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 이재운 / 책이있는마을 / 304쪽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4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3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편집중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을 일제에서 해방된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하찮으며 비루하며 참담한지, 나는 몇 번이나 되풀이 강조하였다.
나는 지금 <~우리말 어원사전> 증보판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편집본이 나와 교정 중인데, 몇 가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맞춤법과 문법을 엄청나게 강조하는 김동리 선생으로부터 글 쓰는 법을 배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김동리 선생은 축구계의 거스 히딩크 같은 분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하는 기술이나 전술을 가르치기보다 우리 선수들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데 오랜 시간을 쓰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학 시절, 내가 얼마나 무지한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국에서 백일장이며 글 쓰는 대회에서 온갖 상을 휩쓸어온 친구들이 바글거리는 문예창작과 학생들은(지금은 문예창작과가 흔하지만 당시 우리 학과는 전국 유일의 대학교 정규학과였다) 김동리 선생 앞에서 빛을 잃었다. 나도 그렇게 무너졌다.
말하자면 글 쓰는 기본부터 다시 배웠다. 히딩크는 걸음마를 다시 시키고, 김동리 선생은 옹알이부터 다시 시켰다.
지금도 소설가나 시인의 글을 보면, 글의 기본이 안된, 즉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써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김동리 선생은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쓰지 말라고 입술에 바짝 마르도록 끝없이 말씀하셨다. 마치 내 동기들이 일류 신문사 기자가 되어 데스크로부터 "팩트가 뭐야? 팩트 맞아!"라는 꾸지람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기사 쓰는 법을 배운 사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첫 직장으로 얻은 한 편집회사에서 김동리 선생보다 한 술 더 뜨는 편집자를 만났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편집장을 지낸 김형윤 선생이었다. 조사, 부사, 형용사, 시제 등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글쓰기의 기본을 따로 배운 바가 없으니 김형윤 선생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고, 알아듣는 내가 문제였다. 나는 김형윤 선생이 우리가 쓴 잡지나 사보, 책을 놓고 강평하자고 하면 늘 불안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에창작을 배우고, 책을 두 권이나 발표한 내가 김형윤 선생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래서 김 선생에게 걸리지 않으려고 내가 쓴 글을 쪼개고 나누고 해부하는 일을 나 스스로 해나갔다.
(당시 잉어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을 하나 구해 올렸는데, 가제본 검토 중에 그 사진이 일본 잉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 선생이 당장 고치라고 하여 나는 인쇄소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잉어면 같은 잉어지 한국 잉어 다르고 일본 잉어 다르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다르다.)
직업 소설가인 내가 10권(현재 기준)의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 것은 김동리 선생과 김형윤 선생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사전 만드는 일은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991년에 발표한 <소설 토정비결>이 350만 부가 나가면서 나는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그러자마자 1994년부터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런 지 이제 24년이 되었다.
소설가가 웬 사전 작업에 그리 매달리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친구 중에 김호석이란 화가가 있는데, 이 친구는 붓털 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서로 다른 재질의 종이를 구하러 다니고, 물감 원료를 구하러 다닌다. 몽골에 함께 간 적이 있는데, 사냥꾼이 가죽을 벗겨 말리는 마르모트(쥐로 분류되는데 살찐 고양이 정도의 크기, 칭기즈칸이 어려서 잡아먹던)를 보더니 수염을 뽑아 모으고, 알타이산에서는 푸른 돌이나 파란 돌을 보더니 그 돌을 갈아 써보겠다고 모으고, 동몽골에서는 붉은 흙벽을 보더니 그걸 긁어 담았다. 요새는 한지를 만든다고 돌아다닌다.
화가도 이렇게 자기가 쓰는 도구와 재료를 관찰하고 분석한다. 가게에서 사 쓰면 간단한데 굳이 그런다.
김호석이 그렇듯이 소설가인 내가 가장 중요한 재료인 우리말을 뜯어보고 나눠보고 쪼개보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이것이 내 대답이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면, 나는 돈 많이 벌어놓거나 돈 많은 부모나 배우자 만나 폼으로 글 쓰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글 써서 번 돈으로 아이 분유를 사고, 마누라 신발을 사줘야 하는 직업 소설가다, 안그러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할 줄 아는게 글 쓰는 것밖에 없으니 직업 바꿔봐야 어디서든 늘 꼴찌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포르페셔널의 가치를 누구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대답한다.
전업작가로서 나는 이런 원칙을 지켜왔다.
1. 외국인 인명을 적을 때 반드시 그 성을 밝힌다. 1990년대 초까지 나온 우리나라 사전에는 성을 표기하지 않고 이름만 적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테면 링컨이라고만 하지 에이브러험 링컨이라고 적는 사전이 없었다. 알파벳은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신문연재소설 등 내가 발표하는 모든 글에 반드시 성과 이름을 함께 썼다. 다민 중간이름(Middle Name)은 그들의 관례에 따라 나도 약자로 적는다. 약자만 적어도 대개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2. 역사소설을 많이 쓰다 보니 왕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나 이전의 그 어떤 작가나 학자도 왕의 이름을 적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정조면 정조지 이산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반드시 그 왕의 이름을 적는다. 세조 이휘, 중종 이융이라고 적어야지 세조라고만 하거나 중종이라고만 하면 본인도 못알아본다.
3. 수를 표현할 때 가능하면 단자리까지 쓰고, 소숫점 이하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찾아 적으려 노력했다. 즉 백 명이 넘는, 대여섯 개, 여나믄 개, 천명에 이르는, 식의 대충대충 표현 혹은 과정된 수 표현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하긴 수라고 하지 않고 숫자數字가 크니 작으니 적으니 많으니 하는 엉터리 표현도 많지만. 숫자는 수를 표현하는 기호일 뿐이다.)
4. 시제에 관해 내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우리말의 과거형은 너무 지저분하다. 심지어 했었었다고 적는 사람도 있다. 시제는 설명이 길어져 여기서 줄인다.
4. 색깔, 소리, 기온 등에 관한 표현을 과학적으로 쓰려 노력했다. 푸른색-파란색 구분 같은 걸 말한다.
5. 연과 월과 일, 시각 등을 자세히 적으려 노력했다. 이 어원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사전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말 어원사전 초판은 <우리말 나이 사전>이라고 했다. 우리말 어휘의 출생기록을 뒤져 그 나이를 계산한 것이다. 이번 판부터는 양이 많아져서, 한 줄이라도 더 줄여보려고(양이 많아지만 책값이 비싸진다) 몇 살이라는 표현은 없애고 출생 기록만 더 정확히 적자는 원칙을 세웠다. 무슨 자료를 찾다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도만 적을 뿐 월과 일을 적지 않는 습관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되었다"고만 적지 날짜를 잘 적지 않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이 글의 제목을 <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었지만 법률은 1961년 1월 1일에 해방되었다>고 적은 것은, 오늘 사전 편집본 교정을 보던 중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정한 것이다.
이 사진은 1945년 9월 8일에 찍힌 것이다. 앞에 서서 시야를 가리는 놈이 누구냐면 일본군이다.
아뿔싸, 해방된 지 24일이 지나도록 우리는 우리 경찰이나 군대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당장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미군은 뒤늦게 이 날 들어오는데, 일본군이 그만 "당신들 들어올 때 빨갱이 천지인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찔러바치고, 어리버리한 존 하지 장군은 "그럼 일본군이 인천항을 통제하라"고 허락해준 것이다. 이것은 마치 112에 신고했더니 경찰은 되레 강도 바꿔달라고 하여 "경찰이 갈 때까지 피해자들 좀 붙잡고 있어라."하는 황당한 짓이다.
인천항 지키던 일본군은 이 날 실제로 조선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래서 조선인이 죽었다.
이게 우리나라다.
원자탄 두 발 맞고 일제가 항복한 뒤, 용산 주둔지에 숨어 있던 일본군은 오키나와에 있는 존 하지에게 보낸 전문에 "한국에는 빨갱이가 드글드글하니 그냥 들어오면 큰일난다, 인천에는 특히 빨갱이 천지다", 이렇게 이간질하였다. 그러니 일본군더러 필요하면 총을 쏘아도 된다고 허락해준 것이다.
경찰이 강도더러 "피해자가 난동을 부리면 칼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해준 셈이다.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고도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면서 진짜 해방을 하지 못했다.
분야별로 해방 날짜가 다 다른데, 그래서 법률 쪽만 말하자면 이러하다. (화가 치밀지 모르니 물 한 잔 마신 다음 뒤를 읽으시오)
1910년 8월 29일, 한국이 일제에 강점되자 조선총독부는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령을 차례차례 발표하고, 뒤이어 일본의 법률을 그대로 들여와 쓰기 시작했다. 형법은 조선형사령이란 명칭으로, 민법은 조선민사령이란 명칭으로 1912년 3월 18일에 제정되어 4월 1일부터 시행한다.
다 좋다. 일제 때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해방 뒤에는?
안타깝게도 미군은 일제 때 쓰던 총독부법을 그대로 쓰라고 명령했다.
그렇다 치자.
그러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에는?
우리는 참 못났다. 조선형사령이 규정하는 형법은 1953년 9월 18일에 우리 형법이 제정될 때까지 그대로 쓰이고, 조선민사령이 규정하는 민법은 1961년 1월 1일에 우리 민법이 제정될 때까지 그대로 쓰였다.
나는 해방이 된 지 한 참 뒤에 태어났지만, 그만 일제 총독부가 만든 민법의 영향을 받는 시기에 포함되고 말았다. 그러니 나도 그만 일제 식민지의 그림자를 밟은 셈이다.
내가 굳이 이 아픈 역사를 거론한 것은, 우리말 사전을 만들면서 가장 기분 나쁜 게 "우리말에 깊숙이 뿌리박은 일본어와 일본 한자어"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치욕적인 일본어와 일본 한자어가 생생하게 그대로 살아 있는 분야가 바로 법률이다. 건축 현장에도 일본어가 아직도 널리 쓰이지만, 우리 국민이 잘 몰라서 그렇지 법률 쪽에는 일본어와 일본 한자어가 아예 일상 언어일 정도다.
학술 언어에도 일제에서 독립하지 못한 말 투성이지만, 가장 심한 곳이 법률, 그 다음이 행정이다.
일하다가 한숨이 나와 이 글을 쓴다.
사전 편찬은 내 주업이 아니라 이런 폐단을 내가 다 못고친다. 내 전공은 문예창작이지 국어국문학이 아니다.
누구든 광복군, 독립군 정신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세우겠다는 뜻을 세워 이 일을 물려받기 바란다.
- 1945년 11월 2일 밤부터 효력이 있다는 미군정장관 명의로 발표한 법령 21호.
뜻번역을 하자면 이렇다.
"너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 그러니 일본총독부법 그대로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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