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식음의 현상을 보이시다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 행음이 다 없어진 자는 모든 세간에 그윽히 맑고 요동하는 같은 분업끼리 생겨나는 근본이 깊고 미세한 기강이 홀연히 무너져 내리고 보특가라의 업보를 갚는 깊은 맥락에서 감응하는 것이 아주 끊어져서 열반의 하늘에 장차 크고 밝게 깨달으려 함이 마치 닭이 두 번째 운 뒤에 동쪽을 돌아보녀 이미 은밀한 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비고 고요해서 다시 치달리지 않고 안과 안이 맑고 깊이 통달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고 근원을 고집하여 모든 종류를 부르지 않아 시방 세계에서 이미 동일함을 얻고 정밀한 빛이 빠지지 아니하여 그윽하고 신비함을 발하여 나타내리니 이를 식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행음이 소멸하고 식음이 나타남을 서술하신 것이다. 그 작용하는 것이 세상이 변천하여 흐르는 본체의 성품이며 요동하여 생겨나는 기틀의 강유이며 보특가라의 업보를 갚는 깊은 맥락이다. 하늘 같은 성품을 숨기고 여섯 개의 감각기관으로 달려가게 해서 안으로 맑음을 뒤흔들어 부질없이 허무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의 궁극적인 중추가 되므로 행음이 다 없어진 자는 생겨나는 기틀의 중추가 홀연히 무너져 내리며 보특가라의 깊은 맥락으로 감응하는 것이 아주 끊어져서 하늘 같은 성품이 장차 크고 밝게 깨달으며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다시는 달아남이 없으리니 달아나지 아니하기 때문에 안과 안이 맑고 밝으며 중추가 없으므로 들어가도 들어갈 데가 없나니라. 동요함을 돌이켜 고요하게 해서 깊고 또 깊으므로「안과 안이다」라고 한 것이다. 열반의 하늘 같은 성품이 오음에 덮혀서 깊은 밤처럼 어두우니 앞에 세 가지 음이 다 없어졌을 적엔 마치 닭이 처음 울때와 같아서 비록 밝은 조짐은 있어도 아직 두 가지 음에 잠겨서 은밀한 빛이 분명하진 않거니와 여기서 행음이 다 없어졌을 적엔 마치 닭이나 나중 울 때와 같아서 오직 하나의 음만 남는다. 그러므로「장차 크고 밝게 깨닫는다」는 것이다.「생명을 받은 원래 이유」는 식음이다. 행음이 없어지고 식음이 나타나기 때문에 깊이 통달한 것이며 중추가 없으므로 볼 수가 있으며 변천하여 흐름이 없으므로 잡을 수 있으며 생겨나는 기미가 없으므로 부르지 못한다. 드디어 시방의 依報의보와 正報정보가 다 식음에서 변하였기 때문에 이미 그 동일함을 얻었다. 은밀한 빛이 비록 밝게 통하지 못했으나 깊고 비밀한 모양이 이미 차츰 발하여 나타나리니 이는 식음의 모양이다.
만약 여러 무리의 부름에서 이미 동일함을 얻은 가운데 여섯 가지 문을 소멸시켜서 함하여 열림을 성취하면 보고 들음이 이웃처럼 통해서 서로 작용함이 청정해져서 시방 세계와 몸과 마음이 마치 수정처럼 안팎이 환하게 통한 것과 같으니 이를 이름하여「식음이 다 없어졌다」고 하나니 그 사람은 명탁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을 관찰하면 형상이 없이 허무하게 뒤바뀐 허망한 생각으로 근본을 삼았기 때문이니라.
原註=「여럿이 부르는 동일한 가운데」란 열 두 종류의 생명의 근원이니 이는 곧 식음이다. 만약 이 가운데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여섯 가지 문을 소멸시켜서 감각기관으로 하여금 합해져서 나누어지지 않고 세계로 하여금 열려서 막히지 않게 되면 보고 듣는 것이 원만하게 통해져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나니 그로 말미암아 밖으로 세계와 안으로 몸과 마음이 다시 걸림이 없으리니 이는 식음이 다 없어진 현상이다. 성품은 본래 하나의 참된 것이어늘 티끌이 가리워짐으로 말미암아 성품이 작용하는 사이에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게 되는데 이를「명탁」이라고 한다. 식음의 실체가 되므로 식음이 다 없어지면 초월하는 것이다. 식음은 곧 허망한 깨달음의 그림자 같은 형상이다. 본래는 자체가 없는 것이나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생겼으므로「형상이 없이 허무하게 뒤바뀐 허망한 생각」이라고 한 것이다.
둘째, 잘못된 견해임을 밝힘
첫째, 참되고 항상한 원인을 성립하여 외도를 이룸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선남자가 행음이 비었음을 궁구하여 식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되 寂滅적멸의 정밀하고 오묘함에 대해서는 원만하지 못하나 자기 몸의 막힌 감각기관으로 하여금 합하여 열리게 하며 시방의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통해 깨달아서 깨달아 아는 것이 서로 통하고 합해지면 원만한 근원에 들어갈 수 있으리니 만약 돌아갈 데에 참되고 항상한 원인을 세워 뛰어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원인할만한 것을 원인했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冥諦명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비가라와 반려가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혜롭게 보는 것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一의 얻었다는 마음을 세워서 돌아가야 할 果과를 성취했다고 하는 것이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져버려서 외도의 종자에 태어나나니라.
原註= 식음이 행음으로 말미암아 흘러가기 때문에 행음이 비어지면 근원으로 돌아가나니라. 이미 행음을 비게 하였으므로 나고 죽음이 이미 사라졌지만 아직 식음의 근원을 의지하고 있으므로 고요하게 멸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식음을 차츰 차츰 깨트려서 여섯 가지 문을 소멸하여 없앨 수 있으므로 자신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것과 어울려서 막힘이 없으며 모든 중생의 깨닫는 성품에 원융하게 통해서 둘로 갈라지지 아니하므로 원만한 근원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원만한 근원이란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막는 것을 원만하게 융화하고 모든 중생의 식음의 근원을 통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으로써 참으로 돌아갈 곳이라 여겨 이를 세워 참다운 원인으로 삼으면 원인이 될만한 것을 원인했다는 그러한 집착에 떨어질 것이다. 대개 참다운 원인은 대상이 없으니 대상이 있으면 모두가 허망한 것이다. 사비가라 외도가 아뢰야식에서 형체로 나타나기 이전의 아득한 첫 모양을 인정하여 돌아갈 곳의 참다운 원인으로 생각하나니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마음으로 얻은 것이 있으므로 결국은 돌아갈 곳이 있나니 곧 그 원인과 결과가 모두 허망한 곳으로 떨어지므로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을 저버리는 것이다. 요즈음 수행하는 사람들이 진실한 성품 가운데 문득 식심을 일으켜서 원인과 결과를 헤아려 생각하고 견해를 내어 얻은 바가 있으며 돌아갈 곳이 있는 자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진리로 돌아간다.
둘째, 상대되는 모든 것은 나의 소생이라고 생각하여 원만하고 두루함을 이룩함
아난아!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의 빈 것을 궁구하여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돌아갈 데에 대해서 그것들이 자기 몸이라고 여겨서 허공 세계의 열 두 종류에 속하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내 몸 속의 한 부분이 흘러 나온 것이라고 하여 뛰어나다는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능하지도 못한 것을 능하다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마혜수라와 같이 한량 없는 몸을 나타내는 자들과 반려가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혜로운 견해를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二의 잘 한다는 마음을 세워서 훌륭하게 일의 결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크게 거만한 하늘에 내가 두루 원만하다고 생각하는 종류로 태어나나니라.
原註= 식음의 근원이 자신의 몸이라고 집착하면서 모든 중생들이 이로부터 흘러 나온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내가 저들을 생겨나게 한다고 집착하지만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능하지 못한 것을 능하다고 하는 집착」이라고 한 것이다.「마혜수라」는 즉 색계천 꼭대기의 마왕이니 부질없이 생각하기를 내가 한량 없는 중생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고 하나니 역시 능하지 못함을 능하다고 하는 자이다. 능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일의 결과를 이루려는 자는 내가 상대의 의지가 되어서 상대의 일을 이루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크게 거만한 하늘」이란 곧 마혜수라이니 능하지 못한 것을 능하다고 하기 때문에 크게 거만하다고 했다.「두루 원만하다는 것」은 나의 몸이 허공세계에 두루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모든 상대방이 나를 생겨나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거꾸로 된 원만한 종자를 성립함
또 선남자가 행음이 빈 것을 궁구하여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돌아갈 적에 돌아가 의지할 곳이 있다고 여겨 자기의 몸과 마음도 거기에서 흘러 나왔다고 의심하며 시방의 허공도 모두 거기서 생겨났다고 여겨서 곧 생겨나는 모든 것이 퍼져 흐르는 곳에 대해 참되고 항상한 몸은 나고 죽음이 없다는 견해를 내나니 나고 죽는 가운데 있으면서 항상 머무는 것인줄로 미리 생각하여 이미 나지 않는다는 것에 현혹되고 나고 죽는 것까지도 혼미하여 잠기거나 혼미한데 편안히 머물면서 수승하다는 견해를 내면 그 사람은 항상하지 못한 것을 항상하다고 생각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자재천을 하늘과 짝이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지혜로운 견해를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三의 의지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각하는 결과를 이루었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뒤바뀐 원만한 종자로 태어나나니라.
原註= 식음의 근원을 의지할 곳으로 여기기 때문에 저들이 나와 일체 법을 생기게 한다고 의심하여 마침내 생겨나 흘러 나가는 곳을 참되고 항상하여 생겨남이 없는 실체라고 여기나니 이는 나고 죽는 가운데 있으면서 항상 머무는 것인양 부질없는 생각을 하여 이미 참으로 생겨남이 없는 성품에 현혹되고 또 현재 나고 죽는 법을 몰라서 항상하지 아니한 것을 항상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항상함이 아닌 것을 항상하다고 하는 집착」이라고 한 것이다. 이미 저들이 나를 생겨나게 했다고 생각하니 이는 곧 자재천이 일체를 생기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식음의 근원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머문다고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의지하는 마음을 따른다는 논리를 세워 허망하게 생각하는 결과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앞에서는 내가 저들을 원만히 생겨나게 한다고 생각하였고 여기서는 상대가 나를 원만히 생겨나게 한다고 생각하였으니 이를「뒤바뀐 원만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 온갖 물건들도 정이 있다고 생각하여 뒤바뀐 지견을 이룸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아는 바에 대해 그 아는 것이 두루 원만하기 때문에 저 아는 것으로 인해 견해를 정립하고 시방의 풀이나 나무들도 모두가 정이 있어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풀이나 나무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어 다시 시방의 풀 ․ 나무가 된다고 하며 가릴 것이 없이 모든 사물이 두루 안다고 고집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곧 아는 것이 없는 것을 안다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 바타 ․ 선니와 같이 모든 것이 깨달음이라고 고집하는 자와 짝이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四의 원만한 지혜의 마음을 헤아려 허망하고 잘못된 果과를 이루었다고 하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게 되어 뒤바뀐 지혜 종자에 태어나나니라.
原註=「아는 것」이란 곧 식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식음이 아는 것이 있고 모든 법이 그 아는 것으로 인하여 변화하였다고 여겨 그로 인하여 아는 실체가 모든 법에 원만하고 두루한다고 생각해서 마침내 다른 견해를 내고 정이 없는 물건까지도 모두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며 가려냄이 없기 때문에「가릴 것이 없이 두루 안다」는 것이다. 이는 아는 것이 없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아는 것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 집착」이라고 한 것이다.「바타와 선니」는 외도하는 두 사람이다.「모든 것이 깨닫는다고 고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느낌이 있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이는 원만한 지혜를 잘못 생각하여 원인이 되는 마음으로 생각하니 결과도 마침내 잘못되는 것이다. 지혜가 없는 것을 지혜로 여기는 것이 뒤바뀐 지혜이다.
다섯째, 물을 숭상하고 불을 섬겨 뒤바뀐 변화를 이룸
또 선남자가 행음이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융해진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이미 순하게 따름을 얻어서 문득 원융하게 변화하는 데서 모든 것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여 불의 광명을 구하고 물의 청정함을 좋아하며 바람이 두루 흐름을 사랑하고 모든 물질의 성취함을 관찰해서 각각 숭상하고 섬겨서 이 많은 물질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라고 여겨 항상 머무는 견해를 세우면 이 사람은 곧 남이 없는 것을 나는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모든 가섭파와 바라문들이 몸과 마음을 괴롭혀가면서 불을 섬기고 몸을 숭상하며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자와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五의 숭상하고 섬기는데 집착하여 마음을 혼미하고 사물을 따르면서 부질없이 구하는 원인을 성립하여 부질없이 희망하는 결과를 구하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뒤바뀌어 변화하는 종류에 나나니라.
原註= 식음이 다 없어진 이는 여섯 문이 소멸하여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나니 지금 여기서는 다 없어진 것이 아니고 겨우 순하게 따름을 얻었을 뿐이다. 순해져서 원만하게 서로 작용함으로 인하여 모든 법이 다 원만하게 변화할 수 있으니 수승한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불이 광명을 발할 수 있으며 나아가 물질이 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고 여겨서 사특한 욕구와 사특한 관찰로 마음을 괴롭히면서까지 숭배하고 섬겨서 수승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집착하지만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생겨나지 않는 것을 생겨난다고 하는 집착」이라고 한 것이다. 이미 진심을 혼미하고 사물을 따라 구하고 바라면 원인과 결과가 모두 부질없는 것이리니 뒤바뀌어 변화하는 이치를 뒤바뀌어 변화하는 종자라고 하였다
여섯째, 영원히 없다는데 의지하기를 생각하여 끊어 없앰을 이룸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만하게 밝은 데서 밝은 속은 비었다고 생각하여 모든 변화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영원히 없어지는 것으로써 돌아가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돌아갈 데가 없는데로 돌아가려는 집착에 떨어져서 무상천 가운데 모든 순야다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六의 원만하게 비어 없어진 마음으로 비어 없어진 결과를 이룬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끊어 없애는 종류에 나나니라.
原註= 이치를 관찰함이 자세하지 못하여 잘못 비어 없는 곳에 떨어졌기 때문에 원만하게 밝은 성품 가운데 모두다 비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서 모든 변화를 끊어 버리고 영원히 없어지는데로 돌아가되 그것이 잘못임을 알지 못하므로「돌아갈 데 없는 곳에 돌아가려고 하는 집착」이라고 한 것이다.「순야다」는 여기 말로 번역하면 空공이라고 하니 무상천과 순야다를 말한 것은 곧 끊어 비어졌다고 집착하는 외도들이기 때문이다. 끊어서 비게 했다는 데에 집착하기 때문에 원만하게 비어 없어졌다는 것을 원인이 되는 마음으로 여겨 비어 없어진 것을 끊는 결과를 이룬 것이다.「영원히 멸하여 없어진 데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외도들의 열반이다.
일곱째, 항상하고 견고한 몸을 탐하여 부질없이 오래 사는 것을 이룸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만하고 항상한 데에 몸을 견고하게 하여 항상 머물러서 정밀하고 원만함과 같게 되어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그 사람은 탐해서는 안될 것을 탐하는 집착에 떨어져 오래 살기를 구하는 아사타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七의 목숨의 근원에 집착하여 견고하게 하는 부질없는 원인을 세워 길이 수고로운 결과에 나아간다고 하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부질없이 목숨이나 연장하려는 종류에 나나니라.
原註= 식음에 의지하여 원만하고 항상함을 관찰하며 식음의 근원에 집착하여 원만하고 정밀하게 되어서 드디어 그 몸을 굳게 보존해서 함께 존재하고자 하여 부질없이 몸이 견고해지고 오래 살기를 탐하면서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 것을「탐해서는 안 될 것을 탐하는 집착」이라고 한다. 아사타는 여기말로 번역하면 無比무비라고 하니 곧 오래 사는 신선이다. 저들이 비록 수명은 연장시켰으나 마침내 무너져 없어지게 될 것이니 이는 허망한 몸둥이를 견고하게 하여 항상 머무르기를 구하고자 하면 공연히 오래도록 피로할 뿐이며 부질없이 목숨이나 연장하는 것이니라.
여덟째, 애욕에 머물러 생명을 굳게 다져 천마를 이룸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목숨이 서로 통함을 관찰해서 문득 번뇌를 머물러 두고서 사라져 없어질까 염려하여 문득 이때에 蓮華宮연화궁에 앉아 일곱 가지 보배를 널리 변화시키며 예쁜 여인을 많이 모아 마음대로 즐기면서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참되지 못한 것을 참된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 타지가라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八의 사특한 것을 생각하는 원인을 일으켜 치솟는 번뇌의 결과를 세운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저버려서 천마의 종자에 나나니라.
原註= 식음으로 목숨의 근원을 삼아 과거 ․ 현재 ․ 미래에 서로 통한다고 하여 식음이 만약 다하면 나의 목숨도 다하리니 누가 참되고 항상함을 증득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득 선정 가운데 모든 욕망의 대상을 변화시켜 번뇌를 머물러 두고 다 사라져 없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한 사특한 생각에 의지하여 참되고 항상함을 증득하려고 하되 그 잘못됨을 알지 못하므로「참되지 못한 것을 참된 것이라고 하는 집착」이라고 하였다.「타지가라」는 욕망의 대상을 변화시켜 스스로 즐기나니 곧 욕계천 꼭대기의 자재천 종류이다. 이 사특한 생각으로 인하여 천마에 감응하여 태어나서 번뇌와 욕망을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치솟는 번뇌의 결과」라고 하였다.「媛원」은 예쁜 여인이다.
아홉째, 적멸을 증득하여 스스로 좋아하면서 허공에 얽매임을 성취함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하여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목숨이 밝아진 가운데 정밀하고 거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함과 거짓됨을 판단해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갚는 것이라고 해서 오직 느껴 감응하기만을 구하고 청정한 도를 저버리니 이른 바 괴로움을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적멸해지기를 희망하여 적멸하는 길을 닦아 적멸에 있으면서 그만 그쳐서 다시 전진하지 아니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그 사람은 정성성문정성성문에 떨어져 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승려로서 증상만증상만에 빠진 무리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九의 정밀하게 감응하는 마음을 원만히 하여 적멸의 결과에 취향을 이루었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허공에 속박되는 종류에 태어나나니라.
原註=「목숨이 밝아졌다」는 것은 식음이 다 없어지므로 인하여 중생이 명을 받는 근본 이유를 깊이 밝힌 것이다. 나고 죽음이 식음으로 연유하는 것이며 정밀하고 거친 것이 업장으로 연유된 것이므로 사제[苦 ․ 集 ․ 滅 ․ 道]에 의하여 분별하고 가려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으로 거칠고 거짓됨이라 여기고 적멸과 적멸을 닦는 길로 정밀하고 진실함이라 생각하여 이에 그 적멸로 가는 원인을 오로지 닦아서 적멸의 결과가 감응하기를 구하여 적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므로 적멸에 안주하여 거기에 그치나니 이는 다만 증상만을 추구하는 정성성문의 무리이니 이는 원만한 정기로 원인을 삼아 적멸에 나아가는 작은 결과를 이룩하니「정밀하게 감응한다」는 것은 곧 거친 업장을 가려내고 오직 정밀하게 감응하기만을 구하여 반쪽 참다움을 증득해서 허공에 얽매이고 적멸에 나아갈 뿐이다.
열째, 증득했다는 마음을 세워 변화하지 않는 원만함을 이룸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하여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융하고 청정한 밝은 깨달음에 대해 깊이 오묘함을 연구 발명하여 이를 열반이라고 내세우며 더 전진하지 않으면서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定性辟支정성벽지에 떨어져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연각이나 독각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十의 원만하게 깨달아 합해진 마음으로 맑고 고요하고 밝은 결과를 이루었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지고 변화하지 않는 원만한 종류에 태어나나니라.
原註=「원융하고 청정한 밝은 깨달음」이란 곧 정밀한 식음을 말한 것이다. 비록 의혹의 습기가 없어서 원융하고 청정하나 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밝은 깨달음」이라고 한 것이다. 만약 그것을 매우 오묘하다고 하여 결과를 증득했다고 생각하면 이는 定性정성의 연각이나 독각일 뿐이니 이는 원만한 깨달음의 통하고 합해진 것으로 원인으로 삼아서 맑고 고요하고 밝은 작은 과업을 이룬 것이다. 깨달음과 합해졌다는 것은 마음이 정밀하게 통하여 합해졌다는 홀과 같은 뜻이니 겨우 바른 깨달음과 통하고 합해져서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것이다.「고요하고 맑고 밝다는 것」은 곧 원융하게 밝은 깨달음이다. 깨달은 것이 원만하게 밝은 식음에 그치고 定性정성을 돌이키지 못하였으므로「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으며 변화하지 않는 원만한 종자」라고 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五十 가지 마구니의 경지가 모두 정밀한 식음으로 잘못 이해하고 사특하게 깨달아서 바른 견해를 얻지 못한 것이니, 마음에 비교하여 생각을 움직이면 모두가 그 가운데 떨어져서 비록 벽지와 과위를 증득하였더라도 오히려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릴 것이니 覺皇각황께서 입이 쓰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마음을 다해 세밀히 분석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게 하셨으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증득할 수 있는가? 마땅히 五十 가지 마구니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관찰해서 올바른 마음을 깨달아 그 가운데 떨어지지 아니하면 이를 증득할 것이다.
셋째, 결론지어 철저히 막을 것을 권유하다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가 중도에서 잘못된 견해를 이루어서 미혹함을 의지함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 만족하게 증득했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모두 식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이 지위에 생겨나거늘 중생들이 미련하고 혼미하여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이렇게 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만날 적에 각각 먼저부터 좋아하던 습관으로 마음을 미혹하여 스스로 쉬어 그쳐서 장차 마침내는 돌아가 편안히 쉴 곳으로 여기고 스스로 위 없는 보리를 만족한다고 말하면서 크게 거짓말을 하면 외도와 사특한 마구니는 감응하여 받은 업보가 끝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성문과 벽지는 더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原註= 도를 닦음에 있어 진로를 잃었으므로 중도에서 잘못된 견해를 내는 것이고 더욱 갈림길을 만났으므로 미혹함을 그대로 의지하는 것이다.「먼저부터 좋아한 습관」이란 곧 사특하게 전하고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비밀리에 진실로 증득한 것인양 생각하여 마침내 마음을 쉬어서 장차 마침내 돌아가 편안히 쉴 곳으로 삼는 것은 다만 스스로를 그르치게 하는 것이므로 사특한 마구니는 마침내 악도에 떨어지고 二승[성문, 연각]은 바른 과업을 이룩하지 못하나니라.
넷째, 명령하여 널리 선포하도록 함
너희들이 마음을 새겨 여래의 도를 받들어서 이 법문을 간직했다가 내가 멸도한 뒤 말법 세상에 전하여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이 뜻을 분명히 깨닫게 하고 보는 마구니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죄를 짓지 않게 하며 편안하게 보호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제해서 사특한 인연이 사라지게 하여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知見지견에 들어가서 처음을 따라 성취하여 갈림길을 만나지 않게 하라.
原註= 사특한 견해와 뒤바뀐 견해가 재앙이 되어 몸과 마음을 뒤엎는 것을「보는 마구니」라고 한다. 마음은 내학이 되고 보는 것은 外鍵외건이 되므로 앞에서는 마음의 마구니를 방지하였고 여기서는 보는 마구니를 방지한 것이니 도를 수행하는 것을 돕는 요점을 극진하게 말씀하셨다.
다섯째, 힘써 궁극의 경지에 이르게 함
이러한 법문은 앞선 과거세상에 항하의 모래와 같이 무수한 겁을 지내오면서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것을 의지하여 마음이 열려서 위 없는 도를 증득하셨으니 식음이 만약 다 없어지면 네 앞에 나타나는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리니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보살의 金剛乾慧금강건혜에 들어가 원만하게 밝은 정밀한 마음이 그 가운데 발하여 변화됨이 마치 맑은 유리 속에 보배의 달을 넣은 것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십신 ․ 십주 ․ 십행 ․ 십회향 ․ 사가행의 마음과 보살이 수행하는 금강십지를 초월하여 等覺등각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여래의 오묘하고 장엄한 바다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히 이루어서 증득할 것이 없는데로 돌아가리라.
原註= 선세의 성인이 이것을 의지해서 마음을 열어 도를 증득하셨으니 후학들은 진실로 마땅히 힘써 연구해야 한다. 식음이 다 없어지면 여섯 가지 문이 모두 소멸되므로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리니 그렇게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금강지혜에 들어가서 원만하게 밝은 마음을 발함이 곧 마음을 여는 일이요 십신 등을 곧바로 초월하여 여래의 바다에 들어감이 도를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다.「금강간혜」란 등각의 뒷 마음이요 십신의 모든 지위는 닦아 나아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능히 곧 바로 초월하여 또다시 미세한 남은 의혹까지 닦아 오묘한 깨달음에 오르는 것이니 이것이 참으로 닦는 도이다.「오묘하고 장엄한 바다」란 모든 덕을 통솔하며 다른 부류와 합하여 엄하게 아니해도 엄격하고 증득함이 없어도 증득하는 果海과해이니 密印萬行밀인만행으로써만이 이르는 것이다.
셋째, 총결론
이는 과거에 먼저 나신 부처님께서 사마타 가운데 비바사나로 깨달아 밝아진 것을 분석하신 미세한 마구니의 일이니 마구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네가 이를 잘 알아서 마음의 때를 씻어버리고 사특한 견해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陰魔음마가 소멸하고 천마가 부숴지며 큰 힘을 가진 귀신이 넋을 잃고 도망하여 산도깨비 무도깨비들이 다시는 더욱 정진하여 큰 열반에 대해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으리니 만약 말법 세상에 어리석고 우둔한 중생이 선나를 알지 못하며, 설법할 줄 모르되 삼매 닦기를 좋아하거든 네가 사특하게 될까 두려울진댄 일심으로 권유하여 나의 佛頂多羅尼呪불정다라니주를 지니게 하라. 만약 외우지 못하거든 공부하는 방에 써 두거나 혹 몸에 차거나 하면 일체의 마구니가 조금도 동요할 수 없으리니 너는 마땅히 시방 여래께서 구경까지 닦아 나아가신 최후까지 가르쳐 주신 법을 공경히 받들어라」하셨다.
原註= 오음의 마구니를 밝힌 뜻을 한꺼번에 매듭지어 깊이 방지해야 됨을 깨닫도록 한 것이다.「사마타 가운데 비바사나」란 곧 선정의 관법이다. 마구니의 경계란 모두가 밝은 깨달음으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이른바「밝은 깨달음을 분석한다」는 것은 곧 밝은 깨달음을 분석한 것이다.
둘째, 請益청익과 詳盡상진
첫째, 아난의 請益청익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자옵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받들어 기억하여 잃어버리지 않고 대중 가운데서 다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오음의 현상 가운데 다섯 가지 부질없이 생각하는 마음이 근본이 되었다고 하시니 저희들은 평상시에 여래의 미세한데까지 열어 보이심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오음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입니까? 차례로 없어지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다섯 겹으로 쌓임은 어디까지가 경계입니까?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펴시어 이 대중들을 위해서 마음과 눈을 맑고 밝게 하시며 말세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장래의 눈이 되게 하소서.」
둘째, 부처님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겠노라고 허락하심
첫째, 허망의 근본을 통틀어 서술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정밀하고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본각이 원만하고 청정하여 나고 죽는 것과 온갖 티끌과 허공까지도 머물러 두는 것이 아니건만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는 원래 본각으로서 오묘하고 밝고 참되고 정밀한 것인데 허망하게 기세간을 발생시킴이 마치 연야달다가 제 머리를 모르고 그림자로 잘못 인정하는 것과 같나니라.
原註=나고 죽는 부질없는 업인과 티끌과 때의 허망한 인연이 참되고 청정한 성품 가운데 이미 머물러 있는 것이 없건만 완전히 허망으로 인하여 일어남이 마치 제머리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 오음의 현상 가운데 다섯 가지 허망한 생각이 근본이 되었음을 이로부터 알 수가 있다.
허망한 것이 본래 원인이 없는 것이거늘 부질없는 생각 속에 인연의 성품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연을 모르는 자는 자연이라고 하는데 그 허공의 성품도 사실 환상으로 생긴 것이므로 인연과 자연은 모든 중생들이 허망한 마음으로 헤아려 생각한 것이니라. 아난아! 허망한 것이 생긴 데를 알면 허망한 인연을 말할 수 있으려니와 만약 허망한 것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허망한 인연을 말하려고 하여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거든 더구나 알지도 못하면서 자연이라고 미루어 생각할 수 있겠느냐?
原註=허망한 것은 원인이 없는 것이므로 헤아려 생각함을 허용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허망한 것이 생긴데를 알면 인연을 말할 수가 있지만 생긴데를 알지 못하면 인연이 어찌 있으리요? 더구나 자연이라고 추측한다면 허망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가 너에게 발하여 밝히시되 오음의 근본 원인이 다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시니라.
둘째, 질문에 대하여 따로따로 답하심
첫째, 허망한 오음의 근본에 대한 대답
첫째, 색음은 본래 견고한 망상이다
너의 몸이 처음에 부모를 생각함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니 네 마음이 생각이 아니었으면 생각 가운데 와서 생명을 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는 마치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마음으로 신 맛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생기고 마음으로 높은데 오르는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새그롭다고 한 것과 같나니 높은 절벽이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며 신 물건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의 현재 색신이 견고한 제一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생각이 허망한 그림자 같은 현상이며 욕애의 깊은 맥락이니 타고난 몸은 애욕을 생각함으로부터 흘러 나온 것이므로「몸이 부모를 생각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중음신으로 있을 때의 마음이 애욕을 생각하는 것을 타고서 가만히 구하므로「마음이 생각 가운데 생명을 전한다」고 한 것이다. 신 매화열매는 몸이 허망으로 인하여 맺어졌으므로 허망한 이치와 서로 응함을 징험한 것이다. 만약 허망한 종류가 아니면 허망함이 감응할 수 없을 것이다. 몸이 생각으로 인하여 생기고 마음이 생각으로 인하여 일어나며 생명이 생각으로 인하여 전하나니 모든 생각이 서로 굳어져서 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수음은 본래 허명망상이다
여기서 말한 바 높은데 오를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네 몸으로 하여금 참으로 시거나 발바닥이 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나니 수음이 생기므로 인하여 색신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가 지금 앞에 나타나는 순하면 유익하고 거스리면 해로운 두 가지로 치달리는 것을 비고 밝은 제二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높은데 오르는 것이 부질없는 생각이거늘 새그로움은 참으로 느끼는 것이며 거스리고 순종하는 것이 다 허망한 것이거늘 해롭고 유익함이 눈 앞에 치달리면 수음은 실체가 없으면서도 비고 밝음이 있기 때문에「비고 밝은 허망한 생각」이라고 한 것이니 그 생각하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수음이 생기나니라.
셋째, 상음은 본래 원융하게 통한 망상이다
너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너의 색신을 부리나니 몸은 생각의 종류가 아니거늘 네 몸은 무슨 까닭으로 생각을 따라 부림을 당해서 갖가지 형상을 취하여 마음이 생각을 일으키면 몸은 취하여서 생각과 서로 내응하느냐? 깨면 생각하는 마음이요 자면 모두가 꿈이니 네 생각으로 요동하는 허망한 정을 이름하여 융통하는 제三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생각은 부질없는 정이고 색신은 실질이다. 허망함과 실질이 같지 않은데도 서로 부릴 수 있는 것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통하는 것이며 마음이 허망한 형상을 내면 몸은 실물을 취하나니 마음과 몸이 쓰임은 다르나 서로 응할 수 있는 것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통하는 것이며 자나 깨나 요동하고 변화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을 따르며 대상으로 하여금 마음을 따르게 하나니라.
넷째, 행음은 본래 그윽히 숨겨진 망상이다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러 있지 않아서 쉬지 않고 은밀하게 옮겨가서 손톱 ․ 발톱이 자라고 모발이 나며 기운이 사라지고 얼굴이 쭈그러져서 밤낮으로 서로 교대하는데도 일찍이 깨닫지 못하나니 아난아 이것이 만약 네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이 변하여 달라지며 만일 반드시 진실한 너라면 어찌하여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의 모든 작용이 잠시도 머물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그윽하고 은밀한 제四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처음엔 그윽하고 은밀한 현상을 지적하고 다음에는 허망한 이치를 분별하여 매듭지은 것이다.
다섯째, 식음은 본래 형상이 없는 망상이다
또 네가 정밀하고 밝고 맑고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곳을 항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몸에 보고 듣고 느껴서 아는 것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原註=「정밀하고 밝고 맑고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음」이란 의식의 실체를 가리킨 것이요「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는 것은 의식의 작용을 가리킨 것이다. 참되고 항상함이 아닌데도 항상하다고 집착하는 것을「항상」이라고 한다.
만약 참으로 정밀하고 진실한 것이라면 허망한 것 익히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무슨 까닭으로 너희들이 옛날에 어떤 기이한 물건을 보고 여러 해를 지내면서 기억하고 있는지 잊었는지 알 수 없다가 뒤에 홀연히 전에 것과 다른 것을 다시 보면 기억이 완연하여 조금도 잊어버리지 아니하는고? 이는 정밀하고 밝고 맑아 요동하지 않는 가운데 생각마다 薰習훈습을 받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맑고 고요함이 참된 것이 아니라 마치 급히 흐르는 물과 같아서 보기에는 고요한 듯하여 흐름이 빠른 것을 볼 수는 없으나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만약 생각의 근원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부질없는 익힘을 받아들이겠느냐?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서로 작용하여 합하거나 열리지 아니하면 그 허망한 생각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原註=정밀하고 참되면 허망하게 익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지금 옛 것을 간직하여 완연하게 잃어버리지 않고 있으니 이는 허망한 습기이다. 맑음이 비록 요동하지 않는다고 하나 이 식음이 생각마다 훈습을 받아서 그 허망한 것을 받아들임이 많을지니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맑고 고요한 것이 정말로 맑고 고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윽히 잠겨서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급히 흐르는 물이 평평하고 바르게 흘러서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에다 비유한 것이다. 이느 곧 기억하는 생각의 근본이며 망령됨을 용납하는 실체이다. 모름지기 식음을 다 깨트려 없애서 여섯 가지 문을 소멸시켜 허망한 습기로 하여금 붙어 있을 수 없게 해야만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현재인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가운데 관습의 기미이니 맑고 또렷한 가운데 형상이 없이 허무한 제五의 뒤바뀌어진 미세하고 정밀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위에서 다 지적하여 서술하고 여기에 이르러 매듭지어 밝힌 것이다.「관」이란 항상 익히는 것이고「幾기」란 기미이다. 정밀하고 밝은 고요하고 맑은 의식이 여섯 가지 작용의 항상 익히는 근본이 되므로 보고 깨닫는 기미라고 한 것이다. 이는 곧 맑고 고요한 의식이니 형상도 없는 것이 보아 깨닫는 가운데 잠재해 있으므로「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관습의 기미」라고 한 것이다. 없는 듯함을「罔망」이라 하고 있는 듯함을「象상」이라고 하는데 그 실체가 정밀하고 미세하므로「형상도 없이 허무한 뒤바뀌어진 情想정상」이라고 한 것이다.
둘째, 오음 변제에 대한 대답
아난아! 이 다섯 가지 쌓인 음은 다섯 가지 망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라. 네가 지금 因界인계의 깊고 얕음을 알고자 하면 색질과 빈 것은 색음의 邊際변제이고 접촉과 떠남은 수음의 변제이고 기억하고 잊음은 상음의 변제이고 없어짐과 생겨나는 것은 행음의 변제이고 맑고 고요한데 들어가 맑고 고요함과 어울리면 식음의 변제로 돌아가나니라.
原註= 오음과 오탁은 물건은 같은데 이름이 다르니 이는 한 생각이 혼미하고 허망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이를 취하므로 말미암아 스스로 가리고 감춘 것이다.「因界인계」라고 말한 것은 본래는 경계가 없는 것인데 망상으로 말미암아 기인한 것이므로 色색이 스스로의 색이 못되고 空공으로 인하여 있게 되어서 색음의 변제가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멸함까지도 스스로 멸하는 것이 아니라 생겨남으로 인하여 멸함이 있게 된다. 그래서 행음의 변제가 되며 의식을 맑고 또렷하다고 하니 그 맑고 고요함이 스스로 맑고 고요한 것이 아니라 음행이 흘러 도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성품이 원래 밝은 데에 들어가 맑고 고요함과 어울려서 식음의 변제를 이루는 것이다.
셋째, 오음을 없애는 차례에 대한 대답
이 오음의 근원이 겹겹이 쌓여서 생긴 것이니 생겨남은 식음으로 인해 생겨나고 없어짐은 색신을 따라 없어지나니 이치인 즉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지라 깨달음에 의지하여 모두 사라지지만 일은 단박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례를 따라서 다 없어지나니 내가 이미 네게 겁바라수건으로 매듭짓는 것을 보여 주었거늘 무엇이 분명치 않아서 다시 묻느냐?
原註= 의식을 겁바라수건에 비유하고 색신을 마지막 매듭에 비유하셨다. 그 매듭은 수건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생겨나는 것이 의식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견해가 차례를 따르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 색질을 따라 없어지나니라. 오음이 생기는 것은 미세한데로부터 거친데로 이르나니 이는 미혹한 습기로 말미암아 의식이 있는 것이며 이렇듯 수음으로 말미암아 색음에 이르고 없어짐에 대해서는 거친데서부터 미세한데에 이르는 것이니 반드시 색음을 먼저 깨뜨린 뒤에야 수음이 나타나며 이렇듯 행음을 깨트린 뒤에야 식음이 나타나는 데까지 이른다.「이치는 단박에 깨닫는 것이라서 깨달으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수건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알면 매듭도 있지 않을 것이며 「일은 단박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례로 없애야 한다」는 것은 중근기는 완전하거ㅔ 깨닫고서도 반드시 차츰차츰 닦아 나가야 하나니 만약 돈오로 인하여 점수를 잊는다면 알기만 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이며 이치만 집착하고 일은 미혹하여 마침내 치우치고 사특한 데에 떨어질 것이다.
셋째, 결론지어 널리 선포하기를 권유하다
너는 마땅히 이 망상의 근원을 가지고 마음으로 열어 통달해서 장래 말법 세계 속에 모든 수행하는 자들에게 전해주어 허망함을 깨닫게 하여 싫증을 스스로 내어서 열반이 있음을 알고 삼계를 연연하지 않게 하라.
原註= 이러한 이치를 자신도 알고 남도 알게 하여 허망의 근원을 영원히 끊어서 다같이 바를 과업에 돌아가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