, 이 자리에는 없으나 나중에 글로 읽을 수 있는 인연 있는 대중은 큰스님의 법문을 듣거나 읽을 기회가 있으니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누군가는 옆구리에 어린 아들을 끼고 높은 아파트에서 수십 미터 까마득한 시멘트 바닥으로 투신하려고 눈물 짓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분들은 큰스님 법문을 듣고 싶어도 들을 기회가 영영 없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큰 자비심을 베풀어 주시어 어떻게 하면 이 악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따뜻하게 가르쳐주십시오."
* 한국인 자살자 ; 2007년~2011년 한국인 자살자는 같은 기간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보다 2배~5배 많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연간 약 500만 명, 하루에 약 1만 3698명이다. 실제 자살을 계획하는 사람은 연간 약 200만 명, 하루 약 5479명이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연간 약 15~30만 명이고,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은 약 1만 5000명이다. 하루에 약 41명이 실제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있다.
아라한 삐냐저따 큰스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생각을 가다듬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분들에게... 스님인 나도, 여러분도 더 큰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양곤의 좋은 절에서 편안하게 수행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고 무작정 정글로 들어갔을 때는 그야말로 바릿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실 물도 먹을거리도 없었다. 나는 밀림에 앉아 오직 아나파나를 하고 기도했다. 며칠 있으니 배가 고파 죽을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깊은 정글에 누가 음식을 갖고 와 공양하더라. 대중들이여, 힘들다 생각하면 그 생각에 끌려가 더 힘들어진다. 다른 생각을 해서 힘들다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번뇌가 치고 들어와 꽁꽁 묶으니 그러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나파나를 해야 한다. 힘들면 아나파나를 하고, 괴로우면 아나파나를 하고, 외로우면 아나파나를 하고, 답답하면 아나파나를 해야 한다. 힘든만큼 더 무섭게 해야 한다. 그래서 힘든 그 원인을 잊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해서 잊어야 한다. 그래서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그 잘못된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다 잊고 다 떨치고 아나파나를 해야 한다. 오직 아나파나다. 쉽게 포기하지 말라. 열심히 노력해라. 기도를 많이 해라. 기도를 하면 고통을 잊을 수 있다. 기도가 고통을 잊게 한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큰스님, 자살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업이 따릅니까?"
"또 자살하고 또 자살한다."
"얼마나 자살해야 그 업이 끝납니까?"
"500생 동안 거듭 자살하게 된다. 가슴이 찢어질 것같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그 악업을 끊을 수 있습니까?"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만이 그 모진 업을 끊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친구나 이웃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 악업의 쳇바퀴가 돌기 전에 미리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를 하라고 권해야 한다."
너무 무거운 질문으로 회상은 금세 침울해졌다. 주제를 돌렸다.
이때 도성 김영식 거사가 들어와 삼배를 한 뒤 김상국 거사 오른쪽에 앉았다.
나는 이때 이틀 전 친견에서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지하 20킬로미터 아래에 있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누군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점을 들어 아라한도 속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그 지옥에 대해 사실이라고 믿는 건지 견해를 알려달라고 말씀드렸다.
* 지하 지옥 ; <보문경 중> 회상에서 나온 이야기이나 편집 중에 찾아보니 사실이 아니어서 덕산 큰스님께 이 사실을 보고하고 뺐다. 하지만 이 날, 아라한은 사실이 아닌 것에 미혹해서는 안된다는 능엄경 변마장 경고를 보고, 적어도 큰스님께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말씀드리는 게 옳다고 판단하여 질문을 드린 것이다. 아래 사진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채굴 중 드러난 '지옥의 문'이라는 것으로, 45년째 불이 타오르고 있다. 더 아래 사진이 바로 시베리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지하 20Km에 있는 지하감옥 소문에 대한 실상을 밝힌 동영상이다.
삐냐저따 큰스님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양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거기 다녀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말을 해도 사실이 아닌 것은 끝까지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군가 미국에서 나온 영화를 편집하여 만든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큰스님께서 그 사실을 계속 믿으시겠습니까?"
"내게 진지하게 말해준 학자와 사람들이 있으므로 아직은 믿는다."
이 질문은 이로써 그쳤다.
* 나는 스승들로부터 '글 쓰는 사람은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교육을 받고 작가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실천해왔기 때문에 100년만에 피는 고구마꽃이니 3천년만에 피는 우담바라꽃이니 30년 산 늙은 솔개가 부리를 뽑고 발톱을 뽑고 털을 뽑아 6개월간 재생할 때까지 환골탈태하면 다시 30년을 산다는 거짓말을 밝혀낸 바도 있다. 지금도 조윤선 피고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한 판사에 대해 라면 훔친 사람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한 판사라는 거짓말이 진실처럼 SNS를 떠다니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의 사회적 집단 지성을 내가 잘 알지 못하므로, 이 정도 문제 제기만 해도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결국 진실을 향해 가시리라는 믿음을 갖고자 한 것이다. 내가 큰스님의 말씀이라고 하여 무조건 믿는다고 오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굳이 지적하는 것이고, 붓다께서 평생 가르치시기를 '내 가르침도 의심하라'는 교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 삐냐저따 큰스님의 발. 큰스님은 거의 맨발로 지내신다. 양말은 본디 신지 않으며, 길을 걸을 때는 샌달을 신는다. 큰스님은 13살 출가 후 오직 발로 걸어 다니며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로 지헤를 얻으신 분이고, 나는 양말 신고 구두 신고 자동차 타고 다니며 '머리'로 구한 지식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살아 왔기 때문에 나는 삐냐저따 큰스님의 이 발로써 얻은 지혜에 크나큰 존경의 마음으로 예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준비한 다음 질문을 큰스님께 올렸다.
"삐냐저따 큰스님, 석가모니 붓다는 깨우쳐서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미륵보살이 깨우쳐 세상에서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큰스님 등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성불하여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중생이 다 깨닫고 나면 이 세상은 텅 비게 됩니까?"
"그렇진 않다. 성불을 방해하는 마왕의 무리는 영원히 남는다. 그러나 마왕도 깨닫고 참회하면 아라한 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붓다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또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세상은 없어질 수가 없다. 도리천도있고, 도솔천이 있고, 범천이 있는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난 것을 반야경에서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태양이 폭발하고 은하가 폭발하고, 마침내 우주가 폭발하여 없어지는
"사변에 빠지지 말라. 살생 없으면 경찰, 검찰, 법원이 필요없고, 교도소도 필요가 없어 교도관도 필요없고, 판사, 변호사, 검사가 필요 없어진다. 거짓말이 있으니 계약서 쓰고, 사기범이 생기고, 벌금을 내고, 과태료 내고, 업이 업을 물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한데 중생이 업을 짓지 않는 일이 언제나 돼야 가능하겠는가. 이처럼 공즉시색과 색증시공은 이곳저곳 영기저기서 잇따라 일어나니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
나는 합장하여 큰스님의 말씀을 받아지녔다. 내 본 마음은, 13살에 출가하여 일반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어려서부터 아나파나와 비파사나, 그리고 경전 공부만 해온 큰스님이 어디까지 사유가 가능한지, 과학적인 분별이 가능한지 궁금하여 질의한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쯤에서 질문을 거두었다. 삐냐저따 큰스님에 대한 존경심에는 한 오라기의 의심도 없지만, 나는 의심해야 할 의무를 지녔다고 나 자신을 응원했다.
이에 앞서,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공즉시색 색즉시공에 대한 답을 통역 한대웅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김상국 거사가 "기독교 관련 질문을 하고 싶은데 저번처럼 덕산 스님이 음성으로 죽비 치실까 걱정되니 이 선생이 물어라." 하여 나는 김상국 거사의 질문을 대신 드렸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의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박사를 따고, 대기업 근무를 하던 중 경희대학교 교수로 오래도록 강의하다가 다음 달 8월말로서 정년 퇴임하는 김상국 거사는 덕산 스님 앞에서는 언제나 순한 양이 된다. 계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아래 질문은 내 질문이 아니고, 김상국 거사가 몰래 시켜서 대신 한 것이다.
"삐냐저따 큰스님, 큰스님은 작은 잘못에도 과보가 따른다며, 계를 지키고 아나파나를 열심히 하라고 하십니다. 스님 뿐만 아니라 불교 승려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주시며 자신을 믿기만 하면 다 구원해준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죄를 쉽게 사면해주고 기꺼이 용서해주는데 불교는 죄를 용서해주기는커녕 감면도 안해주고 끝없이 아나파나 해라, 보시하라, 봉사하라, 참아라, 계율 지켜라, 골치 아프게 수행을 시킵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불교 신자들이 견디겠습니까? 불교도 기독교처럼 쉽게 죄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질문을 올리니 통역 한대웅이 미얀마어로 큰스님께 다시 질문을 드렸다. 그 사이 김상국 거사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삐냐저따 큰스님의 답을 기다리고, 종교 관련 질문은 실수가 생길 수 있으니 삼가라던 덕산 스님은 좌정한 채 우리 두 사람의 계략을 눈치 채지 못하시는 듯하였다.
- 덕산 스님(보문정사 주지).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김상국 거사는 4살 어린 덕산 스님 앞에서 천진난만 동자처럼 굴고, 덕산 스님은 5살 어린 삐냐저따 큰스님 앞에서 돌 지난 아들처럼 헤살거린다.
긴 질문에 비해 삐냐저따 큰스님의 답은 매우 간단했다. 그럴 때마다 통역 한대웅 조모아에게 "큰스님은 길게 말씀하시는데 넌 왜 그렇게 짧아? 더 얘기해봐." 독촉하지만 한대웅의 자부심이 강하여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결집을 잘 해도, 녹음을 두번 세번 들어도 한대웅의 벽을 뚫기가 <지금은> 어렵다.
"누가 그대들더러 붓다를 믿으라 했는가?"
"예?"
"석가모니 붓다께서 그대들에게 뭘 믿으라고 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큰스님."
물론 석가모니 붓다는 팔만대장경 어디를 살펴봐도 믿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불교에는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붓다는 도리어 8정도를 통해 사실인가 아닌가 냉철하게 분석하고 따져보고 의심하라고 가르치셨다. 심지어 붓다를 직접 보고도 믿지 말 것이며, 붓다의 말씀응 듣고도 무조건 믿지 말 것이며, 오직 끝없이 진실을 추구하라고 강조하셨다.
절에서 더러 스님들이 더러 신심(信心)을 강조하는 것은, 붓다가 결코 말한 바 없는 말로서 스님들이 편한대로 지어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진실에 대한 믿음' 없이 지혜로 나아가기도 어려우므로 '믿음' 자체를 경멸해서는 안된다.
"그렇다. 석가모니 붓다는 의심하라고 했지 덮어놓고 믿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늘 의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붓다 당신의 가르침조차 의심하라고 했다."
"그래도 불교는 공부하기 너무 힘들어 신도들이 쉽게 지칩니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여덟 자 배우는 것도 너무 어렵습니다."
"우선 5계를 지켜라. 1~3년 5계를 지키면 계를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 계의 느낌을 아는 사람은 계를 꼭 지키게 된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힘들어도 기꺼이 지키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게을러서, 귀찮아서, 힘들어서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이 절 저 절에서 붓다가 말씀하신 지혜 '반야'를 공부하고 깨우치기 너무 어려워 쉬운대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고, 절 많이 하면 무릎관절에 좋다, 부처님이 소원 이뤄주신다 하여 108배, 1080배, 3천 배 절이나 하고, 초하루기도니 백중기도니 사십구재니 예수재니 기도하고 재 올리는 수많은 신도들을 위해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기대했지만 결국 삐냐저따 큰스님은 시퍼런 칼로 두부 잘라버리듯이 그 기대를 끊어버렸다. 한 마디로 계를 지켜야만 번뇌가 끊어진 집중 즉 선정에 이르고, 그래야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정혜(戒定慧)를 또 강조하신다. 이렇게 여쭤도 계정혜, 저렇게 여쭤도 계정혜니 큰스님깨서 더 쉬운 방법을 말씀해주실 것같지는 않다. 거사, 보살 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번에는 편한 질문을 드렸다.
"삐냐저따 큰스님, 불경에 보면 석가모니 붓다는 생일잔치를 했다는 기록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요즈음 스님들을 보면 생일잔치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것같습니다. 큰스님도 생일에 잔치를 하십니까?"
"안한다."
"저 덕산 스님께 '생일잔치 하느냐?"고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삐냐저따 큰스님은 웃으면서 덕산 스님을 향해 생일잔치를 하느냐고 물었다. 이때 진여성 유승민 보살이 "신도들이 상을 차려 올리는 것이지 하라고 시켜서 하지는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삐냐저따 큰스님은 웃으시면서 "나도 마타지가 해주면 받기는 한다. 자기 생일에 남에게 보시하기 위해 생일잔치를 하는 것은 괜찮다. 공양하기 위해 베푸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큰스님께도 생일이 있을 텐데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OO년 11월 23일이다."
"혹시 업보에 따라 생년월일이 달라집니까? 즉 업보에 따라 생일이 달라지고, 생년월일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지요?"
"업에 의해 세상에 오고갈 뿐이다. 생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태어난 환경과 장소가 중요할 뿐이다."
개개인에게 운명이 있느냐는 질문을 드리려다가 이미 업에 의해 세상에 오는 것이라 말씀하셨으므로 더 묻지 않았다.
덕산 스님이 잠시 여래원을 나갔다.
이때 김상국 교수가 손을 들어 질문을 드렸다.
"깨닫기 위해서는 금식, 단식, 요가 등 일부러 고통을 느끼는 수행이 필요합니까? 그런 것을 요구하는 종교들도 많습니다."
"아니다. 잘못된 수행들이다. 붓다가 계실 때 한 외도가 찾아와 '왜 여기는 이리 조용하냐?"며 의심했다. 붓다의 제자들이 '우리는 아나파나를 할 뿐이다.' 하니 외도가 따라서 해보았다. 얼마 안가서 실제로 깨달음을 얻으니 그의 무리가 붓다에게 귀의했다. 아나파나는 너무 쉽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부러 어려운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
- 삐냐저따 큰스님은 7월 30일 오후 4시 30분, 큰스님께서 강조하시는 아나파나 실천을 위해 <붓다의 사람들>이라는 수행단체를 만들고, 이 수행단체 이름을 새긴 전각을 깃발 삼아 활동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긴 기도와 선정으로 이 전각을 축원해주셨다. 전각은 고암 정병례 선생의 2003년 작품.
이때 삐냐저따 큰스님께서 가볍게 기침을 하시므로 나는 통역 한대웅에게 에어컨 온도를 좀 높이 설정하라고 하여 그가 에어컨 리모컨으로 실내 온도를 조정하였다.
김상국 거사가 다른 질문 한 가지를 더 드렸다.
"붓다께서는 쿠시나가라에서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을 받을 때 너무 상하여 음식에 독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도 드셨다고 합니다. 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은 상하면 매우 심한 냄새가 나는데, 대장장이 춘다가 어떻게 그런 음식을 붓다께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붓다께서 훤히 아셨을 텐데, 그래서 음식을 안드셨다면 그때 열반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러셨을까요?"
"붓다의 전생에 이런 일이 있었다. 머나먼 옛날 어느 한 생애에 붓다는 의사로서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그러던 중 한 환자가 치료비를 내지 않았다. 다 나았는데도 병이 낫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면서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 의사는 이 환자에게 일부러 설사약을 처방해주었다. 붓다는 바로 이때 마음 한번 잘못 쓴 업보를 풀기 위해 자기 자신이 돌아가실 것을 알고도 일부러 음식이 상해 독이 생긴 버섯전골을 얻어 잡수시고 열반하신 것이다."
설명 중에 한수진 보살이 들어와 삼배를 한 뒤 내 뒤에 앉았다.
"붓다는, 다만 버섯전골을 제자들에게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천신들이 붓다에게는 이 세상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으며, 한번 열반하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고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므로 붓다에게 다시 공양할 기회가 없다는 걸 알고 마지막 공양을 다투어 올렸다."
이번에는 거사와 보살 들이 지루하지 않게 내가 재미난 질문을 올렸다.
"큰스님, 혹시 육신통((六神通)을 쓰실 수 있습니까?"
* 육신통((六神通) ; 붓다와·아라한 등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6가지 초인적인 능력. 6종의 신통력(神通力)이다.
신족통(神足通, Pali:iddhi-vidha-nana) - 순간 공간 이동 능력이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순식간에 가고, 순식간에 돌아올 수 있다.
천이통(天耳通, Pali:dibba-sota-nana) - 아무리 먼 데 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타심통(他心通, Pali:ceto-pariya-nana) -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숙명통(宿命通, Pali:pubbe-nivasanussati-nana) - 자신과 남의 전생을 알 수 있다.
천안통(天眼通, Pali:dibba-cakkhu-nana) - 아무리 먼 데 있어도 볼 수 있다.
누진통(漏盡通, Pali: asavakkhaya-nana) - 자신의 번뇌가 다하여,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임을 아는 능력이다. 오직 붓다만이 갖는 능력이다.
삐냐저따 큰스님은 일단 숙명통을 갖고 있다고 하시므로 여쭌 것이다.
"있다. 미얀마에는 기적을 일으키는 스님이 많다. 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붓다는 신통력을 함부로 보이지 말라 하셨다."
"삐냐저따 큰스님, 그렇다면 우리 거사와 보살 들을 데리고 잠시 미얀마 정글에 있는 큰스님의 선원에 다녀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황금대탑 불사가 바쁜데 그런 하찮은 일에 힘쓸 일이 있겠는가. 내가 아는 미얀마 스님 한 분은 실제로 여러 사람을 데리고 먼 데 있는 불상 앞까지 데리고 가 참배를 시킨 적이 있다. 눈 떠라 하면 아주 먼 곳의 불상 앞이고, 눈 떠라 하면 원래 있던 곳이었다."
하여튼 우리는 때퓨 비파사나 선원은 구경하지 못했다.
김상국 거사가 "질문 그만하라.'고 귓속말을 하더니 당신의 질문을 낭랑하게 올렸다.
"큰스님, 저는 원래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신도회장이셨습니다. 한국 불교가 중흥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삐냐저따 큰스님은 짧게 대답했다.
"다른 데 보지 말고 그대들부터 수행을 많이 해야 한다."
김상국 거사는 질문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꼈는지 이번에는 고쳐서 여쭈었다.
"큰스님, 큰스님께서 다가오는 어느 세상에 성불하실 때...(이 부분에서 갑자기 흐느끼면서) 저도... (흑흑)... 무슨 역할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흑흑) 성불하시는 큰스님을 위해...(목이 메어)... 뭔가 하고 싶은 서원을 세우고자 합니다.... (울먹거리며) 뭐라도 좋으니..."
삐냐저따 큰스님은 따뜻한 눈빛으로 김상국 거사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이윽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그렇게 될 것이다."
김상국 거사는 앉은 채 합장하고 일배를 드리면서 큰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받아 지니었다.
"다만 그러기 이해서는 수행하고 선정에 자주 들어가야 한다. 다음에 오면 여러분에게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를 가르쳐주겠다."
(녹음 확인해야 할 부분)
"영국 기독교 학생들이 찾아와 다른 건 말고 오직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만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시켰다. 처음에 10분도 앉아 있지 못하더라. 일주일 수행하겠다고 하면 가르쳐주겠다고 하니 약속하여 내가 지도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 이 여학생은 비구니가 되겠다고 하더라. 독일에서 온 사람도,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도 그런 경험을 했다."
(녹음 확인해야 할 부분)
이때 나는 김상국 거사가 삐냐저따 큰스님의 성불 때 그 회상에 참여할 수기를 얻었으므로,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질문을 드리는 대신 감히 청을 드렸다.
"큰스님, 김상국 거사는 영광스럽게도 큰스님께서 붓다가 되어 회상을 여실 때 그 자리에 참여하여 중요한 바라지를 할 수 있으리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아나파나와 비파사나를 하기로 서원할 테니, 제발이지 그 회상에 이르는 세세생생의 길에 마구니의 방해를 받지 않고, 실수로 더 나쁜 과보를 받지 않도록 기도를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에 삐냐저따 큰스님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시었다. 회상의 모든 거사와 보살 들이 일제히 합장하고나자 큰스님께서 깊고도 깊은 선정에 들어가시었다.
약 5분간 삐냐저따 큰스님이 선정에 들어 기도를 하시고, 거사와 보살 들은 합장한 채 기다렸다.
5분 뒤 큰스님께서 거사와 보살 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드리듯 톡톡 치시면서 말씀하시었다.
"그렇게 될 것이다."
미얀마에서 온 마타지 세 분과 통영 한대웅이 먼저 '싸두'라고 외치면서 미얀마 순례 경험이 있는 신도들이 따라서 '싸두'라고 외쳤다. 좋다, 훌륭하다는 뜻으로 법문의 중간 중간에 이런 추임새를 넣는다고 한다.
시간이 길어져 곧 친견을 마쳐야 하므로 질문 기회를 거사와 보살에게 드리니, 법성화 최근영 보살이 손을 들고 질문을 드렸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계가 더 많습니까? 비구계는 250가지인데 비구니계는 무려 348가지나 됩니다."
"남자냐 여자냐는 깨달음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계정혜만 굳게 지키면 남녀의 순서도, 위계도 없다."
나는 이에 대해, 나라마다 전통과 습관이 달라 여성을 억압하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일이 있으며, 그러다 보면 여성 스스로 위험에 빠지기 쉽고, 힘에서 남성의 범죄를 이겨내기 어려우므로 미리 그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계율로써 울타리를 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배운 바 있으므로 그렇게 이해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불교 그림에 나오는 오백나한 중 여성이 없음을 여쭈었다.
"큰스님, 우리나라에는 아라한을 조성한 절이 많은데 저는 아직 여성 아라한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여성 아라한이 없었습니까?"
"아니다. 여성 아라한이 대단히 많다. 한국 불모들이 잘못된 인식으로 여성 아라한을 만들지 않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는 묘법연화경에 간단히 설명되어 있다. <법화경 제12장 제바달다품>에 보면 석가모니 붓다의 4촌동생 제바달다가 못된 악행을 하여 5역죄를 저질렀다 해도 전생에 석가모니 붓다의 스승이었던 공덕이 있어 미래세상에서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내리고, 8살 짜리 여자 아이인 용녀가 즉석에서 성불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즉 대역죄를 저지르고도 붓다가 되고, 여성이면서 겨우 8살 짜리인데도 붓다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보문정사 주지 덕산 스님은 머나먼 정글에서 수행 중인 삐나저따 큰스님을 찾아가라는 양곤의 '호수 스님 자와나'의 권유를 받고 강을 건너고 숲을 헤치며 밀림으로 갔다. 그런 지 2년만에 붓다의 진신사리 등 수백만 과의 사리를 모실 황금대탑 불사가 한국과 미얀마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때 진여성 유승민 보살이 손을 들어 "미얀마에 가보니 곳곳에 남녀 차별이 심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요?" 하고 여쭈었다.
삐냐저따 큰스님은 웃으시며 대답했다.
"미얀마 불교 문화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미얀마 문화라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미얀마라는 나라 안에 미얀말 불교가 있다. 한국도 그런 적이 있잖은가."
이때 양주에서 온 비구니 종현 스님도 여성 차별 문제가 나온 김에 질문을 올렸다.
"큰스님, 제가 미얀마에 가 불상에 금박 보시를 하려는데 행사를 진행하던 마타지가 막아서며 저를 불단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출가수행자인 비구니가 금박을 붓다의 몸에 공양하려는데 가까이 가지를 못하게 하여 하는 수없이 미얀마 남자에게 부탁하여 제 금박을 갖다 붓다의 몸에 붙여달라고 부탁했답니다. 비구니조차 불상에 접근하지 못한 것입니다. 비구도 아닌 일반 남자들마저 누구나 가까이 갈 수 있는데 저같은 출가 비구니가 왜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
"여자로 보기 때문이다."
"제가 비구니인데요? 가사도 입었구요."
"미얀마도 처음에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중간에 맥이 끊겼다. 그래서 미얀마에는 비구니가 없어지게 됐다. 따라서 상좌부 불교국인 미얀마는 아예 비구니가 없는 줄 안다. 그대는 한국 비구니이므로 미얀마에서는 비구니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냥 여자가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얀마 문화에서 여성은 불상에 접촉할 수 없고, 비구에게도 일절 접촉할 수 없다."
"중국에 가보면 여성으로서 성불한 사례도 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다릅니다."
"미얀마에서 비구니가 되려면 상좌부 불교가 살아 있는 스리랑카까지 가야 한다. 전에 태국에서 온 여성 박사가 출가를 원하므로 내가 미얀마에서는 계를 받을 수 없으니 스리랑카로 가서 받으라고 권한 적이 있다."
이때 시각이 오후 5시를 넘겼으므로 친견을 시작한 지 두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고, 나는 덕산 큰스님께 이로써 3번에 걸친 삐냐저따 큰스님의 법문은 충분히 들었으므로 더 질문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삐냐저따 큰스님께 오늘 법문까지 다 합쳐서 덕산 큰스님과 결집, 편집을 거친 다음 책으로 엮어 인연 있는 분들에게 나눠주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얀마어로 번역하여 큰스님께도 봉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큰스님이 기뻐하셨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삼배를 드리고 여래원을 물러나오는데, 삐냐저따 큰스님은 일부러 하안거 중에 달려온 비구니 종현 스님을 따로 불러 수기를 주셨다. 나중에 종현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삐냐저따 큰스님으로부터 3백 달러를 선물로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미얀마에서 비구니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으로 차별받은 점이 안쓰러워 큰스님께서 배려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상을 떠올렸다. <보문경 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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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파나 사티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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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라, 쿠타라, 태이자가 있습니다.
<황금탑을 세우는 용인 보문정사>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1
문의 / 031-332-0670 1899-3239
안내/유승민 yuchunni@hanmail.net
*** 붓다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붓다는 스승이 없습니다.
그가 붓다이고, 그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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