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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나는 푸른 늑대를 길들인 알랑고아다"

- "나는 푸른 늑대를 길들인 알랑고아다"


후손들아,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 알랑고아다.

너희가 내 후손이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다. 

나는 여자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힘이 세지도 못하고, 그다지 지혜롭지도 않았다. 나는 단지 <사랑>이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가족을 단단하게 묶고, 전사들과 우정을 기르고, 우리 부족과 씨족을 씨줄날줄로 엮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나는 전사들처럼 장딴지가 굵지 못해 앞장서 적을 치며 달리지 못하고, 적의 가슴에 창을 던져 통쾌하게 꽂을 만한 강한 힘을 갖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후손을 남기고 그들은 남기지 못했다. 용맹한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전장에서 하나둘 죽어갔다. 나는 힘이 없어 군사로 징발되지 못한 채, 불명예스럽게도 양을 치고 소떼를 지키는 목동으로 살았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부지하고, 부지런히 양고기를 생산하여 자랑스런 우리 용사들에게 갖다바쳤다.


그해 겨울, 나는 단지 배가 고파 산에서 내려온 어머늑대와 새끼 두 마리를 내 겔로 들이고, 너무나 오래도록 굶주리고 지쳐 거의 사경을 헤매던 이 어미늑대와 새끼늑대에게 양고기와 우유를 주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늑대는 기어이 숨을 놓고, 새끼늑대 두 마리만 살아남았다. 나는 이 늑대새끼들을 정성껏 길렀다. 

나는 오직 양과 소를 쳐서 용맹스런 우리 부족의 전사들에게 고기를 갖다 바치는 것이 유일한 의무였다. 나는 군사훈련을 받지도 않고, 굳이 말을 타고 달리며 화살을 쏘는 훈련을 하지도 않았다. 새끼늑대를 돌보는 건 용사가 되지 못한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녀석들은 기력을 찾으면서, 죽은 어미 대신 내 품으로 파고들어 쉬고, 잠을 잤다. 내 손가락을 빨고, 배가 고프면 내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꼬리를 쳤다. 그러면 나는 새끼늑대가 너무 귀여워 말린 쇠고기 볼추를 먹이면서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해가 가는가?

사실 나는 겨울이면 양떼와 소떼를 지키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배가 고픈 늑대들이 가축 우리로 들어와 양 몇 마리쯤 해치우는 건 거의 매일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울타리를 튼튼하게 쳐도 구멍이 뚫렸다. 

내가 이 문제로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갖은 궁리를 했는지 전사들은 잘 모른다. 그건 단지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울타리를 고치느라고 끙끙거렸다. 그러다가 울타리를 잘 치는 기술자가 되어 나는 누구보다 양과 소를 잘 지키는 목동으로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나는 우리 부족에서 가장 뛰어난 목동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던 중 배 고픈 늑대 가족이 내게 나타났던 것이다.


새끼늑대들이 자라자 나는 이 두 마리 암컷들에게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진달래와 철쭉이는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녔다. 

양떼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니면서도 결코 양을 물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언제나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배가 고플 때면 내게 와서 꼬리만 흔들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들을 결코 굶기지 않았다. 수많은 전사들을 먹여 살리는 나지만, 내가 얻는 소득이란 따로 없었다. 전사들은 전리품도 얻어오지만 내게 떨어지는 건 그다지 값어치 없는 허드레였다. 그러니 내가 어찌 날 따르는 늑대들에게 고기를 아끼겠는가.


나는 단지 늑대새끼를 길들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늑대들은 먹이를 주는 내 곁을 지켰을 뿐이다.

어느 날이던가, 한밤중에 양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즉시 활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늑대 대여섯 마리가 울타리를 물어뜯고 양을 사냥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진달래와 철쭉이가 그들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 놈들을 물어뜯었다. 배고프고 지쳐 있던 야생 늑대들은 힘세고 튼튼한 진달래와 철쭉에게 여지없이 당하면서 멀리 달아나버렸다. 양 한 마리만 야생 늑대에게 목이 물려 죽는 데 그쳤다. 천만다행이다. 나는 죽은 양고기를 썰어 불에 구운 다음 진달래와 철쭉에게 먹였다. 이 아이들도 구운 고기를 더 맛있게 먹는다. 덩치도 커서 야생늑대들보다 더 크고 튼튼하다.


이 아이들은 머지 않아 새끼를 배었다. 발정기가 되어 두 마리가 잠시 들판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점점 배가 불러왔다. 아마도 야생늑대들과 교미를 한 모양이다. 두 달이 지나자 새끼 여섯 마리가 생겼다. 

나는 이 늑대를 마치 군대처럼 부렸다. 우리 목장에는 그 어떤 야생늑대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하물며 곰이나 호랑이, 표범도 접근할 수 없다. 전처럼 울타리를 엮는데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내 늑대들이 알아서 목장을 돌면서 맹수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새끼늑대들이 자라자 우리 씨족과 부족 여러 목장에서 이 늑대들을 보내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그들은 대신 아름다운 여성을 내 겔로 보내주어 그들을 임신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기꺼이 길들인 늑대를 그들에게 보내주었다.

나는 양을 치는 목동에서 늑대를 길들이는 목동으로 직업이 바뀌었다.

그로부터 나는 우리 보르지긴 씨족의 모든 목장에 길들인 늑대를 나눠주고, 몽골부족 어디라도 보내주었다. 사람들은 이 늑대들을 더이상 늑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 말 잘 듣는 길들여진 늑대를 개라고 불렀다.


우리 씨족과 부족은 날로 강해졌다. 어떤 전사는 개를 끌고 전쟁에 나가기도 했다. 이 개들은 적진을 향해 뛰어들어 적의 말을 흥분시키고, 적병들을 혼비백산시켰다. 이 늑대개 열댓 마리를 이끌고 그들의 둔영지로 쳐들어가면 적들은 말과 소와 양을 둔 채 말을 타고 달아나기 바쁘다.

우리는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하였다. 그러니 어찌 개를 함부로 대하겠는가. 우리 보르지긴 씨족은 개를 사람과 같은 식구로 대하였다. 사랑으로 감싸니 그들은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맹수들을 물리치고, 적을 혼내주었다.


우리 씨족은 날로 강성해졌다. 이웃 부족들은 점점 더 우리 부족에게 복속해왔다. 

후손들아, 알고 보면 우리 부족이 이웃 부족들을 차례차례 점령하고 우리의 피를 퍼뜨린 것은, 어쩌면 이 개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반드시 돌아온다. 뿐만 아니라 새끼 쳐서 무리로 돌아온다.

나는 대몽골의 어머니 알랑 고아다.


누가 늑대를 잡아다 길들일 것인가

* 이 글을 어떤 이유로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천년영웅 칭기즈칸> 개정판을 낼 때 쓰려고 메모한 게 아닌가 싶다.  


- 몽골의 개는 우리나라 진도개의 원형이다. 

몽골개 사진이 없어 애완견이 된 우리 아이들 것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