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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인간을 악마로 기르지 말라

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누구든 의심하고, 따라서 나도 의심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계(戒)를 세워 지키려 노력한다. 계가 아무것도 없거나 버린 사람에게 무지, 무명은 한없이 쌓인다. 구더기 슬듯 욕망이 솟구치고, 이 욕망이 덜 차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더 어리석어지는 탐진치(貪瞋痴)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요즘 대한항공 일가족 사태를 보면 계가 없는 사람에게 욕망만 가득 찰 때 무슨 일이 생기나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들은 탐진치 논리에 따라 화를 내고 무지몽매한 행동을 일삼았다.


나는 장애견 두 마리를 기르면서 3~4시간에 한번씩 소변을 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하늘 간 바니(말티즈, 척추장애로 반신불수)가 리콜되면서 소변을 짜주기 시작해 어느덧 10년 세월을 이러고 있다.

바니가 간 뒤로 경추장애견 별군이와 시각장애견 맥스를 입양하면서 실내 배변을 금지시키고 대신 마당에 나가 뉜다. 자가 배변이 가능하지만 바니 때 습관으로 일부러 그렇게 한다. 집안에 개냄새가 덜 나고, 우선 나를 다스리는데 요긴하다.

내가 포유류를 먹지 않는 것 역시 내가 스스로 정한 계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 중에도 더러 내게 자비심이 없다, 너무 모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렇게 보는 건 그들의 눈이고 나는 자비를 매우 중시한다. 심지어 극대의 자비심을 강조한다. 나이 먹으면 저절로 왕이 되는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거지 같은 사문이 되어 들판을 떠돈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백만 장자의 외아들이지만 전재산을 기부하고 맨몸으로 출가한 시바리 존자처럼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걸 잘 안다.


내 딸이 만일 싯다르타의 아들 라훌라처럼 건강하고 총명하다면 나는 아마 내가 가진 150여 권의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자유저작권으로 내놓았을 것이다. 수십 억원의 돈을 들여 만든 바이오코드조차 소스까지 다 공개해버렸을 것이다.

내 저작권을 풀어 세상에 내놓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 내 딸의 몫이다. 싯다르타는 그의 아내와 아들을 벌판에 버려둔 것이 아니라 왕궁이라는 안락한 곳에 두고 나와 그나마 마음이 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다. 그저, 한때는 내가 내 딸보다 더 오래 살기를 소원했었다는 것 정도로 그친다. 


싯다르타가 아들이 태어날 때 "아, 근심이 생겼구나"라고 하셨다는데 내가 그러하다. 기왕 생긴 근심이니 거기에 더해 장애견까지 입양해놓고 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것이다. 오전 6시에 두 아이 소변을 보게 해주고, 그때부터 나는 아나파나 사티를 하고, 끝나면 물고기 반달이 사료를 주고, 사료 다 먹고나면 물을 갈아준다. 이로부터 하루 종일 3~4시간 간격으로 두 아이 소변을 뉘면서 내 일정을 조정한다.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 일정은 매우 규칙적으로 이뤄진다.


난 1990년부터 나 혼자 내 시간을 다스려 왔다. 전업 작가는 자칫하면 게을러지기 쉽고, 무력해지기 쉽다. 신문연재가 잇따르고, 강연 요청이 쇄도하던 전성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게으를 새가 없었지만 이제 국민의 40%가 일년 내내 책 한 권 안읽는 시대에 닥치고 나니 시간에 쫓기는 대신 남는 시간이 풍부하다. 그 풍부한 시간에 할 일을 쪼개어 나누지 않으면 또 쫓기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는 전업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바이오코드 개발자로서 늘 해야 할 연구과제가 있고, 사전편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밀려 있으니 절대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내가 정하고, 누굴 만날지, 어디를 갈지, 어떻게 할지 내가 정한다.

그런 내가 아까운 시간 내어 누굴 만난다면, 혹시라도 그가 거짓말을 한다면 바보처럼 그냥 웃고 말아야겠는가? 내가 아무 말 않고 웃거나 "아, 그래요?" 말이라도 해주면 상대는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가 옳구나, 이재운이 인증하는구나, 이렇게 착각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준다.


가까이 지내는 진 박사가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몇 점 살펴본 적이 있다. 이때 사람들은 흔히 열심히 그렸군요, 잘 그렸네요, 이 정도로 말을 만든다. 하지만 진 박사도 내 성미와 비슷해서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진 박사도 자신의 이름이 있는데 누군가를 함부로 칭찬할 수가 없다. 결국 "데생 공부 얼마나 하셨나요?" 질문이 나오고 이어 "데생을 열심히 하세요"로 마무리되었다.


요즘 지방선거철이라 용인시장 선거에 관한 코멘트가 매우 많다.

나는 1998년에 용인에 이사와 다가오는 11월이면 딱 30년이 된다.

처음 20년간은 용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높은 담을 치고 살았다. 내 집은 내 왕국이라서 손님이 함부로 오지도 못하고, 아무에게나 전화번호를 알려주지도 않고, 그나마도 3년에 한번씩 전화번호를 바꿔가면서 용인과 나를 철저히 갈라놓고 살았다.

그러다 딸이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치료 때문에 교육청과 병원 가는 일이 많이 생기면서 내 가족이 사는 공간을 너무 방치했다는 후회를 했다. 알고 보니 용인은 무지와 혼란, 패거리 단체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도시였다. 글 다섯 줄조차 문법과 논리와 맞춤법에 맞추어 써내지 못하는 지력으로 용인시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의 꼴을 보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2010년에 처음으로 시장 선거에 코멘트를 했다.

말하자면 거악보다 차악을 선택한 셈인데, 이후 4년간 이들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를 하다보니 한이 없게 되었다. 당시 이 차악에 붙은 사람들이 숱하게 감옥에 가고, 처벌받고, 날뛰다 진짜 죽는 걸 보고는 이게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거악이고 차악이고 내버려둔 채 지난 4년간 다시 용인을 방치했는데 친하게 지내는 분이 시장후보로 나서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들추다보니 다시 후회가 밀려든다. 그 사이 또 용인시가 누더기가 되었다.

결국 이러면 안되겠구나 싶어 짧은 기간이나마 내 의견을 내기로 결심하였다.


용인시장 선거에, 박근혜 언론특보 출신의 시장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와 있고, 원조 친박이라는 서청원 따라다니며 거덜 노릇하던 이우현 의원이 감옥에 가 있다. 이 둘이서 조직해놓은 빨간 조직이 만만치 않다.

의견만 달라도 빨갱이라고 욕하는 젊은이들이 있고, 박근혜가 무죄라고 거품 무는 사람들이 뜻밖에 아주 많다. 그러다보니 용인은, 아파트만 많이 지으면 개발인 줄 착각하는 부동산중개사들이 유지 노릇하는 곳이다. 길이 막혀 한 시간 걸리든 두 시간 걸리든 이런 인프라 문제는 아예 관심도 없다. 도시 설계니 도시 디자인이니 개념 자체가 없다.

용인은 체육과 출신 시장이 있고, 축구 선수 출신 국회의원이 떵떵거리지만 막상 도민체전 하나 치를 능력조차 없는 이상한 도시다. 그걸 비판하면 도민체전 치르는 게 왜 중요하냐고 되묻는다. 이 정도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그러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최소한 내 귀에 들린 거짓말에 대해서는 "거짓말이다"라고 말해야 하고, 내가 본 거짓에 대해서는 "저건 가짜다" 말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악이 더 자라지 않는다.

내가 굳이 내 주변 사람들의 무명을 밝히며 그러지 말라는 것은 그를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히틀러도 한때는 효성스럽고 감수성 많은 미술학도였다>


- 나의 게으름을 막아주는 시간조절자 별군(위 말티즈)과 맥스(아래 시츄)


* 히틀러가 그린 풍경화. 이런 히틀러를 나치지도자로 만든 건 독일 국민이었다.

* 서예가 이완용의 난초 그림. 그는 독립문 현판까지 썼다. 그런 그를 외부대신으로 임명, 매국노로 만든 건 고종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