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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가려 먹고 덜 먹고 골라 먹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이제는 덩치가 너무 커진 우리말 어원 사전 교정을 보자니 눈이 침침해진다. 어원 사전 만드는 일이면 어원이나 따질 일이지 어쩌자고 나는 어휘 생년월일까지, 그것도 음력을 양력으로 바꿔 적어가며 일일이 따지느라 이리 고생인지 나도 나 하는 일이 우습다. 한문 들여다보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중에 잠시 점심 어휘를 따지는 중에 태종 이방원이 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는다는 소식을 듣자 각 관아의 점심을 폐하라는 전지를 내리고, 이어 궐내에서도 점심을 없애라고 명하는 내용을 보고 있다. 중생은 먹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다는 붓다의 말씀도 있었는데, 조선시대까지도 점심 먹는 일이 이리 힘이 들었다. 나도 1960년대 말까지는 점심을 먹지 못했다. 심지어 저녁을 먹지 못해 운 적도 있다. 시절이 좋다 보니 네 발 달린 동물은 먹지 않는다고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가려 먹고 덜 먹고 골라 먹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내 어린 시절이나 저 태종 이방원의 시대에 비하면 복이 넘치는 소리다. 내 친구 자륜 스님은 하동 작은 절에 있을 때 15년간 김치와 쌀만 먹으며 수행했다. 그때 쌀 보낸 공덕으로 내가 밥은 굶지 않는가 보다. 먹는 일 앞에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가 밥 먹자고 하면 시간 아깝고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던 중에 왕까지 점심을 굶었다는 옛날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복 터지는 삶을 살고 있구나 반성한다. 지금도 동물 식물은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헤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 제비새끼처럼 딱딱 벌리는 내 입에 따뜻한 보리밥 떠 넣어준 어머니, 쌀이 떨어지면 콩을 보리에 섞어 먹여준 아버지, 막 시집온 숙모 따라다니며 밥 내놓으라고 소리질러 보리밥이나마 배가 터지도록 얻어먹은 세 살 잠시잠깐의 행복한 나날, 날 데려다가 따뜻한 쌀밥을 먹이며 중학교 보내준 육촌형수, 날 데려다가 따뜻한 쌀밥을 먹이며 고등학교 보내준 이종형수... 돌아가신 장모까지도 고맙고, 내게 상 차려준 모든 손에게 고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딸만 밥을 안차려준 것같은데 왜 밉질 않은지...

찬범 숙부는, 내가 태어나던 날 남의 집으로 일하러 떠났다. 어머니가 날 낳은 날이 추석, 다음날부터 약속을 잡아 닷새 일하여 겨우 쌀 반 말을 얻어왔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 쌀을 먹고 내게 젖을 물려주셨다. 숙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은혜 잊지 말자고 다짐다짐했는데 그만 먼 길을 떠나셨다. 평생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하여 글도 많이 썼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너 따위가 우울증을 잘 알고, 암을 고칠 수 있다고?"


죽기 전에 해야 할 마지막 기도


나 힘들다고 호소하던 작은아버지





엘리베이터에서 거울 보다가



재운아, 나 힘들다



시집 오자마자 내 밥 챙겨준 숙모, 지쳐 하늘 가시다